성막의 체험
Ezra Zion , 2014-07-08 , 조회 (101)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9540.html
|
출사표를 올리다! 4월 13일 새벽
Ezra Zion , 2013-04-13 , 조회 (9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317.html
출사표를 올리다!
나는 이 땅에서 나에게 남아 있는 할당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려해 봅니다. 이제 나는 주님의 이끄심에 반응하여, 인류 역사 안에 펼쳐지는 신성한 역사 안에서 살기를 선택합니다. 나는 나의 온 일생을 바쳐, 왕국시대로 시대를 전환할 시대적인 도구의 일부가 됩니다. 나는 실지로 이것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여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헌신합니다. 나는 전쟁을 위해 준비되고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남은 일생 동안 전쟁터에서 살게 될 것임을 깨닫습니다. 이제 大山 형제가 움직이려 합니다. 서쪽으로 갈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라 온 땅이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때까지 하나님의 왕국 복음을 전파하며 이 두 손으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여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할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믿음으로 그리고 행동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나는 정말로 꿈꾸는 자이며, 나의 인생은 꿈의 인생입니다. 매일매일 나는 나의 이상에 관해, 나 꿈에 관해 말합니다. 나는 꿈꾸는 자입니다. 나는 꿈꾸는 자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상에 따라 합니다. 비록 어떤 것은 아직 통과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가 본 그것에 따라 말하며, 나의 이상이 성취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님, 누구십니까?”, “주님, 무엇을 해야합니까?”(사도행전 9:5, 22:10) 사도 바울의 이 두 가지 위대한 질문이 바로 2010년 전시간훈련에 들어갈 때의 저의 기도였습니다. 2010년 전시간훈련 1년차, 그 해의 여름훈련 메시지, 이사야 결정 연구에서 주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라고 말씀하셨다(사 6:8上). 저 또한 응답하였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下). 그 해의 가을 해외복음 개척훈련 및 섞임 가운데, 저는 중국, 캄보디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 주님의 움이심을 보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1년 2년차 훈련의 가을 무렵, 주님은 저에게 보다 구체적인 부담을 주셨습니다. 동역자들을 통하여, 주님은 LMA (주님의 아시아에서의 움직임)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훈련 졸업이 가까워진 시기에, 주님은 사업을 통하여 나아가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고 느꼈습니다. 사업을 통한 나아감은 개인의 부귀를 누리기 위함이 아닌, 그리스도의 몸의 교회들 곧 많은 지체들의 유익을 위한 희생입니다. 여호수아 3장의 제사장들이 언약괘를 메고 강밑바닥에 버티고 서서 모든 민족들이 넘어갈 수 있도록하는 그림과 같다. 나는 왕국복음을 위하여 많은 지체들이 전시간 봉사자로, 섞임으로, 이주함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러므로, 저는 움직입니다. 우선 움직여 봅니다. 우선 일본과 중국을 거쳐, 베트남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후에는 계속 서쪽으로 전진해 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까지.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힘을 보일 것이고, 행동을 취할 것이다. But the people who know their God will show strenth and take action.(RCV) - Daniel 11:32 저는 이번 여행을 길을 혼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몇 년 안에 주님이 저와 함께 할 일 할수 있는 동역자들을 주시고, 이들과 함께 팀(Team)을 이루어 한마음 한뜻 가운데 움직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저를 돕는 배필을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2013년 한국, 일본, 중국의 여행의 목적 ①몸 안에서 지체들과의 교통과 기도을 구함 ②팀으로 함께 움직일 동역자들을 추가적으로 더 얻고, 기존 멤버들을 강화하기 위하여 ③사업을 준비함 ④투자자들을 얻음 사업의 행동 지침 Activities ①하나님의 경륜의 완성을 위한 왕국복음의 전파 - Oikonomia, The gospel of the Kingdom ②그리스도의 몸의 실제를 위한 섞임의 중개 역할 - Bridge ③물질의 통로 - Chanel 가치 이념 value 말씀 기도 믿음 한마음 한뜻 헌신 희생 번제의 향기 사업을 왜 하려는가? 분명하고, 명확한 목표 목적 Goals ①왕국복음 전파(사업 팀의 현지 이주로) ②그리스도의 몸의 실제를 위한 섞임(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현지 성도들간의 상호 이주, 왕래, 섞임을 도움) ③이주(지체들의 해외이주를 도움) ④각지 지방를 물질로 도움(집회소 건물, 형제자매집 건물(캠퍼스앞에), 섞임센터, 문서 서역, 현지성도들의 고용, 가난한 성도들을 도움) ⑤전시간자들을 돌봄(한국의 전시간자들의 해외 사역 지역, 현지 전시간자들 지원, 특히 한국과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 오는 전시간자들에게 비자 발급을 도와 줄 수 있고, 물질적인 공급을 더해 줄 수 있습니다. ) ⑥재물을 나누어주고, 심고 뿌리는 것에 대한 합당하고 아름다운 간증을 세움 ⑦아시아 지역의 복음 확산에 대한 리포트 작성 (간증, 체험, 헌신에 대한 보고서) "무디 형제님, 세상은 하나님께서 완전히 헌신된 한 사람과 함께 무엇을 하실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 The Man from the West, 1872-1875, "The Unanswered Letter", page 99 목표 스케줄 진행 2013년 4월부터 한국, 일본, 중국 지방 교회를 방문하여, 많은 분들과 기도와 교통을 가짐. 3년 2015년 12월까지 바트 경제권(인도차이나반도)에서 사업을 일으킴, 사업 기반 조성 5년 2020년 12월까지 바트 경제권(인도차이나반도)에서 사업의 성숙 10년 2025년 12월까지 인도까지의 완전한 성장 15년 2030 중동 지역과 ...스탄 국가들에서 사업 20년 2035 이스라엘과 지중해의 지역들(터키, 아프리카 등) 25년 / 2040 주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함 휴거 되든지 아니면, 이스라엘과 지중해 지역의 나라들에서 순교함. |
제2집 제33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제6장 성장하는 길-자신을 하나님께 드림
Ezra Zion , 2013-04-11 , 조회 (9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296.html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 2 --
이 책에 수록된 메시지들은 1938년과 1939년에 영국 런던 및 유럽 대륙에서 전하신 주님의 종 워치만 니 형제님의 설교 기록이다. 나중에 영국의 앵구스 키니어 형제(Angus Kinnear)가 정리하여 책으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원본이 영어이다. 출판된 지 몇 년이 채 안 되어서 세계 각지에서 판매량이 오륙만 부에 달하였고 또한 이십여 가지에 달하는 언어로 이미 번역되었다. 이 메시지들 속의 생명의 방면은 그리스도인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도움을 주었다. 특히 미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의 메시지들로 인해 생명의 전환점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어떤 그리스도인 단체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단체 전체가 생명의 전환을 갖게 되었다. 오늘 형제들이 중국어로 번역하여 대만복음서원을 통해 출판하게 되었는 데, 이것이 중국어를 아는 형제자매에게 주는 도움이 영어판보다 적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님께서 배나 축복하사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과 더 진보된 체험을 가짐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각지에서 더 자라고 확장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우리는 이 ‘드림’이 우리 몸의 지체들과 관계된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 몸을 더 이상 죄에게 드리지 말아야 함을 보았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19)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지체와 능력이 완전히 그분께 속한다는 것을 알려 주고자 하신다. 거룩히 분별되어 주님께 드림 거룩함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을 제해 버리면 거룩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께 분별되는 것을 통하여 거룩게 된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고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간 사람만이 기름 부음을 받고 거룩게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 분별된 사람으로 여겨졌다. 심지어 생물이나 물질적인 것들, 예컨대 어린양이나 성전 안의 금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거룩게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거룩게 되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악한 것을 제함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완전히 그분을 위해 예비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거룩함은 분별된 것을 가리킨다. 참다운 거룩은 ‘여호와께’ 거룩인 것이다(출 28:36). 내가 내 자신을 전적으로 주님께 드리는 이것이 바로 거룩이다.
종인가 노예인가 만일 우리가 아무런 보류함 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가정에서나 일에서나 교회 안에서의 관계에 있어서나 우리 개인의 견해에 있어서 많은 조절이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것을 보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손가락은 한 가지 한 가지 그분의 것이 아닌 것들을 지적하시면서, “이것들을 제해 버리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기꺼이 이렇게 하겠는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그분께 순복하는 자가 지혜롭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다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분이 어떤 것을 원하실 때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원한다. 많은 일에서 우리는 우리의 평강을 잃어버릴까봐 무엇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생각할 담력을 갖지 못한다. 비록 우리가 이런 문제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게 된다. 쉽게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다만 우리 자신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이 우리를 다루시도록 하는 것이 복된 일임을 기억하라.
|
2013. 04. 출사표를 올리다! 축약본
Ezra Zion , 2013-04-11 , 조회 (106)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295.html
2013. 04. 출사표를 올리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에게 남아 있는 할당된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려해 보아야 한다. ... 믿는 이들로서 우리는 주님의 이끄심에 반응하여, 인류 역사 안에 펼쳐지는 신성한 역사 안에서 살기를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요엘3:11) 용사들, 성숙한 이들,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 안에 살았던 건축된 믿는 이들, 그리스도의 만족을 위해 그분의 신부가 된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전쟁에 있어서 노련할 것이고, 심지어 전쟁의 전문가들일 것이며, 용사들, 곧 주님께는 아름답지만 원수에게는 두렵게 하는 이들일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이들 가운데 포함되기를 선택해야 한다. - 2012년 여름 훈련 소신언서 결정-연구 6번 中에서 "... 나는 나의 온 일생을 바쳐, 왕국시대로 시대를 전환할 시대적인 도구의 일부가 되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압니다.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압니다. 나는 하늘들의 다스림 아래,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의 영역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두 번째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의 해결책의 한 부분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실지로 이것에 참여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권익을 위하여 그리고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헌신한다. 우리는 전쟁을 위해 준비되고 훈련받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남은 인생 동안 전쟁터에서 살게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 2012년 겨울 훈련, 다니엘서 스가랴서 결정-연구, 메시지1 요셉은 정말로 꿈꾸는 자였으며, 그의 인생은 꿈의 인생이었다. 승리하며 이기는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꿈꾸는 자들일 것이다. 당신은 꿈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다른이들의 꿈을 해석할 필요도 있다. 매일매일 우리는 모두 우리의 이상에 관해, 우리의 꿈에 관해 말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는 다른이들의 이상을 해석해야 하며, 우리의 이상에 따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느낌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상에 따라 말해야 한다.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다. 우리는 꿈꾸는 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상에 따라 한다. 비록 어떤 것은 아직 통과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본 그것에 따라 말하며, 우리의 이상이 성취되는 것을 발견한다. 요셉을 창세기에서 두드러진 다른이들과 비교해 볼 때, 그만이 유일하게 꿈과 고난 안에 있었음을 본다. 다른 위대한 일곱 명 가운데서 요셉만큼 꿈을 많이 꾼 사람은 없었다. 요셉은 언제나 꿈과 관계 있었다. 그의 인생은 또한 유일하게 고난과 관계를 맺고 있다. 꿈은 해석을 필요로 하고, 해석은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셉은 끊임없이 말을 했다. 그가 말함으로 인해 모든 꿈들이 성취되었다. 먼저 요셉은 자신을 곤란에 빠뜨리는 말을 했다. 만일 그가 그의 꿈들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면, 그는 곤란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형제들이 그를 미워하고 그를 노예로 판 이유는 바로 그가 그의 꿈에 관해 말했기 때문이다. 만일 이러한 꿈들을 꾼 후에 요셉이 침묵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의 고난들은 그의 말함으로부터 왔다. |
제3집 제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제16장 찬미
Ezra Zion , 2013-04-11 , 조회 (10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282.html
찬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는 일들 중에서 가장 높은 일이다. 성도들의 영적인 생명에서 그 최고의 표현은 하나님에 대한 찬미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보좌는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계신 가장 높은 곳이고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찬미를 ‘보좌’(시 22:3, 원문 참조)로 삼으신다. 하나님의 이름과 그분 자신은 찬미로 인하여 높여진다. Ⅰ. 찬미의 제사 성경은 찬미를 매우 중요시하였고 또한 많이 언급하였다. 특히 시편은 찬미의 말씀으로 충만하다. 시편은 구약에 있는 찬미의 책이다. 많은 사람의 찬미는 시편에서 발췌되었다. Ⅱ. 찬미와 승리 찬미가 하나의 제사인 것을 본 후에 우리는 또한 찬미가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임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에게서 사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기도라고 들어 왔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마다 사탄은 도망가기 때문에 사탄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하지 못하도록 그들을 공격한다. 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공격이다. 이에 대해 한마디 더하겠다. 사탄이 가장 많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의 찬미이다. 이것은 사탄이 기도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기도할 때마다 사탄은 그들을 공격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화하기는 쉬워도 기도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감옥과 사슬과 몸의 상처와 그 고통과 수치를 초월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인도된다면 여러분은 소리를 발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찬미의 말을 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감옥이 문제되지 않았으며 수치와 고통도 문제되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찬미할 수 있을 정도로 이끌렸다. 그들이 감옥에서 찬미할 때 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리며 간수도 구원을 얻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영적인 승리가 씨름이 아닌 찬미로 얻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찬미로 사탄을 이기는 것을 배워야 한다. 기도만이 아니라 또한 찬미로 사탄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흉악함과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서 분투하며 기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 승리가 씨름으로가 아닌 찬미로 얻어진다는 한 가지 특별한 원칙을 발견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종종 어려움이 너무 크기 때문에 무슨 방법을 써서 처리해야겠다는 시험에 든다. 그들은 방법을 주의하지만, 방법을 주의할수록 승리하기가 더 어렵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대적인 사탄과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이고, 전쟁터에서 사탄이 한 쪽에 서 있고 그들은 다른 쪽에 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승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역대하 20장은 다르다. 그쪽에는 군대가 있고 이쪽에는 찬송이 있다.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미친 사람일 것이다. 우리가 미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임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Ⅲ. 믿음은 찬미를 산출함 시편 106편 12절의 말씀은 매우 귀하다. “이에 저희가 그 말씀을 믿고 그 찬송을 불렀도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의 상태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노래를 불렀고 믿음으로 찬미하였다. 찬미의 기본적인 내용은 믿음이다. 여러분은 빈말로 찬미할 수 없고 함부로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미합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반드시 믿을 수 있어야만 찬미할 수 있다. 여러분에게 곤란과 근심이 있을 때 여러분은 기도할 것이다.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기도했을 때 여러분은 즉시 입을 열어 찬미할 수 있다. 이것은 살아 있는 길이지 멋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일이 생길 때 항상 주님께 간구한다. 언제든지 속에 약간의 믿음이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위대함과 능력과 인자함과 영광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믿을 때에 찬미하기 시작해야 한다. 만일 사람 속에 믿음이 있는데도 찬미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언젠가 사라지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체험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 속에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찬미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만일 여러분이 찬미하지 않는다면 얼마 못 가서 믿음을 잃게 될 것이다. 좀 전에는 믿을 수 있었더라도 이제는 그 믿음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찬미를 배우되 찬미의 말을 말해 내고 입을 열어 찬미하기를 배워야 한다. 찬미할 생각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소리 내어 찬미의 말을 해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굳게 서서 곤란과 사탄에 맞서서 하나님을 찬미하며 “주여! 당신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느낌이 없다면 느낌이 있을 때까지 말하고 느낌이 적으면 많을 때까지 말하며 적은 믿음에서 믿음이 충만할 때까지 말하라.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눈에 충만하다면 여러분은 능히 믿을 수 있게 된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의 영에 충만하다면 여러분은 능히 찬미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고 여러분의 찬미를 얻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러분이 찬미할 때 사탄은 도망할 것이다. 때로 여러분은 기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여러분 속에 믿음이 있고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이 있을 정도로 기도했을 때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찬미해야 한다. “주여!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이 일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일이 성취된 후에 찬미하지 말라. 여러분이 믿을 때에 찬미하라. 대적이 달아난 후에야 노래할 것이 아니라 노래함으로써 사탄을 쫓아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먼저 찬미하기를 배워야 한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그분을 찬미할 때 대적이 완전히 패배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믿어야만 찬미할 수 있다. 믿고 찬미한 다음에야 승리가 있다. Ⅳ. 순종은 찬미를 산출함 우리의 문제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여호사밧과 같은 환경과 사건의 문제이다. 이것은 찬미로 말미암아 이겨야 한다. 또 한 가지는 내적인 문제로서 남이 우리를 해치는 말을 하거나 우리에게 잘못을 범하거나 우리를 욕되게 하거나 무례히 대우하거나 무례히 대적하거나 이유 없이 미워하거나 근거 없이 비방할 때 우리 속에서 이것을 견디지 못하고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승리의 문제이다. 한 형제가 여러분에 대해 부당한 말을 하거나 한 자매가 무례하게 대했을 경우, 여러분이 이것을 이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마 온몸으로 발버둥 치고 불평하며 원망할 것이다. 여러분은 용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승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것이다. 여러분이 억울함과 비방과 핍박을 당하므로 속에서 통과되지 않을 때 여러분의 기도는 별 소용이 없다. 여러분은 대항하려 해도 대항하지 못하고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한다. 거절해도 압력은 줄지 않는다. 여러분은 이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고 이기기 쉽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크게 어려움을 당하고 심한 억울함을 당할 그때는 여러분이 기도할 때가 아니라 찬미할 때임을 기억하라. 여러분은 머리 숙여 주님께 “주여!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이 하신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 손에서 이것을 받습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 당신 손에서 이것을 받습니다. 당신을 찬양합니다.”라고 말하라.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승리는 육체 안에서 분투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자신의 힘으로 계속 남을 용서하려고 시도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승리란 머리 숙여 주님을 찬미하면서 “주여! 당신의 길을 찬양합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안배하신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행하신 것은 모두 옳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을 향해 찬미할 때 여러분의 영은 문제를 초월하게 되고 속에서 상처 받은 감정을 뛰어넘게 된다. 상처 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찬미가 부족한 사람이다. 만일 여러분이 찬미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상처 받은 감정은 찬미의 감정으로 변할 것이다. 여러분의 영은 높이 올라 하나님 앞에서 “당신께 감사하고 찬미합니다. 당신이 행하신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이런 길을 가야 한다. 모든 것을 등 뒤로 던져 버리라. 이것은 어떠한 영광인가? 이것이 참된 제사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찬미에서 시작된다. 찬미는 모든 것을 초월함으로 주님을 만지는 것이다. 이 땅에서 주 예수님은 바로 이런 길을 가셨다. 여러분도 능히 이 길에 들어설 수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시험받을 것이 아니라 시험 그 위로 올라가라. 여러분이 찬양할 때 여러분은 시험 위에 있게 된다. 누가 여러분을 억누를수록 여러분은 주님 앞에 일어나서 “주여, 당신께 감사하고 찬미합니다!”라고 말하라.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인하여 그분에게서 그 일을 받기를 배우라. 찬미의 제사보다 사람을 달콤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성령의 징계를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의 징계를 찬미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주님의 손을 받을 뿐 아니라 주님의 손을 칭송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의 책망을 받을 뿐 아니라 다만 마음으로 즐거이 이 책망을 받기를 배우라. 이렇게 할 때에 우리를 위하여 분명하고 영광스런 문이 열리게 된다. Ⅴ. 깨닫기 전에 먼저 찬미함 마지막으로 시편 50편을 읽어보기 바란다. 하나님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감사’는 ‘찬미’로 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의 찬미를 기다리고 계신다. 찬미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없다. 언젠가 모든 기도는 지나가고 모든 일과 모든 예언과 모든 수고가 다 지나가되 오직 찬미는 현재보다 더욱 증가할 것이다. 찬미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요 영영 그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 이르러 우리의 궁극적인 집에 도착할 때 우리의 찬미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을 찬미하기를 배우라.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공과이다. -- 345 --
|
제3집 제48권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제10장 기도
Ezra Zion , 2013-04-11 , 조회 (107)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281.html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1) -- 2 --
1948년 니 형제님의 사역이 회복된 후 그는 여러 차례 형제들과 믿는 이들의 영적인 교육의 중요성을 교통했다. 그는 교회 안의 형제 자매들 모두가 기본적인 가르침을 받고 견고한 기초가 세워지므로 동일한 간증이 산출되기를 원했다. 이 책은 바로 니 형제님이 고령에서 한무리의 사역자들을 훈련시키던 그 해에 초신자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전한 메시지로써 모두 50편이며 또한 70개의 제목이 있다. 그 내용은 상당히 풍성하며 포괄적이고 기본적이지만 중요하다. 그의 의도는 모든 지방 교회가 다 일년 동안 매주 한 번 이 메시지로 초신자들을 온전케 하고 매년 계속 사용하기를 원했다. 1972년 8월 -- 3 -- 초신자를 -- 4 --
1 주님을 갓 믿은 모든 형제들은 가장 먼저 자신에 대하여 큰 의문을 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형제는 올해 사십 세가 되어 구원을 받았다. 과거 그는 사십 년 동안 세상에서 세월을 보냈고, 죄악 가운데서 세월을 보냈으며, 세상의 풍속을 따라 세월을 보냈고, 사단의 권세 아래서 세월을 보냈다. 그의 과거 사십 년은 날마다 그 자신의 성질을 따라 행하고 자신의 관점과 자신의 느낌, 그 자신의 주관에 따라 행했었다. 오늘 그가 구원받았다면 마땅히 자신을 믿지 않아야만 한다. 그는 가장먼저 자신에 대하여 큰 의문을 품어야 한다. -- 5 -- 2 초신자들에 대한 첫번째 단계는 충분하고도 철저하게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주님은 왜,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바로 그가 과거에 잘못 살고 헛되이 산 나날들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라는 의미이다. 요한복음 3장의 ‘거듭남’은 우리에게 생명의 필요를 보여 준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과거의 날들이 소멸되어야 참을 보여 준다. 과거의 모든 것들은 다 깨끗이 허물어져야 한다.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은 그들의 과거를 하나하나 허무는 것이다. 만일 어떤 초신자가 사십 세에 구원을 받았다면 그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그의 과거 사십 년 동안의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후회하지만 자신에 대하여는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가 죽고 부활하는 것은 삶을 죽음에 더하는 것이 아니다. 초신자를 온전케 한다는 것은 제거할 것과 더해야할 것을 하나하나 지적해 내는 것이다. 만일 모든 일들을 성경을 따라 결정하지 않고 여전히 과거의 체험, 과거의 습관. 과거의 관점을 따라 말하고 행한다면 이것은 지극히 큰 잘못이다. 사람이 일단 주님을 믿은 후 적은 관념조차도 과거의 것을 따를 수 없다. -- 6 -- -- 7 -- 3 침례는 바로 과거의 모든 것을 무덤 안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올해 오십 세이다. 그가 구원받고 침례를 받으러 왔는데 침례는 주님이 그의 생명을 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의 오십 년 된 생명을 요구하며 그의 매년의 생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전에 죄는 사람의 모든 조직 안에 미쳤으며 사람은 갖가지 질병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갖가지 질병을 다 물 속에 두어야 한다. 사람이 무덤을 떠날 때는 무덤에서 입었던 의복으로부터도 떠나야 한다. 침례는 이처럼 엄격해야 한다. 4 한 사람이 구원받고 난 뒤에는 가치관의 문제에 대하여 기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과거의 모든 가치에 대한 편가는 모두 무가치한 것이며 정확한 것이 아니다.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은 그에게 과거의 가치관이 틀린 것이며 과거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정확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에게 새로 본 것이 있게 하고 새로운 평가가 있게 해야 한다. 이전에 귀하게 여겼던 것을 오늘은 분토처럼 여겨야 하고 이전에 유익하게 여기던 것을 오늘은 해로 여겨야 한다. 성질과 언어가 지금 이후부터는 과거와 같지 않아야 한다. 의복과 음식 또한 오늘 이후에는 과거와 같을 수 없다. 혼인과 성욕의 관념에 대하여 역시 과거와 달라야 한다. 어떻게 부모가 되며 어떻게 친구와 왕래하는지에 대하여 새로운 방법과 새로운 관점이 있어야 한다. 오락과 직업에 대한 태도와 선택 역시 과거와 달라야 한다. 모든 것이 -- 8 -- 5 만일 갓 믿은 사람이 한 주제 한 주제를 통해서 온전케 되고, 허물어져야 할 것이 허물어지고 더해져야 할 것이 더해졌다면 그는 표준에 가까워질 것이고 표준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랄 수 있다. Ⅱ. 훈련 시에 주의해야 할 몇 가지 요점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먼저 한 무리 형제 자매들을 훈련시키고 그런 후에 그들을 나누어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일을 책임지게 해야 한다. 온전케 함을 받지 못한 초신자가 한 명도 없기를 바란다. 그러나 훈련을 받고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책임을 진 형제 자매들은 아래 몇 가지를 주의해야 한다 -- 9 -- -- 10 --
Ⅲ. 실행 방면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이 기본적인 온전케 함이기 때문에 각지 교회마다 다 이러한 집회―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가 있기를 바란다. 나는 이제 실행 방면에 관한 것을 약간 말하겠다. 1. 누가 초신자인가 죄인이 주님을 믿고 침례를 받았다면 그가 바로 초신자이다. 침례받은 그 주일부터 그는 마땅히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에 참가해야 한다. 일년을 참석했다면 그가 알아야 할 것과 배워야 할 것을 대부분 배웠을 것이다. 이것은 그가 기본적인 온전케 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말하며 이후에 더 깊은 온전케 함을 받기를 바랄 수 있다.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죄인이 주님을 믿은 후에 나이나 학문이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 세상 경력이 얼마나 깊은지에 상관이 없이 그는 반드시 온전케 됨이 필요한 초신자이다. 만일 그가 과거에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그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을 믿고 침례를 받으면 우리는 그를 다만 초신자로 간주할 뿐이며 그로 하여금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에 참가하도록 요청해야 한다. 이미 주님을 믿은 지 오래 되었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온전케 함을 받지 못한 형제 자매들이 초신자를 온전케 하고자 하는 집회에 참가하려 한다면 역시 참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목적은 옛 것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건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님을 믿은 연수가 얼마나 -- 11 -- 2.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의 기간 각지 교회에서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를 안배할 때는 수요일이나 목요일이 가장 좋다. 사람이 많든 적든 전체이거나 작은 반이거나 다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계속 순환하여 전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갓 믿은 형제 자매들이 교회가 있는 지방에 오기만 하면 과정을 빠뜨리지 않고 계속 이어갈 수 있다. 3. 훈련 집회 (1) 분기 집중 훈련 : 이러한 훈련은 총 책임을 맡은 형제(동역자 중의 하나)가 책임을 져야 하며, 그가 있는 그 구역이 함께 모이거나 혹은 그 일대에서 말씀을 공급할 수 있는 형제들이 단기간의 훈련을 더할 수 있다. 매 번의 단기간의 집회는 적어도 열 가지 제목 혹은 스무 가지 제목을 말해야 한다. 대략 3, 4기 정도면 모든 제목들을 다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받은 형제들은 그들의 지방으로 돌아간 후에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집회를 -- 12 -- -- 13 -- 4. 초신자를 온전케 하기 위한 분반집회 만일 어떤 교회에 초신자들이 아주 적거나 말씀이 출구가 될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반을 나눌 필요가 없다. 다만 매주간에 한 번 어떤 사람이 한 주제 한 주제 순서대로 그들에게 전해 주고 또한 동시에 그들에게 질문하면 된다. 만일 한 교회에 초신자들이 상당히 많다면 몇 개의 작은 반으로 나누어서 따로 초신자를 온전케 해야 한다. 반을 나누는 것은 장소의 멀고 가까움을 따라 나누거나 혹은 수준의 깊고 얕음에 따라 나누어야 하지만 반드시 적합하고 실제적인 상황을 따라야 한다. 만일 인도하는 사람이 충분하다면 적게는 초신자를 오륙 명 정도 많으면 열 명 남짓으로 분반할 수 있다. 분반집회를 안배할 때도 몇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 14 -- -- 15 -- (1) 말씀을 전하는 것 : 목소리는 반 전체가 다 알아들을 수 있어야하며 주제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비유나 이야기를 막론하고 반드시 주제에 부합되어야 한다. 가장 좋은 근거는 교재 안에 포함된 것이며 요점을 제시하고 분명하게 그들에게 말해 주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말을 할 때 주제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설교하듯 말하지 말고. 말하기도 하고 묻기도 해야 한다. -- 16 -- 말씀이 중복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올해 들어도 내년에 잊어버릴 수 있고 그 다음해에도 여전히 실행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단지 그들에게 들려줄 뿐 아니라 그들이 실행하고 있는지를 추궁해야 한다. 말을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행 여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일찍 일어남’에 대하여 말했다면 그들이 일찍 일어나는지를 보아야 하고. ‘성경 읽기’에 대하여 말했다면 그들이 성경을 읽는지를 보아야 하며, ‘기도’에 대하여 말했다면 그들이 기도를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그들이 성실하게 실행하고 성실하게 처리할 때까지 계속하여 그들을 밀어내고 추궁해야만 한다. 7. 보충 수업 매 과정에 얼마의 시간을 들이며 얼마나 연장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인도하는 사람이 결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각 반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야 한다. 만일 빠뜨린 것이 있어서 따라가지 못한다면 달리 보충 수업을 생각해야 한다. 보충 수업을 시작할 때 성실하게 보충해 주어야 한다. 자신이 빠뜨린 것이 얼마나 되든지 다 잘 보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에게 줄 것이 없어질 것이다. -- 17 -- Ⅳ. 반드시 신선한 영을 만져야 함 이러한 말씀들은 해마다 계속하여 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전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선한 영을 만져야 한다. 말씀은 십 년 전의 말씀일 수 있지만 영은 십 년 전의 영일 수 없다. 만일 인도하는 사람이 어떻게 영을 사용하는지를 배우고 그의 영이 신선하다면 그는 십 년, 이십 년 전의 말씀도 전할 수 있다. 만일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을 만지게 하고자 한다면 당신은 먼저 당신의 영을 만져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새롭게 신선한 영을 만져야 한다. 만일 당신의 영이 낡았다면 다만 그 말씀을 전할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약간의 교리상의 도움만을 줄 수 있을 뿐 그 교리는 즉시 ‘공식 기도문’과 같은 것으로 변해 버린다. 만일 당신이 영을 사용하여 이러한 말들을 만진다면 문제가 없다. Ⅴ. 주님의 축복이 필요함 그리스도인의 운명은 주님의 축복에 달려 있다. 주님의 축복이 있으면 안배가 좋지 않아도 잘못되지 않고 갈 곳으로 간다. 그러나 주님의 축복이 없으면 모든 안배가 좋아도 잘못가게 된다. 마치 어떤 사람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주님은 여전히 축복하시지만 어떤 사람은 한 번만 잘못하면 주님이 즉시 축복하지 않으시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은 옳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주님이 축복하실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다. 1950년 7월 12일 동역자 집회 대화 기록 -- 18 -- 제10장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1-8). Ⅰ.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권리임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의 한 가지 기본 권리는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일단 거듭나면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간구하고 응답받는 기본 권리를 주신다. 요한복음 16장은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만일 우리가 항상 기도한다면 우리는 이 땅에서 기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주 하나님에게서 기도의 응답을 얻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체험이다. 만일 한동안 여러분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얻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에게는 문제가 있다. 기도의 응답을 얻는 일에서는 자신을 속일 방도가 없다. 체험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이고, 이루어지면 이루어진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만일 시작을 잘못하면 삼사 년이 지나도 기도의 응답을 조금도 받지 못할 수 있다. 만일 이 기초가 견고하지 않으면 나중에 되돌아와서 더 큰 힘을 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주님을 믿은 즉시 하나님에게서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을 배워야 한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이것을 주의하기 바란다. Ⅱ. 기도에 응답을 얻는 조건들 우리가 성경 안에서 기도에 응답을 얻는 많은 조건들을 찾아낼 수 있지만 그것들 중 기본적인 조건은 오직 다섯 가지뿐이다. 우리는 만일 여러분이 이 몇 가지 조건대로 행한다면 기도에 대한 응답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우리는 이 몇 가지 조건들이 수년 간 기도해 온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들은 기본적인 조건이므로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기도에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서 참된 간구가 있어야 한다. 구원받은 후 매일 기도하는 한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자매가 와서 그에게 “당신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기도하기만 하면 되지, 무슨 듣고 안 듣는 문제가 있는가?’ 하며 그런 말을 이상하게 느꼈다. 어쨌든 그때부터 그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도록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얼마나 들어주셨는지를 생각하다가 후에 자신의 기도가 공허하고 아프지도 않으며 가렵지도 않아서 하나님께서 들으실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치 내일 해가 뜨도록 기도해도 해가 뜨고, 기도하지 않아도 해가 뜨는 것과 같았다.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 지 일 년이 되었는데도 그의 기도는 한 가지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 그가 무릎을 꿇고 계속 많은 말을 했지만 무엇을 구하는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지로는 구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
B. 잘못 구하지 않음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는, 마땅히 구해야 하지만 또한 잘못 구해서는 안 되는 두 번째 조건이 있다. “(너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우리는 어떤 필요 때문에 하나님께 구할 수 있을 뿐, 아무 이유 없이 범위를 벗어나서 제멋대로 구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자신의 정욕과 육체에 따라 제멋대로 잘못 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구하는 것은 헛된 기도가 된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엡 3:20) 우리에게 주시지만 이것은 별개의 일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요구했고 잘못 구하지도 않았지만 하나님은 아직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이것은 기본적인 방해, 그와 하나님 사이에 죄의 방해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시 66:18). 주님은 마음(‘마음’이라는 단어를 주의하라)에 자기가 알고 있는 뚜렷한 죄를 품고 미련을 두어 남겨 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그에게 이런 방해가 있기 때문에 주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다. “마음에 죄악을 품는다.”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은 여러분이 마음속에서 어떤 죄에 대해 미련을 두고 스스로 알면서도 계속 보류해 둔다는 말이다. 이것은 행위와 겉모양에 악함이 있을 뿐 아니라 마음에 그것을 품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7장의 그 사람과 다르다. 그에게 실패가 있었지만 그의 행위는 그가 미워하는 바였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사람은 마음에 그 죄를 품고 남겨 두며 그것에 미련을 두고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죄의 행위를 버리지 못할 뿐 아니라 죄를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다. 주님은 이런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여러분에게 한 가지 죄만 있어도 그것은 여러분의 기도에서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을 방해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버리기 아까워하는 죄를 마음에 남겨 두지 말고, 모든 죄를 죄로 인정하여 그것들을 피 아래 두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약함을 체휼하실 수는 있지만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을 내버려 두실 수는 없다. 여러분이 겉으로 모든 죄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마음에 죄악을 품고 그것에 미련을 두고서 버리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될 때부터 하나님께, 여러분이 실족하지 않고 행위에서 거룩해지도록 지켜 달라고 은혜를 구해야 한다. 동시에 마음속에서 모든 죄를 미워하고 마음에 어떤 죄악도 품지 말고 남겨 두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죄가 여러분 안에 있다면 여러분은 기도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고, 주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듣지도 않으실 것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여러분의 죄를 자복하고 주님께 이렇게 말하라. “내 마음에 품고 버리지 못하는 한 가지 죄가 있사오니 이제 나를 용서하여 주소서. 내가 이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오니 이 죄에서 나를 해방하사 이 죄가 내게 있지 않게 하옵소서. 나는 이 죄를 버리고 거절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복할 때 여러분은 용서를 받게 되고, 주님은 여러분을 통과시키실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신다. 이 일을 결코 함부로 풀어놓지 말아야 한다.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잘못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 하나님께 구하기도 했고 잘못 구하지도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에 사랑하고 중히 여기는 죄를 남겨 둘 때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도록 하지 못한다. D. 믿어야 함 또 한 가지 조건은 적극적인 면에서 믿는 것이다. 이것도 부족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결핍될 때 기도는 소용없게 된다. 마가복음 11장의 이야기는 기도할 때 믿어야 함을 상당히 분명히 말한다. 주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된다. 우리는 사람이 주님을 믿은 첫 주 안에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기 바란다. 여기서 주님은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대로 되리라”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두 번의 받음, 곧 ‘이미 받았음’(개역 성경: ‘받은 줄’)과 ‘받을 것이요’(개역 성경: ‘그대로 되리라’)를 언급하셨다(중국어 성경 참조).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받은 줄’에 기초를 둔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곧 ‘받은 줄로’ 믿는 것이다. (1) 주님의 능력의 문제―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
E. 계속 구해야 함 기도에 있어서 또한 계속적이고 끊이지 않기를 주의해야 한다. 누가복음 18장 1절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라고 말한다. 어떤 것은 주님께서 번거롭게 느끼셔서 들어주지 않으시면 안 될 정도로 계속 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또 다른 종류의 믿음이다. 주님은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말한 믿음은 앞에서 말한 것과 다르나 상충되지는 않는다. 마가복음은 믿음을 소유할 때까지 구해야 함을 말하고 여기서는 끊임없이 구할 것을 말한다. 나는 내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기도할 때 언젠가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믿는다. 나는 들어주시는가의 여부를 상관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다.
Ⅲ. 기도의 실행 방법 그리스도인은 장부를 적듯이 기도 항목을 적기 위해 매년 기도 노트를 한 권씩 준비할 수 있으면 좋다. 각 면을 네 칸으로 나누고 첫 칸은 기도를 시작한 날짜를, 둘째 칸에는 기도 항목을, 셋째 칸에는 응답받은 날짜를, 넷째 칸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기도에 응답하셨는지를 기록하라 이렇게 할 때 일 년 동안 여러분이 하나님께 얼마나 구했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셨으며, 무엇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를 알게 된다. 새로 믿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기도 노트를 구비해야 한다. 주님을 믿은 지 몇 년 된 형제자매들도 기도 노트를 갖추는 것이 좋다.
|
W.N.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43장 익양으로 이주한 복음 전파의 보고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31.html
익양으로 이주한 복음 전파에 관한 보고 1948년 말 절강 숙산 일대에 홍수가 발생하여 그 지방의 몇몇 형제자매들은 이것이 그들의 이주를 재촉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라고 여기고 강서 익양으로 이주를 하기 시작했다. 1949년 초 처음으로 한 무리 형제자매들이 익양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익양의 -- 289 -- 이주하여 복음 전파의 길을 감 현재의 복음 전파의 길은 더 이상 한두 명의 선교사를 어떤 지방에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이주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낙하산 부대와 같이 온 교회에 파송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주를 위하여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직업을 가져야 -- 290 -- -- 291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39장 심방과 교통 / 접대, 애찬
Ezra Zion , 2013-04-05 , 조회 (98)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30.html
위광희 형제님 : 당신은 참 포도나무요 우리가 당신의 포도나무의 가지임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실로 당신과 연결될 자격이 없는 자라고 느끼지만 그러나 당신이 피를 흘려 구속을 이루심으로 우리는 이미 당신과 연결되었음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당신의 선한 뜻이 이와 같음을 인하여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여, 우리로 당신의 이 포도나무에서 공급되는 모든 풍성한 성분을 의지하고 앙망하며 받는 것을 배우게 하사 참으로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소서.
1. 먼저 주님과 교통이 있어야 함 이상수 형제님 : 심방은 가장 영적인 일 중의 한 가지이다. 그것은 복음 전파, 집사실의 봉사, 단장 등의 일보다 더욱 영적인 것이다. 심방은 교통 가운데 하나이며 주님과 교통이며 심방하는 형제자매와 교통을 갖는 것이다. 당신이 사람을 심방하면서 만일 주님과 교통을 잃어버린다면, 당신은 형제자매들과 교통을 갖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신이 심방하는 형제자매와 함께 교통을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영 안에서 주님과 교통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겉 사람으로는 형제자매와 교통을 하고 속 사람으로는 주님과 교통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심방하는 사람을 합당하게 주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심방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먼저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 235 --
2. 반드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배움이 있어야 함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반드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배움이 있어야 한다. 철저한 죄의 자복 같은 것을 반드시 배워야 한다. 만일 당신이 철저한 죄의 자복을 배우지 않았고 당신에게 이 일이 결핍되었다면, 설령 당신이 다른 면에서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있는 것이다. 만일 주님 앞에서 철저한 죄의 자복이 부족하다면 당신은 이 일에서 심방하는 형제자매들을 철저하고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없다. 오직 당신 자신이 이것을 배웠을 때라야 당신은 비로소 사람을 구체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영어 실력이 아주 좋다면, 당신은 상대방의 영어 수준이 어떠한지 테스트하고자 할 때 영어에 대하여 몇 가지만 질문해 보면 즉시 그의 수준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당신이 영어를 잘 배웠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의 수준과 어려움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동일하게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우리는 깊은 배움이 있어야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다시 헌신을 예로 들어보면, 우리가 만일 다시 한번 철저한 헌신을 하는 것을 배웠다면 나중에 당신과 다른 사람이 교통할 때 당신은 상대방의 헌신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나머지 영적인 지각과 생각의 새롭게 됨도 역시 이와 같다. 각 방면에서 우리는 다 먼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배움과 영적인 체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형제자매들을 돌볼 때 합당하게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심방에서의 주의사항 형제자매들이 심방할 때
먼저, 우리는 사람을 돌볼 때 사람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다른 사람보다 아는 것이 많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가르치려는 영은 교만한 영이며 그 결과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을 소모하게 하고 사람을 온전케 할 수 없고 공급을 얻게 할 수 없다. 이사야 50장은 우리가 반드시 먼저 가르침을 받는 자의 혀를 가져야 비로소 말로써 곤핍한 자를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한다(4절). 우리는 먼저 사람의 말을 듣기를 배워야 하며 영 안에서 주님과 교통하며 주님께서 빛을 주시기를 앙망해야 합당한 말로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 2. 말에 있어서 반드시 정확해야 하고 공급이 있어야 함 우리가 돌볼 때 말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며, 말은 반드시 정확하게 해야 한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많은 말들이 있으며 우리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말은 종종 정확하지 못한데, 이는 우리의 혀가 너무 거칠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만 거칠다고 알지만 사실은 말에 있어서도 역시 거칠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배우고자 한다면, 혀와 생각이 동일하게 굴레를 씌우기가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935년 하나님은 나에게 말에 있어서 정확한 것을 배우라고 요구하셨다. 그때 나는 매우 어렵다고 느꼈으며 하루 중에 나는 늘 여러 차례 사람을 향하여 죄를 자복해야 했다. 한번은 나의 아이가 세숫물을 담아 오다가 조금 흔들려 몇 방울을 땅에 떨어뜨렸는데 대략 여덟에서 열 방울이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즉시 그를 꾸짖으면서 어떻게 바닥에 온통 물이냐고 말했다. 내가 말을 다하고 나자 속에서 즉시 바닥에 물이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온통 물이냐고 말했는가 하는 느낌이 있었다. 나는 즉시 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3. 변론을 일으키지 말아야 함 형제자매들을 돌볼 때 또한 변론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회와 개인, 진리, 사역 등에 대하여 형제자매들이 질문을 하면 우리는 일절 변론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심방하는 것은 형제자매들을 관심하기 때문이지 그들과 옳고 그름의 문제를 토론하기 위하여 가는 것은 아니다. 심방 가운데서 변론이 일어나면 당신과 그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히려 쌍방이 다 생각의 흑암 안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돌볼 때 반드시 변론이 일어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영이 충분히 강하다면 할 수 있는 대로 사람을 영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소극적인 방면의 많은 어려움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심방의 안배에 있어서 각 가정은 명단에 따라 하면 된다. 심방은 초신자의 심방과 초신 과정의 보충에 더 많은 중점을 두어야 한다. 각 가정의 심방의 안배 역시 서로 조정을 해야 한다. 만일 심방하는 사람이 부족하다면, 교회가 다른 지역의 형제자매들이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안배를 할 수 있다. 교회의 심방은 바로 지역이 심방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충하는 것일 뿐이다. 교회의 심방과 돌봄에는 및 가지의 항목이 있다.
사고가 포함하는 범위는 매우 넓은데 장례, 결혼, 이사, 직업을 바꿈, 취업, 실업, 질병 등과 같은 것이 다 그것이다. 이것은 누구든지 어떤 일을 당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환경이 바뀌어진 것을 사고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다른 환경으로 바뀌었을 때가 바로 가장 위험한 전환점이므로, 교회는 반드시 심방을 통해 그를 견고케 해 주어야 한다. 새로이 홍콩이나 원방에서 온 사람이 있으면 여러분은 반드시 접대를 안배해야 한다. 형제자매들의 변동 가운데 있는 각종 필요들을 반드시 교회가 주의해야 한다. 이런 부류의 심방을 많이 할 수 있다면 교회는 강해질 것이다. 만일 교회가 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2. 접대 형제자매들을 접대하는 것도 심방하고 돌보는 것의 일종이다. 이 일에 대하여 교회는 반드시 인내를 가지고 해야 한다. 방문해 온 형제자매들을 접대할 뿐 아니라 원방에서 온 형제자매들도 숙소를 안배해 주어야 한다. 십 년 전에 동북에서 시골 교회가 접대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좋았다. 비록 그들이 당신을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형제자매이기만 하면 그들은 한결같이 접대를 하며 당신에게 돈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상해의 교회는 화북과 동북의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그다지 접대가 부족하지만, 동북의 형제자매들은 사람에 대하여 언제나 열렬히 접대한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접대의 일에 대하여 미흡하며 마음도 없다. 홍콩 교회에 혹시 원함이 있다면 어려움은 없는 것 같다. 성경에는 접대의 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성실하게 해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의 집이 손님을 접대하기 위하여 열리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사랑이 없거나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접대는 빛을 집으로 영접하는 것인데 당신의 가정에 문제가 없다면 왜 빛을 두려워하겠는가? 만일 당신이 당신의 집이 누추하다면, 이것은 정상 참작을 할 수 있으며 교회가 접대할 수 있다. 다만 교회 접대소의 분위기는 마치 여관과 같기 때문에 아무래도 가정의 분위기처럼 특별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볼 수 없으며 하늘의 축복을 미리 누리게 하지 못한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 것은 우리가 발을 씻어 주는 것이다. 만일 세상을 사랑하는 한 형제가 홍콩에 왔는데 어떤 가정이 그를 접대해서 그의 발을 씻겨 주라는 주님의 인도를 따른다면 나는 이 형제가 발에 있는 더러움이 씻겨졌을 뿐 아니라 온 몸에 있는 더러운 것들이 다 씻겨졌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앞서서 선결 조건은 서로 사랑함이다. 오늘날 형제자매라고 부르기는 하나 그 실제는 부족하다. 초대 교회처럼 그렇게 친밀하지 않은데 그 기본적인 원인은 아마 손님을 접대하는 일에서 소홀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접대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한 면으로 손님으로 하여금 주님을 사랑하도록 도울 수 있으며, 다른 한 면으로 자신이 친구에게 끌려가며 세상으로 가는 것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3. 서신 심방 세 번째 종류의 심방은 서신의 심방으로, 형제자매들이 외지로 가거나 이사를 갔을 때 교회는 소개 편지를 통해 그곳의 교회에 알려 주어야 할 뿐 아니라 사람을 안배하여 그와 서신 교통을 하게 해야 한다. 특별히 그를 보낸 사람은 통신의 책임을 지고 직접적으로 그와 그곳의 교회와 교통을 갖게 하여 견고하게 된 후에야 이 쪽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형제자매들이 간 지방에 교회가 없다 해도 그와 서신 교통을 통해서 교회의 교통을 그에게 전해 주어 그의 영적인 상태를 유지하게 할 수 있다.
네번째 종류의 심방은 애찬을 통해서 돌보는 것이다. 믿는 이들이 늘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은 성경에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믿는 이들이 함께 음식을 먹을 때 마음속에서 불타오를 수 있고 영 안에서도 서로 교통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2장에서 교회가 새로 시작되었을 때 믿는 이들은 늘 함께 모여 음식을 먹으며 교통했다. 십팔 년 전에 나는 북부에서 이러한 체험을 했다.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을 때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교통을 누리는 것은 아주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형제자매들이 늘 애찬을 하기를 격려한다. 가정의 교통을 가지기를 배워야 함 여러분 책임 형제자매들은 반드시 유모의 심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이를 가진 어머니는 쉽게 마음이 넓어지고 사랑이 커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분량이 더 커져서 사람들에 대하여 더 많은 사랑을 품을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젊은 형제자매들에 대하여 말한다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부모 앞에서 교통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부모와도 교통을 갖기를 배우고 책임 형제자매들 앞에서 자신을 열 줄 알아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가정의 느낌이 있어야 하며 형제자매들은 모두 가정과 같이 많은 교통을 가져야 한다. 심방은 교회의 후방 지원임 니토셍 형제님 : 교회의 부서는 군대의 후방 부대와 같다. 군대에 후방이 없으면 쉽게 패전한다. 교회에도 후방이 필요한데 이 후방의 지원은 바로 심방이다. 심방은 교회의 전면적인 복음 전파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교회가 전면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려면 반드시 다방면으로 -- 247 -- 교회의 회복은 전체의 봉사임 오늘날 교회는 회복의 길을 가야 한다. 오늘 당신은 십육 세기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루터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오순절의 상황에까지 회복되어야 한다. 오순절 때 교회의 봉사는 모든 사람의 한 달란트를 다 가져오는 전체의 봉사이다. 주님은 누가복음에서, 우리가 복음의 잔치에 참석하도록 요청해야 하며 심지어 강권해서 오라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와서 구원(잔치)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큰길로 가서 가난한 자, 불구자, 눈먼 자, 저는 자들을 오라고 하여 음식을 먹게 해야 하며 그들이 먹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이다(14:16-24). 사람을 청하고 강권하는 종이 많을수록 구원받는 사람은 많아질 것이다. -- 248 --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것의 중요성 눈이 근시인 사람에게 있어서는 안경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볼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과 매우 큰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의 중요성은 마치 근시인 사람에게 안경처럼 요긴하다. 기도, 성경 읽기, 일찍 일어나기 등은 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격의 배양과 큰 관계가 있다. 내가 심장병을 않기 전에는 수년 동안 다섯 시 반 이전에 일어났으며 때로 늦잠을 자면 다음날 자신을 처벌하고 스스로 보충 수업을 했다. 우리 자신은 어떤 일에서도 조금도 새는 곳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가 어렵고 인도하기가 어렵다. -- 249 -- 먼저 배운 사람이 새로 들어온 사람을 가르침 여러분이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 쉰두 공과’를 배운 후에야 우리는 새로운 과정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므로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각 과목마다 당신은 반드시 철저하게 배워야만 장래 한 무리 한 무리 새롭게 구원받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쉰두 공과를 다 듣고 이 일년 동안 다 배웠어야만 졸업하고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일 개월을 배웠다 하더라도 이번 달 새로 들어온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마치 사관 학교에서 상급자가 하급자를 가르칠 수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젊었을 때 삼일 서원에서 공부를 했었는데 선생님을 대신하여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르칠 수 있었지만 선생님과 같이 않아서 가르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강단에서 가르칠 때는 감히 선생님처럼 그렇게 앉아서 가르칠 수 없었고 서서 가르쳐야 했었다. 초신자를 온전케 하는 공과에 대하여 지난달 배운 사람은 다음 달 갓 구원받은 사람을 가르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친구가 친구를 가르치는 것처럼 가르쳐야지 교사의 위치에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언제나 뒤의 물결이 앞의 물결을 밀어 나가게 하며 나중의 영광이 전보다 더욱 영광스러우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마 19:30). 그러나 만일 앞선 무리가 잘하지 못한다면 뒤에 오는 사람들도 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군대의 방법과 같아야 하며 속성반의 방식으로 스스로 가르칠 수 있도록 사람을 배양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자신을 위하여 보충 수업을 해야 하며 이후에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충 수업을 할 수 있다. -- 250 -- 우리의 말을 주의해야 함 심방과 교통의 암초는 바로 우리의 입이다. 야고보는 우리가 입으로 주를 찬송할 뿐 아니라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약 3:9). 사단은 세상에 대하여 정해진 방법이 있다. 사단은 세상에 죄가 아직 충분하지 않으며 그의 필요를 채울 수 없다고 본다. 사단은 더욱 많은 죄가 필요하다. 그는 단지 살인과 도적과 우상 숭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사단은 거짓말을 창조하여 세상의 죄를 증가시켰다. 사단은 세상에 행동하는 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며 행동 거지의 죄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사람의 입으로 많은 죄들을 증가시켰다. 세상의 죄들 가운데서 행동 거지의 죄는 사실 사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 죄의 대부분은 거의 다 거짓말이다. 사단은 바로 사람의 입을 사용하여 말을 더 많이 하게 하고 더 많은 헛소문들과 거짓을 산출한다. -- 251 -- -- 252 -- |
W.N.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36장 교회 안의 일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Ezra Zion , 2013-04-05 , 조회 (96)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9.html
시간 : 1950년 3월 1일 교회 중의 영적인 원칙 교회 중에는 두 가지의 영적인 원칙이 있다. 첫 번째는 권위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권위의 반대편은 순복이다. 교회에 권위가 없으면 쉽게 육체로 충만해진다. 그러나 만일 권위만 있게 되면 교회는 율법으로 가득해져 법정과 같게 된다. 그러므로 두 번째는 사랑이 있어야 -- 194 -- 봉사의 안배 심방의 일을 질서 있게 진행하기 위하여, 우리는 심방을 몇 개의 세부항목으로 나누어서 여러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책임지게 할 수 있다. (1) 외지에서 온 사람의 접대 (2) 사고 심방 (3) 서신 (4) 유모 (5) 애찬[헬라어로 아가페(agape). 원문은 단지 사랑이며 음식을 먹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음]. 교회 안의 일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민주도 아니고 독재도 아님 세상에는 각종 기관들이 일을 처리하는데 질서 있고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다 일을 처리하는 원칙을 세운다. 교회도 영적인 일들을 질서있고 편리하게 처리하는 데에도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이전에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내맡기지 않았을 때 교회는 전체적인 봉사를 -- 195 -- -- 196 -- 사도행전 15장의 본 그렇다면 교회의 봉사는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에서 일을 결정하는 방식에 관하여 주님은 우리가 결정하도록 남겨 두지 않으셨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 가운데 한 장의 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의 회의이다. 사도행전 안에 있는 회의는 바로 영에 속한 것이며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독재도 아니며 민주도 아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 교회는 영적인 방법으로 일을 상의하고 결정한다. 만일 이 회의가 기록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일을 처리하거나 봉사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 197 -- -- 198 --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즉시 베드로에게 묻지 않고, ‘사도와 장로들에게’(행 15:2) 갔으며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의 영접’(4절)을 받았다. 그런 후에 사도와 장로들은 형제들에게 회의를 열기를 요청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전체 교회가 함께 모여 교통하고 개개인들이 다. 말할 자격이 있다. 책임 형제들은 반드시 형제자매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일은 연장한 형제들이 결정하지만 연장한 형제들은 형제자매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이는 형제자매들의 말 속에 성령의 음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장한 형제들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다루심을 받았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의 말을 들은 이후에 하나님 앞에서 일을 결정할 수 있다. 이 회의 중에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한 무리 믿는 이들이 먼저 일어나, “이방인에게 할례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5절)고 말했다. 그러자 이로 인하여 많은 변론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많은 형제들이 다 말을 하고 다 자신의 견해를 발표했음을 나타낸다. 2. 베드로가 말함 ‘많은 변론이 …’(7상) 있었으며 각종 이유를 다 말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일을 서술했다. 베드로는 바울이 먼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앞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7하)라고 말했다. 그 뒤에 베드로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우리 -- 199 -- 3. 바울과 바나바가 말함 베드로가 말을 마치자 회의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다 조용해졌다. 이때 바울과 바나바가 이어서,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15:12)를 말했다. -- 200 --
마지막으로 야고보가 일어나 말을 했다.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13절). 19절에서 야고보는 이 회의의 최후 결정을 내렸다. 이 회의에서 첫 번째 말한 사람들은 하나의 기초로서 유대의 형제들이고, 다음으로 말한 것은 베드로였으며, 세 번째는 바울과 바나바였고. 네 번째로는 야고보가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사도행전 15장의 적용 오늘 우리는 이러한 본을 응용할 수 있다. 다수 사람들의 의견을 따라 결정하지 않고 교회의 회의를 시작할 때 형제자매들은 할 수 있는 한 말을 하거나 변론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장로가 결정할 수 있다. 마지막 결정이 있기 전에 모든 형제들은 다 말할 수 있으며 베드로가 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도 말할 수 있었다. 그런 후에 야고보가 말할 때 마지막의 결정을 내렸다. 영적인 인도자의 산출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누가 야고보인가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누가 인도자의 지위에서 결정을 내릴 자격이 있는가이다. 우리는 먼저 야고보가 어떻게 인도자가 되었는지 본다면 영적인 인도자가 어떻게 산출되는지 알 수 있다. -- 201 -- -- 202 -- 영적인 인도자의 결정은 성령의 결정임 19절에서 야고보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라고 말한다. 뒤에 28절에서는 ‘성령과 우리는 …’이라고 말한다. 이 의견은 사실상 야고보의 결정이지만 결과는 전체 교회와 성령의 결정이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인도자의 결정이 바로 성령의 결정임을 알 수 있다. 오직 성령께만 권위가 있음 그러므로 전체 교회가 교통할 때 형제자매들은 할 수 있는 한 의견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신이 의견을 제기했다고 해서 곧 당신의 의견대로 해야 한다는 말은 -- 203 -- -- 204 -- -- 205 -- -- 206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10장 그 밖의 몇 가지 일
Ezra Zion , 2013-04-05 , 조회 (108)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8.html
1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항상 진리의 절대성을 유지해야 한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에서 구원받는 것을 요구한다. 그래야만이 진리에 절대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 210 -- -- 211 -- -- 212 -- -- 213 -- -- 214 -- -- 215 -- -- 216 -- -- 217 -- -- 218 -- -- 219 -- -- 220 -- 2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또 다른 한 가지는 자신의 몸을 돌보는 일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바울은 매우 큰 은사를 받은 형제였으며 항상 기도로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가진 세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첫 번째 사람은 드로비모이고, 또 한 사람은 디모데이며, 세 번째 사람은 그 자신이다. 드로비모가 병이 났을 때 바울은 기도나 은사로 그를 치료하지 않았다. 바울은 도리어,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 4:20)라고 말하였다. 그는 디모데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고 말하였다. 바울은 은사와 기도로 하나님께 간구하여 그를 치료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의 병은 모두 고쳤는데 왜 디모데는 치료할 수 없었는가? 디모데는 바울의 사역을 이어받았으며 사역에서 크게 쓰임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의 병을 치료하지 -- 221 -- -- 222 -- -- 223 -- -- 224 -- -- 225 -- -- 226 -- -- 227 -- -- 228 -- -- 229 -- 3 그리스도의 사역자가 주의해야 할 또 한 가지 방면은 생활 습관에 있어서 자기 견해를 고집하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스스로 주관적인 표준을 규정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의 견해를 견지해 나가서도 안 되며 자신의 습관대로 일을 처리해서도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잘 섬기고자 한다면, 성경의 교훈에 부합해야 하며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는 원칙 아래 있어야 한다. -- 230 -- -- 231 -- -- 232 -- 4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독신과 결혼 등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이 있어야 되며 또한 이에 대한 적당한 해답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 233 -- -- 234 -- -- 235 -- -- 236 -- -- 237 -- -- 238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9장 금전에 대한 태도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7.html
제9장
-- 177 -- 1 먼저, 금전이 사역자의 길과 가르침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가 알 듯이 구약에도 발람이 있고, 신약에서도 여러 차례 발람의 길과 발람의 가르침을 다루고 있다. 베드로서와 유다서와 계시록에서도 발람에 관한 일이 언급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발람의 일을 주의하고 계신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발람은 이익을 위하여 달려간 선지자였다. 바꿔 말하면, 그가 선지자 직분을 팔았다는 것이다. 발람은 결코 자기 위치를 모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모압 왕 발락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저주하려고 할 때, 발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락이 무엇이든지 요구하는 것을 발람에게 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발람은 거듭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가 갈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만일 발락이 그에게 이러한 약속을 하지 -- 178 -- -- 179 -- -- 180 -- -- 181 -- -- 182 -- -- 183 -- -- 184 -- -- 185 -- -- 186 --
두 번째로, 주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누가복음 9장에는 주님이 열두 제자를 파송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고, 그 다음 10장에는 주님이 70인을 파송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사복음서 중 오직 누가복음만이 주님께서 70인을 파송시키신 것을 기록하고 있다. 열두 제자가 파송될 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 9:3)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주님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70인이 파송될 때에 주님이 그들에게,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10:4)라고 이르셨다.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와 같이 9장과 10장에서 동일하게 다룬 것이 금전의 문제다. 바꾸어 말하면, 주의 일을 하러 나가는 사람은 돈의 문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훗날 주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라고 물으셨을 때, 그들은 “없었나이다”(눅 22:35)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은,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36절)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시대가 이미 달라졌고 주님이 이미 거절당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할 때에는 이러한 것들이 필요치 않았다. 지금의 문제는,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나 주님께서 파송하는 사람이 전대를 주의할 것이 아니라 그의 온 존재를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주이심을 증거하기 위해 일하러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이러한 메시지에 두어야지 전대에 두지 말아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일을 하러 나갈 수 있는 사람은 -- 187 -- -- 188 -- -- 189 -- -- 190 -- -- 191 -- -- 192 -- -- 193 -- -- 194 -- 3 이제 금전에 대한 바울의 태도가 어떤지를 보기로 하자. 이에 대한 바울의 말은 매우 분명하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33절)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의 동기의 문제를 다루는데, 그에게는 탐심이 없었다. 하나님 앞에서 일할 때에, 그는 어떤 사람의 물건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확신이 있었다. 어떤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도 그의 마음에서 근본적으로 탐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 방면이다. 계속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쓸 것을 공급했다”(행 20:34).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이 응당 가져야 할 태도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나는 어떤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물건은 당신 것이니 나는 결코 그것을 탐내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당신의 것은 당신에게 남겨 두고 나는 일을 함으로써 기꺼이 나와 내 동행들의 쓸 것을 공급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복음의 권위를 쓸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것은 모든 일꾼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책임이 이렇게 중하므로, 우리는 우리 손으로 기꺼이 우리 자신과 -- 195 -- -- 196 -- -- 197 -- -- 198 -- -- 199 -- -- 200 -- -- 201 -- -- 202 -- -- 203 -- -- 204 -- 4 네 번째로, 우리는 교회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이며, 연보가 바울의 손을 거치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보자. 고린도후서 8장 1절에서 4절은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 205 -- -- 206 -- -- 207 -- -- 208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8장 주관적이지 않아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0)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6.html
주관적인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큰 어려움이다. 특히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사람이 주관적이면 일을 잘해 나갈 수 없다. -- 152 -- 2 주관적인 것이 낳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주관적인 것이 주는 손실은 무엇인가? 주관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데에서 주관적이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오직 당신의 내면이 비워져 있어야만 주님의 말씀이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의 말이 들어갈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주관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에게는 많은 어려움이 있게 된다. 주님의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인 요구 사항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어려움을 알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것은 주님의 일꾼에게 큰 어려움 중 하나이다. 남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가장 주된 원인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주관적이기 때문에 당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것이 너무 많고, 깨뜨릴 수 없는 의견과 사상이 있는 것이다. -- 153 -- 3 주관적인 사람에게 또 하나의 어려움은 어떤 것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속은 확신에 차 있고 모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의 내면에는 자신의 규정이 있어서 어떤 것도 다 그렇게 규정해 버린다. 그의 속에는 모든 것에 의견이 있고, 모든 것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당신이 그에게 어떤 것을 조금이라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을 하러 나오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당신이 어떤 일을 조금 가르치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처럼 어려워서 그에게 억지로 약을 넣어 주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는 의견으로 가득 차 있고, 주장과 방법으로 가득 차 있으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다. 이때에 그에게 어떤 것을 가르치는 것은 그에게 약을 먹이는 것보다도 훨씬 어렵다. 만일 사람이 밥을 먹는 것조차도 넣어 주어야 한다면, 그가 일생 동안 밥을 얼마나 먹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어떤 형제를 만났을 때 마음속으로 그에게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형제여, 당신 같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배워야 한다면 일생 동안 얼마나 배울 수 -- 154 -- -- 155 -- -- 156 -- 주관적인 사람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줄 모른다는 데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를 만질 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줄도 모른다. 주관적인 사람은 북극과 남극이 멀리 떨어져 있듯이 하나님의 뜻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답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 사람이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매우 부드러워야 하며 말을 잘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마자 주관적이 되지 말고 즉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민수기 22장에 발람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발람의 마음이 재물의 이익에 기울어졌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이것이 그의 속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주관적인 관점을 낳았다. -- 157 -- -- 158 -- -- 159 -- -- 160 -- -- 161 -- -- 162 -- 5 주관적인 것에 관해서 우리가 좀더 말해 두어야 할 점은, 오직 하나님께 다룸을 받아서 주관적이지 않게 된 사람만이 주님에 의해 이끌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주관적인 사람에게 결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맡기지 않으신다. 주관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게 할 수도 없다. 주관적인 사람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어 형제자매들을 인도하게 한다면, 그 결과로 주님의 뜻은 흐려지고 대부분 자신의 뜻만 남게 될 것이다. 주관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의 말을 듣도록 강요한다. 다른 사람에게 자기 말을 듣도록 강요하는 사람은 유용하게 될 수 없다. -- 163 -- -- 164 -- -- 165 -- -- 166 -- -- 167 -- -- 168 -- -- 169 -- 6 주관적인 사람은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 알아볼 수 있다. 주관적인 것은 일종의 성격과 습관이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주관적인 것이 파쇄되는 공과를 배웠다면, 당신은 즉시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많은 일들 속에서도 주관적인 것이 파쇄된 것을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주관적인 사람은 모든 일에서 주관적이다. 주관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기를 좋아하고, 의견을 내기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명령하기를 좋아한다. 주관적인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안다. 젊은 사람이 주님을 섬기러 나올 때, 당신은 단지 몇 명의 형제를 그와 함께 두기만 해도 즉시 그가 주관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에는 당신이 그것을 알 수 없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는 즉시 알 수 있다. -- 170 -- -- 171 -- -- 172 -- -- 173 -- -- 174 -- -- 175 -- -- 176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7장 성격이 견고해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7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5.html
모든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성격은 견고함이다. 혹은 이것을 감정상의 견고함이라고도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견실(堅實)하고 견고하다. 그러나 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흐리멍덩하고 견실하지 않으며 주님 보시기에 안정되지 못하고 환경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한다. 많은 사람들의 성격이 신뢰할 만하지 못하며 그들 자신조차도 자신의 성격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성격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되어서 어떤 것에 부딪히기만 해도 즉시 요동한다. 그들은 성격에 있어서 충분히 견실하지 -- 127 -- -- 128 -- -- 129 -- -- 130 -- -- 131 -- -- 132 -- 2 성경은 베드로가 주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베드로에게 조금도 공로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아버지께서 너로 알게 하신 후에야 비로소 너는 내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보게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여기서 아버지의 계시, 즉 하나님의 계시를 얻은 것이다. 이 계시는 혈육을 통해 안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다음 구절을 보기로 하자.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 133 -- -- 134 -- -- 135 -- -- 136 -- -- 137 -- -- 138 -- -- 139 -- 3 사람이 이렇게 요동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일반적인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이 요동하는 것은 세 가지 기본적인 원인 때문이다. 첫째로는, 사람이 감정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사람이 손실을 두려워하고 십자가나 고통을 무서워하며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셋째로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다른 사람의 기쁨을 구하고 환경의 즐거움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람이 견고하지 못한 -- 140 -- -- 141 -- -- 142 -- -- 143 -- -- 144 -- -- 145 -- -- 146 -- 형제자매여! 하나님의 교회의 본질은 돌이며 사역자의 본질 또한 돌이다. 교회의 기초가 돌이며, 교회의 건축 또한 돌이고, 교회의 봉사 또한 돌이며, 모든 것이 돌이어서 결코 요동하지 않고 회전하는 그림자가 있을 수 없다. 경박하고 자주 변하며 요동하는 성격으로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어떠한 가치 있는 일도 할 수 없다. 견고한 것만이 믿을 만하다. -- 147 -- -- 148 -- -- 149 -- -- 150 -- -- 151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6장 말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2)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4.html
제6장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고 하나님의 유능한 그릇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충분히 쓰임받지 못하며, 설령 쓰임받는다 해도 그리 유능한 그릇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들이 말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능력을 새어 나가게 하는 구멍을 만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혹자는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 내보내거나 또한 새어 나가게 하는 구멍과 같다고 했다. 당신의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흘러 내보내는 출구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능력을 새어 -- 102 -- -- 103 -- -- 104 -- 2 하나님의 종은 말에 있어서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첫째로, 우리는 항상 우리가 어떤 종류의 말을 듣고 있는지를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항상 즐겨 듣는 그런 종류의 말은 우리 자신이 과연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인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사정을 당신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당신을 신뢰할 수 없고 또 당신에게 이야기한다 해도 당신이 별 도움을 주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서슴지 않고 직접 당신에게 와서 그들이 당한 최근의 이야기를 모두 쏟아 놓는다. 그 이유는 그들 생각에, 당신이 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고 당신에게 무엇을 말하면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어떤 종류의 -- 105 -- -- 106 -- -- 107 -- -- 108 -- -- 109 -- -- 110 -- -- 111 -- -- 112 -- -- 113 -- -- 114 -- -- 115 -- -- 116 -- 3 주님의 일꾼들은 조금도 흐리멍덩한 말을 하지 말고 정확한 말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이런 상황 안에서만 하나님을 위해 말씀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많은 어려움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많은 경우 주님의 일꾼들이 말에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은 그들의 판단이나 한담을 들을 때에는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를 조금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당신이 형제자매들과 한담한 것이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지 말라. 당신은 분명 떠들며 이야기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에 그들은 당신이 전파한 것을 좀 전의 한담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그 결과 그들은 당신이 한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어떤 형제가 -- 117 -- -- 118 -- -- 119 -- -- 120 -- -- 121 -- 4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나름대로 각각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특별한 분깃이 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특별한 부분을 사용하신다. 이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일에서 균형 잡혀야만 새는 구멍이 없게 된다. 만일 한 형제가 그의 특별한 부분 외에 다른 방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의 사역에는 새는 구멍이 있게 된다. 앞의 몇 장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져야 하며, 고난 받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며, 자기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하며, 부지런하고 -- 122 -- -- 123 -- -- 124 -- -- 125 -- -- 126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5장 게으르지 않고 근면해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7)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3.html
-- 81 -- -- 82 -- 1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 83 -- -- 84 -- -- 85 -- -- 86 -- -- 87 -- 2 근면은 무엇인가? 근면은 곧 게으르지 않은 것이다. 근면은 일거리가 있는데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일거리가 없는데도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만일 일거리를 찾으러 나가지 않는다면, 분명 하루나 이틀 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우리는 결코 일이 생겨야만 겨우 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부지런한 것이 아니다. 근면한 사람은 한가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고 간구하고 앙망하고 고려하며 일을 찾아내서 한다. 이렇지 않으면 할 일이 없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 -- 88 -- -- 89 -- -- 90 -- -- 91 -- -- 92 -- -- 93 -- -- 94 -- -- 95 -- -- 96 -- -- 97 -- -- 98 -- 마태복음 25장 18절에서 30절로 다시 돌아가 보자. 여기에서는 무엇을 말하는가? 장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죄가 놓여질 수 있다. 하나는 악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게으른 것이다. 그 종은 왜 악했는가? 그 종은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악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열 사람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아홉 사람은 게으른 종임을 시인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게으른 종을 무익한 종으로 보신다. 때로 우리는 어떤 형제에 대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저 형제를 쓰시는가?”라고 물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일하며 많은 시간을 드려 밤낮으로 애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보아야만 한다. 길은 부지런함에 있으며, 이 길은 게으른 사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모든 것을 견디고 목숨 걸고 나아가야만 한다. -- 99 -- -- 100 -- -- 101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4장 자기의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0)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2.html
제4장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3-27, 원문 -- 60 -- -- 61 -- -- 62 --
24절에서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라고 말한다. 바울이 경주를 예로 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종이 주의 일을 하는 것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것과 같이 모두가 달리기 때문에 당신도 달려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상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지만, 우리가 만일 이렇게 달린다면 개개인 모두가 상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의 경주가 세상의 경주와 다른 점이다. 바울은 특별히 운동장에서의 경기를 인용함으로 25절의 말씀을 이끌어 낸다. -- 63 -- -- 64 -- -- 65 -- 3 그러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몸의 요구 사항에 대해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본다면 음식, 휴식, 수면, 편안함, 의복, 병이 났을 때의 특별한 보살핌 등이 있다. ‘몸을 복종케 한다’는 것은 주의 일에서 어떤 요구 사항이 있을 때에, 즉 운동장에서 달릴 때 평소에 자기 몸을 친 사람은 몸이 자기 말을 잘 듣는다는 뜻이다. 평소에 몸을 그 욕망대로 느슨하게 -- 66 -- -- 67 -- -- 68 -- -- 69 -- -- 70 -- -- 71 -- -- 72 -- -- 73 -- -- 74 -- -- 75 -- -- 76 -- 4 형제자매여! 결코 몸의 요구를 느슨하게 풀어 놓아도 된다고 생각지 말라. 방종과 보호는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의 몸을 돌볼 줄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자기 몸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몸을 친다’는 것은, 배고플 때 아무 음식도 몸에 공급하지 말라는 뜻이 -- 77 -- -- 78 -- -- 79 -- -- 80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3장 고난 받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9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1.html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사람은 고난 받을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벧전 4:1).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인이 고난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 41 -- -- 42 -- -- 43 -- 2 우리는 결코 고난 받을 마음가짐이 곧 고난을 받는다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만 한다. 우리 내면이 하나님 앞에서 갈망을 가지며, 우리 마음이 주님을 위하여 즐거이 고난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고난 받을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항상 고난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자신을 드리고 달게 고난을 받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주님이 당신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좋은 가구로 장식된 비교적 좋은 집을 주신다면, 당신은 그것을 누리고 사용할 수 있다. 주님이 만일 이렇게 안배하셨다면, 당신은 주님 앞에서 그것들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여전히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비록 지금 -- 44 -- -- 45 -- -- 46 -- -- 47 -- -- 48 -- 3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일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보기로 하자. 예를 들면, 어떤 때에 하나님이 마치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예비하심이 충분치 않은 것처럼 우리를 재정적인 궁핍의 시련 가운데 두실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물질적으로 조금만 궁핍해도 사역을 -- 49 -- -- 50 -- -- 51 -- -- 52 -- -- 53 -- -- 54 -- 4 그러면 어느 정도까지 고난 받을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성경의 요구는 “죽도록 충성하라”(계 2:10)이다. 즉 어떤 고난이 닥쳐도 죽기까지 변함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극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난 받을 마음가짐에 대하여 우리는 중용(中庸)의 태도를 취할 수 없다. 만일 중용을 취해야 한다면, 차라리 주님께서 당신을 대신해 중용을 취하시게 하고 교회나 혹은 나이 많은 형제들이 당신을 대신해 중용을 취하게 하라. 그리고 당신은 자신을 주님께 드리라.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을 중용의 위치에 둔다면, 어떻게 주의 일을 할 수 있는가? 중용의 위치를 취할 때 당신은 주의 일을 잘 할 수 없다. 자기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며 항상 스스로 붙잡고 있는 사람은 아무리 하나님의 일을 잘한다 해도 결코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한다. 우리 개개인은 죽기까지 충성하도록 예비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 길을 걸어가야만 한다. 물론 주님은 당신의 충성으로 인하여 당신을 죽으러 가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주님의 일이며 우리 자신이 지켜서는 안 된다. 주님이 어떻게 안배하시든지 그것은 주님의 일이며, 우리는 다만 언제든지 자신을 버릴 -- 55 -- -- 56 -- -- 57 -- -- 58 -- -- 59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2장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20.html
제2장
주님의 모든 일꾼은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솔로몬은,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잠 17:5)라고 말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에 다 사랑스럽다. 주님의 일꾼에게 만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거나 혹은 단지 형제 사랑하는 마음만 있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자격이 없고 조건도 부족하다. 사람에 대해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 분별이 있게 된다. -- 24 -- -- 25 -- -- 26 -- -- 27 -- 2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여기서 주님은 사람에게 무언가 취하려는 태도를 갖지 않으셨다. 우리는 마땅히 사람에게 흥미를 가져야 하며, 사람을 사랑스럽게 느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사람에게서 어떤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말아야 하며, 남의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어렵게 하고, 그들에게 해를 주는 일을 조금도 해서는 안 되며, 더욱이 그들의 섬김을 받으려 해서도 안 된다. -- 28 -- -- 29 -- 3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 30 -- -- 31 -- -- 32 -- -- 33 -- -- 34 -- -- 35 -- -- 36 -- 4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마다 각각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 하나님께 쓰임받을 부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은 또한 사람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깊이 흥미를 가지고 있다. 만약 어떤 형제가 마음이 좀더 넓어져서 사람에 대하여 큰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그는 더욱 하나님께 쓰임받을 -- 37 -- -- 38 -- -- 39 -- -- 40 -- |
W.N. 제3집 제6(52)권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제1장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75)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9.html
주님의 사역자의 성격 -- 2 --
이 책의 내용은 니 형제님의 고령 훈련 과정 가운데 하나로써 주님의 사역자가 성격에 있어서 반드시 배워야 할 공과를 논하고 있으며,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이 되는가의 여부에 크게 관련된다. 1992년 8월 -- 3 -- -- 4 --
-- 5 -- 1 먼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생활 속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것은 순복하여서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일꾼의 생활에서 중요한 항목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줄곧 자기만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줄 줄 모른다면, 그는 좋은 사역을 할 수 없다. 만약 주님의 일꾼이 폭죽을 터뜨리듯이 계속 혼자만 말한다면, 그러한 일꾼은 하나님의 손에 별 쓸모가 없다. 어떤 일꾼도 계속 혼자 말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항상 혼자만 말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당신과 대화하는 사람의 어려움을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이야기할 때에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 듣는 것을 배워야 한다. 당신은 세 종류의 말, 즉 그가 하는 말과 그가 하지 않은 -- 6 -- -- 7 -- -- 8 -- -- 9 -- -- 10 -- -- 11 -- -- 12 -- 2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가? -- 13 -- -- 14 -- -- 15 -- -- 16 -- -- 17 -- -- 18 --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첫째로 배워야 할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이다. 어떤 형제자매 혹은 믿지 않는 자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할 때에, 우리는 그의 말을 객관적으로 듣기를 배워야 하며,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연상하기를 배워야 한다. 또한 그 사람 내면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만지기를 배워야 하며, 그가 하지 않은 말은 무엇이고, 그의 영 안에 있는 말은 어떠한지를 듣기를 배워야만 한다. 당신이 배울 때에 당신의 듣는 능력은 크게 진보할 것이고, 갈수록 더 빨리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후에 당신은 다른 사람이 한마디만 말해도 그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우리 내면이 한 장의 백지와 같을 때만이 그 위에 글자를 써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상당히 안정된 상태에 있어야 하고, 내면에 자신의 어떤 생각이나 주관적인 견해, 그리고 자신의 어떤 감정도 갖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고요하게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어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사역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도구는 바로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측량하는 데에 우리를 사용하신다. 만약 우리가 문제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쓸 수 없다. 오늘 우리는 어떤 물질적인 도구를 가지고 사람을 측량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물질적인 것이 있다면 도리어 문제는 간단하다. 체온계로 사람의 체온을 잴 수가 있는 것과 같이 주님의 일에 사용되는 체온계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의 상태를 잘 측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만약 우리 자신이 잘못되었다면 -- 19 -- -- 20 -- -- 21 -- -- 22 -- -- 23 -- |
**** 협력자들의 입회 원칙들
Ezra Zion , 2013-04-05 , 조회 (68)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8.html
교회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일을 하게 하는 데 가장 먼저 필요한 자격은, 이 사람이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이 사람으로 하여금 일을 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하며 또한 당신은 그를 데리고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중에서 일하는 자격은 일을 ‘할 줄 아는’ 데 있지 않고 ‘기꺼이 하려는’ 것이 있어야 한다. 할 줄 모르는 것은 상관없지만 ‘기꺼이 하려는’ 사람은 온전케 함을 받을 수 있다. 교회의 봉사는 먼저 반드시 ‘기꺼이 하려는’ 것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그 다음으로 할 만한 사람을 택해야 한다.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33장 봉사에 관한 교통(6)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32장 참된 봉사
Ezra Zion , 2013-04-05 , 조회 (7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7.html
제32장
니토셍 형제님 : 이러한 날들은 엄숙한 날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을 주님께 내드리고 일어나 주님을 섬기고자 한다. 아마 당신은 처음에는 약간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어떤 때는 고통스럽고 괴롭게 느꼈겠지만 일단 자신을 맡긴 후에는 마음속에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의 느낌을 만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헌신서를 쓰면서 자신의 모든 것과 장래와 직업과 시간과 몸을 다 주님께 헌신하기 원한다는 것을 표명했다. 그러나 오늘 나는 하나의 질문을 하고 싶다. 여러분은 자신을 드린 그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느낌에 있어서 십여 일, 이십여 일 전과 다른 것이 있는가? 마치 오늘 저녁의 느낌은 며칠 전에 느꼈던 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든지 우리가 헌신에 있어서 하락한다면 즉시 그리스도의 생활에 있어서 하락한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나는 오늘 여전히 신선한지, 또 내 속은 여전히 밝은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구두를 닦는 것과 같아야 한다. 구두는 반드시 늘 닦아야 광택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 속에서 밝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면 반드시 주님께, 나에게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인하여 하늘에 속한 맛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계속하여 헌신의 신선함을 유지하기를 배워야 한다. -- 142 -- -- 143 -- 합일과 동역은 안에 있는 생명에서 나온 것임 이상수 형제님 : 며칠 전에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요구를 듣는 것이 바로 교회의 참된 봉사라는 것을 교통했다. 우리의 동역과 봉사는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합일의 교리를 말하는 것을 들을 때, 나는 영 안에서 매우 불편하게 느꼈다. 합일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은 충분히 분명하지 못하다. 합일의 원칙과 동역의 원칙은 실제로 동일한 원칙이다. 우리는 먼저 교회의 합일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나와 몇 명의 형제가 하나가 아니라면 당신은 교리로 나를 권하여 하나가 되게 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나에게 하나 되라고 권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거짓된’ 것이며 -- 144 -- -- 145 -- -- 146 -- -- 147 -- 동역의 실행 어떻게 해야 동역할 수 있는가? 에베소서 4장에서는 먼저 모든 일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5하).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포함한다. 우리는 늘 우리가 그리스도와 달콤한 교통 안에 있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양심이 평안한지의 여부만을 물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야 한다. 양심의 평안은 다만 소극적인 방면일 뿐이고 적극적인 방면에서는 머리와 교통이 있어야 한다. 많은 때 -- 148 -- -- 149 -- 교회의 봉사는 일의 옳고 그름, 많고 적음 혹은 경중에 상관없이 다 영적인 분량으로 헤아려야 한다. 예를 들어, 바닥이 깨끗지 못하다면(만일 늘 깨끗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단지 바닥을 닦는 사람을 다루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원칙을 다루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상황을 만나면 두 방법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첫째로 청소를 책임진 형제를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옳지 않는가? 여러분 형제들은 다 분명히 알고 있겠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두 번째 방법은 바로 영적인 원칙으로 다루어야 한다. 교회 중에서 영적인 원칙으로 다루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 목적은 그 바닥을 닦는 책임자가 하나님과 대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가 당신의 책망을 듣고 다시 바닥을 닦고 청소를 다 한다 하더라도, 그가 속에서 주님과 영적인 교통이 없고 영적인 공급을 얻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 150 -- 인위적인 봉사를 제함 니토셍 형제님 : 지난 며칠간 이 형제는 나에게 말을 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안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나는 약간의 말을 해야 겠다고 느꼈다. 형제자매들은 내가 바른 말을 하는 것을 용서 해 주기 바란다. 적어도 이 열흘간 내 마음속은 아주 괴로웠다. 문제는 형제자매들이 내맡겼는가의 여부에 있지 않다. 나는 이 안에 하나의 기본적인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이 기본적인 문제는 내맡긴 우리 각 사람이 다 느낄 수 있으며 다 말해 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이 기본적인 문제는 바로 우리의 봉사가 많은 곳에서 인위적이며 속에 있는 생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 151 -- -- 152 -- -- 153 -- 위광희 형제님 : 주여, 우리 자신에게는 형제자매들을 인도할 충분한 자격이 없음을 시인합니다.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필요에 부응하지 못하고 더욱 당신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많은 것들이 자기의 생각과 관념 안에서 옳고 좋다고 여기던 것에서 나온 것이었음을 인하여 우리는 당신께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많은 형제자매들의 헌신에 미치지 못하고 그들의 다루심에 미치지 못하며 그들의 배움에 미치지 못했음을 시인합니다. 우리에게는 특별히 당신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주여, 우리는 자신이 형제자매들보다 낫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헛되이 이 땅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시인합니다. 만일 개인이 주님께 득죄했다면 여전히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주여, 우리가 득죄한 것은 교회요 주의 몸입니다. 이것은 실로 너무나 큰일입니다. 우리는 책임 형제로 세워졌었고 부담은 실로 무거웠습니다. 우리에게는 실로 당신이 충분한 은혜로 힘을 더해 주심이 필요합니다. -- 154 -- -- 155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30장 교회 전체의 봉사
Ezra Zion , 2013-04-05 , 조회 (73)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6.html
제30장
찬송 해석 니토셍 형제님 : 찬송이란 무엇인가? 찬송은 바로 개인의 영적인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이 찬송으로 영적인 느낌을 발표할 때, 생각은 늘 분명치 않지만 영은 매우 분명하다. -- 111 -- 자신을 내맡겨야 비로소 사람이 주님을 믿은 이후에는 두 가지 일에서 다루심 받아야 하며 두 가지를 끝내야 한다. 첫 번째는 죄이다. 이전에 죄는 당신을 재촉하고 얽어 매어 당신이 어떻게 하더라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당신이 주님을 믿고 난 이후 당신의 죄의 행위는 용서를 받았다 그런 후에 죄의 다스림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죄를 처리해야 한다. 두 번째, 과거에 끝내지 못했던 것을 끝내야 한다. 이전에 당신이 세상에서 얻은 것들도 다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어떤 것은 죄와 관련된 것이고 어떤 것은 비록 죄는 아니지만 무거운 짐이며 당신이 그리스도인의 노정을 경주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런 것들을 다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마치 히브리서 12장 1절과 2절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노정을 경주할 때 먼저는 각양의 무거운 짐과 쉽게 얽매는 죄들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 사람이 경주를 할 때에는 긴 옷을 입거나 구두를 신을 수 없다. 손에 물건을 들고 뛸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은 사람은 반드시 모든 것을 팔아야 하며 모든 것을 버려야 하며 모든 얽매는 것을 제하고서 앞에 놓여진 노정을 경주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의 내적인 요구―전체의 봉사 이상수 형제님 :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16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몸의 건축을 말한다. 12절에서는 각각의 은사들이 각기 직분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한 것임을 말한다. 16절에 이르러서는 각각의 지체들이 사랑 안에서 스스로 건축하여 몸으로 건축되게 한다고 말한다. 건축에 있어서 먼저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사에 의해 건축되지만 다음으로는 지체들이 각각 함께 기능을 발휘함으로 건축된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의 속에 계시고, 거하시며, 살아 계시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이상, 그분은 우리에 대하여 요구가 있는데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살아 계시기 때문이다. 무엇을 교회라고 하는가? 사람들은 많은 믿는 이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라고 한다. 이것은 일반인들이 말하는 교회, 곧 예배당(종탑과 십자가의 첨탑이 있는 건축물)이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많이 진보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정확하게 말한다면, 교회는 당신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와 내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 그리고 그들 안에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가 더해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이다.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아니다. 하나님이 육신 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이며 이 그리스도께서 많은 사람 안에 들어가서 당신과 나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합할 때 비로소 교회가 된다. 그들을 합한 것이 교회가 아니라 바로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합한 것이 교회이다. 개별적인 그리스도는 교회가 아니다. 바로 단체적인 그리스도가 교회이다. -- 115 -- 오늘날 하나님이 얻고자 하시는 간증은 전체의 봉사임 우리는 왜 교파를 떠났는가?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봉사의 요구가 만족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교회 전체가 일어나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각각의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것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 형제들은 이에 대하여 반드시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는 당신이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봉사하지 못하게 하고 저지한다면 당신은 성령에 득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엄중한 일이다. 한 지방 교회가 몸의 간증에 있어서 이러할 뿐 아니라 우주적인 교회도 몸의 간증에 있어서 이러해야 한다. 현재 홍콩 교회 전체가 일어나 봉사하지 않는다면, 어느 날 다른 지방 교회에서 전체가 일어나 봉사하는 풍랑이 홍콩을 강타하여 전체가 일어나 봉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할 것이다. 무엇이 복음 전파이고 온전케 함이며 돌봄인가? 바로 교회 전체가 봉사하도록 밀어내는 것이다. -- 120 -- -- 121 -- 니토셍 형제님 : 시간이 이미 다 되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하게 두 마디만 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하기보다는 더욱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한다. 그리스도인이 그들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했을 때는 회복하는 것이 쉽다. 그러나 만일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했다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가? 이 두 가지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자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하는 것은 그 시대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만지는 것이 아니므로 쉽게 회복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일단 교회 안에 있는 그리스도께 득죄하면, 그는 하나님의 시대적인 행정 안에 있는 계획에 득죄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일이며 이로 인해 생겨나는 파괴는 매우 크며, 아마 이로 인하여 많은 영혼들의 구원이 제한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여기서 책임 형제들 특별히 장로들에게 말하건대, 우리는 결코 교회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득죄할 수 없다. -- 122 -- 포 형제님의 기도 : 주여, 우리를 특별히 긍휼히 여기사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게 하시고 다 봉사의 마음을 갖게 하소서. 교회에 봉사가 없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나타날 수 없습니다. 주여, 우리를 매혹시키사 우리로 다시 한번 자신을 당신께 헌신하여 봉사에 있어서 당신께 열린 길을 드리게 하시며 당신으로 교회 안에서 길을 얻게 하소서. 주여, 당신이 교회 역사를 통해서 교회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은혜로 대해 주사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당신을 제한하는 것이 없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홍콩의 교회를 긍휼히 여겨 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는 자신이 다만 무용한 종일 뿐이며 오늘날 당신의 흐름을 따르기를 예비할 뿐입니다. 주여, 당신이 완전한 영광을 얻으시옵소서. -- 123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29장 그리스도인의 길
Ezra Zion , 2013-04-05 , 조회 (65)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5.html
주님 앞에서 정한 비밀 서약을 실행함 니토셍 형제님 : 우리는 요한 웨슬리가 이십 세에 결혼을 할 때 주님 앞에서 약속을 했는데 오직 그때 한 번 생활의 수준을 바꾸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있다(주님은 그가 결혼하기 -- 99 -- -- 100 --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준 이상수 형제님 : 나는 항상 하나님의 사랑이 늘 사람에게 오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더욱 오해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는 ‘기독교’라는 말이 없다. 성경은 오직 믿는 이들 개인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믿는 이들 전체를 교회라고 부를 뿐이다. 한 번도 기독교인이라고 칭한 적이 없다. 그리스도인이란 무엇인가? 바로 주님을 믿고 주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이다.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만일 당신이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어본다면 내가 생각건대 많은 사람들의 답변이 매우 이상할 것이다. 그들은 아마 안에 그리스도가 있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은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의 입에서 나온 말일 뿐 당신 자신은 여전히 그러한 사람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하나님이 당신의 눈을 열어 주실 때, 당신은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오늘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 101 -- -- 102 -- 헌신은 내적 생명의 요구임 그렇다면 나는 사 형제에게 묻겠다. 당신은 왜 헌신하려고 하는가?(답변 : 속에서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묻건대 왜 좋아하는가?(답변 : 속에 있는 생명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우리의 헌신은 바로 우리 속의 생명이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속에 있는 느낌이 기뻐하고 통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1943년 연대에서 내맡기는 일이 있었다. 그 이전 해 연말에 나는 재물의 문제가 형제자매들에게서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음은 나아갈 길이 없으며 형제자매들 또한 하루도 참된 부흥을 얻을 길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1942년 12월 12일 주님은 연대에서 역사하셔서 그날 저녁에 나는 헌신에 관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때부터 주님은 형제자매들의 속 부분을 만지셨고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헌신하게 하셨다. 삼 개월 반을 이렇게 했을 때 육칠백 명이 모든 것을 전부 헌신했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을 내놓고 이주를 준비했다. 이 기간 동안 형제자매들은 다 부흥 안에 있었고 심지어 많은 형제자매들이 집으로 돌아가 의복도 감히 만지지 못했다. 일단 만지면 주님은 그에게 드리라고 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드릴 때는 평안이 있었지만 드리지 않을 때는 평안이 없었다. 1948년 복주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있었다. 형제자매들이 자기를 드리는 것은 바로 속에 있는 생명의 요구를 응하는 것이다. -- 103 -- 그리스도인은 속이 평안한 정도로 해야 함 내가 여러분에게 다시 묻겠다. 여러분은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마 형제는 “만일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으면 기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는데, 나는 “내 속이 평안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하겠다. 만일 단지 천당에 가고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 104 -- -- 105 -- -- 106 -- 그리스도의 요구는 또한 그분의 공급임 아마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이같이 사람에게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려나 당신이 일단 그리스도의 요구를 들어줄 때 당신 안에는 즉시 신선함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어느 때든지 당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요구가 느껴질 때 당신이 즉각 이 요구에 응한다면 당신은 평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요구가 있을 때가 바로 그분의 공급하시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할 때 사람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풍성하심과 초월하심과 귀함을 간증하고 교통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피아노와 같이 속에서 나오는 음조가 옳은가 그른가가 중요하다(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이 외적으로는 함부로 행동하기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 107 -- -- 108 -- 니토셍 형제님 : 오늘 우리는 교회 중에서 동일하지 않은 두 부류의 형제자매들을 볼 수 있는데 많은 형제자매들은 기뻐하는 이들이고 소수의 형제자매들은 근심하는 이들이다. 아마 당신 옆에 앉은 사람은 이 두 부류의 다른 그리스도인일 것이다. 만일 내가 당신에게 누가 가장 즐거운 사람인지 택하여 보라고 한다면 틀림없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들 가운데 즐거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에게 의문을 품어야 한다. 그에게는 틀림없이 질병이 있을 것이며 영적인 문제가 있을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주님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교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체험의 문제이다. 만일 당신이 “두 분께서 말씀을 전하기 전에는 나는 아주 기뻤는데 지금 두 분이 말씀을 전하고 나자 기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이러한 말씀이 그리스도의 요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이 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근심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리와 말씀과 권면은 기본적으로 아무런 용도가 없다. 우리의 목소리는 마치 확성기와 같이 다만 당신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요구를 분명하게 말해 줄 뿐이다. 오늘날의 길은 바로 속에 있는 음성을 청종하는 것임 만일 형제자매들이 듣고도 아직 주님의 요구에 응하기 원치 않는다면, 나는 오늘 여러분이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면 일찍 되지 -- 109 -- -- 110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28장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원칙을 앎
Ezra Zion , 2013-04-05 , 조회 (79)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4.html
회개의 찬송(제2집에서 편집한 찬송가 309장. 지금의 찬송가에는 없음) -- 82 --
이것은 뉴톤(John Newton)이 지은 회개의 찬송이다. 비록 어떤 사람은 이 찬송을 복음 찬송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성도들의 집회에서 극히 유용한 찬송이다. -- 83 -- -- 84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것을 땅에 던지라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잡으니 그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또 가라사대 이는 그들로 그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함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 보니 그 손에 문둥병이 발하여 눈같이 흰지라 가라사대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 보니 손이 여상하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이적의 표징을 다 받지 아니하여도 둘째 이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 너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 85 -- 하나님을 섬기려면 이상수 형제님 : 나는 니 형제님이 여기에 계시기만 하면 나의 영은 아무런 부담이 없으며 내 영은 마치 잠을 자고 안식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니 형제님이 나에게 말을 하라고 하셨으므로 그래도 몇 마디 하고자 한다. -- 86 -- -- 87 --
구약 안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종은 바로 모세이고, 신약에서 하나님의 대표적인 종은 바로 바울이다. 구약과 신약을 막론하고 모두 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였다(민 12:7, 히 3:2)고 칭찬한다. 영적인 원칙에 있어서 모세는 종이었으며, 신구약의 시대와는 관계없이 그의 원칙은 바로 하나님의 종의 원칙이었다. 우리는 다 모세의 배경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여기서 많이 말하지 않겠다. 그에게는 아주 좋은 환경이 있었다. 그는 바로의 딸의 아들이었으며, 또한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므로 애굽의 모든 학문으로 자신을 장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코자 했다. 비록 모세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좋은 땅으로 인도해 들이도록 정해진 사람이었지만 그의 마음과 학문과 구변 등을 다 더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부족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 안에서 환경을 일으키셔서 그로 시내 광야로 도망갈 수밖에 없게 하셨다. -- 88 -- 1.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공과 나는 먼저 지팡이가 뱀으로 변한 기적을 말하고자 한다. 모세에게 있어서 원래 지팡이의 주요한 기능은 양을 치는 것이었지만 나중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때의 여정에서 사용되었다. 모세는 당시에 팔십 세였으며 지팡이는 그의 의지였으며 그의 생존에 있어서 반드시 있어야 할 의지하는 물건이었다. 우리 육체의 수중에는 비록 지팡이가 없지만 원칙상 우리 모두에게는 생활 가운데 의지하는 것들이 있다. 마치 상인은 매매가 그의 지팡이이고, 학생은 공부하는 책이 그의 지팡이이며, 아내는 그의 남편이 ‘지팡이’인 것과 같다. 지팡이는 바로 우리가 의지하는 것이며 우리를 지탱하는 데 소용되는 것들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 89 -- -- 90 -- -- 91 -- 2. 자신을 아는 공과 이어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을 품속에 넣으라고 하셨다. 그가 손을 품속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을 때 뜻밖에 손에 문둥병이 들어 눈과 같이 희게 되었다. 이것은 두 번째의 공과이다. 우리는 먼저 수중의 지팡이를 던져 뱀의 원래 모습이 나타나게 하고 다시 꼬리를 잡아야 하며, 그런 후에 다시 두 번째 일을 행해야 한다. 우리는 단지 모세와 같이 지팡이를 던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다시 모세와 같이 손을 품속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을 때 문둥병이 -- 92 -- -- 93 -- 3. 세상을 아는 공과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고자 한다면, 사단의 점유와 자기 육체의 패괴함에 대한 인식에 대하여 뿐 아니라 세상의 혐오스러움에 대하여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세 번째의 기적은 바로 이러한 것이다. “하수를 조금 취하여다가 육지에 부으라 네가 취한 하수가 육지에서 피가 되리라”. 여기서의 강은 바로 애굽 땅에 물을 공급하는 나일 강이며 세상의 타락한 누림을 말한다. 애굽은 바로 세상을 예표한다. 성경에 근거하면 애굽은 나일 강을 인하여 산출이 부요했고 누림이 풍성했다. 나일 강은 바로 애굽의 생명이요 생활의 근원이었다. 피는 사망의 표시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나일 강은 공급과 누림을 가져다주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망이었다. 당신이 세상 사람이 풍성한 것과 아름다운 것을 누리는 것을 보고 자기와 비교해 볼 때, 당신은 즉시 자신이 얼마나 가련하고 빈궁하며 아무것도 없는지를 보게 된다. 특별히 당신의 친구가 어떻게 발전했으며 본래 학교에서 당신보다 공부를 못하던 그가 오늘 누리는 것이 당신과 비교할 수 없다면 당신은 더욱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물이 변하여 피가 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이 양옥을 누리고 -- 94 -- 계시가 있어야 사역을 할 수 있음 니토셍 형제님 : 이상 세 가지의 기본 공과에는 오직 하나의 기본적인 원칙이 있는데, 바로 본 것과 보지 못한 것이다. 당신이 보았다면 자연히 다른 사람과 분별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를 보지 못했을 때, 당신이 본 것은 지팡이일 뿐이며 자신의 손이 정결하다고 보았을 뿐이고 애굽을 공급하는 것이 하수라고 보았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단 하나님의 계시를 얻었다면, 더 이상 이렇게 느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수중에 있는 지팡이가 뱀이고 당신의 손은 불결하고 세상에 충만한 것이 사망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95 -- -- 96 -- -- 97 -- -- 98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23장 장로의 성격과 사역 및 오늘날의 봉사의 길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6)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3.html
니토셍 형제님 :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 자신이 장로이며 그들의 일은 바로 감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들은 자신이 손수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안 후에 형제자매들을 보내어 하게 해야 하며 더욱이 형제자매들이 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장로들은 형제자매를 대신하여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 19 -- 장로의 성격과 사역 이상수 형제님 : 나는 여기서 체험으로부터 한 가지 장로의 성격과 사역에 관하여 말하고자 한다. 1. 아비와 같은 심장을 지녀야 함 첫째로, 장로들은 반드시 아비와 같은 심장을 지녀야 하며 최소한 맏형과 같은 심장을 지녀야 한다. 아비와 형은 아들과 아우에 상대되며 언제나 많으면 많았지 없을 수는 없다. 장로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가정의 아비와 맏형이 되는 것보다 더욱 높다. 장로들이 일을 처리할 때 단지 잘 처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설령 많은 일을 잘못하고, 많은 일들을 해내지 못하고 잘하지 못했을지라도 반드시 아비와 같은 심장이 있을 때 주님의 축복이 있게 된다. 장로들에게 아비와 같은 심장이 있을 때 형제자매들을 인도해 많은 난관들을 통과할 수 있다. -- 20 -- -- 21 -- -- 22 -- 2.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음 둘째, 장로들은 또한 번거롭게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가장 번거로운 일이다. 그러나 장로들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이러한 번거로움을 환영해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장로의 자격 중 첫 번째 항목이 오직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말했는데(3:2상), 이 의미는 많은 부인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부인을 두지 말라는 것은 정욕을 절제할 수 있고 자신을 제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장로의 또 다른 항목의 자격은 기꺼이 손을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2중). 많은 부인을 취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절제하는 것이고, 기꺼이 손을 대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번거롭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로들은 한 면으로 자신을 제한해야 하고 다른 한 면으로는 다른 사람이 번거롭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손을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으로서 여러분이 번거로움을 두려워하는지 아닌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번거롭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번거로움을 환영해야 한다. 여러분은 마땅히 왜 오늘 아무도 나를 번거롭게 하지 않는지를 -- 23 -- -- 24 --
장로들은 또한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대표해야 하고 하나님의 마음의 뜻을 알아야 한다. 장사라는 말은 어떤 구상을 산출해 내는 것이다. 어떤 회사의 사업이 번창하려면 경영자의 생각이 앞서야 하고, 시장의 정세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며, 고객의 필요를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장로들 또한 생각으로 가득하여 하나님 앞에 갈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만일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가서 인도를 받을 수 없다면 다른 많은 형제들이 어떻게 일을 해나갈 수 있겠는가? 장로들은 참으로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방법을 찾고 간구해야 한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반드시 먼저 교회의 사무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서 간구해야 하며, 늘 형제자매들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오늘날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는 때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기다리신다. 오직 사람의 마음이 열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산 위의 식양을 그에게 보여 주신다. -- 25 -- -- 26 -- 장로들은 교회 가운데의 어떠한 형제 안에 있는 필요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형제자매들 안에 있는 필요에 대하여 교회는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반드시 즉시 돌아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분의 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빛 이외에 우리는 또한 형제자매들 안에 있는 영적인 요구들을 중히 보아야 하는데, 이는 그것이 다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만일 장로가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늘의 이상을 소홀히 하는 것과 같은 것이며 하나님의 엄중한 책망을 받을 것이다(암 2:11-12 참조). -- 27 -- 5. 합당하게 사무를 안배해야 함 장로들은 하나님에 대한 교회의 모든 봉사를 붙들어 주어야 할 뿐 아니라 모든 사무를 붙들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합당하게 사무를 안배해야 한다. 장로들은 반드시 사무가 한 면으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가장 큰 근거이며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의 역사에 어려움이 된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일은 할수록 많아지므로 합당한 안배가 필요하다. 마치 차를 타고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여행을 하는 것과 같이 산을 하나하나 넘는 것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여러분이 타고 있는 차는 일종의 수단이지만 또한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만일 장로가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이것을 통해 신속히 전진하고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 -- 28 -- 6. 사무 처리에 철저해야 함 장로들은 사무를 안배해야 할 뿐 아니라 사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철저해야 한다. 여러분이 책임 형제라면 여러분의 생각과 관념은 반드시 분명하고 민감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단지 생각만 영적이어서 형제자매들을 위해서는 중보 기도만 해 주면 되고 의자를 잘 배치하고 안 하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사실,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장로들의 관념은 속히 전환되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교회 안에는 아직도 많은 일들이 있다.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은 여전히 잘해야 하며 철저하고 완전할수록 좋다. 장로들의 생각이 바뀌면 때로 할 일이 없다가도 많은 일이 생기게 된다. 내가 간증할 수 있는 것은, 나는 늘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악한 사람이 되며 일이 없어도 일을 만들어 내며 또한 철저하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역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말을 잘할 수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 29 -- 오늘날의 봉사의 길―전체의 봉사 형제자매들은 자신을 내맡겨야 하며 장로들은 안배할 수 있어야 함 이곳 홍콩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강한 교회가 봉사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최근 하나님의 교회가 복음을 전파할 때는 듣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부근의 극장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교회와 극장을 비교해 본다면, 복음집회에 온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곳 홍콩의 필요는 강한 복음의 거인이 아니라 강한 교회가 -- 30 -- -- 31 -- 교회는 바로 전체의 봉사임 니토셍 형제님 : 나는 이 형제의 말에 내가 무슨 말을 더하는 것이 그의 말의 부담을 감하는 것이 될까 염려된다. -- 32 -- -- 33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전체의 봉사임 1949년 내가 본 것은 1939년에 본 것에 비하여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는 하나님께서 교회가 하나의 결실을 이루고 믿을 만하며 사람을 구원하고 싸움을 할 수 있으며 양육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구가 될 수 있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영적 거인의 시대는 지나갔으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교회 전체의 봉사임을 보았다. 오늘 형제자매들이 재료로서 자신을 내맡길 때, 여러분 장로들과 책임 형제들은 일어나 교회가 다방면에서 봉사하는 기구가 되도록 안배하고 인도하며 건축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오천 -- 34 -- -- 35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22장 산 위의 식양에 따라 교회 회복의 길을 감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2)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2.html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 2 -- -- 3 --
니토셍 형제님 : 교회에 대한 주님의 명령은 ‘산 위의 식양’에 따라 건축하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산 위의 식양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표준을 표준 삼아야 한다. 그럴 때 과거의 오류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교회의 상태는 대체 어떤 모양인가? 우리는 주님이 성경에서 정하신 그러한 영광스런 교회를 볼 때에 우리가 참으로 따라가지 -- 4 -- 교회가 실패하는 원인 교회가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회가 그 자체의 낳고 기르는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데 있다. 교회의 변화는 단지 형제자매의 여행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강할 때 유동하는 형제자매의 수는 감소되며, 교회가 약할 때 이러한 사람은 증가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경제의 동향과 화폐의 유통을 주시한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들의 유동을 주의해야 한다. 만일 한 지방에 삼사백 명의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교회는 잘 돌볼 수 없다.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오래 된 사람들은 나가게 되는데, 이것은 교회의 손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복음을 전함으로 새로운 사람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이미 얻은 사람들을 온전케 해야 한다. 교회의 책임은 첫째로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만일 몇 개월 사이에 구원받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일백 명이고 나가버린 사람이 일백 명이라면, 이것은 교회의 큰 실패이다. 교회가 실패하는 원인은 아이를 낳고서 양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5 --
성령의 역사의 법칙 만일 어떤 교회가 강하다면 자유자제로 통제할 수 있다. 즉, 죄인을 얼마나 얻든지 통제할 수 있다. 교회가 강하고자 한다면, 주님이 계시하신 산 위의 식양에 따라야 한다. 만일 주님이 계시하신 식양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주님이 주신 식양대로 따른다면, 올해에 오백 명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오백 명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일천 명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일천 명을 증가시킬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간다면 삼백 명, 오백 명뿐 아니라 삼천 명, 오천 명을 구원시키는 것도 기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들이 주님을 부흥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음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실상, 주님이 우리에게 부흥의 아들이신지 아닌지는 우리가 그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시해 주신 법칙에 따라 사역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역사의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법칙을 알고 성령의 법칙에 따라 사역한다면,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교회가 나타날 때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을 수 없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부흥의 길―전체의 봉사 이곳에 있는 우리는 늘 외국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영향 곧 그들이 세운 선교회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이 선교회 설립에 있거나 국외 선교회에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근본적으로 선교회나 그러한 것을 파송한 예가 없다. 하나님이 발기하신 것은 바로 -- 6 -- -- 7 -- 전체가 온전케 함을 받도록 내맡길 때 사역의 필요를 채울 수 있음 오늘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역이 있는데, 하나는 낳는 사역이고 하나는 계속 자라게 하는 사역이다. 이것은 한 면으로는 죄인을 얻고 한 면으로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 8 -- -- 9 -- -- 10 -- 훈련받고 동역함으로 이주를 대비해야 함 이주할 형제자매들에게는 반드시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이주는 사무적으로도 다방면의 안배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 전체가 먼저 직업적인 기술에 있어서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마치 서커스단의 큰 코끼리가 원래는 아주 우둔하지만 훈련을 거친 후에는 춤을 추며 묘기를 보일 수 있는 것과 같다. 대만 사역에 관한 교통 이상수 형제님 : 지난 반년의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하여 대만에 남아 있었다. 이 반년 동안 구원받은 형제자매들 중에는 구십 퍼센트 이상이 구원받기 전에 한 번도 복음을 들어 보지 못했고 한 번도 기독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북에서는 이미 천이백여 명이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곳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새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직 봉사의 입장과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 13 --
초대 교회의 상태로 돌아감 교회는 이 땅에서 얼마나 되었는가? 거의 이천 년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지방에 걸쳐 있는가? 거의 전세계에 편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가? 천천이요 만만이다. 교회가 이렇게 오래되고, 이렇게 확장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여러분은 교회가 처음의 모습에서 바뀌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산 물건은 다 원래의 상태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은 오늘날의 교회가 이미 모양이 바뀐 것을 알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어떤 물건을 산다면, 당신은 원래의 모양을 한 것을 사겠는가, 아니면 개조된 것을 사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원래의 모양을 한 것을 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가 이미 모습이 바뀌어진 교회가 아닌 초대 교회의 상태를 원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이 이천 년 동안 이미 하락했고,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는 초대 교회와 다르다. 오늘 우리의 입장은 회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느낌이 없을 수 없고 우리의 물음표는 클수록 좋다. 오늘 우리가 각 방면에서 오늘날의 기독교를 볼 때, 이것이 초대 교회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여러분이 듣는 것은 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시킨 후 그들을 기독교에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단지 기독교에 가입시키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음표는 크면 클수록 좋다. 만일 우리가 물음표를 갖는다면 우리는 -- 14 -- 믿는 이들의 영 안의 요구를 채워야 함 이상에서 말한 것은 모두 대원칙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는가? 반드시 세밀한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양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한 지방의 한 교회는 형제자매들 안의 요구를 채울 수 있으며 또한 밖에서 온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형제자매들 안에 있는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게 된다. 각 형제자매들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교회는 반드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공급할 수 -- 15 -- 전체가 내맡기어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해야 함 전체 형제자매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려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이 전체를 사용하실 수 없으며 교회 가운데서 길을 얻으실 수 없다. -- 16 -- 교회의 안배와 훈련을 받음 이전에 우리는 성령을 너무 신뢰하고 교회는 신뢰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과거에 우리는 늘 성령만을 강조했었다. 오늘 우리는 결코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게 하려는 -- 17 -- -- 18 -- |
제3집 제62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제22장 산 위의 식양에 따라 교회 회복의 길을 감
Ezra Zion , 2013-04-05 , 조회 (65)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1.html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2) -- 2 -- -- 3 --
니토셍 형제님 : 교회에 대한 주님의 명령은 ‘산 위의 식양’에 따라 건축하는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산 위의 식양이 어떠한지를 보아야 하며, 하나님의 표준을 표준 삼아야 한다. 그럴 때 과거의 오류를 알 수 있다. 우리가 따라가야 할 교회의 상태는 대체 어떤 모양인가? 우리는 주님이 성경에서 정하신 그러한 영광스런 교회를 볼 때에 우리가 참으로 따라가지 -- 4 -- 교회가 실패하는 원인 교회가 실패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교회가 그 자체의 낳고 기르는 필요를 채우지 못하는 데 있다. 교회의 변화는 단지 형제자매의 여행으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강할 때 유동하는 형제자매의 수는 감소되며, 교회가 약할 때 이러한 사람은 증가된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경제의 동향과 화폐의 유통을 주시한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로 형제자매들의 유동을 주의해야 한다. 만일 한 지방에 삼사백 명의 형제자매들이 있다면 교회는 잘 돌볼 수 없다.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오래 된 사람들은 나가게 되는데, 이것은 교회의 손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복음을 전함으로 새로운 사람을 얻을 수 있어야 하고 또한 이미 얻은 사람들을 온전케 해야 한다. 교회의 책임은 첫째로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사람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만일 몇 개월 사이에 구원받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 일백 명이고 나가버린 사람이 일백 명이라면, 이것은 교회의 큰 실패이다. 교회가 실패하는 원인은 아이를 낳고서 양육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 5 --
성령의 역사의 법칙 만일 어떤 교회가 강하다면 자유자제로 통제할 수 있다. 즉, 죄인을 얼마나 얻든지 통제할 수 있다. 교회가 강하고자 한다면, 주님이 계시하신 산 위의 식양에 따라야 한다. 만일 주님이 계시하신 식양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주님이 주신 식양대로 따른다면, 올해에 오백 명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오백 명을 증가시킬 수 있고 일천 명을 증가시키고자 할 때 일천 명을 증가시킬 수 있다. 우리가 주님의 길을 간다면 삼백 명, 오백 명뿐 아니라 삼천 명, 오천 명을 구원시키는 것도 기이한 일이 아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들이 주님을 부흥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음을 인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실상, 주님이 우리에게 부흥의 아들이신지 아닌지는 우리가 그분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계시해 주신 법칙에 따라 사역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누구든지 주님의 역사의 법칙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법칙을 알고 성령의 법칙에 따라 사역한다면, 사람을 구원시키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이다. 교회가 나타날 때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을 수 없고 교회는 부흥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부흥의 길―전체의 봉사 이곳에 있는 우리는 늘 외국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영향 곧 그들이 세운 선교회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이 선교회 설립에 있거나 국외 선교회에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경에는 근본적으로 선교회나 그러한 것을 파송한 예가 없다. 하나님이 발기하신 것은 바로 -- 6 -- -- 7 -- 전체가 온전케 함을 받도록 내맡길 때 오늘 교회에는 두 종류의 사역이 있는데, 하나는 낳는 사역이고 하나는 계속 자라게 하는 사역이다. 이것은 한 면으로는 죄인을 얻고 한 면으로는 성도들을 온전케 하는 것이다. -- 8 -- -- 9 -- -- 10 -- 훈련받고 동역함으로 이주를 대비해야 함 이주할 형제자매들에게는 반드시 전문적인 기술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이주는 사무적으로도 다방면의 안배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 전체가 먼저 직업적인 기술에 있어서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마치 서커스단의 큰 코끼리가 원래는 아주 우둔하지만 훈련을 거친 후에는 춤을 추며 묘기를 보일 수 있는 것과 같다. -- 11 -- -- 12 -- 대만 사역에 관한 교통 이상수 형제님 : 지난 반년의 시간 동안 나는 계속하여 대만에 남아 있었다. 이 반년 동안 구원받은 형제자매들 중에는 구십 퍼센트 이상이 구원받기 전에 한 번도 복음을 들어 보지 못했고 한 번도 기독교와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대북에서는 이미 천이백여 명이 구원을 받았다. 그러나 그곳에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새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아직 봉사의 입장과 길을 모른다는 것이다. -- 13 --
초대 교회의 상태로 돌아감 교회는 이 땅에서 얼마나 되었는가? 거의 이천 년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지방에 걸쳐 있는가? 거의 전세계에 편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가? 천천이요 만만이다. 교회가 이렇게 오래되고, 이렇게 확장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여러분은 교회가 처음의 모습에서 바뀌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산 물건은 다 원래의 상태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여러분은 오늘날의 교회가 이미 모양이 바뀐 것을 알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어떤 물건을 산다면, 당신은 원래의 모양을 한 것을 사겠는가, 아니면 개조된 것을 사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원래의 모양을 한 것을 원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우리가 이미 모습이 바뀌어진 교회가 아닌 초대 교회의 상태를 원한다고 믿는다. 교회는 이 이천 년 동안 이미 하락했고,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는 초대 교회와 다르다. 오늘 우리의 입장은 회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느낌이 없을 수 없고 우리의 물음표는 클수록 좋다. 오늘 우리가 각 방면에서 오늘날의 기독교를 볼 때, 이것이 초대 교회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오늘날의 사회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기독교이다. 여러분이 듣는 것은 다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인상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시킨 후 그들을 기독교에 가입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단지 기독교에 가입시키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음표는 크면 클수록 좋다. 만일 우리가 물음표를 갖는다면 우리는 -- 14 -- 믿는 이들의 영 안의 요구를 채워야 함 이상에서 말한 것은 모두 대원칙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하는가? 반드시 세밀한 부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양면에서 말할 수 있다. 한 지방의 한 교회는 형제자매들 안의 요구를 채울 수 있으며 또한 밖에서 온 사람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형제자매들 안에 있는 필요를 채우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문제가 있게 된다. 각 형제자매들이 교회 안에 들어올 때 교회는 반드시 그들의 필요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만일 공급할 수 -- 15 -- 전체가 내맡기어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해야 함 전체 형제자매들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려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이 전체를 사용하실 수 없으며 교회 가운데서 길을 얻으실 수 없다. -- 16 -- 교회의 안배와 훈련을 받음 이전에 우리는 성령을 너무 신뢰하고 교회는 신뢰하지 않은 것 같았다. 과거에 우리는 늘 성령만을 강조했었다. 오늘 우리는 결코 사람으로 하여금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게 하려는 -- 17 -- -- 18 -- |
제3집 제61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1) 제21장 봉사에 관한 교통(2)
Ezra Zion , 2013-04-05 , 조회 (80)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10.html
오늘 저녁 우리가 부른 찬송가 149장(한국복음서원 찬송가 333장)은 헌신의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 알듯이 죄는 악한 것이요 세상은 매력적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세상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은 우리를 세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 313 -- 심방에 관하여 나는 몇 가지를 더 언급하겠다. 1. 한담하지 않음 심방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영적인 방면의 일만을 이야기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 좋지 못할진대, 하물며 교회를 대표하여 나가서 심방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심방하러 갈 때 반드시 교회의 청결함을 대표해야 한다. 어떠한 트집을 잡는 것이나 비평하는 것이나 훼방하는 것 등이 발견되면 즉시 처리해야 한다. 당신이 심방하는 목적은 남을 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말함으로 변론을 일으키지 말라. 2. 교사의 위치에 서지 말라 복음의 심방에 있어서 당신은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름을 적고 복음에 대해 호감을 표했지만, 그러나 그들로 믿게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 심방하러 갈 때 당신은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지 교사로서 심방하지 말아야 한다. -- 314 -- 3. 먼저 간증할 수 있음 내 제의로는, 처음 심방할 때 당신은 당신의 영적인 나이와 상태를 그에게 알려 줄 수 있다. 당신은 간증하면서, “저는 당신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비록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여러 해 되었지만, 갓 믿었을 때에는 당신과 똑같이 어리둥절했고, 지금에서야 봉사를 배웁니다. 제가 다른 것은 잘 알지 못해도 한두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나의 죄가 사함받았고, 주님을 믿은 후에 기쁨과 평강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이렇게 간증할 때, 그의 속이 편치 않음을 느끼고 당신이 얻은 기쁨을 그도 얻고자 하게 될 것이다. 그가 흑암 가운데 있을 때, 그는 죄를 기뻐하며 귀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빛 가운데 올 때, 그는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 315 -- 4. 머리를 만지지 말고 마음을 만짐 그런 다음 당신은 “교회는 당신이 주님을 믿을 뜻이 있어서 이름을 적고 표시한 것을 알고 즉시 당신을 찾아보도록 저를 보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만질 것이다. 우리는 그를 접촉할 기회를 얻어서 그의 머리를 만질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만질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 내야 한다. 마음이 주님께 돌아설 때, 머리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심방은 교회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그의 영혼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어떤 질문을 할 경우, 당신은 지혜롭게 당신도 많이 모른다고 표명할 수 있다. 어찌하든지 그의 생각의 문제를 중요시하지 말고, 그의 마음과 그의 영의 반응을 주의해야 한다. 5. 도움을 주지 못할 때 합당한 사람이 가도록 청하라 당신은 및 차례 심방한 후에 그를 이끌어 줄 수 있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 보라. 만일 당신이 할 수 없다면, 책임 형제에게 다른 한두 사람을 보내도록 청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책임 형제가 직접 가야 할 것이다. -- 316 --
집사의 직책 오늘 저녁 나는 집사의 직책과 봉사를 볼 것이다. 집사 형제가 하는 일은 장로 형제들이 하는 일과 정반대이다. 장로들은 일을 하는 데 중점이 있지 않고 눈으로 감독하는 것이며, 집사는 손으로 일을 하고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이끌어 주면서 하는 것이다. ‘집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서 디아코노스(diakonos)로서 섬기는 자라는 뜻이고, 영어에서는 종(servant), 일꾼(minister), 집사(deacon)로 번역하여 종이 되어 시중든다는 뜻이다. 집사 형제는 형제자매들이 일하도록 어떤 구상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장로들의 안배 하에 형제자매들이 함께 일하도록 많이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교회가 강할 때, 장로들은 감독할 줄 알고 집사는 일할 줄 안다. 집사는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장로가 주를 섬기는 것의 기본 원칙은 감독하는 것이지만, 집사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의 기본 원칙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들은 장로들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장로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 317 -- 집사의 일하는 방법 1. 실제적인 배움(연습)을 가짐 주님이 제자들을 이끌어 일을 처리하시는 데에서 우리는 일을 하는데 세 가지 기본 단계 혹은 기본 원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인도하는 형제자매들이 실지로 연습을 해보아야 -- 318 -- -- 319 -- 일하는 두 번째 단계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다시 주님이 떡을 나누신 일을 예로 들겠다. 주님은 제자들더러 모든 사람에게 가서 “와서 떡을 먹으라”고 말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 다음에야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셨다. 또한 한 사람씩 나와서 떡을 가져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아마 그렇게 했다면 첫 번째 사람은 삼십 초를 사용하고, 두 번째 사람은 일 분, 세 번째 사람은 일 분 삼십 초, 네 번째 사람은 이 분, 마지막 사람은 그곳에서 네댓 시간을 서 있어야만 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의 방법은 여러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었으며, 백 명을 한 그룹으로 하여 오천 명을 오십 그룹으로 만들었다. 그분은 떡을 열두 제자에게 나누어 주시고, 다시 열두 제자에 의해 각 그룹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것이 바로 방법을 찾아내어 일하는 것이다. 3. 사람에게 일을 안배해 주고 분담하게 함 일을 하는 데에는 방법이 필요하고, 사람에 대하여는 안배가 있어야 하며, 형제자매들 중 한 사람도 노는 사람이 없이 일하도록 분담해야 한다. 주님이 떡을 나누실 때 열두 제자는 다 그분 앞에 나왔다. 주님이 떡을 떼어 열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을 때, 삼십 그룹과 오십 그룹의 사람들은 다 섬세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사도 수중의 일을 분담하여 사람들이 하도록 안배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일은 이 사람에게 하도록 맡기고, 저 일은 저 사람에게 하도록 맡길 때, 결국 아주 빨리 일을 하게 된다. -- 320 -- -- 321 --
일에 대한 집사의 안배 1. 돈을 관리함 집사의 일은 사도행전 6장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거기에서는 공궤하는 문제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음식을 관리하는 것이 원래 합당치 않고, 믿는 이들은 마땅히 그들 가운데서 좋은 명성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이 일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1-6절). 거기에는 음식을 관리하는 일곱 집사가 있었고, 사도들로서 일했던 형제들은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에만 전무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집사가 사무를 안배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식을 관리하는 것은 곧 재물을 관리하는 것으로, 각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각 사람의 쓸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집사의 일은 첫 번째로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형제로 재정을 관리하게 하였고, 따로 두 형제로 장부를 관리하게 하였다. -- 322 --
2. 재학중인 형제자매들을 돌봄 젊은 형제자매들의 학업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분은 그들의 학업 문제를 돌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산 위에서의 식양’(행 7:20-22, 출 25:8-9)을 계시해 주실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의 모친이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임을 몰랐을 것이다(출 2:1-17). 그러므로 우리는 여섯 집사들에게 특별히 이 책임을 맡도록 안배하고, 또 두 자매로 이 일을 돕게 하였다. -- 323 -- -- 324 -- 사업하는 형제자매들에 관하여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모든 소유를 다 내놓았기 때문에, 장래 그들에게 부족함이 있을 때 우리는 또한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들이 내맡긴 것들은 이주하는 데 도움과 유익이 된다. 우리가 한 무리를 익양에 보내는 데에만도 많은 금전이 사용됐다. 물건을 팔면 별로 돈이 되지 않고, 그쪽에 가서 똑같은 물건을 살 때 오히려 많은 돈이 들게 된다. 우리는 알을 취하기 위해 닭을 잡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사업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돈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주님께 얻은 바 되어야 하고, 돈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세계 각지의 통계는 복음에 물질을 드린 만큼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형제자매들이 잘 경영하여 얻은 돈을 헌금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 325 -- 이주에 유익한 직업을 위해 기술을 배움 이주하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형제자매들은 성경을 읽을 줄 알고, 일을 처리할 줄 알고, 복음을 전할 줄 알아야 하되, 특별히 젊은 형제들은 네 번째 일을 갖춰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다 직업을 위한 기술을 가져야 하고 또한 그 직업은 오늘날 그 지방 정부의 필요에 알맞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일반인을 내륙으로 이사오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내륙 정부의 직업 요구에 부합되지 않고 내륙 교회들이 그를 공급할 수도 없다면, 오히려 이것은 어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내륙에 가서 자기가 먹고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이주하는 사람은 조금이나마 성경 진리를 알아야 하고, 일을 처리할 줄 알아야 하고, 복음 전할 줄도 알아야 하고,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상해에서 또 한 무리가 익양으로 이주하는 데 있어서 이백 명이 등록하였는데, 결국 우리는 삼십 명만 택하여 보냈다. 거기에서는 몇 개월 동안 하루도 용돈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술을 가지고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각지로 이주하는 사역과 그 중심 앞으로 사역의 거점에 관해서는, 상해가 강소성 전체를 관리하고, 산두는 객가방언(客家方言)을 하는 지역을 담당하며, 동북은 장춘이 주로 담당하고, 예닐곱 명의 동역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한다(동북에는 현재 육십여 군데에 모임이 있고, 이삼십 군데에는 매우 사람들이 필요하며 동역자들이 다음 주에 도착할 것임). 약간의 설명 여기서 내가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본래 나는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지만 어떤 사람이 분명히 알고자 할까 봐 여기서 덧붙여 언급하겠다. 이것은 최선의 것이 아니고, 또한 여러분 모두가 답변할 수 있는 일이다. 위에서 나열한 사역의 지방들에 고령은 포함되지 않았다. 주님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고령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외부에서 온 어떤 수입이 없었다. 오직 홍콩에서만 적은 액수를 헌금하였고, 산두에서도 한 차례 헌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돈은 사역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고령에 음식을 공급하는 데 쓰도록 전달해 주었다. 우리는 오직 고령으로 훈련받으러 온 사람들에게서만 헌금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좁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1934년부터 나는 교회의 헌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 이 주 동안에 비로소 오십 원의 헌금을 받았지만, 나는 이미 이것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 -- 329 -- |
제3집 제61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1) 제21장 봉사에 관한 교통(2)
Ezra Zion , 2013-04-05 , 조회 (64)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09.html
오늘 저녁 우리가 부른 찬송가 149장(한국복음서원 찬송가 333장)은 헌신의 능력이 하나님의 영광의 나타나심에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다 알듯이 죄는 악한 것이요 세상은 매력적인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세상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주님의 영광은 우리를 세상에서 벗어나게 한다. -- 313 -- 심방에 관하여 나는 몇 가지를 더 언급하겠다. 1. 한담하지 않음 심방할 때 가장 좋은 것은 영적인 방면의 일만을 이야기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집에서 함부로 말하는 것이 좋지 못할진대, 하물며 교회를 대표하여 나가서 심방하는 것이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은 심방하러 갈 때 반드시 교회의 청결함을 대표해야 한다. 어떠한 트집을 잡는 것이나 비평하는 것이나 훼방하는 것 등이 발견되면 즉시 처리해야 한다. 당신이 심방하는 목적은 남을 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고, 옳고 그름을 말함으로 변론을 일으키지 말라. 2. 교사의 위치에 서지 말라 복음의 심방에 있어서 당신은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비록 그들이 이름을 적고 복음에 대해 호감을 표했지만, 그러나 그들로 믿게 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 심방하러 갈 때 당신은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지 교사로서 심방하지 말아야 한다. -- 314 -- 3. 먼저 간증할 수 있음 내 제의로는, 처음 심방할 때 당신은 당신의 영적인 나이와 상태를 그에게 알려 줄 수 있다. 당신은 간증하면서, “저는 당신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비록 제가 주님을 믿은 지 여러 해 되었지만, 갓 믿었을 때에는 당신과 똑같이 어리둥절했고, 지금에서야 봉사를 배웁니다. 제가 다른 것은 잘 알지 못해도 한두 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나의 죄가 사함받았고, 주님을 믿은 후에 기쁨과 평강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이렇게 간증할 때, 그의 속이 편치 않음을 느끼고 당신이 얻은 기쁨을 그도 얻고자 하게 될 것이다. 그가 흑암 가운데 있을 때, 그는 죄를 기뻐하며 귀히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빛 가운데 올 때, 그는 매우 고통스럽게 된다. -- 315 -- 4. 머리를 만지지 말고 마음을 만짐 그런 다음 당신은 “교회는 당신이 주님을 믿을 뜻이 있어서 이름을 적고 표시한 것을 알고 즉시 당신을 찾아보도록 저를 보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마음을 만질 것이다. 우리는 그를 접촉할 기회를 얻어서 그의 머리를 만질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만질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 내야 한다. 마음이 주님께 돌아설 때, 머리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심방은 교회가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그의 영혼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어떤 질문을 할 경우, 당신은 지혜롭게 당신도 많이 모른다고 표명할 수 있다. 어찌하든지 그의 생각의 문제를 중요시하지 말고, 그의 마음과 그의 영의 반응을 주의해야 한다. 5. 도움을 주지 못할 때 합당한 사람이 가도록 청하라 당신은 및 차례 심방한 후에 그를 이끌어 줄 수 있는지를 주의 깊게 지켜 보라. 만일 당신이 할 수 없다면, 책임 형제에게 다른 한두 사람을 보내도록 청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된다면 책임 형제가 직접 가야 할 것이다. -- 316 --
집사의 직책 오늘 저녁 나는 집사의 직책과 봉사를 볼 것이다. 집사 형제가 하는 일은 장로 형제들이 하는 일과 정반대이다. 장로들은 일을 하는 데 중점이 있지 않고 눈으로 감독하는 것이며, 집사는 손으로 일을 하고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이끌어 주면서 하는 것이다. ‘집사’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문에서 디아코노스(diakonos)로서 섬기는 자라는 뜻이고, 영어에서는 종(servant), 일꾼(minister), 집사(deacon)로 번역하여 종이 되어 시중든다는 뜻이다. 집사 형제는 형제자매들이 일하도록 어떤 구상을 내는 사람이 아니라, 장로들의 안배 하에 형제자매들이 함께 일하도록 많이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교회가 강할 때, 장로들은 감독할 줄 알고 집사는 일할 줄 안다. 집사는 다른 형제자매들보다 더 많이 일을 해야 한다. 장로가 주를 섬기는 것의 기본 원칙은 감독하는 것이지만, 집사로서 주님을 섬기는 것의 기본 원칙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사들은 장로들의 뜻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것은 바로 장로들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 317 -- 집사의 일하는 방법 1. 실제적인 배움(연습)을 가짐 주님이 제자들을 이끌어 일을 처리하시는 데에서 우리는 일을 하는데 세 가지 기본 단계 혹은 기본 원리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인도하는 형제자매들이 실지로 연습을 해보아야 -- 318 -- -- 319 -- 일하는 두 번째 단계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는 다시 주님이 떡을 나누신 일을 예로 들겠다. 주님은 제자들더러 모든 사람에게 가서 “와서 떡을 먹으라”고 말하라고 명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 다음에야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셨다. 또한 한 사람씩 나와서 떡을 가져가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아마 그렇게 했다면 첫 번째 사람은 삼십 초를 사용하고, 두 번째 사람은 일 분, 세 번째 사람은 일 분 삼십 초, 네 번째 사람은 이 분, 마지막 사람은 그곳에서 네댓 시간을 서 있어야만 떡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의 방법은 여러 그룹으로 나누는 것이었으며, 백 명을 한 그룹으로 하여 오천 명을 오십 그룹으로 만들었다. 그분은 떡을 열두 제자에게 나누어 주시고, 다시 열두 제자에 의해 각 그룹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이것이 바로 방법을 찾아내어 일하는 것이다. 3. 사람에게 일을 안배해 주고 분담하게 함 일을 하는 데에는 방법이 필요하고, 사람에 대하여는 안배가 있어야 하며, 형제자매들 중 한 사람도 노는 사람이 없이 일하도록 분담해야 한다. 주님이 떡을 나누실 때 열두 제자는 다 그분 앞에 나왔다. 주님이 떡을 떼어 열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을 때, 삼십 그룹과 오십 그룹의 사람들은 다 섬세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집사도 수중의 일을 분담하여 사람들이 하도록 안배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일은 이 사람에게 하도록 맡기고, 저 일은 저 사람에게 하도록 맡길 때, 결국 아주 빨리 일을 하게 된다. -- 320 -- -- 321 --
일에 대한 집사의 안배 1. 돈을 관리함 집사의 일은 사도행전 6장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거기에서는 공궤하는 문제가 언급되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음식을 관리하는 것이 원래 합당치 않고, 믿는 이들은 마땅히 그들 가운데서 좋은 명성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택하여 이 일을 관리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1-6절). 거기에는 음식을 관리하는 일곱 집사가 있었고, 사도들로서 일했던 형제들은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에만 전무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집사가 사무를 안배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식을 관리하는 것은 곧 재물을 관리하는 것으로, 각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각 사람의 쓸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집사의 일은 첫 번째로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두 형제로 재정을 관리하게 하였고, 따로 두 형제로 장부를 관리하게 하였다. -- 322 --
2. 재학중인 형제자매들을 돌봄 젊은 형제자매들의 학업 또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여러분은 그들의 학업 문제를 돌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모세가 애굽의 모든 학문을 배웠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산 위에서의 식양’(행 7:20-22, 출 25:8-9)을 계시해 주실 수 있었다. 그러나 만일 그의 모친이 어려서부터 가르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임을 몰랐을 것이다(출 2:1-17). 그러므로 우리는 여섯 집사들에게 특별히 이 책임을 맡도록 안배하고, 또 두 자매로 이 일을 돕게 하였다. -- 323 -- -- 324 -- 사업하는 형제자매들에 관하여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들의 모든 소유를 다 내놓았기 때문에, 장래 그들에게 부족함이 있을 때 우리는 또한 그들을 돌보아야 한다. 이들이 내맡긴 것들은 이주하는 데 도움과 유익이 된다. 우리가 한 무리를 익양에 보내는 데에만도 많은 금전이 사용됐다. 물건을 팔면 별로 돈이 되지 않고, 그쪽에 가서 똑같은 물건을 살 때 오히려 많은 돈이 들게 된다. 우리는 알을 취하기 위해 닭을 잡을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여전히 사업을 잘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돈은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은 주님께 얻은 바 되어야 하고, 돈은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세계 각지의 통계는 복음에 물질을 드린 만큼 구원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형제자매들이 잘 경영하여 얻은 돈을 헌금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얻을 수 있기 바란다. -- 325 -- 이주에 유익한 직업을 위해 기술을 배움 이주하는 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형제자매들은 성경을 읽을 줄 알고, 일을 처리할 줄 알고, 복음을 전할 줄 알아야 하되, 특별히 젊은 형제들은 네 번째 일을 갖춰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이 다 직업을 위한 기술을 가져야 하고 또한 그 직업은 오늘날 그 지방 정부의 필요에 알맞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일반인을 내륙으로 이사오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내륙 정부의 직업 요구에 부합되지 않고 내륙 교회들이 그를 공급할 수도 없다면, 오히려 이것은 어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내륙에 가서 자기가 먹고 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먹여 살려야 한다. 이주하는 사람은 조금이나마 성경 진리를 알아야 하고, 일을 처리할 줄 알아야 하고, 복음 전할 줄도 알아야 하고,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번에 상해에서 또 한 무리가 익양으로 이주하는 데 있어서 이백 명이 등록하였는데, 결국 우리는 삼십 명만 택하여 보냈다. 거기에서는 몇 개월 동안 하루도 용돈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기술을 가지고서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한다. -- 326 -- -- 327 -- 각지로 이주하는 사역과 그 중심 앞으로 사역의 거점에 관해서는, 상해가 강소성 전체를 관리하고, 산두는 객가방언(客家方言)을 하는 지역을 담당하며, 동북은 장춘이 주로 담당하고, 예닐곱 명의 동역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한다(동북에는 현재 육십여 군데에 모임이 있고, 이삼십 군데에는 매우 사람들이 필요하며 동역자들이 다음 주에 도착할 것임). -- 328 -- 약간의 설명 여기서 내가 설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다. 본래 나는 이 말을 할 필요가 없지만 어떤 사람이 분명히 알고자 할까 봐 여기서 덧붙여 언급하겠다. 이것은 최선의 것이 아니고, 또한 여러분 모두가 답변할 수 있는 일이다. 위에서 나열한 사역의 지방들에 고령은 포함되지 않았다. 주님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고령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외부에서 온 어떤 수입이 없었다. 오직 홍콩에서만 적은 액수를 헌금하였고, 산두에서도 한 차례 헌금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돈은 사역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고령에 음식을 공급하는 데 쓰도록 전달해 주었다. 우리는 오직 고령으로 훈련받으러 온 사람들에게서만 헌금을 받았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좁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1934년부터 나는 교회의 헌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지난 이 주 동안에 비로소 오십 원의 헌금을 받았지만, 나는 이미 이것을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 -- 329 -- |
제3집 제61권 주의 회복 안의 성숙된 인도 (1) 제18장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의 하나의 징조
Ezra Zion , 2013-04-05 , 조회 (55) , 추천 (0) , 반대 (0), 스크랩 (0)
http://cafe.chch.kr/bridge/71108.html
찬송가 161장(한국복음서원 찬송가 345장) 1. 어떻게 내 주 사랑해 주님을 기쁘게 할까 -- 265 -- 위의 찬송가 1절은 질문하는 것으로서, 자신이 자신에게 말하고 자신의 마음과 교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문해야만 얼마나 많은 때 당신이 밖으로 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 2절의 ‘여전히’라는 단어는 매우 좋다. 1절은 헌신해야 함을 말하고, 2절은 이어서 그의 헌신이 여전히 변하지 않기를 구하는 것이다. 헌신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그는 계속적으로 헌신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2절의 강조점은 ‘여전히’에 있다. 3절은 주님이 ‘어떻게 순결하시며, 즐거운 많은 일을 떠나셨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에게 즐거운 일은 언제나 깨끗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님이 누린 즐거운 일은 깨끗한 일이었고, 그 안에 조금도 죄악이 섞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에 이어서 주님께 -- 266 -- -- 267 -- -- 268 --
주님의 다시 오심의 한 가지 징조―재물 야고보서 5장은 ‘오호라’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이 단어는 탄식의 표현으로서 신약에서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 사도 야고보는 여기에서 서술할 때 한숨을 쉬며 탄식하였다. 그가 탄식할 뿐 글로 쓸 수 없었던 것은, 그다음 단락에 서술된 일들이 완전히 잘못되었고, 그러한 일들은 발생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탄식하면서,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고 말한다. 우는 것은 작은 소리로 흐느끼는 것이며 통곡하는 것은 방성 대곡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부한 자들은 다 울어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작게 울어야 하고 크게 울어야 하는가? 이는 ‘그들에게 임할 고생’이 있기 때문이다. 즉, 장래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이 정하신 고난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뻐하지 말고 슬퍼해야 한다. -- 269 --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에서 입을 것이 있고 먹을 것이 있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고 말했다(8절). 그러나 오늘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은행에 많은 돈을 저축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는 탄식하면서, 부한 자들의 옷이 좀먹었으며 금과 은은 녹슬었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의복이 있는가 없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옷이 좀먹을 정도로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사람들에게 입을 것이 있는 것으로 족하게 여기라고 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옷이 있을 뿐 아니라 쓸데없을 정도로 너무 많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옷이 쓸데없기 때문에 그냥 쌓아 두어서 벌레가 먹는 것이다. 오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물건을 쌓아 두는데 필사적이다. 옷만 하더라도 이십 년간 -- 270 -- -- 271 -- -- 272 --
5절에서 야고보는 부한 자들이 물질과 금과 은을 쌓아 두는 것에 대해 그들을 책망했다. 내가 진실된 말을 하거니와, 이 세상에 지금 이 시대처럼 그렇게 많은 부자가 있은 적이 없었다. 또한 어느 시대에도 노동자의 여분의 가치가 이렇게 많고 부자가 많은 적이 없었다. 또한 그들의 많은 부는 노동자의 임금을 남겨 놓음으로써 많아진 것이다. 이뿐 아니라, 이 부한 자들의 누림 또한 이전에 없었던 것이다. 중세기 때에는 귀족들이 상당한 누림을 갖고 있었다. 중국에서 지난 한두 왕족에서 오직 한두 왕가만이 이러한 누림을 가졌었다. 역사에서 우리는 이렇게 많은 부자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고, 또한 그들이 이렇게 많은 것들과 좋은 것들을 누린 시대를 보지 못했다. 사람들이 물질적인 것을 누릴 뿐 아니라 육체를 방종 가운데 두는 일도 상당히 많다. 여러분이 눈을 반만 뜨고 보더라도 이러한 일들을 볼 수 있다. 부자들이 많고, 부자들의 재물도 많으며, 노동자들의 품삯이 박탈당하는 것도 많다. 이것이 이 시대의 특징이다. -- 273 --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정세의 변화에 있지 않고, 재물로 점유당한 데에서 구원받고 벗어나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1장부터 5장 끝까지, 결코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될 수 있거나 부한 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먼저 야고보서는 교회 안의 가난한 자가 믿음에서 부요하다고 말하고(2:5), 5장에 와서는 부자들이 어떠한 일을 당할 것인가를 말한다. 세상 조류는 사람들이 다 재물과 물질을 쌓아 두는 데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 274 -- -- 275 -- -- 276 -- 익양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공산당에게 심문을 받을 때, 그들의 뼛속 살속까지 심문을 받았었다. 그들은 예리한 검보다 더 예리하게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보고 기이함을 느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까봐 균등하게 하도록 사람들을 강요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능동적으로 이것을 실행했다. 그들은 균등주의가 사람을 게으르게 하므로 성경의 균등주의(고후 8:14-15)는 옳지 않으니,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익양현 내에서는 균등주의를 가질 수 없다고 알려 주었다. -- 277 -- 1925년에 영국에 운송 사업을 하는 한 형제가 있었다. 한번은 그가 팔천여 톤이나 되는 한 척의 큰 화물선이 십 일 후에 도착한다는 전보를 받았다. 바로 그때 한 형제가 그의 집에 있었는데, 그는 이백 파운드의 수표를 그에게 써 주면서 그것을 복음 사역을 위해 쓰도록 그 형제에게 위탁했다. 그 형제가 나가자마자 그는 그 팔천여 톤 되는 화물선이 문제가 생겨 바다에 침몰하게 되어 배의 모든 화물을 전부 잃어버렸다는 전보를 받았다. 그는 즉시 벨을 눌러 그 형제를 다시 들어오게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화물을 실은 배가 침몰하였으므로 수표를 다시 한 장 써 주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수표를 받아서 찢어버리고 오천 파운드짜리 수표로 바꿔 쓰면서, “당신은 빨리 가셔서 이것을 주님이 쓰시게 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 형제는 그가 정신 이상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배가 침몰되었다면 응당 조금 적게 고쳐서 이백을 오십으로 해야 옳을 것이다. 그 형제가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느냐고 물으니까, 그는 “화물을 실은 배가 침몰한 것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보내신 급한 전보로서, 저에게 땅에 재물을 쌓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재물을 제가 관리하도록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이 돈이 아직 제 손에 있을 때 속히 주님이 쓰시도록 이것을 내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형제는 눈물을 머금고 그 수표를 받아가면서, “나는 이렇게 일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 278 --
내가 여기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모금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우리는 재물이 아직 쓸 수 있고, 아직 우리 손에 있을 때를 틈타 그것을 주님께 사용해야 한다. 야고보는 이 단락의 말씀에서 우리에게 노사 분규의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주의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이다. 내가 큰소리로 외치거니와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 우리가 혹 다른 징조는 보지 못할지라도, 여기의 징조는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이 참으며, 징조가 나타날 이때를 틈타서 재물을 우리 손에서 급히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주님이 두 번째로 오실 때, 우리 중에 그분의 두 번째 오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없기 바란다. 처음 오셨을 때 미치지 못한 것으로 족하고, 첫 번째 기회에 따라가지 못한 것으로 족하다. 두 번째 오심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고, 두 번째 기회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 27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