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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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공의 요새 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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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  그 이름 자체가 희브리어로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요새는 사해(死海)에서 서쪽으로 4㎞ 떨어져 있는 해발4백m의 바위산에 위치해 있다.
사면이 깍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 천연요새이며, 정상은 남북 길이가 6백m,동서의 길이가 3백m인 긴 마름모꼴의 평평한 지형으로 되어 있다
마사다는 유대의 유명한 정치지도자이자 로마저항운동의 지도자였던 대제사장 요나단(기원전 161~142)이 처음 요새화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1백 여년 뒤  해롯은 당시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도움으로 로마로 가 유대왕국의 왕으로 인정받기까지 가족들을 잠시 이곳에 피신시켰다. 그런데   클레오파트라까지 유태 왕국을 자기에게 달라고 로마 집정관 안토니우스에게 요구한 사실을 알게 된 헤롯은 로마가 자기를 배신할까 봐 두려워  유대왕국으로 돌아오자마자 마사다를 요새화 하였다.
 그는 북쪽에 3층짜리 별궁을 지었고 언덕의 둘레에는 성벽과 두겹으로 방들을 건축했으며 1천명이 40년동안 먹을수 있는 4만t규모의 물저장탱크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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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헤롯이 마사다를 요새한 후 다시 1백년이 흘렀다. 그동안 로마는 꾸준히 팽창하여 전 지중해를 장악하였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독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기 66년 부터  서기 70년까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대규모 저항운동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로마의 앞도적인 군사력을 이길 수 없었고,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렇게 유대인들의 봉기는 끝을 맺는 듯 싶었지만 오직 한곳 마사다 요새만은 건재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는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  이끄는 9백67명의 젤롯파(열심당원)
 이, 66년 소수의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던 마사다를 점령하여 로마에 대항 하고 있었다
  유대왕국을 무너뜨리고 ‘유태 정복 기념 동전’까지 만들어 쓰던 로마제국의 황제 베스파시안에게는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아라비아 광야의 거친 기후와 척박한 자연을 뚫고 그 너머까지 제국을 확대하고 싶었던  베스파시안에게, 마사다요새는 로마군의 저력을 확인할 매우 좋은 상대였다. 따라서 베스파시안은 유대인 반란의 진압을 맡았던 로마의 총사령관 티투스(Titus)에게 그 일을 일임하였다. 작은 지역에 천여명정도가 참가한 저항운동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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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롯파들은 비록 지형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외부로부터의 지원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고 또 천여명의 젤롯파들중 절반이상이 여자와 아이였다. 따라서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을 상대하기는 도저히 불가능할 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경건한 신앙심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기 시작하였다.
 70년부터 시작된 로마군의 포위공격은 무려 2년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요새는 전혀 점령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티투스는 로마군중 최 정예를 자랑하는 제 10군단을 동원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서기 72년 플라비우스 실바 장군을 사령관으로 하는 제10군단이 마사다로 진군해 왔다.군세는 병사 9,000명과 노역에 부릴 유태인 전쟁 포로 6,000으로 구성되었다.


 비록 요새안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 할 수는 없었지만, 실바장군은 포위지공작전으로는 별다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실바장군은 마사다 요새의 지형적 특성을 우선 파악한 다음, 마사다 서쪽 벼랑에 있는 희고 넓은 바위를 공격 포인트로 잡았다.그리고 그 바위까지 수백미터 높이에 달하는  비탈을 쌓도록 했다.

 마사다 요새에서는 활을 쏘아 저항해 보았지만, 로마군이 일시에 많은 병력을 투입할 수 없었던 만큼 요새쪽에서도 한 공격포인트에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불리하지는 않았다. 비탈 꼭대기는 마사다 성벽보다 20m쯤 낮았고, 여전히 젤롯파가 지형적인 유리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로마군이 공성탑(攻城塔)을 만들어 비탈 위로 끌고올라 오자 상황은 젤롯파들에게 매우 안좋아졌다.공성탑 높이는 마사다 성벽보다 조금 높았을 뿐 아니라, 철판으로 외부를 보호하고 있어 젤롯파가 보유하고 있는 활이나 창등으로는 겨우 요새안 침입을 막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이 탑에서 로마군 궁수들이 활을 쏘아 엄호하는 사이에 다른 병사들이 투석기(投石機)를 끌어올렸다.세계를 정복한 로마군의 투석기는 무서웠다.사거리가 400m나 되는 투석기가 20∼25㎏짜리 돌들을 날려보내자 성벽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더구나
로마군은 유대인 포로를 한명 한명씩 돌대포에 실어 날려 보내는 잔혹한 공격도 서슴치 않았다


 그래도 젤롯파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투석기로 인해 석벽이 계속 무너지자, 나무기둥을 두 겹으로 박고 그 안에 흙을 넣어 돌이 날아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했다.그러나 나무는 불에 탄다. 그들이 이 평범한 사실을 지나치지 않았다면 물을 충분히 적셔 화공에 대비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의 공격은  이들이 준비하기 전에 이루어졌다.

 이제 967명의 유대인 젤롯파를 지켜줄 성벽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어둠만이 그들의 운명을 하루 더 연장시켜 줄 뿐이었다.
 실바장군은 날이 밝는데로 즉시 공성탑에서 구름다리를 놓고 요새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로마 정규군 9,000명과 유태 반란군 수백 명의 대결. 마사다는 로마군의 손아귀에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다음날 요새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았다. 그토록 극렬하던 그들이 저항이 전혀 없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항복을 결정한 것일까.... 그러나 요새안으로 들어온 로마군 눈앞에 펼쳐진 것은 962구의 시신이었다. 병사들이 이곳저곳을 수색하여 두 여성과 아이셋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실바는 두 여성에게서 지난밤에 있었던, 경건하거나 아니면 광신적이라고 느껴질지도 모를 자살의식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지휘자 엘리아자르 벤 야이르는 남자들을 모두 한군데 불러모은 후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하였다는 것이다. 


형제들이여,우리는 로마와 맞서 싸운 마지막 용사들입니다. 새벽이 오면 우리는 저들의 포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로우므로 부끄럽지 않게 죽을 기회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치욕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가지 않도록 아내와 자식들을 우리 손으로 죽이고,우리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입니다. 자! 노예가 되기보다 자유라는 이름의 수의(壽衣)를 입읍시다!”

“성을 불질러 로마군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마시오. 그러나 식량 창고 한두 군데는 남깁시다. 우리가 먹을 것이 떨어져 죽었다고 보여서는 안됩니다.”

이 연설을 들은  남자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을 희생시킨 후 다시 한곳에 모여, 제비를 뽑아 열 사람을 가려냈다.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처자들의 주검 옆에 눕자,열 사람은 집집마다 다니며 그들을 칼로 베었다. 살아 남은 열 사람은 다시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을 골랐고, 뽑힌 사람이 다른 아홉 사람을 죽였다.마지막 생존자는 모두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하자 성안에 불을 놓고 나서 자신의 몸에 칼을 찔렀다고 한다.

서기 73년 4월15일 저녁. 죽은 사람은 모두 962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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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사다에 얽힌 사건을 역사책 ‘유태전쟁’에 자세히 기록한 요세푸스는 서기 66년 유태인들이 로마 제국의 통치에서 벗어나려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 갈릴리 지방의 유태군 지휘관이었다. 그는 나중에 조국에 등을 돌리고 로마군에 넘어갔지만,어느 역사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마사다 싸움을 후세에 전했다. 마사다는 배신자 요세푸스 덕분에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영웅들의 성지(聖地)’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마군이 마사다를 점령한 기간도 40년에 불과하였다.  그 이후에는 비잔틴 제국의 소유가 되었으며,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슬람 세력의 소유가 되었다.  그렇게 2천년이란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았고, 1948년 마침내 독립국가를 세웠던  이스라엘은 현재 이곳에서 군 장병들이 선서 식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 다시는 이곳이 적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에서  "Never Again!"
을 외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