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발견되심-B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15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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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발견되심-B
 
성경의 원칙에 의하면, 남자는 객관적인 진리를 대표하는 반면, 여자들은 주관적인 체험을 대표한다. 예를들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교리 혹은 믿음의 진리를 대표하며, 사라는 순종의 체험을 대표한다. 믿음은 진리와 관계되며, 객관적이다. 순종은 체험과 관계되며, 주관적이다. 이와 같이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믿었으나 마리아는 주관적으로 체험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사실을 보지 못했다. 소수의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계시를 갖고 있으나 그것도 체험은 없고 계시만 갖고 있다.
교회 생활에서 형제들은 자매들보다 더 분명하다. 그들은 진리와 사실에 있어서 분명하지만 체험을 그다지 주의하지 않는다. 많은 경우에 교회 생활에서 형제들은 자매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우리는 자매들을 어리석게 여기며 자매들이 있는 곳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가 쉰다. 우리는 로마서 6장에 대해 분명하며, 그 사실을 보고 믿는다. 어째서 자매들은 울며 기도하면서 시간을 낭비한단 말인가? 이것이 모든 지방 교회들에서의 실제 상황이다. 인도하는 모든 형제들은 분명한 자들이고, 모든 자매들은 다 우는 자들이다. 그러나 결국 체험하는 자들은 어리석게 우는 자들이다. 그들은 진리나 사실이나 심지어는 믿음조차도 주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살아 계신 주님을 참되게 접촉하는 것만을 주의하며, 『나는 수의를 주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주님만을 주의한다. 나는 그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며, 주님을 접촉하고 싶다. 당신이 그분을 어디에 두었는지 내게 말해 달라.』고 외쳐댄다. 때때로 자매들은 기도 집회에서 이렇게 기도한다. 과거 40여년 동안 많은 경우에 나는 어리석고 눈물 흘리는 기도 때문에 마음이 상했었다. 그러나 우리 형제들은 자매들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어리석고 울며 추구하는 자매들이 있다는 사실을 귀히 여겨야 한다. 이는 그들이 가장 먼저 부활한 주님에 대한 참된 체험을 갖기 때문이다.
아마도 주 예수님 자신은 제자 중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부활의 첫 열매로서 자신의 새로움과 신선함 안에서 아버지께 드렸어야 했다. 그러나 자매의 갈망하는 마음과 추구하는 마음으로 인해 주 예수님은 그녀를 떠나가실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 그녀가 그분을 접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니다. 나는 단지 볼 수 있게만 할 것이다. 나를 만지지 말라. 부활 안에 있는 나의 신선함은 아버지를 위해야 한다. 나의 부활의 신선함을 나의 아버지께 드린 후에 나는 네게 다시 올 것이다. 그때에야 너는 나의 부활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자매들의 공과를 배워야 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 형제들은 단지 믿음으로 사실들만을 붙잡는다. 그러나 우리는 자매들처럼 체험을 갖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에 대해 무언가를 더 보기 원한다면, 그분과 더 많은 교통을 가져야 한다. 마리아가 주님을 본 것은 최고의 새벽 집회였다. 새벽에 그녀는 주님을 만났으며, 주님은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주님께 기도했으며, 주님은 말씀과 계시를 그녀에게 주셨다. 우리가 보겠지만, 주님은 그녀에게 그때로부터 제자들이 주님의 형제들이 되었다는 것을 계시하셨다. 또한 그녀에게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며, 아버지가 주님의 아버지와 하나님일 뿐 아니라 또한 그들의 아버지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이 계시는 마리아가 형제들에게 가져왔다.
그날 아침에 마리아는 무덤과 두 천사와 주님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녀가 주님을 인식하지 못했으나, 결국 그녀는 주님이 그녀의 이름을 부른 후에 주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언제 주님은 마리아에게 오셨는가? 무덤이 비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곳에 없었다. 그렇다면 주님이 무덤을 떠난 후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까지 주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내가 믿기로 주님은 무덤 안에 있지 않고 그 근처에 계셨을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과 마리아는 처음에 그분을 보지 못했다. 결국 주님은 자신을 마리아에게 계시하셨다. 베드로와 요한이 거기에 있었을 때에도, 그들은 쉽게 그분을 인식하지 못했으며, 주님은 자신을 그들에게 계시하지 않으셨다. 당신은 바로 이 순간에도 주님이 여기에 계시나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며, 그것이 계시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가?
이 장 안에 세 부류의 제자들이 있다는 것이 아주 분명하다. 첫 번째 부류는 마리아로 대표되었으며, 두 번째는 베드로와 요한으로, 세 번째는 게으른 자들에 의해 대표되었다. 게으른 제자들에게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계시나 어떠한 발견도 없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발견과 계시가 있었으나 체험이 없었다. 마리아에게는 발견과 계시와 체험이 있었다. 이 기록이 보여 주는 바는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실상이기도 하다. 이 기록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계시하지만, 주님의 부활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우리의 추구가 요구되며, 주님의 부활을 체험하는 데는 더욱 전진된 추구가 요구된다. 다시 말해서, 계시는 우리의 추구에 달려 있으며, 체험은 더 전진된 추구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분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발견할 수 없으며, 우리가 주님을 더욱 추구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부활을 체험할 수 없다. (요한복음 라이프 스타디 573-5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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