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
아침
주님의 보석 2011-10-22 , 조회 (19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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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당신은 이미 애굽으로부터 나왔지만 아직 가야 할 광야의 길이 남은 것이다. 광야에서 매일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양고기는 다만 한 번 먹는다. 이는 주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 여러 차례 아닌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후로 당신에게는 생활의 힘이 되는 매일의 양식이 필요하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루의 일과와 우리에게 임할 사건과 싸움에 응하려면 힘이 필요한 것이다. 요한은 그 양식이 주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제 여러분에게 솔직히 물어보겠다. 처음에 주 예수를 당신의 구주로 영접한 후로 당신이 만나를 누린 체험은 몇 번이나 되는가? 주님을 믿은 후로 새로운 죄를 발견하고 처리한 적이 있는가? 어느 누구도 밥을 한끼 먹고 다시는 먹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없다. 사람은 날마다 먹어야 한다. 영적인 양식에 있어서도 이와 같다. 유월절에 한 번 양고기를 먹고 그 후에 먹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 후에도 반드시 매일의 양식을 먹어야 한다. 결코 이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을 소홀히 할 때는 영원히 전진할 가능성을 잃게 되고 광야에서 죽게 된다.
이 매일의 만나란 무엇인가? 성경을 읽는 것인가? 기도하는 것인가? 주 앞에서 기다리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은 다만 수단일 따름이다.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우리는 다만 이러한 것들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능력을 흡수하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성경을 읽는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인가? 만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면 당신은 가련한 사람이다. 우리가 아침에 성경을 읽는 이유는 하루의 생활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능력을 얻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아침 일찍 삼십 분이나 한 시간을 들여서 기도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것은 바로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가까이함으로써 생명의 능력을 흡수하여 내적인 힘을 갖기 위함이다.
어떤 형제는 매일 아침 가장 좋은 기도를 한다. 그는 아침에 하나님께 “하나님, 오늘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바칩니다.”라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가를 물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충만케 하시기 위해서라고 답변했다. 이것이 매일 아침의 가장 좋은 기도이다. 아침의 이러한 접촉 없이는 하루 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이고 기도도 능력을 흡수하기 위한 것이다. 능력을 흡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밥을 먹는 것과 같다. 한 차례 두 차례 밥을 먹을 때 먹은 그것이 당신의 힘으로 변한다. 우리의 영적인 능력도 이와 같이 매일 매일 맛보고 또 맛봐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도의 진미를 맛볼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만나이다. 이와 같이 매일 하나님을 접하는 것은 우리로 능히 하루의 갈 길을 가게 한다. 성경은 만나를 그 다음날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매일 매일 반드시 하나님과의 새로운 접촉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만나를 거두는 체험에 있어서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와 새로운 양분을 받고 하나님과 새로운 접촉을 갖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무엇 때문에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의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이제부터 능력을 흡수하는 것과 만나를 거두는 체험을 습관으로 길러야 한다. 우리가 성경만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모른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그러한 귀한 체험을 추구하기 바란다.
민수기 11장 5절과 6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만나에 싫증이 났을 때 곧 애굽의 음식이 우리 앞에 있게 된다. 부추와 파와 마늘들은 다 냄새가 아주 진하다. 애굽의 것은 항상 냄새가 짙은 것이다. 냄새가 짙은 음식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생각나게 한다. 여기에서 기이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기억 속에는 오직 애굽의 먹음직스러운 음식만이 생각났을 뿐 그들이 애굽에서 받은 고통, 곧 남자 아기를 하수에 던지고 벽돌을 굽고 감독들이 괴롭히던 일들을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족한 사람들은 죄 속에서의 괴로움과 사탄에게 묶임과 그때의 몸부림치던 것은 다 잊어버리고 주님을 믿기 전에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었다는 것만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너무 속박받고 괴롭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기억력을 좋게 말한다면 많은 것을 기억한다는 면에서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기억력의 나쁜 면을 말한다면 정말 너무 나쁘다. 그들은 구원마저도 잊어버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당초의 구원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부추와 파와 마늘이 없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다만 냄새가 진할 뿐이다. 그러나 만나는 없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와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하는 모든 사람은 이미 애굽에 왔고 파와 마늘의 냄새가 그의 면전에까지 온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매일의 만나를 거두어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이 삼사 일에 한 번 먹는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와서 한 번 먹는다. 참으로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만져야 한다. 이러한 접촉이야말로 우리의 힘이 된다.(열두 광주리 가득히 10권 76-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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