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여름 훈련 집회 -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까지의 주님의 회복의 중심 부담과 현재의 진리에 대한 개관 메시지5(2023.8.27)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23-08-25 , 조회 (10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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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5

하나님-사람의 생활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실 뿐 아니라 본이시다(요13:15, 벧전2:21).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생명을 통하여 그분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이 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의 본에 따라 그분을 배우는 것이다. 사복음서는 하나님께서 갈망하시는 생활의 본, 곧 하나님을 만족하게 하고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생활의 틀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하는 생활을 하셨다. 하나님은 그분의 생활 안에 계셨고, 그분은 하나님과 하나이셨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의 의미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대로 그리스도를 배우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틀 안으로 넣어져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형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활이며 또한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활이다. 우리는 틀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은 우리의 생명으로서 우리 안에 계신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 되로 그리스도를 배우며, 이 실재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이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께 기도할 때, 자동적으로 우리는 복음서들에 묘사된 틀, 모습, 본에 따라 그분을 살게 된다. 또한 우리가 연합된 영안에 살 때,

우리는 실재의 영에 의해 예수님 안에 있는 실재에 따라 배울 수 있으며, 우리가 그분을 먹을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 살게 되어, 그분과 똑같은 우주적이며 위대한 한 사람, 곧 신성한 생명에 의해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는 한 사람이 된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셨던 생활을 반복하는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은 번제물로서 여러 체험을 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생활이다.

번제물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만족을 위한 생활을 하신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번제물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번제물’로 번역된 단어는 ‘위로 올라가는 어떤 것’을 뜻한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땅에서 하나님께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생활이다.

번제물은 죽임을 당하고 가죽이 벗겨지고 각이 뜨이고 씻어진 후에 제단 위에서 태워졌다. 레위기 1장 9절에서 ‘만족시키는 향기’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안식의 향기’ 혹은 ‘만족의 향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제물을 받으시는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는 향기를 의미하며, 그분께서 기꺼이 받으신다.

하나님을 화평과 안식으로 만족시켜 드리는 길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생명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우리의 번제물로 취해야 한다. 우리는 합당한 기도를 통해 번제물이신 그리스도께 안수함으로써 그분과 연결되며 하나 된다. 그러한 연합이 우리의 모든 약함과 부족한 점이 그분의 것이 되고, 그분의 모든 미덕이 우리의 것이 되어 다른 이들을 태울 수 있고, 우리 자신이 감소하여 재가 되므로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새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


번제물의 실재이신 예수님의 생활


온 일생 주님은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으셨다. 그분은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온 일생 하나님의 뜻을 그분의 만족으로 삼으셨다. 주님의 생활은 주님의 일과 사역이었다. 그분께는 그분의 생활과 일과 움직임과 사역의 차이가 없었다. 주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하나이셨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임재 안에 사셨으며, 어떤 고난과 박해에도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내적으로는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외적으로는 우리의 생활이 되기 위한 것이다. 번제물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사랑이신 하나님의 생명을 사셨다. 이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동일한 사랑의 생활을 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행20:35), 붙들어주는 사랑의 수고(살전5:14)를 해야 하며, 어린양을 먹이고 목양하라는 본을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 복음의 구조와 목양의 실행]


디모데와 디도의 본


오늘날 기독교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은 영적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마 바울이 여기에 있어도 그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심지어 우리 가운데서도 발견된다. 어떤 면에서 우리 역시 ‘영적’인 것처럼 보인다. 때때로 어떤 일에 대해 우리에게 느낌이 있어도, 우리는 형제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이 일 하기를 권합니다. 가서 주님께 기도해 보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엄밀히 말해 이러한 상황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만일 우리가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들을 자세히 연구해 본다면, 많은 경우 바울이 노골적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것들을 하라고 말한 것을 볼 수 있다. 디모데후서 4장에서 바울은 사람들에게 수많은 일들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속히 나에게로 오기를 힘쓰십시오.… 그대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십시오. 그는 사역을 위하여 나에게 유익한 사람입니다. 두기고는 내가 이미 에베소로 보냈습니다. 그대가 올 때 내가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두고 온 외투를 가져 오고... 겨울이 되기 전에 올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9-13, 21절) 바울이 이렇게 디모데에게 당부했을 때 디모데는 “지금은 갈 뜻이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날씨가 좀 춥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회가 있으면 그때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바울의 지시를 따라 그대로 행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디도에게 크레타에 머물라고 하였을 때 디도는 그곳에 머물렀다. 바울이 디도에게 자신을 보러 니고볼리로 오라고 했을 때도 그는 순종했다. 또한 그를 고린도에 보내었을 때 역시 그곳에 갔다(딛 1:5, 3:12, 고후 7:6-7). 디모데전서 1장 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무르라.”라고 권유하였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라고 했을 때, 그는 그곳에 머물렀다. 우리는 바울의 권면에서 다음과 같은 느낌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디모데여, 에베소에서 다르게 가르치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그대가 뒤에 남아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인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또한 디모데가 “좋습니다. 기도해 보겠습니다. 만일 주님의 뜻이라면 그곳에 머물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을 볼 수 없다. 사도행전 17장 15절은 “바울을 안내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아테네까지 데려다 준 뒤에, 실라와 디모데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에게 오게 하라는 바울의 명령을 받고 떠나갔다.”라고 말하고, 18장 5절에서는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왔을 때에”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바울의 명령을 받은 후 즉시 순종했다. 누구도 “미안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인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좀 더 기도해 보아야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상이 있는 사람을 좇아 섬기는 것이 곧 이상 아래에서 섬기는 것임


신약의 계시에서 우리는 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이상 아래에서 행동하고 계셨다는 것을 분명히 본다. 그분의 인도 바깥에는 어떤 이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전통이나 지식 안에 있었을 것이다. 가말리엘이 다양한 지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원칙을 잘 알았지만, 이상 아래에 있지 않았다. 그의 말은 이상 아래에 있지 않았고 단지 지식에 속한 말이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바로 베드로와 그의 동역자들이 이상 아래에 있었다. 우리는 베드로에게 하나의 이상이 있었고, 요한과 야고보와 다른 사도들에게 또 다른 이상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오직 한 이상, 즉 베드로의 이상만이 있었다. 이 이상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이상이 되었다. 바울이 자신의 사역 안에서 일으켜졌을 때, 그는 하늘들과 땅과 낙원에 이끌려 가는 이상을 받았다(고후 12:2-4). 비록 바울에게 많은 동역자들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바울이 본 것 외에 다른 이상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들 모두에게 오직 하나의 이상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바울이 본 그 이상이었다.

기독교에는 한 시대에 한 이상이 있다는 이 일에 대해 큰 논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마다 오직 하나의 이상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계시한다. 아벨의 때에 가인은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고 사당을 짓지 않았다. 그는 아벨이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벨은 이상 아래에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희생 제물을 드렸고, 가인은 이상과는 별개로 자신의 희생 제물을 드렸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벨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벨의 길을 취해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이상으로부터 떨어져 가인의 길에 있었을 것이다. 에노스의 시대에 한 사람이 이상 아래 있었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방식대로 하나님을 경외했었겠지만 그러한 경외함은 이상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을 경외했던 사람들은 여덟 사람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이 어쩌면 백 명 심지어 천 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 다른 사람들처럼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심지어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섬김은 이상에 따라 통제받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이 노아를 따라 섬김으로써 이상 아래에서 섬기는 사람들이 되었다. 노아가 본 것이 그들이 본 것이 되었다.(새 길의 실행을 위한 이상과 구체적인 단계들 1장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의 이상)



[다음세대의 일]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지방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건축됨


그리스도의 몸은 유기적으로 함께 건축된 지체들인 믿는 이들로 구성된다. 어떤 믿는 이가 몸에서부터 떨어져 나간다면 그는 영적인 죽음을 겪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서로 건축된 믿는 이들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몸의 지체들은 결코 몸에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몸의 원칙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함께 건축되기를 갈망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이 살아 있는 돌이므로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이루기 위해 살아 있는 돌들인 동료 믿는 이들과 건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 안으로 건축되는 것은 교회 안에 감금되는 것이다. 집 안으로 건축된 돌은 ‘망가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돌은 그 집에만 쓸모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의 건축 외의 다른 어떤 것에 쓸모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교회 안으로 건축된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일단 기둥으로서 교회 안으로 건축되면, 우리는 다른 것을 위해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건축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움직임을 수행하실 길이 없다. 그리스도께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추구하는 이들로 된 한 무리가 그분의 몸 안으로 건축되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도들과 건축됨으로 우리는 생명의 풍성한 흐름을 누릴 것이고 우리가 이러한 흐름을 누릴 때, 주님은 그분의 충만,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을 얻기 위해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분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하실 것이다.

“그분 안에서 건축물 전체가 함께 연결되어 주님 안에 있는 성전으로 자라가고 있으며, 그분 안에서 여러분 또한 영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건축되고 있습니다.”(엡 2:21-22). ‘건축물 전체’라는 표현은 우주적인 건축물, 곧 우주적인 교회를 가리키는 데 반해, ‘여러분 또한’이라는 표현은 지방적인 건축물, 곧 에베소에 있는 믿는 이들 가운데 있는 건축물을 가리킨다. 우리는 모든 믿는 이들과 건축되어야 할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 자신의 지방에 있는 이들과 건축되어야 한다. 우주적인 건축물은 오직 지방적인 건축물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우리에게 합당한 지방 교회의 생활이 없다면 우리 가운데 참되고 실지적인 건축을 가질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지방에 있는 동료 믿는 이들과 함께 건축되기를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으로 건축되어야 한다(벧전 2:5).

현시대에 그분의 건축물을 얻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의 성취를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한다면, 우리는 실지적인 방식으로 서로 건축되기 위해 우리의 지방에서 함께 모여야 한다. …주님은 주권적으로 우리를 우리의 지방에 있는 어떤 성도들과 함께 두시어 그들과 건축되게 하셨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자신을 분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건축되도록 연결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지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건축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지방에서도 건축되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문해 보아야 한다. “주님, 저는 제가 있는 지방에서 누구와 건축되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있는 곳의 형제들과 건축되고,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성도들과 건축되어야 한다.

우리 지방에 있는 성도들과 건축되기 위해서 우리는 정복되고 파쇄되고 다룸받는 공과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권적으로 우리를 어디에 두시든지 그곳에서 실지적으로 성도들과 건축되어야 한다. 한 지방에 있는 교회가 주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그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반드시 참되고 실지적이고 유용한 건축이 있어야 한다. …몸은 우리가 검증받는 가장 좋은 곳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건축되어야 한다. 우리가 있는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교회를 옮기는 것이 길이 아니라 우리가 변화되는 것이 길이다. 우리의 본성이 바뀌어야 한다. 하나님은 주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상황에 두셨을지라도 우리는 주님과 함께 거기에 머물러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도시에 두신다면 우리는 그 도시에서의 교회 생활을 기뻐해야 하며, 그 지방에 머물면서 성도들과 하나 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의 참된 건축은 생명 안에서 자라는 것에 달여 있다. 우리가 성도들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정도는 생명의 성장에 달려 있다. 우리는 자신과 친밀한 어떤 성도들과는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게 합당한 생명의 성장이 없다면, 우리가 다른 지방으로 이주할 경우 그 지방에 있는 성도들과 하나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이 자라면 자랄수록 더욱더 건축된다. 우리가 교회 안으로 얼마나 많이 건축되었는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이 성장하였는지에 달려 있다.

우리의 지방에 있는 성도들과 건축되려면, 우리는 반드시 1) 같은 이상을 보고, 2) 같은 생명을 살며, 3) 같은 증거를 지니고, 4) 같은 것을 말해야 한다. 함께 건축되는 것은 서로 절대적으로 연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이상을 보고 같은 생명에 의해 살며 같은 증거를 지니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 이상과 한 생명과 한 증거를 갖고,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와 타고난 사람과 타고난 조성을 부인함으로써만 이러한 네 가지에 도달할 수 있다.[진리 교육 과정 다음 세대의 일(1) 제7과 개요]



[교회의 기도 사역]


Ⅰ. 사역을 위한 기도

일상생활 가운데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사는 하나님- 사람의 생활을 훈련하게 하십시오.


II. 북한 복음화를 위한 기도

북한 땅에 복음을 전할 일꾼들을 훈련하고 예비하십시오.


III. 2023년 부산교회 봉사 방향을 위하여

1. 활력 그룹을 증가하고, 강화하여 1명의 열매를 얻도록

2. 물러간 성도, 복음 친구들의 명단을 가지고 기도하며, 움직이는 활력 그룹이 되게 하십시오.


Ⅳ.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다음 세대의 영적인 복지를 위하여 ? 가정과 학교와 교회에서 주님을 얻고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이 마련되도록 하여 주십시오.



[부산교회 광고]

■ 2023년 하반기 전국 자매 온전하게 하는 훈련 안내

▷ 일시 : 10/21(토) ~ 10/29(주일)

▷ 방식 : 온라인(훈련사이트 또는 zoom)

▷ 강사 : 임홍br.외

▷ 주제 : 신약 여인들의 본과 예시

▷ 대상 : 각지 교회의 온전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자매들(형제들도 참여 가능)과 동역자, 장로책임형제, 전시간 봉사자

▷ 메시지는 총 6개이며, 훈련집회를 언제, 언떤 방 식으로 실행할 것인가는, 10/21(토) ~ 10/29(주 일) 기간 내에 집회소별로 편리한 일정을 정하 여 실행하면 됩니다.

▷ 훈련에 필요한 개요 및 자료는 훈련집회 전에 집회소별로 발송됩니다.

▷ 기부금 : 50,000원

※ 전용 사이트 주소는 sister.btmk.org이며, 훈련 의 수준을 강화하기 위하여 개인별 아이디가 부 여되지 않고 집회소 마다 하나의 아이디를 부여 하여 단체적으로 시청합니다.(메시지 1개마다 5 회 시청 가능)

※ 각 구역 도서 봉사자들은 취합 후, 9/22() 2시까지 입금 후, 집사실로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 시 신청금은 환불되지 않으니, 중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금주의 추구]


8/27(주일)

8/28(월)

8/29(화)

8/30(수)

8/31(목)

9/1(금)

9/2(토)

시 103-106편

시 107-110편

시 111-118편

시 119:1-88

시 119:89-176

시 120-131편

시 132-134편

고전 15:1-28

고전 15:29-58

고전 16장

고후 1:1-2:11

고후 2:12-3장

고후 4:1-5:7

고후 5:8-19

▶ 라이프스타디 추구 : 빌립보서 M29 ~ M30

▶ 금주의 소그룹 추구 : 마가복음 7장



[인수통계(2023년 8월 14일 ~ 2023년 8월 20일)]

구역

23년

목표

주일

어린이

청소년

대학생

청년

직장

기도

집회

소그룹

아침

부흥

복음

실행

가정

집회

침례

(누적)

1 구역

196

119

16

6

6

16

51

77

116

28

5

2 구역

206

133

15

10

5

17

60

99

134

1

21

10

3 구역

170

91

12

2

3

11

37

53

80

3

16

4

4 구역

84

73

12

9

3

9

34

72

67

2

33

4

5 구역

156

121

11

7

16

24

86

101

3

6

3

6 구역

188

125

11

6

4

11

39

59

122

4

12

11

합계

1,000

662

77

40

21

80

245

446

620

13

116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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