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5- 신약의 희년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림
성경: 레 25:8-17, 사 61:1-3, 눅 4:16-22, 행 26:16-19
Ⅰ. 레위기 25장 8절부터 17절까지에 있는 희년은 이사야서 61장 1절부터 3절까지에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 4장 16절부터 22절까지에서 실지로 성취된다.
A. 희년에는 두 가지 주된 축복이 있었는데, 그것은 각 사람이 모두 자기의 잃어버린 소유지로 돌아가는 것과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었다 - 레 25:8-17.
1. 희년에는 자신의 소유지 곧 자신의 몫으로 할당받은 좋은 땅을 판 모든 사람이 그 땅을 되찾기 위해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아도 자기 소유지로 돌아갈 수 있었고(레 25:10, 13, 28), 자신을 노예로 판 모든 사람이 자유를 되찾아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39-41절).
2. 사람들이 자신의 소유지로 돌아가는 것과 자유를 되찾아 자기 가족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신약의 희년에 믿는 이들이 자신이 잃은 신성한 소유지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모든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신의 신성한 가족인 교회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 엡 1:13-14, 요 8:32, 36, 비교 시 68:5-6.
B. 구약의 예표에서 희년은 일 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 예표의 성취에서 희년은 신약 시대 곧 은혜 시대 전체를 가리킨다. 이 시대는 죄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때(사 49:8, 눅 15:17-24, 고후 6:2)이며, 죄의 속박 아래 억눌렸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해방을 누리는 때(롬 7:14-8:2)이다.
C. 믿는 이들이 은혜 시대에 희년을 누리는 것(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은 천년왕국에서 희년을 충만하게 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서 희년을 최고도로 충만하게 누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요 1:16-17, 롬 5:17, 빌 3:14, 계 22:1-2상.
Ⅱ. 희년은 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의해 우리 안에 분배되시어 우리의 누림이 되시는 시대이다. 신약의 희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황홀경의 시대이다 - 눅 4:22, 시 45:2, 요 1:14-17, 고후 6:2.
A. 신약 시대는 황홀경의 시대이고, 그리스도인은 황홀경 안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 번도 황홀경 안에 있어 본 적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충분히 누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 고후 5:13, 행 11:5, 22:17, 시 43:4상, 51:12, 벧전 1:8, 사 12:3-6.
B. ‘희년’은 걱정이나 근심, 염려나 고심, 부족이나 결핍, 병이나 재난 같은 문제가 전혀 없이 유익한 모든 것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에 유쾌하고 만족스러우며, 우리는 모든 근심에서 해방되고 편안하며 열광하고 기뻐한다 - 시 103:1-5, 116:1-7, 12-13, 17-19.
C. 우리는 참된 희년이신 주 예수님을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에게 주 예수님이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소유로 갖는 것이며, 죄와 사탄의 속박에서 구출되어 참된 자유와 안식을 가질 수 있다 - 행 26:18, 엡 1:13-14, 골 1:12, 마 11:28, 요 8:32, 36.
1.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와 생명으로 받아들일 때 그분은 우리 안으로 오시어 우리의 희년이 되시지만,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해 드리지 않고 그분에 의해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지적으로 희년 안에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 요 8:11-12.
2. 우리의 마음이 주님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나 일에 고정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고 그 결과는 비참하다 - 요일 5:21, 비교 겔 14:3, 5, 6:9.
3.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도록 허락해 드리고 그분에 의해 산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문제가 되고 희년은 없을 것이다.
D.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누림으로 얻은 후에라야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있다. 우리가 온갖 종류의 상황에 직면할 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나 일들이나 사물들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차분하게 하시고 걱정에서 벗어나게 하실 수 있다 - 빌 3:8-9, 4:5-8, 11-13.
Ⅲ. 누가복음 4장에 있는 희년의 선포는 누가복음 전체의 중심 사상을 지배하고, 10장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15장에 있는 탕자의 비유는 희년에 대한 탁월한 예시이다.
A.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구주는 그분의 신성한 속성들을 그분의 인간 미덕들로 표현하신 분으로 나타나신다 - 눅 10:25-37.
1. 사람-구주는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시며 죄인을 구원하시는 사역 여행 중에(눅 19:10), 유대교 강도들에게 상처 입은 희생자가 비참한 상태로 누워 죽어 가고 있는 곳에 내려오셨다.
2. 사람-구주는 그를 보시고, 신성을 지닌 인성 안에서 불쌍한 마음이 드셔서, 그를 부드럽게 치료하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돌보시어 그의 긴급한 필요를 완전히 채워 주셨다 - 눅 10:33-35.
B.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구주는 사랑하고 용서하며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마음과 함께, 목양하고 찾으며 구원하시는 그분 자신의 영을 보여 주신다 - 눅 15:11-32, 비교 9:55-56.
1. 어느 날 탕자는 그의 소유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희년 곧 해방이었으며, 모든 것이 유쾌하고 만족스럽게 되었다 - 눅 15:20, 24, 비교 레 25:10-12.
2. 구원받는 것은 우리의 유업으로 돌아가는 것, 즉 하나님께 돌이키고 돌아감으로써 그분을 우리의 소유로 새롭게 누리는 것이다(엡 1:13-14).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유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하나님이 없으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다(골 1:12).
3.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복된 몫이 되셨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뻐하지 않고, 빛을 내지 못하는 전등과 같다. 이것은 그들이 자신의 몫이신 하나님을 취하여 ‘스위치를 켜지’ 않기 때문이다 - 엡 4:18, 빌 2:12-16.
4. 아버지가 아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아들이 자기 아버지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들에게 희년 곧 은혜의 해였다 - 눅 15:20.
5.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들의 누림을 위해 살진 송아지가 되셨다 - 눅 15:23.
6. 이것은 백성이 희년에는 파종하거나 추수할 수 없고 오직 먹고 누리기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레위기 25장 11절과 12절에 부합한다. 일단 우리가 주 예수님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을 얻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의 희년의 시작이다.
7. 우리는 아버지의 고용된 종들이 아니라 누리는 아들들이며, 우리의 소유 이신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계속 누릴 수 있다.
Ⅳ. 우리는 신약의 희년의 자유와 축복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려야 한다 -눅 4:18-19.
A. 희년의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려면 우리는 매일 주님과 시간을 보내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주입받아야 한다. 우리는 마리아, 곧 주님의 발 앞에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이의 본을 따라야 한다 - 눅 10:39.
1. 마리아는 다른 누군가의 발이 아닌, ‘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았다. 그녀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매 순간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경배하며, 끊임없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의 임재 안에 머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2. 마리아는 주님의 ‘발 앞에’ 앉았다. 이것은 그녀가 은혜이신 주님을 받아 들이기 위해 자신을 겸손한 위치에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벧전 5:5). 겸손은 우리 자신을 작게 보는 것이 아니다. 겸손은 우리 자신을 전혀 주의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부인하며, 우리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3. 마리아는 ‘앉아 있었다’. 주님 앞에서 잠잠한 것이 종종 영적인 힘의 근원이 된다(사 30:15중). 사람의 눈과 생각은 자주 바깥 세계로 빗나간다. 떠돌아다니는 생각과 동요하는 사고로 분주한 사람들은 쉽게 계시를 받지 못한다.
4.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영과 생명으로서(요 6:63) 그분 자신을 사람들 안으로 분배하기 위한 것이다. 마리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것은 주님께 그분 자신을 그녀에게 전달해 주실 기회를 드렸으며, 그 결과 마리아는 주님 자신을 계속 받아들이고 얻을 수 있었다.
B.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참된 자유를 준다.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고,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을 누리는 데서 온다. 사람이 하나님을 누리지 않으면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없다. 자유는 해방되는 것, 곧 모든 속박과 모든 무거운 짐, 모든 압제, 우리를 노예로 삼는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 요 8:32, 36, 갈 5:1, 고후 3:17.
C. 먼저 사탄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그러고 나서 사탄은 우리 안에 들어와 거하면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부추기고 선동하는 자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탄은 우리의 불법적인 주인이 되었으며, 우리는 선을 행할 수 없고 오직 죄만 지을 수 있는 정도까지 사탄의 포로가 되었다 - 롬 7:14, 요일 5:19.
1. 사람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누리려고 하는 모든 것은 개의 먹이와 쓰레기와 똥이다 - 빌 3:7-9, 비교 벧후 2:22.
2. 사탄은 ‘똥더미의 주’를 의미하는 바알세불이라 불리었고, 바알세불은 ‘파리들의 주’를 의미하는 ‘바알세붑’에서 온 단어이다. 사탄이 전문적으로 하는 일은 파리와 같은 죄인들을 이끌어 똥을 먹고 살게 하는 것이다 - 마 10:25, 12:24, 27, 왕하 1:2.
3.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무도 죄를 짓기를 원하지 않지만, 결국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짓는다. 아무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여 모든 사람이 죄의 노예가 되었다 - 롬 7:18-23, 요 8:34.
D. 로마서 7장 24절에 나오는 바울의 필사적인 절규는 생명의 영의 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한다고 말하는 로마서 8장 2절에서 응답된다.
E. 우리는 오직 생명 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릴 때에만 해방될 수 있고 참된 자유를 가질 수 있다. 오직 하나님을 누리는 이들만이 죄를 짓지 않고 참으로 자유로워져서, 자유롭고 해방되며 속박에서 벗어난 생활을 할 수 있다 ? 요 8:11-12, 24, 28, 31-36.
1. 생명의 영의 법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한다. 이 법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신 주님 자신이다 - 롬 8:2.
2. 우리가 주님을 충분히 누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많은 것에 얽매일 것이다. 결심하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계속적으로 주님께 와서 그분을 먹고 누려야 한다 - 고전 1:9, 계 2:7, 사 55:1-2.
3. 희년이신 그리스도는 빈곤, 포로 됨, 눈멂, 압제에서 우리를 해방하신다 - 전 1:2, 14, 3:11, 빌 3:8, 벧후 2:22, 눅 12:21, 계 3:17.
F. 희년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 곧 우리의 유업과 참 자유인 하나님을 누리는 생활이다 - 행 26:18, 요 8:36.
1. 희년의 생활은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 자신 곧 그리스도 자신을 취하는 생활이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 안에서 주요 요인과 중심이 되셔서 인생의 모든 험난한 문제들을 다스리신다 - 요 6:16-21, 골 1:17하, 18하, 빌 4:6-7, 11-12.
2. 모든 것이 그분의 주권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저를 채우시고 얻으시고 소유해 주십시오. 저의 바깥 상황이 어떠하든지 저는 다만 당신을 누리기 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성취하기 위해, 은혜의 희년이신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살고 선포함으로써 오늘날의 사역자와 증인이 되어야 한다 - 행 26:1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