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2 - 감추어진 생활을 함으로써 왕국 생활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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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감자 2024-11-10 , 조회 (3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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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 감추어진 생활을 함으로써 왕국 생활을 함

성경: 사 45:15, 37:31, 마 6:2-4, 5-15, 16-18, 14:22-23, 시 42:7, 아 4:12


Ⅰ. 우리는 기도하시러 홀로 산에 올라가심으로 감추어진 생활을 하신 주님의 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 마 14:23, 비교 눅 6:12.


A. 주님은 무리와 함께 기적(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의 결과 안에 머물지 않으시고, 그들을 떠나 산에서 기도하시며 홀로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 마 14:14-23.

1. 주님은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는 시간을 더 가지시려고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그분을 떠나게 하셨다 -마 14:22-23.

2. 그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홀로 기도하실 필요가 있으셨는데, 이것은 천국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서 무엇을 하시든지 아버지와 하나 되시고 아버지와 함께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외딴곳에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까지도 떠나서 산에서 기도하셨는데, 이것은 그분 홀로 아버지를 접촉하시기 위해서였다.

B.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산에서’, ‘기도 가운데’라는 세 가지 표현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

1.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는 자주 혼자서 기도해야 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 기도할 때, 우리는 홀로 주님께 기도할 때만큼 깊이 주님을 누릴 수 없다.

2. 심지어 주 예수님도 우리가 기도할 때 홀로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6:6). 이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친밀하신지, 그리고 우리가 그분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느끼게 된다.

3. 우리는 무리와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친구들과 교회 안의 성도들을 떠나서 더 높은 수준에 있는 ‘높은 산’에 올라가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무리와 땅에 속한 것들에서 분별되어 더 높은 수준에 올라가, 홀로 은밀하게 아버지와 함께하며 그분과 친밀한 교통을 나누어야 한다.


Ⅱ. 왕국 백성의 원칙은 의로운 행실, 곧 구제하는 것(마 6:2-4)이나 기도하는 것(5-15절)이나 금식하는 것(16-18절)과 같은 행실을 사람들 앞에서 행하지 않고 감추어진 생활을 하는 것이다.


A. 세 가지 예시 각각에서 주님은 ‘은밀한’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마 6:4, 6, 18). 우리의 아버지는 ‘은밀한 가운데’ 계시고 ‘은밀한 가운데 보신다’. 하늘의 아버지의 자녀들인 왕국 백성은 아버지의 은밀하고 감추어진 임재 안에 살며 이러한 아버지의 임재를 주의해야 한다.

B. 왕국의 하늘에 속한 다스림 아래서 비워지고 겸손해진 영으로 살며, 순수하고 단일한 마음으로 행하는 왕국 백성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육체 안에서 어떤 것도 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하늘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 영 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 마 5:3, 8.

C. 우리의 의로운 행실을 은밀하게 행한 결과는 육체와 자아가 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사회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하락한 기독교계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선한 행실을 과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선한 행실을 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는 영광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육체는 이목을 끄는 것을 좋아한다.

D. 성장을 드러내는 성도들은 건강한 방식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어떤 은밀한 생명의 성장, 곧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은밀한 체험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은밀한 방식으로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을 접촉하고 주님과 교통해야 한다.

E. 우리는 많이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매일 기도하지만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게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우리가 건강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F. 왕국 백성은 반드시 자신의 골방에서 기도하는 어떤 체험을 가짐으로써,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그들의 하늘의 아버지를 접촉하고, 아버지를 은밀하게 누리는 체험을 하며, 그분에게서 어떤 은밀한 응답을 받아야 한다 ? 마 6:6.

G. 언제든지 우리의 의로운 행실을 드러낼 때 우리는 건강하지 않다. 이렇게 드러내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성장을 크게 방해한다.

H. 우리의 인간 생명은 과시하고 전시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은 언제나 감추어져 있다. 위선자는 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겉으로 드러난 것만 가진 사람이다.

I. 우리는 결코 자신의 타고난 생명으로는 은밀한 가운데 감추어진 생활을 하는 것을 실행할 수 없다. 이것은 오직 드러내기를 즐기지 않는 생명인 신성한 생명 안에서만 가능하다. 우리가 왕국 백성이 되는 것에 진지하다면, 반드시 우리 아버지의 감추어진 생명에 의해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

J. 우주는 하나님께서 숨어 계신다는 것,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은밀하시다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른 이들을 사랑한다면, 이 사랑은 언제나 감추어진 채로 있을 것이다.

Ⅲ. “오, 구원자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 정녕 주님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 사 45:15.


A. 믿는 이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 의로우신 분, 은혜와 자비로 가득하신 분으로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숨기시는 분이신 하나님은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으셨다.

B.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 가운데서, 그리고 그들의 개인 생활 속에서 수많은 일들을 하시면서도 그분 자신을 감추신다.

1. 하나님은 감추어지기를 좋아하시지만 우리는 드러내기를 좋아한다.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나기를 열망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한다.

2. 하나님은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분명히 함께 계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타난 임재를 보여 주지 않으셨을 때 엘리야는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 - 왕상 19:9-18.

a.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는 하나님이시기를 원했고, 하나님도 엘리야의 원함을 아셨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지 못했다.

b.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않았고,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으며,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그 대신에 하나님은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다 - 왕상 19:12.

c. 하나님께서 부드럽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사실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신약 시대 안으로 이끌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약 시대에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에게 천둥소리로 말씀하시지 않고 부드럽고 나지막하게 말씀하신다 -비교 요일 2:27.

d. 엘리야는 자신만이 유일하게 남은 신실한 사람이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을 그분 자신을 위해 남겨 두셨다고 말씀하심으로 엘리야에게 매우 부드럽게 대답하셨다 - 왕상 19:18, 비교 롬 11:2-5.

e. 엘리야는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에 따라서만 상황을 판단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 명의 이기는 이들을 그분 자신을 위해 은밀하게 남겨 두셨다. 하나님의 활동은 이처럼 감추어져 있어서 심지어 신언자 엘리야까지도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C. 성경은 하나님께서 과시하는 것을 싫어하시는 그러한 성향을 갖고 계심을 계시한다. 그분은 드러내어 일하시기보다 은밀하게 일하시는 것을 좋아하신다 - 마 17:1-9, 요 20:14-17, 눅 24:13-37, 요 20:24-29, 사 39:2-8.

1.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뵌 적이 없으면서도 사랑합니다. 지금도 그분을 뵙지 못하지만, 그분을 믿으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영광이 가득찬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믿는 이들은 뵌 적이 없는 그분을 사랑한다. 이것은 놀랍고 비밀스러운 것이다 - 벧전 1:8.

2. 주님의 부활 이후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을 위한 주된 훈련은 하나님을 자신을 숨기시는 하나님으로 인식하는 노선과 함께했다.

3. 그리스도를 중심과 전부로 삼는 하나님의 경륜의 모든 것은 보이는 영역 안에 있지 않고, 믿음에 속한 보이지 않는 분위기와 영역 안에 있다 - 고후 4:13, 16-18, 5:7, 히 11:1, 엡 3:17상, 딤전 1:4하.

Ⅳ. 시편 42편 7절은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라고 말한다.


A. 다른 이들은 우리 속 깊은 곳에서부터 나온 것에만 깊은 속에서 반응할 수 있다.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다른 이들의 깊은 곳에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B. 왕국 생활은 깊은 곳에 있는 생활, 곧 ‘밑으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활이다 - 사 37:31, 비교 행 6:7, 12:24, 19:20.

C. 우리는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리스도 안에 심어졌기 때문에, 시간을 들여 (특별히 아침에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그분을 흡수해야 한다.

1. 뿌리는 감추어진 생활이지만 잎은 드러난 생활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는 문제점은 겉으로 보이는 생활은 많이 있지만, 은밀한 생활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추어진 생활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 우리의 모든 체험이 드러난다면, 이때 우리의 모든 성장은 위를 향한 것이며, 아래를 향한 성장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뿌리없이 잎만 있는 사람인 것이며, 얕은 흙 위에 있는 것이다.

3.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모든 미덕을 과시하고 자신의 존재의 깊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뿌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시험과 유혹의 때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심으로 우리가 밑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 마 13:20-21, 눅 8:13.

D. 우리는 사도 바울의 체험과 같은,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체험들이 필요하다 - 고후 12:1-4.

1. 바울은 셋째 하늘로 이끌려 갔고 낙원으로 이끌려 갔지만, 십사 년이 지날 때까지 그 체험을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바울의 뿌리는 토양 아래 깊이 박혀 있었다.

2. 우리가 바울의 일을 갖기 원한다면 바울의 ‘뿌리’를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바울의 외적인 행실을 갖기 원한다면 바울의 내적인 생명을 가져야 하고, 바울의 드러난 능력을 갖기 원한다면 바울의 은밀한 체험을 가져야 한다.

3. 뿌리가 없는 것은 감추어진 보배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것은 감추어진 생활이나 감추어진 체험이 전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어떤 체험들은 반드시 덮인 채로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 비교 사 39:2-8.

4. 우리의 생활에 깊이가 없다면, 우리의 피상적인 일은 다른 이들의 생활에 피상적인 영향만 끼칠 것이다. 오직 ‘깊음이 깊음을 부른다’.

E.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적인 생활은 하나님과의 내적이고 감추어진, 중단되지 않는 교통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러한 사람은 ‘백합화처럼 망울지고 레바논 나무들처럼 뿌리 내릴 것이다’(호 14:5). 이런 종류의 생활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5-7절).

F. 깊이 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직접적이고 친밀한 교통을 갖는 것이 필수적이다. 아가 4장 12절은 “나의 누이, 나의 신부는 잠긴 동산, / 덮인 우물, 봉해진 샘.”이라고 말한다.

1. 주님을 사랑하여 추구하는 이는 자신의 영적 진보의 이 지점에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동산이 되었다.

2. 그녀는 열린 동산이 아니라 잠긴 동산이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은 그녀가 사랑하는 분의 기쁨을 위한 것이며, 다른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다.

3. 오늘날의 믿는 이들이 조금 더 잠그고 더 단단히 봉한다면, 그들의 일은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4.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우리 안에서 더 깊은 일을 하심으로써, 우리 모두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깊은 곳에서 감추어진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충족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켜 드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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