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24
은사들을 주시는 분과
하나님께서 주신 전투 장비의 구성 요소들
몸의 모든 지체들은 몸 안에서 고유한 기능을 갖고 있음
몸의 모든 지체들은 몸에게 은사들이다. 몸에게 큰 은사였던 사도 바울은 ‘어깨’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고, 사도 요한이나 사도 베드로도 다른 쪽 어깨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 신체의 모든 지체들이 우리 몸에게 은사들이지만, 우리는 자주 새끼손가락같이 비교적 작은 지체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적 작은 지체들을 포함한 각각의 지체에게는 다른 지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고유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많은 때 어떤 형제자매들은 “저는 새끼손가락에 불과합니다. 저는 몸 안에서 어느 형제님처럼 유용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새끼손가락 같을지라도 주님께 소중하고 유용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이 필요하시고, 몸도 그들이 필요하다. ‘귀가 가려울 때’ 몸에게 편안함을 줄 수 있는 것은 ‘새끼손가락’의 기능뿐이다. 그러한 때에는 새끼손가락이 몸에게 은사로서 귀하게 여겨질 것이다. 많은 경우 각 지방의 교회에게 ‘가려운’ 부분이 있는 경우, ‘새끼손가락’인 사랑스러운 성도들이 가장 유용하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아주 작은 지체일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거처인 몸을 건축하시기 위해 아버지에게서 받아 교회에게 주신 은사들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온전하게 된 몸의 모든 지체들에 의해 직접적으로 건축을 행함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려면, 모든 지체들이 교회 집회에서뿐 아니라 집회 밖에서도 그들의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교회의 집회는 교회 생활의 중요한 방면이다. 교회 집회에 참석할 때 우리는 수동적으로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내놓는 그리스도의 몫을 누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교회의 건축을 위해 기능을 발휘하여 서로에게 그분을 공급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 모든 지체들의 총체이기 때문에 집회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들로 구성된다. ‘각 지체가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모든 믿는 이들이 교회 집회에서 기능을 발휘함으로써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몸인 교회의 건축을 위하여 몸의 지체들로서 서로를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
실지로 우리가 온전하게 한 사람의 숫자가 곧 건축된 사람의 숫자이다. 우리가 한 지방에서 많은 것을 했지만 사람들을 온전하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교회를 건축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눈이 열려 에베소서 4장 11절부터 16절까지의 말씀의 가치와 중요성을 봄으로써 이러한 교회 생활을 실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몸은 은사 있는 사람들이 직접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은사 있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고, 그 온전하게 된 성도들이 그들의 직분을 다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참된 건축이다.
얽어매는 부정적인 요소들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전투 장비이신 그리스도로 무장함
하나님께서 우리가 오늘날 이 땅에서 하기 원하시는 일에는 복음을 전하는 일, 죄인들을 구원하는 일, 교회를 건축하거나 성도들을 목양하는 일,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포함된다. ? 이러한 영적인 일은 영적 전쟁을 요구한다. 영적 전쟁은 단체적인 것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완전한 전투 장비로 무장해야 한다.
영적 전쟁을 위해 필요한 모든 장비는 우리의 것이 아니며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불러내시는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롬 4:17).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전투 장비이시다. 그러나 이 전투 장비로 무장하는 것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이다.
영 안에서 기도함으로 영적 전쟁을 수행함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전투 장비를 효능 있게 하는 길은 오직 기도뿐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오셔야만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이 바로 일곱 번째 항목이며, 이 항목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 항상 영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엡 5:17-18).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옛 길을 떨쳐 버리고 새 길을 취함
1984년 10월에 들어서면서, 나는 교회들의 낮은 증가율에 대한 나의 염려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타이베이에서 우리는 교착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961년 내가 타이베이를 떠났을 때, 타이베이 교회 성도들의 총인수는 2만 2천 명이 넘었다. 1984년까지 타이베이 교회는 단지 일만 천 명밖에 남지 않았다. 23년 안에 그 수가 일만 천 명까지 감소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몇몇 책들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우리의 증가율은 겨우 약 3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은 너무나 낮은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연구한 후에,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성경을 재고하기 시작했고, 또한 교파의 역사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우리를 포함해서 모든 기독교가 주님의 길에서 벗어났음이 내게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나는 대북에서 그들이 옛 길의 차에서 내려서 새 길의 차로 바꿔 타야 한다고 그들에게 담대해 말했다.
옛길은 항상 큰 집회들, 즉 한 사람이 말하는 집회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성직자를 산출하고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의 기능을 말살하는 계급제도를 낳게 한다. 한 사람이 말하는 대집회의 방식을 취하는 것은 계급제도를 산출하고 또한 조직을 산출한다. 조직의 방식은 성직자와 대집회를 갖는 것이며, 돈을 모아서 훈련받은 설교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일단 이런 방식 안으로 인도되면 그때 그들의 기능은 죽어버린다. 이것이 기독교의 방식이다. 니(Nee) 형제님은 우리에게 교회들 안의 주일 아침 집회를 포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했고 강하게 요구했다. 그는 우리가 그 시간을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이라는 니 형제님의 책에 가정 집회에 관한 부분이 있다. 그는 우리에게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성도들은 거기에 앉아 듣는 집회가 아닌, 상호성의 집회들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시도했지만, 기독교의 무거운 배경과 영향으로 인하여 그것을 결코 실행하지 못했다.
1984년 타이베이의 상황은 기독교에서 실행되었던 것과 거의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타이베이 교회에게 그들의 옛 길을 제쳐놓고 성경에 있는 것을 따라 새 길을 택해야 한다고 담대히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집회들에 대한 첫 기록에 의하면, 교회 생활의 맨 처음에 사도들은 진리 전파를 위해 성전에서 큰 회중에게 말했지만, 믿는 자들은 ‘이집 저집에서’ 모였다(행 2:46). 헬라어로 이것은 그들이 집집마다 모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모든 집들이 집회 장소였으며, 모이는 사람들의 수는 그 집들에 따른 것이었다. 오순절 후 그들이 침례를 받았을 때, 그들은 가정들을 따라서 모였다. 그들은 설교자들을 고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가정에서 교회 생활을 가졌다. 그들은 또한 성전에서 모였는데, 이것은 그들의 전통과 관습에 따른 것이었지 하나님의 경륜에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 생활이 아니었다.
우리가 신약의 진리와 우리의 체험에 따라 그 상황을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가정들 안에 교회 생활을 건축하는 것이 옳은 길임을 더욱더 확신하게 된다. 고린도전서 14장은 온 교회가 한 곳에 함께 모이는 것에 대해 말한다(23절). 그러나 이것은 몇몇 사람만이 말하는 집회가 아니라 “각각 … 을 가지고 있는”(14:26) 집회, 즉 상호성이 충만한 집회이다. 한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앉아서 듣는 옛 기독교 방식은 교회 생활을 죽인다.
이따금 어떤 새사람들은 훈련생들에게 자기들을 교회 집회에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다. 한두 번 교회 집회를 참석한 후, 이 새사람들은 다시 교회 집회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가정에서 집회를 누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은 대집회에 대한 입맛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그것과 정확하게 반대이다. 우리는 대집회에 대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방문하여 접촉한 자들을 집회에 데리고 올 때, 여러분은 큰 집회소와 많은 회중과 훌륭한 연사가 있는 것을 좋아할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겉모습이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우리의 지방에서 이런 방식으로 모여 왔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좀처럼 어떤 증가도 얻지 못했으며, 오히려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예배를 유지해 왔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독교 안에 있는 교리와 서로 다른 실행들로 싸우고 논쟁하지만, 나는 단지 교리들을 위하거나 실행들을 위하고자 하는 부담이 없다. 나는 오직 신약의 믿음, 그리스도인의 믿음, 신약 경륜만을 관심한다. 우리에게 이것이 있는 한, 우리는 증가를 가져오는 새 길을 취하자.
우리는 반드시 새 길을 취해야 한다. 그리고 새 길은 실행되어 왔고, 새 길이 통한다는 것이 완전히 입증되었다. 4개월도 되지 않아 타이베이에서 칠천 명 이상이 침례를 받았다. 60명 되는 지방 교회에서 온 그 형제는 우리에게 한 시간 반 이내에 한 팀이 6명에게 침례를 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의 훈련에 따른 것이다. 우리는 한담을 하지 않고 빠른 방식으로 그들에게 진리를 제시해 주고, 침례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필사적이고 유일하게 복음을 위해 삶 제1장 문 두드리기와 열매 맺기)
[다음세대의 일]
성경 교사들을 위한 훈련(1)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
우리는 이 일련의 메시지에서 여름 진리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봉사하는 교사들을 훈련하는 것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을 몇 가지 다룰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여름 진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들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말하는 이들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우리는 ‘교사’, ‘가르침’, ‘학교’라는 단어들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들 단어들에 관하여 우리 모두는 각자 나름대로의 ‘용어 사전’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러 다른 사전들을 내려놓고 유일한 사전인 성경으로 가 보자. ‘가르침’이라는 단어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서 발견되는데, 이 구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며, … 의로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라고 말한다. ‘학교’라는 단어는 신약에서 단 한 번 쓰이는데, 사도행전 19장 9절에서이다. 이 구절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무디어져서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그 길을 비방하므로, 바울이 제자들을 데리고 그들에게서 벗어나 두란노 학원(학교)에서 날마다 토론하였다.”라고 말한다. 두란노는 교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이년 동안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기 위해(행 19:10), 대적하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떨어진 두란노의 학원을 빌려 집회 장소로 사용했을 것이다. 바울은 율법 교사(5:34)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22:3) 훈련받았다고 말했는데 이는 그가 일종의 학교를 언급한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 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용어 사전을 내려놓고 성경의 말씀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에 관한 일들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심지어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가르쳐 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들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어떻게 배울 수 있겠는가?”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신학교는 하나님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하나님에 관하여 가르칠 뿐이다. 이와 반대로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가르쳐 주며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과 하나님을 가르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임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차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경을 읽을 때 그들은 세속적인 책을 읽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읽는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성경, 특히 신약은 성경을 일반적으로나 세속적인 방식으로 읽으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에베소서 6장 17절과 18절은 온갖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디모데후서 3장 16절이 성경은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신 산물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성경 안에 숨으로 내쉬셨다. 이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숨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숨으로 내쉬실 때 그분 자신을 내쉬신다. 성경을 읽을 때나 성경 말씀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들이마신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것은 내쉬는 것과 들이마시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이것은 세속적인 방식으로 어떤 책을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불행히도 많은 믿는 이들이 교과서나 신문을 읽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있다. 이것은 심각한 잘못이며 여름 진리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돌볼 때 이러한 일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우리는 여름 진리 학교를 세상에 속한 방식으로 지도해서는 안 된다. 사실 나는 ‘학교’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우리가 일반적이고 세상에 속한 방식으로 가르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여름 진리 학교를 돌보고 있는 이들이 직업적인 교사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학교 교사인 것이 그에게 여름 진리 학교에서 섬길 수 있는 자격을 주지는 못한다. 수년간 학교 교사였기 때문에 그에게 우리 여름 진리 학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여름 진리 학교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천연적인 능력이나 직업적인 훈련에 따라 섬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여름 진리 학교는 수학, 역사, 지리, 과학과 같은 세상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않는다. 그 대신에 여름 진리 학교는 신성한 진리, 즉 삼일 하나님의 실재를 다루기 위하여 있다.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삼일 하나님의 실재이다. 이 일에 관하여 우리의 타고난 가르치는 능력은 쓸모가 없다.(성경 교사들을 위한 훈련 1장)
[교회의 기도 사역]
Ⅰ. 사역을 위한 기도
1. 문서의 일을 강화하심으로 온 땅 곳곳에 주님의 말씀이 힘 있게 자라고 점점 세력을 얻게 하십시오.
2. 주님께서 대적을 묶으시고 그분의 경륜의 완결을 위한 마지막 움직임을 위해 교회들이 깨어 동역 하게 하십시오.
II. 북한 복음화를 위한 기도
남북한의 긴장이 완화되게 하십시오. 평안 가운데 왕국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을 열어 주십시오.
III. 2025년 부산교회 봉사 방향을 위한 기도
1. 주일 인수 5%의 증가를 위하여
2. 활력 그룹마다 1명의 침례를 주도록
3. 가정 집회 인수를 주일 집회의 1.5배가 되도록
4. 교회 생활 인수를 주일 집회의 2배가 되도록
Ⅳ. 다음 세대를 위한 기도
1. 다음 세대가 아침마다 주님을 접촉함으로 살아나게하시고, 주님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견고해지게 하십시오.
2. 경남권역 중고등부 섞임 집회[4/20(주일)]를 축복하십시오. 풍성한 공급으로 중고등학생들을 은혜로 적셔 주십시오.
[성도들 소식]
1. #1 - 침례
대연소그룹 박인진 형제님이 4/4(금), 침례받았습니다.
2. #3 - 침례, 개업
①구서남산2소그룹 황진희 자매님이 3/30(주일), 침례받았습니다.
②구서남산2소그룹 황지윤 형제님(김쾌덕 자매님 아 들)이 4/5(토), ‘가마솥에 누른밥’을 개업 하였습니 다.(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782-4)
3. #4 - 입원
기장장안소그룹 김정순 자매님(안호순 형제님)이 갑작스런 뇌출혈로 인해 3/30(주일), 동남권 원자력병원에서 수술 후 입원 중입니다. 재활 치료와 원활한 회복을 위해 중보기도를 바랍니다.
[부산교회 광고]
■ 2025년 봄 경남권역 중고등부 섞임 안내
▷ 일시 : 4/20(주일), 9시 ~ 16시
▷ 장소 : 창원 컨벤션센터(원이대로 362 창원컨벤션센터)
▷ 회비 : 없음
※ 각 구역 봉사자는 취합하여, 4/13(주일)까지 도주호br(010-9654-7280)에게 신청 하시기 바랍니다.
■ 매일 아침 10분, 말씀을 기도로 읽기’(2025년 봄 국제 장로책임형제 훈련) 소책자 신청 안내
▷ 가격 : 1권 1,000원(택배비 5,000원)
※ 각 구역 도서 봉사자는 취합하여, 4/21(월)까지 성경진리사역원으로 신청(ngbtm@naver.com) 및 입금해 주시기 바랍니다.(우체국 100669-02-224607, 이다리)
[금주의 추구]
4/6(주일) | 4/7(월) | 4/8(화) | 4/9(수) | 4/10(목) | 4/11(금) | 4/12(토) | |
수 22장 | 수 23-24장 | 삿 1:1-3:6 | 삿 3:7-4장 | 삿 5-6장 | 삿 7-8장 | 삿 9:1-10:5 | |
눅 11:33-54 | 눅 12:1-21 | 눅 12:22-40 | 눅 12:41-59 | 눅 13:1-21 | 눅 13:22-35 | 눅 14장 | |
▶ 라이프스타디 추구 : 히브리서 M10 ~ M11 | ▶ 소그룹 추구 : 라이프스타디 진도와 동일 | ▶ 진리 추구 집회 : 오늘의 양식 진도와 동일 |
[인수통계2025년 3월 24일 ~ 2025년 3월 30일)]
구역 | 재적 | 침례 | 생활 | 공동추구 | 복가소지/생양교건 | 계층별(주일) 인수 | |||||||||
25년 | 목표 (5%) | 목표 | 누적 | 교회 생활 | 라이프 스타디 | 복음 실행 | 가정 집회 | 소그룹 집회 | 주일 집회 | 유초 (생활) | 중고 | 대학 | 청직 | 장년 | |
1구역 | 122 | 128 | 24 | 1 | 164 | 100 | 26 | 139 | 86 | 140 | 11 | 4 | 16 | 15 | 105 |
2구역 | 152 | 160 | 32 | 2 | 203 | 89 | 28 | 172 | 108 | 162 | 15 | 11 | 2 | 18 | 131 |
3구역 | 104 | 109 | 20 | 1 | 141 | 81 | 19 | 121 | 76 | 108 | 11 | 1 | 15 | 13 | 79 |
4구역 | 73 | 77 | 16 | 78 | 48 | 23 | 60 | 49 | 67 | 12 | 10 | 2 | 2 | 53 | |
5구역 | 123 | 129 | 24 | 131 | 59 | 5 | 90 | 73 | 104 | 13 | 3 | 2 | 1 | 98 | |
6구역 | 131 | 138 | 28 | 5 | 175 | 80 | 25 | 108 | 85 | 134 | 8 | 4 | 3 | 11 | 116 |
합 계 | 705 | 741 | 144 | 9 | 892 | 457 | 126 | 690 | 477 | 715 | 70 | 33 | 40 | 60 | 5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