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리 주저리...
자유게시판
요셉의창고 2009-06-01 , 조회 (472)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어제 김다혜 필리핀 가는데 공항에 데려 준다고 이정선 자매님댁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에 자매님 부친 장례식을 치르면서 몇분의 자매님들께서 수고를 하셨습니다.

 

자매님의 친척은 대부분 기독교인이며, 또 목회를 하시는 분들도 여러분 계십니다.

 

이번 장례식에도 이분들도 참석하셨습니다.

 

자매님께 목회를 하시는 삼촌께서 교회 형제님 몇분이 기도를 하시는데 마지막에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라고 하지 않아서 이상하게 여겨서'어디 교회다니느냐'고 물으셔서 김해교회- 회복-에 있다고 하니까 무어라고 하실려고 하시다가 손님이 오는 바람에 대화를 못했다고 합니다.

 

그후 교회 지체들이 많이 장례식에 참석하고 특별히 몇분의 자매님들께서 손님접대로 인해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너의 형제, 자매님들 잘챙겨드리고 잘해드리라고 칭찬을 많이 하셨답니다.

 

자매님은 혹시라도 '이단'이라고 질책할지나 않을까 생각하셨는데, 우리 지체들의 적극적인 봉사와 많은 지체들이 방문함으로 그들의 인식에서 좋은 인상을 주었던것 같습니다.

 

이번에 단지 장례식이었지만, 우리가 어떠한 장례절차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교회의 간증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느낍니다.

 

그동안 메스컴과 많은 매체들을 통해 주의 회복에 대해 한국땅에서도 많이 열렸지만, 아직도 이단이라는 딱지를 완전히 떼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 본 특별히 주의 회복에 좋은 감정을 갖지 못한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이지만, 일반 성도들은 인식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선입관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싫던 좋던 한국의 기독교도 주의 회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미 목회자 세미나를 통해 특별히 목회하는 분들안으로 회복의 진리가 급속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번 고려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진리인가 , 사람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진리가 합당하고, 그 진리에 걸맞는 생활과 생명의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재생산'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의 말과, 메세지보다 우리의 생활이나 특별히 사람의 문제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특별히 교회안에는 그나마  외적인 통제가 없어 내재적으로 빛에의해 통제받지 못하면 외적인 생활이 더 엉망이 될 소지가 더 많습니다.

 

영을따라 행하고, 내적인 생명을 따르는 것은 어떠한 종류의 생활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대부분 주의 회복안에 오래 있어서 습관적으로 동일한 생활을 합니다. 그것이 영에 속한것인지 습관적인 사람의 생활인지 구분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리가 높고 그 진리를 따르지 못하는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닐지라도 한가지 고려해 볼 것은

 

"진리는 맞는데, 사람을 보니 아닌것 같다"

 

라는 것과

 

또 하나는 진리는 잘모르겠고 이곳의 사람들을 보니 합당한것 같다"

 

라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우리가 둘중 어떤 평가를 받기를 바랍니까?

 

사람이 곧 사역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은사가 사역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바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라는 사람이 가족들에게는 어떠한 사람으로 보이는지, 특히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잘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집회에서 교회생활에서 만나는 지체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직장동료는 어떻게 평가하는지, 가족, 친지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그 사람의 참 모습입니다.

 

가족들이 그 사람을 생각할때 마음이 달콤하지 않으면, 복음은 ,특히 주의 회복은 길이 없습니다.

 

직장의 동료들이 그 사람을 평가할때 이름을 언급할때 고개를 흔든다면, 그 사람을 통해 복음은 전진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데살로니가에 '그들가운데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었는가'를 언급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바로 복음이었고, 말이아니라 생활과 사람이 바로 사역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유가 많고, 매사에 까다롭고, 따지기를 좋아하고, 희생하기 싫어하고, 손해를 견디지 못하는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이 존재합니다.

 

따지기 보다는 '바보'소리를 듣는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많은 말보다 말없이 손실을 감수하며 희생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요?

 

제가 군대입대할때 늦게 입대한 관계로 대부분 동기들이 한두해 나이가 어렸습니다. 다섯명이 같이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는데, 두명이 고등학교 1년 후배였습니다.

 

처음며칠은 선배라고 말을 높이다가, 군대동기끼리 말을 높이는것이 저들도 자존심이 상하는지 슬며시 말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훈련받을때 그중의 한명이 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고생을 했는데, 야간에 보초 근무를 나가야 했습니다.

 

야간에 보초를 깨우는 담당에게 내가 대신 보초를 설테니 깨우지 말고 나를 깨우라고 했고, 그는 밤보초를 내가 대신 섰다는 것을 다음날 알았습니다.

 

그후 논산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에 배치될때까지 저에게 깍듯이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불렀습니다.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차라리 손실을 보는 것이 낫습니다.

 

다만 수고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 나만?,   왜 우리는? 왜, 왜???   많은 물음표는 바로 뱀이 꼬리를 틀고 노려보는 모습이 아닙니까?

 

다시 원점에 돌아와서 만약 우리가 장례식에서 멋진 메세지를 전했다고 할지라도, 자매님들의 말없는 희생과 수고에 비할수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수고와 희생이 요구될 것입니다.

 

희생하고, 수고하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희생하지 않을려고 하고, 권리를 따지고, 사리를 구별하는 사람들은 항상 넘어집니다.

 

'나는 교회생활에서 다만 수고하는 것만을 배웠습니다'라는 간증을 할 수 있다면 분명이 이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

 

아멘!!!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

마하나임
'나는 교회생활에서 다만 수고하는 것만을 배웠습니다'라는 간증을 할 수 있기 원합니다.
elkanah
다만 수고할 줄 알기 원합니다.
전영민br
'진리가 합당하고 그 진리에 걸 맞는 생활과 생명의 표현' 그것이 우리의 가장 궁극적 목적, 그리스도의 재생산!! 아멘 더많은 수고와 희생을 배우기 원합니다.
수정진주
왜?라고 따질땐 결코 희생할 수 없기에... 주의 바보가 되기원합니다. 주님과 교회만을 알고 사랑하는...
예사랑
아멘 생활속에서 주예수님을 나타내게하소서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를''''''
고벨화
아멘. 저두 수고하길 배우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