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한 생활에 관한 세 가지 잘못된 인식
첫째, 이 생활은 다만 영적인 형제, 앞선 형제 사도나 장로가 하는
생활이 아니라 모든 믿는 이, 특별히 모든 헌신한 믿는 이가
날마다 해야 할 생활입니다.
결승점에 이미 도착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이 형제님은 하나님-사람 생활에 대하여 무거운 부담을 가지고
장로 동역자들에게 간곡하게 교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형제님 자신도 날마다 절대적으로
이 생활을 살아 내지 못함을 시인하며
날마다 주님께 용서를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형제님이 이러하실진대 우리 각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그뿐 아니라 오늘 잘 달린 사람이 내일도
잘 달린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늘 잘하지 못한 사람이
내일 잘하지 못한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표준을 자신의 표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다른 사람에게 어떠한 표준이 있다고 추측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믿는 이가 이러한 생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이러한 헌신한 생활은 절대로 율법을 따른 생활이나
육체 안에서 이루는 생활이 아닙니다.
유태인은 하나님의 율법이 있으나 자신의 육체를 따라서
이 율법을 온전케 하려 하였기 때문에 결국 율법이
그들을 정죄하는 덫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람이 육체 안에서
율법을 따라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영 안에서 은혜를 따라야
그리스도를 살 수 있음을 말합니다.
믿는 이가 영 안에서 생명을 얻었다면
영 안에서 생활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성경은 "율법을 따라 행하라"고 말하지 않고
"영을 따라 행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육체를 따를수록 실패하게 됩니다.
오직 생명의 영의 법의 운행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살아 낼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헌신된 생활은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생활이 아니라 점진적인 생활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우리가 말씀의 젖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란다고 말합니다. ‘
이르도록(unto)’이라는 말은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않고
과정 가운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한 여전히 이 길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은 "이르리니"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영적인 길은
하루 아침에 도달하는 것이 아님을 설명합니다.
오늘 우리는 모두 과정 가운데 있습니다.
헌신의 생활은 멈추는 생활이 아니라 매일 행하는 생활입니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실패가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영광 가운데로 이끌릴 것입니다.
-앤드류 유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