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이야기 나온 김에 비둘기님이 추천해 주신 '일곱 광주리 가득히 8' 1장에 나오는 '눈물' 중 주님의 역사에 있어서 눈물이 어떤 기능이 있는 지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울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죄인을 위하여 마음아파 하며 심지어 울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문제가 생겨도 울고, 원수에게 분히 여기는 마음을 참을 수 없어도 울어야 한다.
무릇 주의 기쁨을 구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경험이 없다.
주님의 사역에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운다.
구약에서 예레미야는 주님께 지극히 쓰임받은 선지자 중의 하나였는데 그가 이런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눈물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를 위해 염려하고 책임을 느끼며 심지어 밤낮으로 울었다.
그렇다. 눈물은 우리에게 결핍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더욱더 많은 눈물로 그것을 씻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어린 성도는 눈물로 키우고,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영적인 생활도 눈물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죄인들에게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만일 눈물이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의 헌신은 실제로 너무 부족하다.
진정 많은 사람들이 몸과 능력과 금전과 시간을 바쳤지만, 눈물을 바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 참으로 많은 사역이 완전할 수 없고 많은 성도가 아직 길러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사역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면,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
눈물은 끝까지 흘리는 것이 아니라 멈출 때가 있다.
예레미야 31장 16절은 우리가 진실로 사역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상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신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역에서 이와 같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 안에서도 이와 같다.
어머니가 자녀를 대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알 수 있다.
나는 자녀가 나쁘다고 해서 화만 내고 울 줄 모르는 어머니가 있다면 좋은 어머니라고 보지 않는다.
새신자에게도 자녀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처럼 돌보는 것이 가장 효력이 있다.
탕자가 집에 돌아오는 것은 온전히 그의 어머니의 눈물로 말미암은 것이다.
자녀가 아주 나빠서 집을 떠나 고향 밖의 먼 곳에서 표류하더라도,
집에서 그를 위해 눈물 흘리는 좋은 어머니가 있다면,
그 탕자는 오래지 않아 그의 어머니의 눈물 때문에 반드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신약에도 이러한 본이 있다.
사도행전 20장 19절을 볼 때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31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어떻게 주님을 섬겼는가?
그는 모든 일에 겸손하고 밤낮 쉬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말하거니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 가운데 완전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비록 그가 많은 일에 있어 좋지만, 눈물이 없다면 좋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러 꾸며서 나오는 것을 말하지 않고, 마음에 먼저 깊은 느낌이 있은 후, 눈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당신에게 묻건대, 당신은 이렇게 사역을 위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주의 일에 열심인지 아닌지, 전일한지 아니한지, 주님을 섬기는 마음이 완전한지 아닌지를 알고자 한다면, 그에게 눈물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직선적으로 말하자면, 눈물이 없이는 사역이 영원히 흥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여되었다면, 어둠 속에 있는 어떤 것이 사역에 방해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