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언급한 아나톨리아고원은 터키의 소아시아반도 내륙부를 차지하는 분지모양의 고원입니다. 아나톨리아란 터키령 아시아의 명칭이며 터키어로는 아나돌루(Anadolu)라고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북부의 도시 아미소스와 남부 타르수스(다소)강을 경계로 서쪽을 아시아라 했는데, 아시아라는 개념이 동쪽으로 퍼졌기 때문에 이곳은 소아시아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소아시아를 아나톨리아라고도 부르는 것은 비잔틴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재위 913∼959)가 아시아 영토를 14군관구로 나누었을 때, 현재의 에게해에 닿아 있는 서해안지방을 그리스어로 아나톨레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솔로몬의 이름의 뜻은 ‘평화’라는 뜻입니다. 솔로몬은 밧세바의 두번째 소생이며 다윗왕의 넷째아들로서 예루살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는 여호와의 보내심을 받은 나단이 지어준 이름 ‘여디디야’가 있으니 그 뜻은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통치 4년 2월에 예루살렘에 성전건축을 시작하여 11년 8월에 준공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세번 건축되어집니다.
솔로몬성전과 유다왕국의 멸망 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에 의해 세워지는 스룹바벨성전, 그리고 로마가 가나안지역을 통치하던 때에 헤롯왕에 의해 세워진 헤롯성전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나이 21세에 이스라엘 3대 왕으로 취임하여 약 40년간 통치하였습니다(B.C. 961-922).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전무후무한 지혜의 왕이 되어 지혜의 재판을 했으며, 2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자신의 왕궁과 성전을 건축하는 대과업을 완수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하솔, 무깃도, 세겔에 성곽을 쌓는 위업을 실현했는가 하면, 인접국과 외교를 잘하여 국경 안팎에 태평성대한 세월을 오게 한 것이 그의 위대한 과업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결정적 실수는 수많은 후비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허용한 일과 그 신상을 위하여 산당을 각곳에 지은 일과, 궁전과 성전 그리고 성곽을 수축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무거운 과세와 고역을 부담시킨 일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솔로몬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솔로몬왕의 지혜를 말하면 사람들은 시바의 여왕을 기억합니다. 시바의 여왕은 열왕기상 10장에 나오는 인물입니다. 시바는 아라비아반도의 남쪽 끝, 지금의 예멘 부근에 있었던 나라이며 정치조직, 도시, 관청 등이 구비되어 있는 문명국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홍해 연안의 에시온게벨이라는 도시에 조선소를 만들어 이 지역에서의 중개무역에도 관여하고 있었는데 시바의 여왕은 솔로몬왕의 명성을 듣고 왕을 방문하였습니다.
여왕은 많은 것을 질문하여 시험해 보았으나 그는 모든 것에 다 대답하였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의 깊이와 그 왕국의 번영을 실제로 목격하고 거액의 향료,금, 보석 등을 바쳤습니다.
분열왕국시대와 세계
BC931년 솔로몬의 죽자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대표는 세겜에 모여 법적 후계자인 르호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암몬 여인 나아마와 솔로몬 사이에 태어난 르호보암은 당시 나이가 41세였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17년을 통치합니다. 그러나 르호보암의 실정을 거듭하자 솔로몬 때에 애굽으로 도망하였던 여로보암이 돌아와 나라가 둘로 분열되게 됩니다.
뜻은 ‘백성이 번성함’이라는 뜻의 이름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후계자 르호보암 에 반기를 들고 북이스라엘 10지파를 규합하여 새 왕조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르호보암을 왕으로 하는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로 구성된 남쪽의 유다왕국과,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한 나머지 열지파로 구성된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으로 분열되게 되었습니다. 이 시대를 분열왕국시대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