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죽음 후 이스라엘은 분열왕국으로....
성경과 세계사
요셉의창고 2009-04-13 , 조회 (149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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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죽음 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왕이 통치하는 님쪽의 유다왕국과,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습니다.

 

남쪽은 유다지파와 베냐민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지파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에 레위지파는 우상숭배에 반발하여 남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B.C. 931년에 시작된 이 분열왕국은 이스라엘왕국이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망하고,  유다왕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중인 B.C. 586년에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왕국은 세겜을 처음에 수도로 정하였다가 후에 디르사로 도읍을 옮겼다가, 오므리왕이 세멜에게서 산을 사고 그곳에 성을 건축하고서 그 이름을 사마리아로 정하였습니다.

 

 그 사마리아라는 이름은 그 산의 주인이었던 세멜의 이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예루살렘 북쪽 약 67km 지점,  세겜 북방 11km 지점에 있는데 현재는 세바스티에 라는 이름으로 보장것 없는 동내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성을 중심으로 그 근처를 사마리아지방으로 불리게 되는데 사마리아지방은 옛날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쳐서 취하여 12지파에게 분할해 준 에브라임, 단, 므낫세, 그리고 반지파에게 준 땅이 곧 예수님 당시의 사마리아입니다.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왕국을 쳐서 취하였을 때에 살만에셀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로 다른 지방으로 옮기고 앗수르 국민을 사마리아 에 옮겼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더가 점령하여 또 자기 국민을 사마리아도에 이주시키므로 자연히 혼혈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때 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이방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사마리아 인들이 협력하기 원하여도 거절 하였습니다.


결국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을 이방시 하는 유대인들에게 원한을 품고 바사(페르시아)의 인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방해 하였고,  일방으로는 그리심 산에 따로 성전을 건축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간에는 피차 반목 질시하게 되고 유대인이 그 지역에 가지도 않고 그곳 주민과는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쪽의 유대지방 사람들이 북쪽의 갈릴리지방을 갈때는 중부지방인 사마리아를 통과 하지 않고 멀리 요단강으로돌아 다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그런 태도와 달리 사마리아지역을 통과하시다가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생수의 원리를 가르쳐 주셨으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북 이스라엘왕국에서 활동한 선지자들 중에는 엘리야, 엘리사, 요나, 아모스, 그리고 호세아가 있습니다. 그 중 요나에 관한 유명한 기사에서 앗수르의 수도가 니느웨라고 나옵니다.

 

그 도시는 함의 손자 니므롯이 세운 성으로서 요나선지자의 활동 당시 인구가 60만명이나 되는 거대도시였습니다.  당시 니느웨의 주위는 장방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길이는 10km 가 넘었으며, 그 주위를 도는데만도 3일이 걸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니느웨는 티그리스강 상류, 바그다드로부터 북으로 약 40km 떨어진 모슬지역에 있습니다.

 

그리고 요나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도망하려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그 다시스는 지금의 스페인으로 짐작합니다.

 

 당시 그 지역의 사람들은 다시스가 서쪽의 끝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욥바는 예루살렘 서북쪽 약 55km지점 지중해 안에 있는 항구 도시로서 그  이름의 뜻은 ‘아름답다’라는 것입니다. 그 욥바의 북쪽의 신시가지가 지금의 이스라엘의 주요도시인 텔아비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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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사람
감사합니다.
처음사랑
수고하십니다.
elkanah
아멘
생명강가
구약과 신약을 함께 조망해주므로 유익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