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왕국시대에 강국으로 등장하는 앗수르는...
성경과 세계사
요셉의창고 2009-04-17 , 조회 (766)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앗수르제국의 영토>

 

 

분열왕국시대에 강력한 나라로 등장하는 앗수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국들 중의 하나로 남방 왕국인 바벨론이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평지를 차지한 반면에 앗수르는 대체로 시리아 사막과 남쪽으로 베벨로니아와 북쪽과 동쪽으로 아르메니아 및 페르시아 산과 접경을 이루었습니다.

 

셈의 아들 앗수르의 후손인 이들은 족장 시대 이전에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바벨론 북쪽에 고대 왕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유능한 왕이었던 다윗 왕 시대에 극도로 쇠약해 있었던 앗수르는 그 후 수도 니느웨를 중심으로 점차 그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고 특히 북 왕국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물론 그 세력이 다소 약화되었던 여로보암 2세와 웃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하여 자유를 찾아 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도 하였지만 앗수르 제국의 재건을 시도한 디글랏 빌레셋 3세와 뒤를 이은 살만에셀 5세의 공격으로, 결국 북 이스라엘왕국은 멸망하여 앗수르의 속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의 세력은 B.C.8세기에 황금 시대를 이루었으나 그 후 B.C. 612년에 신 바벨론에 의한 수도 니느웨의 함락과 동시에 멸망되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왕국에 대한 성경에 나타나는 앗수르의 위협을 살펴봅시다. 

B.C. 853년에 살만에셀 3세는 앗수르 군대를 이끌고 아람 왕 벤하닷과 이스라엘왕 아합을 포함한 동맹군과 싸우러 왔습니다. 하지만 B.C.841년에 이르기까지는 이렇다 할 전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아합은 이스라엘을 앗수르와 정면으로 충돌시켰습니다. 이때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하나의 속국으로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값진 조공을 바치는 예후의 사절단이 살만에셀의 흑색 방첩탑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조공을 바치고 앗수르는 다메섹의 위협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지켜주는 관계로 이스라엘이 이웃나라 다메섹의 압제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그것은 B.C. 800년경 요아스가 조공을 바치던 때에 앗수르의 출정한 기록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결과 이스라엘은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여로보암 2세와 유다 왕 웃시야는 그 뒤로 앗수르의 운명이 바뀌었을 때 남부 수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주도권을 쥔 군주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B.C. 745년에 이르러서는 디글랏빌레셀 3세가 앗수르 제국의 지위를 회복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왕 므나헴은 조공을 바쳤으나 반앗수르 요인들로 인하여 그의 아들 대신에 베가가 왕으로 지명되었는데 얼마 안 가서 베가도 앗수르가 인정하는 호세아에게 왕위를 내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호세아왕 때인 B.C.722년에 앗수르가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가므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남 유다왕국에 대한 앗수르의 위협을 살펴봅시다. 북 이스라엘의 왕 베가의 반앗수르적인 태도는 남 유다의 왕  아하스로 하여금 앗수르의 품에 들어가 보호받게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유다왕 히스기야의 독립정책은B.C.701년에 있은 앗수르의 왕 산헤립의 무자비한 보복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때로부터 므낫세는 바벨론에 강제로 끌려갔다 온 다음 앗수르에 줄곧 충성하였고 그로 인하여 오랜 기간의 통치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앗수르가 안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유다를 강화하였으나B.C. 609년 앗수르의 마지막 왕을 돕기 위하여 진군하던 애굽 군대를 저지하려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산헤립은 앗수르의 왕 사르곤2세의 아들로서 그 부친 사르곤이 살해되므로 앗수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엘람을 정복하고 B.C. 701년 서방 여러 나라를 원정하기 시작했으며, 유다왕 히스기야는 애굽에 원군을 청하여 앗수르에 도전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유다를 공격하여 46도시를 점령하고 200,150명을 포로로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예루살렘 포위 작전때 전염병이 생겨 전쟁을 포기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이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되어진 것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B.C. 681년 니느웨에서 산헤립은 그의 두 아들의 손에 암살 당하였습니다.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

처음사랑
잘 읽었습니다 ^^
술람미
요셉의 창고님 퍼가기좀 허락해 주세요 안양교회 청년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요. 교회와 세계사도 함께..
한새사람
형제님 감사합니다.
요셉의창고
술람미님 수정해 놓았습니다.
술람미
형제님 감사합니다. 청년들에게 좋은 선물을 배달한다 생각하니 절로 신이납니다.
elkanah
아멘
생명강가
앗수르제국과 이스라엘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