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분배 (The Dispensing of God)
광주 사랑방
광주교회 2009-12-22 , 조회 (37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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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 즉 그분의 계획과 안배는 하나님의 목적이다(엡1:10, 3:9). 하나님의 분배, 즉 그분의 할당하심과 나눠주심은 그분의 수단이다. 사람 안에 그분 자신을 역사해 넣는 경륜을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분배라는 수단을 통해 하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분배는 하나님의 경륜을 위한 것이다.


엡3: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청지기 직분(Stewardship)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골1:25-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청지기 직분(Stewardship)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5에 ‘청지기 직분(Stewardship)’ 이라는 단어는 ’분배함‘ 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청지기 직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을 그분의 선택되고 구속되고 거듭난 사람 안으로 분배하심으로 그분이 그들의 생명과 모든 것이 되시어 우주 안에 그리스도의 유일한 몸을 산출하여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 몸은 이 시대에서는 교회이고 영원 안에서는 새 예루살렘이다.


하나님의 분배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라고 말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는가? 이 질문에 대답할 때 우리는 손과 장갑의 예를 사용해도 좋다. 장갑은 손을 담기 위한 목적으로 손의 형상대로 지어졌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담을 수 있게 하려고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조금이라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들어와서 그 속에 거하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그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하나님께서.....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라고 말하는 로마서 9장 23절에 의해서 확증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담기 위한 그릇으로 만들어졌음을 본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담기 위해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은 사실상 나타나신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을 담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 안에 들어가시기 위한 것이었다.

창세기 1장 27절에서 「형상」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의도가 그분에 의해 창조된 사람 안으로 들어가시기 위한 것임을 가리킨다.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가? 그것은 사과를 상자 속에 집어넣는 것으로 비유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가에 관한 질문에 답변하려면, 창세기 2장을 고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장에 따르면, 사람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셨는데, 그 의도는 사람이 이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을 안에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곧 보겠지만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mingling)을 함축하고 있다. 요한복음 6장에서 주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분은 우리가 먹기 위한 하늘에 속한 떡이라고 하셨다(32절, 53~54절, 56~58절). 같은 장에서 주님은 두 번씩이나,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셨다(35,48절). 생명의 떡은 생명나무처럼 음식 형태로 된 생명 공급인데(창2:9), 그것은 또한 「먹기에 좋은」생명 공급이기도 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결국 우리 존재와 연합된다. 만일 우리가 섭취한 음식이 우리와 연합되지 않는다면 틀림없이 우리는 빈약한 소화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먹고 소화시키는 음식은 우리 존재 안으로 동화된다. 그 음식은 우리의 신체 조직과 뼈와 살과 피부가 된다. 이는 우리가 먹고 소화시켜서 동화된 음식은 결국 우리가 된다는 뜻이다. 분명히 이것은 연합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먹은 음식이 우리와 연합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히 틀린 말이다.


연합의 사상은 창세기 2장에 암시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사과를 상자 속에 넣는 방식으로 사람 속에 들어가시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은 음식이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와 하나 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신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본다. 그런 뒤에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사람은 생명나무 앞에 두어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하나님을 음식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 안에 분배됨을 본다.


먹음은 분배와 연합을 둘 다 암시한다. 어머니가 가족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때 그녀는 음식을 그들에게 분배한다. 가족들이 음식을 먹을 때, 그 음식은 그들 속으로 분배된다. 분배된 후 그 음식은 그것을 먹은 사람과 연합된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사람 안에 분배하심과 그분 자신을 사람과 연합케 하심이 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사람 안에 분배되시고 사람과 연합되실 수 있는가? 이것은 오직 삼일 하나님께서 성육신되시고 땅 위에 사시고 십자가 위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강림하심으로써만이 가능한 일이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분배하시며 그분 자신을 우리와 연합시키신다.

성경은 심오하다. 성경은 심오한 책이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의 표면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의 깊은 속에 계시된 것을 보아야 한다. 구약에서 우리는 약속되고 예언되고 예표된 그림자로 나타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어떤 종류의 그리스도가 구약에 예언되었고 예표되었고 그림자로 나타내어졌는가도 보아야 한다. 이미 지적했듯이 이 그리스도는 성육신되셨고 땅 위에 사셨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고 승천하셨고 강림하셨던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를 그러한 분이 되시게 한 하나님의 목적도 보아야 한다.


분배를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

그분 자신을 사람에게 분배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취하신 첫 번째 단계는 육신이 되시어 사람이 되심이었고(요1:14), 두 번째 단계는 생명 주는 영이 되신 것이다(고전15:45하). 이 두 단계들은 두 번의 “되심”을 포함한다. 주님은 먼저 육신이 되셨고 그 후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그분의 육신 되심은 구속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해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분이 생명 주는 영이 되심은 영이신 그분 자신을 사람 안으로 분배하여 사람의 생명이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는 부활 안에서 생명 주는 영이 되셨다. 그러한 영으로서 그분은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영접되도록 예비 되셨다. 우리가 그분 안으로 믿는 순간, 부활 안에서 생명의 영은 우리의 영 안에 들어와(롬8:16), 우리의 영 안에 거하신다(롬8:11).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리스도는 먼저 우리 영을 거듭나게 하여 우리의 타고난 생명에 더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새로운 근원과 새 사람의 새로운 요소로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함이다(요3:5-6). 그런 다음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혼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영에서부터 퍼져 나가신다. 만일 우리가 혼의 중심 부분인 생각을 영에 두고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의 영의 운행하심과 역사에 동역한다면 우리의 생각은 새롭게 될 것이다(롬12:2). 생각이 새롭게 될 때, 우리 혼의 또 다른 부분인 우리의 뜻과 우리의 감정도 또한 자연스럽게 새롭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이 우리 안에 더해질 것이고 우리는 그분을 표현하도록 신진대사적으로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될 것이다(고후3:17-18). 마지막으로 그분은 우리의 몸이 그분의 영광 안으로 들어가도록 구속하시고, 우리의 전존재가 모든 면에서 그분과 같아지도록 우리의 몸을 변형시키실 것이다(롬8:17, 23, 빌3:21, 요일3:2).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궁극적인 완성이다. 이 모든 단계들은 우리 안에서의 신성한 분배의 부분이다.


분배는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의 건축을 위한 것임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동역자 들이 교회를 건축하는 것에 관해 말한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께서 직접적으로 교회를 건축하신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그분이 사역자들과 복음 전파자들을 통해 교회를 건축하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사람의 말이다. 교회를 건축하는 참된 길은 에베소서 4장 7절부터 16절에 계시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건축하시는 길은 그리스도의 은사의 분량에 따라 신성한 은혜를 주시고 분배하심으로 인한 것인데, 그리스도의 은사들은 신성한 삼일성의 분배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과 요소로 조성된 사람들이다(7절). 각각의 은사 있는 사람에게는 분량이 있고 그 분량에 따라 신성한 은혜가 그에게 주어지고 분배된다. 오늘날 몸 안에는 은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사도요, 어떤 이는 선지자요, 어떤 이는 복음 전하는 자요, 어떤 이는 목자와 교사이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그분의 교회를 위해서 많은 은사들을 산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계신다. 승천 안에서 머리이신 그분은 모든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 능력과 역량을 발휘하는 이러한 많은 은사들을 여전히 교회에게 주고 계신다. 온전케 된 모든 성도들은 능력 있는 몸의 지체들이 된다. 온전케 되기 전에는 능력이 없지만 은사 있는 사람들의 온전케 함을 통해 능력 있게 된다.

모든 은사 있는 지체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신약의 사역의 일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청년들을 위한 여름학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온전케 되어 신약의 사역의 일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메시지에서의 나의 말 또한 성도들이 직접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할 수 있게 하는 온전케 함이다. 이 온전케 됨의 결과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더 이상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탄적인 잘못된 체계를 위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한다(엡4:13~14). 은사 있는 지체들의 온전케 함은 몸의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을 직접 건축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건축을 위해 먼저 우리는 모든 것 안에 계신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라야 한다(15절). 비록 우리 중 몇은 주님을 아주 사랑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많은 것들을 붙잡고 있다. 온전케 되고 있을 때, 우리가 날마다 주님을 접촉하는 동안 그분은 우리가 이러한 것들 중 몇 가지를 포기하도록 요구하실 것이다. 그분이 우리에게 포기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신발 한 켤레, 머리 모양, 화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신약의 사역의 일에 있어서 한 부분을 갖기 원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서 그분 안으로 자라야 한다. 우리는 이발소에 가고 옷을 입으며 어떤 결정을 내려고 무언가를 하기 전에 먼저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만유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랄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자란 후에는 그분으로부터 어떤 것이 산출될 것이다. 그분에게서 나온 이 부요한 공급은 우리 안으로 분배되고 우리를 몸 안에서 부요한 공급의 마디가 되게 하거나 특별히 기능 있는 부분이 되게 한다(16절). 우리 사람의 몸에는 많은 마디가 필요하다. 우리의 팔과 손, 손가락, 다리, 발, 발가락에 있는 많은 마디 때문에 우리는 유연하게 팔과 다리를 펼 수 있다. 게다가 마디 사이에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비록 팔이 큰 분량을 가지고 있고 작은 손가락이 작은 분량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모든 지체들은 그 자체의 분량에 따라 기능을 발휘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에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풍성하게 공급하는 많은 마디가 있다. 또한 서로 연결되고 짜여져 움직이는 많은 부분들이 있다. 마디가 공급하고 다른 부분들이 기능을 발휘하는 동안에 몸은 자랄 것이다. 이러한 몸의 성장은 스스로 직접 몸을 건축하는 것과 같다. 몸은 모리에 의해 직접 건축되거나 은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직접 건축되지 않는다. 몸은 온전케 되고 기능을 발휘하는 지체들에 의해 직접 건축된다. 머리와 은사 있는 지체들의 일은 간접적이다. 직접적인 일은 지체들에 의해 행해진다. 이 지체들의 기능에 따라 몸이 자라고 이 자람이 건축이다.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몸인 교회가 건축되는 것은 분배하는 방식에 의해서이다. 아버지가 분배하시고 아들이 분배하시며 그 영이 분배하신다. 게다가 모든 은사 있는 사람들이 분배하고 모든 온전케 된 사람들 또한 분배한다. 몸이 자라고 스스로 건축되는 것은 신성한 생명의 이런 분배를 통해서이다.


(참조 : 하나님의 경륜과 분배하심 p.10, pp. 28-30, 131-135, 신약의 결론 p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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