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감정
광주 사랑방
작은감자 2010-03-24 , 조회 (270)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만일 어떤 형제가 사람의 됨됨이에 있어서

공과를 배우고 일하는 것이 전보다 진보하고

성경 읽는 것도 전보다 진보하는 등 각 방면에서 진보하였으나

아직 섬세한 감정 안으로 진보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은 무언가 부족하고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사람의 외적 행위가 바뀌고

내적 비췸을 많이 받았을지라도

그의 감정이 불충분하다면 그가 배운 공과는

아직 얕은 것이고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만일 사람이 주님의 십자가의 역사를 받아들임으로

주님이 그 사람을 파쇄하셔서

그의 강팍한 의지가 더이상 강팍하지 않게 되고

복잡한 생각이 더이상 복잡하지 않게 되었다면,

즉 그의 의지와 생각이 파쇄되었다면

그의 감정은 갈수록 섬세해질 것이다.

주님은 한 번의 큰 비췸으로

당신의 의지를 처리하고 거꾸러뜨리실 수 있다.

당신이 스스로 똑똑하고 방법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의 큰 머리를 처리하신다.

누구이든 그분은 한 번의 큰 비췸으로 그를 거꾸러뜨리실 것이다.

그러나 감정은 한 번의 비췸으로 섬세해지지 않는다.

감정의 섬세함은 무수한 다룸 가운데서 축적되어지는 것이다.

당해보지 않은 일에서는 당신의 감정이 섬세해질 수 없다.

당신이 소홀히하는 일에 대해 주님은 환경을 안배하여 당신을 다루실 것이다.

이번에 통과되지 않으면 다음 번에 또 임하게 하고

거듭거듭 임하게 하여 밀가루같이 갈릴 때 비로소 당신의 감정은 섬세하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훈계받은 영 안에서 살고 섬세한 감정을 갖기를 원하신다.

그런 감정이 우리에게 있다면 우리는 바로 전에 훈계를 받은 사람같이

주님에 의해 부서졌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경외하는 마음과 떨리는 감정을 가지며

임의로 행동하거나 느슨해지지 않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 매번의 매맞음과 다루심은

다 우리의 감정을 전보다 섬세하고 예민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겉사람이 파쇄되는 가장 깊은 공과이다.

감정의 파쇄는 의지나 생각의 파쇄보다 큰 것은 아니지만 더 깊은 것이다.

 

워치만 니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 p.266-267, 한국복음서원]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