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붙듦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과 섞임
지난 주말에 쟌 리틀 형제님께서 오셔서
봄 국제 장로 집회에서 받은 말씀을 교회에 오셔서 몸의 유익을 위해
교통해 주신 것을 몇자 적어봅니다.
이번 봄국제 장로집회 전체 주제는
그리스도의 유일한 머리의 권위아래 생활하고 유일한 신성한 교통 안에 사는 것이다..
8개 메세지중 4번 8번 메세지를 교통해주셨다.
머리를 붙듦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과 섞임에 대해서 교통해 주셨다.
나에게 있어서 나 자신의 교회 생활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를 붙드는 것은 우리와 그분 사이에 직접적이고 친밀한 왕래가 있다는 것을의미 한다.
머리와 지체들 사이의 이러한 밀접한 왕래 안에서 그분의 모든 풍성은 지체들 안으로 공급되고
부정적인 모든 것은 머리로 부터 오는 생명의 공급에 의해 삼켜진다.
많은 때 큰 문제가 생길 때만 주님께 친밀히 다가가고 평소에는 멀리 한다.
왜 자녀와 짜여지지 못하나, 왜 형제와 짜여지지 못하나
머리로부터 오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생명의 공급을 통해 하나 될 수 있다.
주님은 우리와 간접적인 왕래를 원치 않으신다. 직접적이고 친밀한 왕래를 원하신다.
합당하게 훈련하기 위해 배우는 자의 태도가 필요하다.
온전히 얻은 것도 아니고 성숙한 것도 아니지만 나는 추구하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추구하는 신실한 이가 되기 원합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을 얻고 당신으로 표현되어지기 원합니다.
머리를 붙듦은 친밀한 연결이다. 친밀함을 방해 하는 것이 있다면
주님께 열어라! 주님 당신께 저의 마음을 열어 드립니다.
영과 태도(말의 음조)가 머리와 친밀함을 끊어 버릴 수 있다.
그 때마다 주님께 자백하라 주여 용서하소서! 피로 정결케 하소서!
그러므로 다시 친밀한 관계가 회복된다.
머리의 붙듦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일상 생활과 밀접하다.
부부 자녀 형제 자매의 관계에서 머리의 붙듦이 필요하다.
우리의 측면에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열어드려야 한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이고 우리가 그분께 우리의 마음을 열어 드릴때
머리로 부터 생명의 공급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머리를 붙들때 곧 계속해서 친밀하게 그분께 연결되어 있을때
그분의 풍성과 생명 공급이 우리의 존재 안에 들어와 우리의 생명 성장이 된다.
성도가 교통하려 올때 생명 공급을 해야 한다. 기도해야 한다.
교통중에 자신이 머리가 되지 마라.
우리의 교통에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가 머리라면 우리 자신이나 남을 기뻐게 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만 기뻐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그리스도의 몸의 섞임이다.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은 우주적인 하나를 보존한다.
섞임의 목표는 몸의 실재를 이끄는 것이다.
지방교회는 골격이다. 실재를 이끌기 위한 수단이다.
1994년도에 이형제님께서 교통하신 몸의 섞임을 위한 실재적인 길을 소개해 주셨다.
우리는 지방교회에서 점검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 얼마나 몸의 실재가 있는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는 절대적으로 부활 생명 안에 있다.
우리는 새로운 전이가 필요하다 . 예루살렘에서 머물지 말고 시온산으로 올라 가야 한다.
시온산의 원칙은 죽음과 부활이다. 우리는 연합된 영안에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 몸의 실재는 절대적으로 유기체이다. 유기체는 생명에 속한 것이다.
그리스도 몸의 실재는 온전케 된 하나님 사람들의 생활이다.
즉 과정을 거친 하나님의 생명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속성들이 우리의 미덕들을 통해 표현된다.
그리스도의 몸의 조성은 그리스도의 생명과 요소이며 그리스도의 실재는 그 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