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1:20
이삭은 믿음으로, 장래의 일들에 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습니다.
히 11:21
야곱은 믿음으로, 죽을 때에 요셉의 아들들을 각각 축복해 주었으며, 자기 지팡이를 의지한 채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히 11:22
요셉은 믿음으로, 임종할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떠날 것에 관하여 언급하였고,
자신의 뼈에 관하여 지시해 두었습니다.
히 11:23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모세가 태어났을 때에 그 아이가 잘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이나 숨겨 두었고,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히 11:24
모세는 믿음으로, 어른이 되었을 때에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였고
히 11:25
도리어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즐기기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학대 받기를 선택하였으며,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비난을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그가 받을 보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히 11:27
모세는 믿음으로, 왕의 분노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집트를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이지 않는 분을 봄으로써 흔들림 없이 견고하였기 때문입니다.
히 11:28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를 바르는 일을 시행하여, 장자를 죽이는 천사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히 11:29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으로,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렇게 해 보려고 하다가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히 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돌았더니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히 11:31
창녀 라합은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평화롭게 영접하였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은 이들이 멸망당하는 데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히 11: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내가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과 사무엘과 신언자들에 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것입니다.
히 11:33
그들은 믿음을 통하여, 나라들을 정복했으며, 의를 실행하였고, 약속된 것들을 얻었으며, 사자들의 입을 막았고,
히 11:34
맹렬한 불길을 꺼버렸으며, 칼날을 피하였고, 약한 가운데서 힘을 얻었으며, 전쟁에서 강하여졌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히 11: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가족을 맞이한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문을 받아 죽게 되어도, 더 좋은 부활을 얻기 위하여 풀려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히 11:36
또 어떤 사람들은 조롱받고 채찍질당하는 시련을 겪었고, 심지어 결박되어 감옥에 갇히는 시련까지도 겪었습니다.
히 11:37
그들은 돌에 맞아 죽었고 톱으로 잘라졌으며, 유혹을 받았고, 칼에 찔려 죽었으며,
양과 염소의 가죽을 두르고 떠돌아 다녔고,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히 11:38
이들은 사막과 산과 동굴과 땅굴로 떠돌아다녔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히 11:39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을 통하여 좋은 증거를 지녔지만, 약속된 것은 얻지 못하였습니다.
히 11:40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으며,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전한 것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회복역 각주)
40절의 1번 각주: 더 좋은 것
이 헬라어는 '더 우월한, '더 존귀한', '더 위대한'을 의미한다. 따라서 더 좋은 것이다. 이 단어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열세 번 사용되었다. 그것은 더 뛰어난 그리스도(히 1:4), 더 좋은 것들(히 6:9), 더 좋은 소망(히 7:19), 더 좋은 언약들(히 8:6), 더 좋은 희생 제물들(히 9:23), 더 좋은 소유(히 10:34), 더 좋은 고향(히 11:16), 더 좋은 부활(히 11:35), 더 좋은 것(히 11:40), 더 좋은 것을 말하는 것(히 12:24)이다. (다른 예는 히브리서 7잘 7절에 있는데, 그곳에서는 이 단어가 '윗사람'으로 번역되었다). 이 더 좋은 것들은 구약의 성도들이 예표와 비유와 그림자로 가지고 있었던 것들의 성취와 실재이다.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우리에 관한 것들, 곧 새 언약 안에서 주시기로 되어 있던 것들의 그림이었다. 이것들은 참되고 실재적인 것들이며, 예표와 비유와 그림자보다 더 좋고, 더 강하고, 더 능력있고, 더 존귀하고, 더 위대한 것들이다. 다만 그림자만 갖고 있었던 구약의 성도들이 완전하게 되어, 새 언약의 실재적인 것들을 우리와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우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새 언약의 실재적인 것들을 떠나 옛 언약의 그림자들로 돌아가야 하겠는가?
우리가 없이는: 천 년 동안 왕국에 참여하는 것(계 20:4, 6)과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을 함께 누리는 것(계 21:2-3, 22:1-5)은 둘 다 단체적인 문제이다. 왕국 잔치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의 이기는 이들 모두를 위한 것이며(마 8:11), 복된 새 예루살렘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믿는 이들 모두로 이루어질 것이다(계 21:12-14). 그러므로 신약의 믿는 이들이 없다면, 구약의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약속하신 것을 얻을 수 없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좋은 것들을 얻고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을 완전한 것에 이르게 하는 신약의 믿는 이들이 필요하다. 지금 구약의 믿는 이들은 그들이 완전한 것에 이를 수 있도록, 우리가 계속 전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