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3일
아침의 누림
고후 13:14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빌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격려나, 사랑의 어떤 위로나, 영의 어떤 교통이나, 어떤 애정과 동정심이 있다면
이 교통은 ‘성령의’ 교통이다. 주님의 생명은 성령 안에 있다. 주님의 생명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왔고 우리 안에 있다. 주님의 생명 안에서의 우리의 교통은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이것은 또한 성령의 교통이라고 불린다. 우리가 하나님과 주님과 교통을 하든, 교회나 어떤 성도와 교통을 하든, 우리의 모든 교통은 성령 안에 있고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령 안에 있고,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의 교통은 우리가 성령 안에 있고 성령을 따를 때에만 우리의 생명의 체험과 영적 실재가 된다.
생명의 교통은 성령 안에 있고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교통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온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어, 우리 안에서 운행하시는 주님과 성도들과 교통을 갖도록 하시며, 심지어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시고 강권하신다. 우리가 그 영을 따르고 그 영을 생각할 때, 그분은 우리를 인도하셔서 주님의 생명의 교통 안에 살도록 하실 것이다.
오늘의 읽을 말씀
신성한 삼일성을 완전히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에 참여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신성한 삼일성이 신학을 교리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체험과 누림을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근원이고,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의 과정이다. 사랑이 밖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은혜가 된다. 그다음 성령의 교통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하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전달, 곧 전송이다. 사랑은 아버지 하나님이고, 사랑의 흘러나옴인 은혜는 아들 그리스도이며, 교통은 은혜이신 아들의 존재와 사랑이신 아버지의 존재를 옮겨 붓기 위한 성령의 전달이다. 성령은 우리 존재 안으로 신성한 풍성을 전달해 주신다. 이 전달이 교통이다. 오늘날 신성한 삼일성은 이렇게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 안에서 운행하고 계신다.
우리 안에는 두 종류의 순환이 있다. 하나는 우리 신체 안에 있는 피의 순환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영 안에 있는 신성한 삼일성의 순환이다. 이런 순환들 중 하나라도 멈춘다면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어느 한 면에서 죽을 것이다. 고린도후서 13장 14절은 우리에게 이런 내적이고도 영적인 순환을 상세히 묘사해 준다. 이 순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서 공급이 된다. 이것은 전기의 흐름이 도시 전체의 전력의 공급이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오늘날 이 지구상의 모든 대도시들은 전기를 의존한다. 수년 전에 뉴욕 시에 전기 공급이 몇 시간 동안 끊어졌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도시 전체의 생활이 중단되었다. …우리는 교회생활 전체가 …우리 영 안에서 전류처럼 흐르시는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그 영의 교통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의 영은 생명의 교통이 이루어지는 지점이다. 이것은 빌립보서 2장 1절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만일 우리 서로 간의 교제가 영 안에 있지 않다면 즉시로 그것이 사교적인 모임이 된다는 것을 가능한 한 분명하고도 강하게 지적해 주어야 한다. 우리의 교제는 반드시 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교제가 교통이 된다. 이것은 신성한 생명의 흐름이 우리의 타고난 생명인 우리 혼 안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생명의 교통은 우리 영 안에서 하나님의 영에 의해 수행된다. 우리 생각이 교통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교통은 우리의 생각 안에 있지 않다. 우리의 감정은 교통을 즐거워할지도 모르지만, 생명의 교통은 우리의 감정 안에 있지 않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영 안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영과 분리되거나 우리의 영 밖에 있다면, 즉시 우리 서로 간의 만남은 일종의 사교적인 모임이 되며 더 이상 생명의 교통이 아니다. 생명의 교통은 반드시 우리 영 안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