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변화와 성숙의 차이(Hannah님의 글)
자유게시판
생명강가 2009-09-02 , 조회 (407)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창세기는 성경의 씨인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요셉의 통치와 다스림을

포함한 야곱의 생명의 변화와 성숙을 위한 지도를 자세하게 보게되니

제게는 꿈쟁이 요셉처럼 이 부분에 있어서 '꿈꾸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노정이 이렇듯 자세히 그려져 있는 것이 창세기라니...

삼일하나님, 곧 아버지의 선택과, 아들의 구속과 축복과 은혜,

그 영의 변화시킴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 세사람의 예표에 모두 다 있습니다.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때에...'(창 37:2)

야곱의 약전을 말하면서 요셉의 이야기가 펼쳐짐은 요셉은 야곱의

연장임을 말해줍니다.

 

애굽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바로를 축복하고 그 앞에 선 자가 누구인가?

바로 변화와 성숙된 요셉을 포함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과 답에는 성경에서 깊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의롭게됨은 1장이면 족하나, 야곱의 천연적인

생명을 다루시고 허무시고 바꾸는데 10장을 할애합니다. 

얼마나 질기고 질긴 생명인지요...

그 마음안에 보물이 아무것도 없을때까지 입니다.

분투도, 고통도, 재물도, 라헬도, 채색옷을 입힌 요셉도, 베냐민도...

아무도 그의 마음이 만져지지 않을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 변화는 있었지만, 요셉과 같은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을

만큼 생명이 부족함이 없는 성숙은 아직 아닙니다.

 

요셉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그가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해 37장에 3가지를 누렸습니다.

 

첫째는 그는 양치는 목자였습니다.

그 누구도 목양하지 않은 사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소중히 품고, 공급

하고 목양한 사람만이 그에게 순종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목양할 수 있을까요?

우리안에 조성된 그리스도가 목양할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었습니다.

야곱은 특별히 요셉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안에 조성된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세번째는 형제들을 섬겼습니다.

형들은 그를 죽이려했지만, 요셉은 끝까지 그들을 섬겼습니다.

모두가 다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께 얻어지기 까지 그의 눈물을 감추고

신분을 감추고 그들을 섬겼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시기와 미움과 격동하는 분노는 요셉을 죽이려하였지만,

그러나 요셉은 부족함이 없는 생명으로 그들을 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이군요.

 

'성숙'은 생명이 충만한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생명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목양하고, 받고, 섬기고, 이깁니다.

 

창 38장은 유다의 근친상간이 나오는 장입니다.

얼마나 영적인 안목이 느슨해 있었으면 며느리 다말을 분별하지 못했을까요.

그러나 39장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는 장입니다.

요셉은 자기옷을 버려두고 도망한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분노에서 정욕에서 요셉과 같이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우리안에 '조성된 그리스도'가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변화가 아니라 생명의 성숙에 대해 다시한번 생명의 공급을

누리게 하심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

   비밀번호   비밀글
홈페이지
좌측 상자안의 글자를 입력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