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갈망과 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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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강가 2010-12-11 , 조회 (40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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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의 갈망과 애호

글/생명강가(2010.12.11)




눅10:41-42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대답하셨다.

“마르다여, 마르다여, 그대가 많은 일로 염려하며 애쓰지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입니다.

마리아는 좋은 것을 선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때 주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기보다는

주님을 위한 일과 봉사에 열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항시 불평과 다툼이 있습니다.

그 시초는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의중을 깨닫고 피의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자신의 생각대로 자기의 수고와 노력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했던 것이

오히려 분노와 질투로서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회복역 성경 누가복음 각주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42의1 각주>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구원받은 믿는 이들이

자신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많은 일을 하는 것보다

(비교 삼상15:22, 전5:1),

자신의 갈망을 알기 위하여 말씀 듣는 것을 더 원하신다(눅10:39).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바로 뒤에 나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사람이시며 죄인들의 이웃이 되시는

구주의 동정과 사랑을 보여 준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이시며 믿는 이들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의 갈망과 애호를 보여 준다.


구주께서 동정과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며,

구주께서 그분의 갈망과 애호를 표현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을 섬기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주의 동정과 사랑을 깨달아야 하고,

구원받은 후에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주님의 갈망과 애호를 알아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은 비단 율법주의자들과

종교적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겠습니까?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없다고

우리는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벼는 이삭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입니다.

우리는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고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따지지 마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나무랄 것이 없고 순결하여,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빌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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