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야기
영광 행전
생명강가 2009-03-11 , 조회 (57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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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야기

글/생명강가(2009.3.4)



도회지에서 호남 지방으로 이주해 온지 어느덧 7년째 되었습니다. 시골에서의 삶이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쯤 되면 별로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 살아가는 생활이 단조롭기만 합니다. 그것은 아이들 노는 것에서부터 표시가 납니다. 군것질이라야 기껏해야 찐 고구마 한두 개 호주머니에 넣고 요즈음은 논두렁이나 수로 뚝방따라 소리소리 지르며 깡통 불 돌리는 것이 고작입니다.


나도 뚱딴지같지만 할 말이 궁색하다보니 오늘은 시골 사랑방에 모여 앉아 나누던 귀신이야기나 좀 해 볼까 합니다. 어릴 적, 가만히 추억해 보면 어두운 시골에는 밤만 되면 무슨 귀신들도 그리 많은지 저녁밥 먹고 모였다 하면 한번 시작한 귀신이야기가 밤새는 줄 모르고 끝날 줄 모릅니다. 정말 어떤 이야기는 듣다보면 소름이 끼치고 평생 잊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귀신이야기를 잘 하시는 분 중에 나사렛 시골출신이신 예수님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루는 거라사 지방에 가시자 무덤사이에서 거하는 귀신들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흉측하게 옷도 입지 않고 쇠사슬과 쇠고랑도 아무 소용없는 난폭한 군단귀신이었습니다. 마8:29에서 보면 귀신들이 소리쳐 말하길 “… 때가 이르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시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때가 이르기기도 전에’는 하나님께서 귀신들이 고통 받을 때를 정하셨으며, 귀신들도 그 때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그 때는 천년왕국 후가 될 것이며 그 고통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계20:10, 13). 아무튼 예수님께서 그들의 말대로 아직 그 때가 아니므로 그들을 심판하실 수는 없고 다만 돼지 떼 속으로 가는 것을 허락 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돼지 떼가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빠져 죽게 되었고,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보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귀신은 사람들 안에 들어와 괴롭히기도 하고 심지어 몸이 있는 가축에까지 들어가 손상을 준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아직 때가 이르기 전에는 우리가 비록 주 예수님의 구속에 근거하여 영적 전쟁에서 마귀의 영역에 갇히고 억눌린 자들을 해방시킬 수는 있지만, 당장 그 귀신들을 진멸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귀신들을 쫓아내었다’라는 말은 있지만 ‘귀신을 죽이고 진멸시켰다’는 말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은 믿는 이들 앞에서 쫓겨나기는 하지만 결국 어딘가에서 또다시 심판의 때까지 계속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마12:43-45). 가령 어떤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그 귀신에게 명하여 귀신을 쫓아내었다 하더라도 그는 주변의 다른 가족에게 옮겨가며 계속 숨어서 또 역사 한다는 것입니다. 즉 전쟁으로 말하면 국지전에서는 주님의 이름 앞에 밀렸으나 귀신들도 요즈음은 더욱 악랄하여 게릴라전을 펼치듯 시와 때도 없이 사방에서 사람들을 갖은 방법으로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러니 귀신을 쫓아 낸 것으로만 기뻐하지 말고 주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성도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눅10:20).


‘영접한 사람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주셨다.’(요1:12)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 식구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행16:31)


여기에서 믿음은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believe into) 것입니다. 즉 주님의 실재를 받아들이고 또한 그분 안으로 믿어 들어가는, 다시 말해서 그분의 몸인 교회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어 거룩하신 하나님을 표현하므로 모든 귀신들의 영역에서 완전히 해방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체험 한 가지를 이야기 하겠습니다. 1986년 4월경 나는 주님을 영접하고 7월에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전혀 예수님을 믿지 않은 가정에서 아내를 맞이하고 보니 이상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중 특별히 기억나는 것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아내는 손위처남이 세 분이나 있는 막내였습니다. 그중 둘째 처남댁이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우울증을 보이더니 항상 그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쓰는 둥 이상한 행동을 하더랍니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었고 어느 날 신혼 가정을 꾸민 우리 집에 그 처남부부가 다녀간 직후 남편과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그 부인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가 아내와 결혼하므로 아내의 혈육인 그 오빠와 우리 가정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다 보니 그 가정에 역사하던 귀신이 충동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과 귀신들의 충돌로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괜히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였듯이 그 당시 나 때문에 괜히 처남 가정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어린 조카들을 고모인 아내가 큰 아이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돌봐 주어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조카들은 주님 안에서 잘 자라 주었고 작년에는 그 큰 조카가 결혼까지 하여또한 아들을 낳아 어버이가 되었습니다. 아들을 버린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는 아기를 대하는 마음이 아마도 남다를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귀신이야기가 있었지만 영광 귀신이야기를 하려고 장황하게 서두를 꺼냈습니다. 2007년 5월경입니다. 아직 그해 8월에 있을 복음절기나 영광교회 간증선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던 시절이었고, 우리는 다만 장성교회 의사인 J형제님과 동역하여 매주 목요일 영광에서 ‘침술봉사 및 복음집회’를 7개월째 해 오던 어느 날, 홍농과 법성 쪽에서 봉고차를 운행하던 우리 앞에 난생 처음 보는 폭우가 쏟아져 나는 잠시 법성포구 해안도로에 차를 세우고 멈춰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너무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므로 순간 나는 복음집회를 방해하는 악한 자의 역사임을 깨닫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당시 오후 6시이면 아직 환한 시각인데도 그날은 칠흑같이 어둠이 깔려 그곳을 조심스럽게 빠져 나오며 나는 마치 물속에서 운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집회에서 귀신들을 꾸짖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뉴스를 보고서 우리는 더욱 놀랐습니다. 법성포구 유사 이래 처음 있는 일로서, 포구로 갑자기 밀려든 큰 해일로 인하여 포구 내 1층 굴비상가들은 거의 물에 잠겨 굴비 냉동 창고들에 물이 들어 손해를 많이 보게 되었고 인명피해도 10여명이나 났던 것입니다. 아마 그때 폭우가 두려워서 우리가 그 자리에서 조금만 더 지체했더라면 우리 차가 봉변을 당할 뻔 하였습니다. 아무튼 나는 그런 면에서는 어딜 가든지 귀신들 때문에 여러 사람들에게 물질적 피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광은 그 당시에도 집회장소가 있어서 사람들이 언제쯤 교회를 세울 것인지 기대하던 터라 침을 맞으며 지속적으로 복음을 들은 160명의 사람들 중 적어도 10여명은 교회생활로 연결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했었는데, 막상 우리가 침례를 행하려고 하니 귀신들이 또 크게 방해하므로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명만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나사로처럼 죽은 자와 같은 분으로서, 3년 동안 만성 신부전증으로 이틀에 한번씩 투석을 받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형제님은 그 후 건강이 놀랍게 좋아지셔서 지난 일년 반 동안 교회의 간증을 굳건히 지켜 오셨습니다.


수많은 냉동 창고가 물에 잠기고 큰 인명 피해가 난 대가로 한 명의 형제님이 구원 받은 이 이야기를 글로 쓰면서, 마침 군에서 휴가 나와 있는 우리 아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들은 농담으로 듣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나도 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원래는 없었는데 영광교회의 어떤 일을 계기로 이젠 써야할 부담이 생겼습니다. 이 글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영적인 일들이다 보니 법성포 냉동 창고 주인들이 몰려와 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돼지 떼를 치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각지에서 교회의 간증을 지키고 계시는 형제자매님들은 사실 예수님의 간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각지교회를 귀히 보시고 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시며 돌보고 계시는 것입니다(계2:1). 이제 우리의 삶은 주님의 삶과 동일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고 그 표현과 외양, 본질과 기능, 심지어 능력에서도 주님과 똑같아야 합니다. 교회는 나이 들어 전원생활을 원하거나 직장따라 옮겨가서 우연히 세워지는 것이 아님을 주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귀신이야기’ 본론은 꺼내지도 못하고 여기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만약 이대로 이 글을 계속 한다면 오히려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제한을 받았습니다. 언젠가 나의 부끄러움을 기쁨으로 간증할 수 있을 때가 오면,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그때 다시 순종하겠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와 악한 영들에게 증거해야 할 때가 분명히 오리라 여겨집니다.

아멘,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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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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