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글/생명강가(2008.10.3)
예수께서 몸을 돌이키시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를 위해 우십시오..”(눅23:28)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할 때
로마 군인들은 시골에서 올라와 힘깨나 써 보이는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억지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웠고
어떤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아무도 대신 질 수 없는.. 오직 주님
만이 유일하게 지실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시고(막10:38-39)
또한 여인들도 주님을 위해서보다는 오히려 그들과
그들의 자녀를 위해서 통곡했어야 했었습니다.
그 당시는 그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그 날(눅23:29)이 닥치면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하는지..
이 말씀을 대하면서 나는 주의 일에 대하여
너무 신령해지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가 실수가 많았던 것이 꼭 우리와 같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베드로 형제님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고 난 이후에 주님은 그에게
교회에 대한 이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과
제 3일에 부활하실 것도 알려주셨습니다.
이때 성경은 기록하기를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한 쪽으로 가서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라고 하며 책망하기 시작하였다.(마16:22)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기 쉬운 말이니까 그렇겠지만 사실은
피조 된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꾸짖는 꼴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고 있다면 과연 우리는 상상이라도 하겠습니까?
오늘날 믿는 이들 중 교회 안팎에서 너무나 쉽게 정죄하고
서로에 대하여 불신하며 함부로 말하기가 일쑤입니다.
이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대변인처럼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성경에서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아2:15)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와중에서도
그것을 사람의 일로만 생각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지만
과민 대응하는 베드로처럼 교회를 정화시키려는
주님의 손길을 막는 자들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남의 다리 긁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음성의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항시 바람 잘날 없던 우리에게 그분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분은 절대 누가 옳고 그름을 판가름 하려 하시지 않고
이유도 원인도 묻지 않으십니다. 다만
“김형제 힘들지요? 그 일로 형제가 주님과 가까워졌나요?”
하시고 나서 함께 기도하시자고 하십니다.
언젠가 한 번은 봉사자 집회에 불만을 품고 다툼이 있을 때
형제님이 오셔서 똑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는 봉사집회에서 합당한 실행을 위하여 장로형제님께
말대꾸는 하였지만 내가 틀림없이 옳았다고 맹세하며,
나는 주님과 아주 가깝다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형제님께서 함께 기도 하시자고 하실 때..
나는 도저히 기도 할 수가 없어서 결국 형제님들을 미워했던 것을
눈물로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장로형제님께도 나의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절대로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땅이 하나님의 발 받침대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크신 왕의 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대가 머리카락 하나도 희게 하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말은 다만 ‘예’는 ‘예’라 하고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마5:34-37)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이 그때 당시는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던지 괜히 미안스럽고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과 권위에 속한 것임을 볼 때
하나하나 내려놓고 나는 조용히 주님을 앙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