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코메디
생명강가
생명강가 2009-03-03 , 조회 (31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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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코메디

글/생명강가(2008.10.21)




22년 전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부터 비로소

성경을 생명의 방식으로 대하면서 나는 성경 안의 행하신

주님의 명쾌한 질문과 답변을 기분 좋게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그 사람을 보고서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랍비님, 누가 죄를 지어서 이 사람이 눈먼 이로 태어났습니까?

이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의 부모입니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무슨 좋지 않은 환경이나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 누구의 죄 때문 일 것이라고

생각 하는가 봅니다.(행28: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하시며

그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묻고 그를 바리세인들에게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바리세인들도 사람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

그에게 직접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라는 분께서 내 눈에 진흙을 발라 주시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십시오.’라고 하여 내가 가서 씻었더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이 대답을 수천 번 한다 해도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더욱 신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세인 중에 어떤 이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닙니다.”하고 또 다른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적들을 행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며

그들 가운데 분쟁이 생겼습니다.


지금부터 십오륙 년 전 기독교 서적을 취급하던 때 일입니다.

경기도 군포시에 순복음 신학교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곳에서

복음서원 서적을 가판대에 진열하고 전시 판매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신학생들 중 한 무리가 “왜 이단서적을 교내에서 파느냐?”고

항의를 해 오고, 그 옆에서 책을 구입하던 또 한 무리는

“왜 워치만 니가 이단이냐? 이단이 그런 생명의 말씀을 펼 수 있느냐?”며

우리를 옹호하여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체험하고 눈을 뜬 사람에게는 너무나 분명하고 쉬운데,

그렇지 못한 교리와 관념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혼돈과 억측만

무성하게 나오는 것 같습니다. 결국 그들끼리 해결점을 못 찾고

문제의 당사자인 그 눈뜬 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대의 눈을 뜨게 하였으니 그대는 그가 어떤 사람

이라고 말하겠소?” 그러자 그가 “그분은 신언자이십니다.”라고

거침없이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단순한 답변에 할 말을 잃은 유대인들은

하나마나한 질문이었음을 후회하고 속이 씁쓰름했을 것입니다.

안식일과 교리에 빠져 여전히 예수를 이단일 것이라고 단정한 그들은

이제 그의 부모까지 불러들여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아이였던 것을 우리가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지금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 모르고, 또 누가 그의 눈을 뜨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에게 물어 보십시오. 그가 장성 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 할 것입니다.”


사실 그의 부모는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그 유대인들이 결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떤 영적 희극과 같았습니다.

예수님 한분을 가운데 두고 서로 이해가 얽힌 각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내면세계를 표출해 내는 이야기입니다.

유대인들은 눈먼 이였던 그 사람을 다시 불러 그를 회유하여

종교적으로 매듭지으려고 합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오.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줄을 압니다.”

라며 그들은 설득하였으나 그는 그것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나는 그분께서 죄인이신지 아니신지 모르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전에는 눈먼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본다는 것입니다.”라며 여전히 사실만을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사람이 그대에게 무엇을 하였소?

그가 어떻게 그대의 눈을 뜨게 하였소?”라며 재차 다그쳐 물었습니다.

진흙에 침을 발라 눈먼 이의 눈에 바른 주님의 이상한 행위를

영적 소경이었던 그들로서는 오히려 그것을 미신적인 사술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미 말 하였는데도 듣지 않더니,

왜 다시 듣고자 합니까? 여러분도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이 말은 그가 대답하기 싫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을 부인하여 억지로 그 사실을 왜곡시키려는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빗대어 빈정대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T.V 코메디 프로를 보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이렇게 웃기는 이야기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한편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모함하여 죽이려는 유력한 종교 지도자들이고,

그 상대는 눈멀고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약한 거지입니다.

나는 이 사실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코메디 작가는

분명 우리 주님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이없이 당한 유대인들이 그에게 욕을 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젊잖게 이런 식으로 기록되었지만

“네 놈은 그 사람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그 사람은 어디서 굴러온 자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아마 그들이 혈기를 부리며 그 이상의 고약한 욕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영적 싸움에서 혈기를 부리는 것은 이미 패배한 것입니다.

그는 이 기회를 붙잡고 이제 마지막 말로 완승을 합니다.


“그분께서 내 눈을 뜨게 하셨는데도, 여러분은

그분께서 어디서 오셨는지 모른다니, 참 이상한 일입니다.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말은 듣지 않으시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말은 들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시간이 시작된 이래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이의 눈을

누군가가 뜨게 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이분께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으셨다면,

아무것도 하실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나는 도대체 누가 거지이고 누가 권세자인지 모르겠습니다.

소경되었던 자가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고, 빛을 본 이후에

오히려 영적인 권세자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생각에 죄로 말미암았으리라는

죽음 같은 환경이 오히려 주님의 산 말씀과 함께

권세 있는 바리세인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함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도 각각 헤어나기 어려운 환경가운데서

주님의 산 말씀을 의지하고 보잘것없는 우리의 혼 생명을 기꺼이

잃어버리고, 그날에 영광스런 생명으로 보상받기 원합니다.

더불어 우리의 약함이 주의 강함이 되기를 사모합니다(고후12:10).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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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나임
답글
얼마전에 제가 주님은 우리 각 사람에 대해 러브스토리를 쓰시는 최고의 드라마작가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 보니 또 가장 유능한 코메디 작가이시네요. 형제님의 맛있는 요리 정말 맛있게 먹고 누리고 갑니다.
수정진주
답글
말씀을 맛있게 요리해주시니...ㅎㅎ(전 형광등!! 주님은 코미디 작가로 글 내놓으셨는데, 읽는 저는 뭔~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획~지나가니, 주님 얼마나 힘 빠졌을까요? 한바탕 웃고 가야하는데...)
생명강가
답글
눈 뜬자의 천연덕스러움과 바리세인들의 조금함이 잘 대조되어야 더욱 실감이 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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