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시는 예수님
글/생명강가(2008.12.27)
이른 아침,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
모여든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 이른 아침에 또 다른 한 무리,
율법학자들과 바리세인들이 몰아 닥쳤습니다.
그들은 어디에선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끌어다 주님 앞에 세웠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이미 살벌하게 돌들이
들려 있었고, 거기에 모인 무리는 긴장했습니다.
여인은 이제 부끄러움도 체념한 듯
속곳도 여미지 못하고 힘없이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거론하며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
예수님의 처결 방법을 묻고 있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율법의 계명들을 친히 돌 판에
기록해 주셨습니다(출24:12, 신4:13).
평소엔 늘 말씀으로만 하시던 하나님께서
그 날따라 글로서 언약하신 것입니다.
문서에는 무엇인가 확실한 효력이 있습니다.
그 옛 언약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는
여인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 하고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목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굽히시어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이 이상한 행동 후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여러분 중에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지십시오.”라고 하시고는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그러자 그 무리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다 물러가고 이제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여인만 남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땅에다 무슨 글을 쓰셨기에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혼비백산 사라졌을까요?
나는 이 성경을 읽을 때마다 주께서 기적으로
연대별로 그들의 죄들을 기록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사람들의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 바벨론 왕 벨사살 때에도 예루살렘에서 탈취한
거룩한 성전의 금은 그릇들을 왕이 더럽히므로 그때도
하나님은 손가락으로 왕궁 벽에 아무도 알 수 없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란 글을 쓰신 적이
있습니다(단5:24-28). 그 내용인즉,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를 세어서 시대를 끝냈고,
왕은 저울에 달아보니 부족하여, 그 나라를 메대와
바사사람에게 준바 되었다.’란 뜻이었습니다.
한편 마태복음 13장 ‘씨 뿌리는 비유’에서도
땅은 사람들의 마음임을 밝혀 줍니다(마13:18-23).
그 땅의 상태에 따라 말씀을 받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바울도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편지이며
우리의 마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쓰셨다고
말씀합니다(고후3:3).
나는 더 이상은 주님이 쓰신 글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나머지는 언젠가 우리 주님을 만나서 한가하게 차 한 잔
마시며 여쭈어 볼까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어야 할 분명한 것은
율법에 의해서는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롬3:10).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롬3:24).
그러나 예수님마저도 이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으니
우리는 율법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도
그 누구를 정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선과 악으로 가득찬 타락한 상태이나
우리 주님은 긍휼과 사랑이심을 또 한 번 깨닫습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종교적인 옳고 그름에서 해방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우린 구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