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여인(눅7:36-50)
글/생명강가(2008.7.23)
이스라엘에 희년이 선포되면 자기 소유지를 팔았던 사람들도 다 그 소유지를 되찾아 돌아가고 종으로 팔렸던 사람들도 해방되어 그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그때 온 땅에서는 기쁨의 양각나팔을 불어대고 모두가 즐거워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사람은 세리들이요, 둘째는 우리 같은 창기들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들은 그 시대가 만들어 놓았지만 모두가 매국노들로 여기고, 우리 창기들은 가고 싶어도 돌아 갈 수없는 처량한 인생들인지라 기쁘기는커녕 그날이 오면 더욱 괴로움만 더합니다.
나는 가난한 유대 가정의 맏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모세의 율법을 따른 유대교의 영향을 받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떠나지 않았으나 가정 형편상 일찍부터 가족을 부양해야 했으므로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누가 쉽게 돈을 벌수 있는 곳을 소개하여 잘못인줄 알면서도 술집 접대부 일을 시작하였는데 점점 젊은 때의 호기심과 죄악 된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한번 두 번 남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세월이 흘러 이젠 이 도시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소문난 창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새겨 보면 후회만 막심합니다. 사람들에게 속고,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돌보던 가족도 떠나고, 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다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을 쓰는 어떤 사내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길에서 우연히 그들을 마주치면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우리 창기들을 빗대어 욕하고 가장 의로운척하는 꼴을 보면서도 내 몸 하나 목구멍에 풀칠하겠다고 아직도 이 짓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이라고 마음을 터놓고 지내며 때로는 도움을 주기도 하는 세리 친구들이 있어서 조금 위안을 삼고 사는데 그 친구들 동료 중에는 요즘 메시야라고 소문이 난 예수님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듣는 그분은 사람을 차별대우 하지 않으시고 친절하시며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신다는 이야기가 요즘 나의 관심을 조금씩 끌기 시작 했습니다.
언젠가 그 제자라는 세리의 집에서 예수님을 모시고 많은 세리들을 초청하여 함께 잔치를 한 적이 있는데 바리세인 한 무리가 와서 “왜 여러분의 선생님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십니까?”하고 제자들에게 따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강건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습니다.”라고 하시며 점잖게 충고하셨다는 말을 듣자 나의 가슴이 마구 뛰었습니다.
예수.. 그분은 진정 나에게도 친절하실까?.. 그분은 유대인의 율법대로 나를 정죄하고 내치지나 않으실까?..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경멸하지나 않으실까?.. 차라리 내가 중풍병이나 나병환자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면 진작 그분께 나아가 치료받고 죄사함을 받았을 터인데.. 그분은 진정 나에게도 구주가 되실까?.. 만약에 그분이 그런 메시아시라면 평생을 그분의 노예가 되어도 좋으니 한번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싶었습니다.
그날 이후 생각해 보면 길 가의 개만도 못한 나의 삶에 뭔가 모르게 실오라기 같은 소망의 빛줄기 같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모함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분께서 나인성에 오셔서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과연 그분은 어떤 분이실까?.. 처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아들이란 소문이 정말 맞단 말인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오셨다는 그분의 말을 정말 확인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내가 주저하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이 도시에 유력한 시몬이라는 바리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초청으로 예수님이 오셔서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하필 바리세인의 집일까?’하고 염려는 되었지만 나는 결심을 했습니다. 만약 그 바리세인 앞에서도 외식하지 않고 그분이 나를 받아 주신다면 그분은 참 구주이실 것이라고..
나는 이판사판 죽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평생 아껴두었던 향유가 든 옥합을 가슴에 안고 얼굴을 가리고 창녀 표시를 하고 그 집에 들어섰습니다. 가끔 먼 곳에서 손님이 올 때면 몇 번 이 집에 불려온 적이 있어서 다행히 아무도 제재하는 사람이 없었고 나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서자 시몬은 안색이 돌변하면서 옆에 앉아있는 도시의 유지들을 번갈아 보며 혹시 누가 이 여인을 초대하지나 않았는지 힐책하는 듯했습니다.
나는 이제 막 식사가 시작된 듯한 분위기를 깨고 사뿐히 고개만 숙이고 시몬과 나란히 마주 보고 등을 기대고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다행이 그분은 나를 편안하게 바라보시며 마치 기다리셨다는 듯 빙긋이 미소 지으셨습니다. 나는 여전이 두려운 마음으로 그분의 뒤로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엎드려 그분의 발에 손을 댔습니다.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하였으나 그분은 조금의 미동도 없으시고 외식하거나 놀라지 않으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내안에서는 말할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이 복 받혀 올라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분은 구주가 틀림없었습니다.
눈물이 내주님의 발을 다 적시도록 울던 나는 흘러내린 머리털로 그분의 그 귀한 발을 닦아 드리며 나 같이 천한여자의 머리털은 내 주의 걸어가시는 길바닥을 쓸어도 합당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발에 여러 번 입마추고 또 향유를 부어 그 귀한 발에 바르며 쉬임없이 감사의 입맞춤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발걸음은 시몬을 위한 것이 아닌 나 같은 죄인을 위한 주님의 발걸음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시몬에게 누가 무슨 돈을 빌려주는 말씀을 하신듯 하였는데, 아마 주님이 아시는 누군가가 오백 데나리온이나 빌려가서 못 갚은 일이 있었나봅니다. 그러나 지금 나의 관심은 온통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관대하게 대해 주시는 그 주님 한분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주님은 자리를 고쳐 앉으시며 나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시며“그대의 죄들이 용서 받았습니다.”라고 하시자 나는 즉시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듯 뛸 듯이 기쁘고 홀가분하였습니다.
나는 주위의 사람들이 못마땅해 하고 있음을 알고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때서야 온 방안에 향유 냄새로 가득하여 그분들의 식사에 큰 방해를 하였음을 알아 차렸습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들어올 때보다 더욱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서 나왔습니다. 예수님만이 그 자리에서 일어서시며“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십시오.”라며 손짓하시고 배웅해주셨습니다.
그러시던 주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귀한 보혈을 흘리시고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시므로 우리 같은 세리와 창기들에게도 희년의 문을 여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주예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