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시대와 바벨론의 멸망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5-22 , 조회 (1138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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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유대인들은 4차에 걸쳐서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첫번째는 B.C.605년에 다니엘을 포함한 왕족들과 귀족 계급이었고, 두번째는 B.C.597년에 여호야긴 왕을 포함한 일반 백성들과 모든 방백들과 군사들 1만명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세번째는 B.C. 586년에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이 최후로 함락될 때 시드기야 왕을 포함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네번째는 B.C. 581년 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의 시위대장인 느부사라단아 마지막 남은 유대인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유대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유대 본토에 남겨진 백성들은 극히 미천한 자들로 토지를 갈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자들은 불과  2만 명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멸망한 후 각처로 도망갔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왔으나 황무해진 그 지역의 형편은 기아와 무법천지였습니다.

 

반면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에게 바벨론 정권은 비교적 많은 자유를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집을 짓고 사업을 할 수도 있었으며, 관리에 등용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되어서 성전을 대신한 회당을 중심으로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며 민족의 흩어짐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신앙과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남유대왕국의 사람들로서 유대지파와 베냐민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왕국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의 나머지 10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앗시라아)에게 망하고 일부는 포로로 잡혀갔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을 강제로 자신들의 다른 영토로 이동시켰고, 남아 있는 자들에게는 이방 민족을 이스라엘과 혼합되게 하여 새로운 사마리아족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의 잊혀진 열 지파로 사라져 갔습니다.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있던 유대인들은 바벨론이 바사(페르시아)에게 망한 후, 바사제국의  고레스왕(고레스2세)이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락함에 따라 1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 때가 B.C. 538-537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스룹바벨이었습니다. 그 후 B.C. 457년 아닥사스다왕 때에 에스라를 지도자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B.C. 444년 2차와  같은 아닥사스다왕 때에 유대인 느헤미야가 유대지방의 총독이 되어 민족을 이끌고 3차 귀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귀환 후 활동하던 선지자들은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입니다.

 

바벨론제국이 B.C. 586년에 유대왕국을 멸망시키고 B.C. 538년에 바사에 의해 바벨론이 망하게 되는 그 사이에 인도지방에서는 불교의 석가모니가 태어나고, 중국에서는 유교의 공자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지배계급인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불만이 폭력으로 귀족정치를 타도하고 평민에 의한 독재정권을 세우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  독재자를 참주라고 부르며 그런 정치를 참주정이라고 부릅니다.

 

그 참주정은 민주주의의 시효로 알려지는 그리스의 B.C. 508년의 민주정치의 도입까지 이어졌습니다. 민주주의(Demokratial)란 말은 민중(Demos)이 권력(Kratos)를 가지는 정치체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이 망하고 바사가 근동지역을 지배하던 때인 B.C. 509년에 유럽의 이탈리아반도에서는 로마의 공화정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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