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기의 유럽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7-14 , 조회 (62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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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데로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제국의 국교로 선언한 것이 391년입니다. 그 이후 431년에 에베소 공회와 451년의 칼케돈 공회 등의 중요한 회의들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유명한 신학자인 히포의 어거스틴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수도원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 베네딕트와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한 콜룸바, 그리고 로마주교로서 590년에 교황이라는 칭호로 처음 불리게 된 그레고리1세 등이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인 476년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5세기 말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프랑크족이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아우르는 지역에 세운 왕국입니다.

 

이 왕국은 후에 왕국이 나뉘면서 서프랑크는 프랑스, 중프랑크는 이탈리아, 그리고 동프랑크는 독일을 형성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프랑크왕국은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태리의 동고트족과 아프리카의 반달족을 격멸하고, 아랍인이 에스파냐의 서고트왕국을 제거한 와중에서 거의 유일한 게르만족의 정치체제였습니다.

 

프랑크 왕국이 수립된 5세기 말은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멸망하고, 걸림돌이 사라진 서유럽으로 게르만족이 대거 이동하면서 국가를 수립하던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게르만족이 갈리아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지만, 이 시기에는 부족 단위로 대규모로 이동하였습니다. 이 시기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동쪽으로부터 훈족이 압박해온 것이 이유였지만, 로마제국이 더 이상 이들을 막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당시 게르만족들의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흑해 연안에서 살고 있던 서고트족이 남프랑스와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반도 북부로, 동고트족은 이탈리아, 반달족은 북아프리카,  부르군트와 프랑크족은 라인강의 중하류에,  앵글로색슨족은 현재는 잉글랜드로도 불리는 브리타니아 섬, 그리고 보다 후대이지만, 바이킹족 일부인 노르만인들은 지금의 러시아 땅으로 이동하여 후에 러시아가 되는 키예프 공국을 세웠습니다.

 

잉글랜드라는 말은 앵글로족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이동 후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등은 사라졌고, 부르군트족의 부르군트 왕국은 백년 전쟁 후에 프랑스로 통합되었습니다.

 

백년 전쟁 당시 잔다르크를 사로잡아 영국군에 팔아넘긴 것이 바로 이 부르군트인들입니다. 스코트랜드, 웨일즈, 그리고 아일랜드는 게르만족이 아니라 켈트족 계통입니다.

 

 한편,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일으킨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세력을 떨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동쪽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지만, 453년 아틸라가 죽은 후 왕자들의 분열과 게르만 여러 부족의 반란으로 훈 제국은 무너지고, 흑해 연안으로 가서 다른 민족과 혼혈하고 동화됨으로써 민족의 전통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첫번째 왕조인 메로빙거 왕조는 48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훈족이 쇠퇴하고 기존에 강력한 경쟁자들이 스스로 멀리 머나만 땅으로 이동한 공백기를 이용하여 수립한 것입니다. 왕국을 세운 클로비스(Clovis)는 왕국 수립 후 갈리아를 침략하여 로마 제국의 마지막 남은 세력을 분쇄하여 갈리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방향을 돌려 라인강 동쪽 지역을 침략하여 지금의 독일지역을 정복하던 중인 506년에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지금 독일의 도시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인의 통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프랑크왕국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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