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왕조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8-05 , 조회 (273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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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에 있던 헤롯대왕의 겨울궁전 그림>

 

신약의 복음서를 읽으면 헤롯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생기사에서도 그 이름이 나오고, 세례요한의 죽음에도 헤롯이라는 이름은 등장합니다. 헤롯은 한 개인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한 가문의 이름입니다. 신구약 중간시대의 말기에 등장하여 신약성경에 그 이름을 보이는 헤롯과 그 가문을 이해하면 신약성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B.C.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에 의해 유대의 마카비왕조(하스모니안왕조)가 무너졌습니다. 당시 마지막 유대의 왕은 제사장직을 겸하던 힐카누스2세였습니다. 폼페이우스는 그 힐카누스로 하여금 왕이 아닌 제사장으로서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 때 과거 유대가 하스모니안왕조로 로마에 망하기 전에 이두메지역을 다스리던 안티파테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두메는 구약의 에돔의 헬라식 이름입니다. 그는 하스모니안 왕조의 유대왕국의 지배를 받는 신하의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폼페이우스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로마군을 도왔던 공로로 그는 유대지방을 다스리는 위치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안티파테르는 영웅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의 작은 아들 헤롯에게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헤롯이라는 가문의 이름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던 중 로마에서 카이사르가 부르투스에게 살해당하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가 서로 다투게 될 때, B.C. 43년에 안티파테르가 죽었습니다. 그런 정치적 상황에서 지금의 이란 지역에서 등장한 왕국 파르티아(Parthia)가 팔레스틴을 공격하였습니다. (파르티아는 사도행전 2 9절에서 바대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하스모니안왕조에 속한 안티고노스라는 인물이 그 일에 가담을 하였습니다. 결국 헤롯은 이집트를 거쳐 로마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안티고노스는 다시 하스모니안왕조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로마로 도망간 헤롯은 로마의 새로운 권력자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의 환심을 사고 로마가 임명한 유대의 왕의 신분이 되어 팔레스틴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로마군대의 도움을 받아 안티고노스를 죽이고 예루살렘을 빼앗았습니다. 그것이 B.C. 37년에 되어진 일입니다. 그로부터 헤롯왕가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럿 헤롯왕들 중에 대 해롯(Herod Great)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두메인으로서 유대인들을 다스리는 입장에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얻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였습니다. 당시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유대인들은 에돔, 즉 이두메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지배를 받기 전에 유대는 이두메를 지배하였었고, 헤롯의 집안은 유대의 신하된 입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이두메 사람인 헤롯의 통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헤롯은 유대인들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유대를 통치하던 헤롯왕입니다. 그는 열명의 아내를 두고 많은 자녀를 두었으며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해에 70세의 나이로 죽었습니다. 그 때가 B.C. 4년입니다. ( B.C. 4년이라는 말은 예수님 탄생 4년전이라는 말이지만, 후대에 예수님의 탄생연도를 계산한 것이 4년간의 착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롯의 유언에 따라 그의 세 아들들은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안티파스가 갈릴리와 베레아지역, 빌립은 갈릴리 동북부, 그리고 아켈라오는 유대, 사마리아와 이두메 지역으로 분할 한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영토이지만 임명된 왕으로서 분봉왕으로 불리워졌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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