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와 사라센제국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8-05 , 조회 (52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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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시작된 이슬람 운동은 기독교 지역을 크게 위협하게 되었습니다. 이슬람 운동은 무하마드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무하마드는 지금의 사우디 아라비아가 위치한 아라비아 지역 출신으로서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큰 영향을 받고 그 교리들을 종합하여 이슬람교를 만들었습니다. ‘신의 뜻에 순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슬람은 622년에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어 급속히 팽창하였습니다.

 

 무력을 앞세운 그 세력은 페르시아를 630년에, 예루살렘을 638년에, 그리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642년에 정복하였습니다. 북아프리카로 그 세력을 확장한 그들은 카르타고를 697년에 정복하며 북아프리카를 모두 점령한 후 현재 스페인이 위치한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715년에 점령하였습니다. 무슬림들이 점령한 대부분의 지역은 기독교가 이미 수백년간 전파되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슬람을 믿는 이들을 무슬림(muslim)이라고 부릅니다. 그런가하면 유럽에서는 이들을 사라센(sarace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사막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라틴어 사라세니(saraceni)에서 나온 말로서 시라아지역부터 아라비아지역에 있던 유목민들을 지칭하던 말입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를 칼리프(khalifa)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아랍어로서 뒤따르는 자즉 무하마드의 후계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종교와 정치가 통합된 구조에서 처음에는 칼리프는 종교와 정치의 지도자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세습군주인 왕이나 황제를 아라비아어로 권위권력이라는 뜻을 가진 술탄(sultan)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즉 칼리프는 종교적 권위가 강조된 것이라면 술탄은 세속적 권위를 의미한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이 이슬람운동에 의해 세워진 큰 제국을 사라센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7세기 중엽 마호메트의 후계자들이 아시아,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 초기를 우마이야왕조(Umayyads)라고 합니다. 우마이야부족 출신인 무아위야(Umayya ibn Abd Shams)가 칼리프가 되면서 그들에 의해 통치되던 왕조입니다. 그 왕조의 지배영토는 서쪽으로는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스페인)까지, 동쪽으로는 페르시야지역을 넘어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 후 압바스 왕조(Abbasids), 터키계 셀주크 왕조(Seljuk)와 오스만 제국(Ottoman)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들을 중세 유럽에서 사라센이라 불렀지만 중국 당나라에서는 압바스 왕조의 사라센을 대식국이라고 했습니다. 이슬람의 사라센제국에 의해 비잔틴제국이 지배하던 팔레스틴지역과 북아프리카를 정복하던 시절에 중국에서는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로서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등장하고 신라에 의해 삼국통일이 이루어지던 때였습니다.

 

압바스왕조 때에는 많은 아라비아의 상인들이 중국과 무역을 하였으며 따라서 당나라에 많은 아라비아 상인들이 거주하기도 하였습니다. 760년에 중국의 광저우에 내란이 있었을 당시에 그곳에 수천명의 거주하던 이슬람 상인들이 살해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은 통일신라와도 무역이 있어서 아부 자이드(Abu Zeid)가 쓴 <시나 인도 이야기(The Story of China and India)>에는 실라(Sila)로 한반도를 소개하였으며, 후에 그들은 고려와 무역을 하며 고려를 세계에 소개하여 지금의 코리아(Korea)라는 이름이 생겨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타난 신밧드의 모험은 그 시대의 산물인 것입니다. 또한 실크로드도 육로를 통한 중국과의 교역로로 그들이 개척한 길입니다.

 

 몽골이 중국을 지배하고 원나라가 세워졌을 때 원나라는 외국인인 색목인들을 중용하였는데 그들 중에 상당수가 아라비아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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