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아와 박트리아 왕국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8-26 , 조회 (235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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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에는 유대인의 명절인 오순절 당시 마가의 집에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게 성령강림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성도들은 거리에 나가 전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들이 여러 나라와 지방의 말로 말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에 그 사건의 현장에 있던 이들이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바대인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무심코 읽는 이들은 어느 지방의 이름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바대라는 나라는 앞서 헤롯가문을 소개하면서도 역사에 등장한 나라입니다.

 

바대라는 나라는 B.C. 3세기 무렵 이란 북동부에 이란계통의 유목민이 세운 왕국으로서 파르티아로 한국어 일반 역사서에는 소개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인도접경부터 서쪽으로는 티그리스강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세워진 이 나라는 건국자 아르사케스의 이름으로 아르사케스왕조라고도 했는데, 중국 사료에서는안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B.C. 247년 파르니족 족장 아르사케스는 셀류쿠스 왕조의 시리아로부터 독립정권을 세웠습니다. 그 뒤를 이은 동생 틸리다테스는 시리아의 셀류쿠스 2세에게 패배하였으나 그 뒤 다시 세력을 회복하고 B.C. 171년 무렵 즉위한 미트리다테스 1세의 치하에서 왕국은 광대한 영토를 얻었습니다. 왕은 박트리아왕국과 시리아의 영토를 정복하고 메대와 바벨론에 침입하였습니다.

 

도읍은 처음에 니사였으나 그 뒤 헤카톰필레스로 옮겨지고, B.C. 129년 새 수도 크테시폰이 건설되었습니다. 왕국은 이 신도시를 중심으로 번영하였으나 아들 프라테스 2세와 다음 왕 아르타바누스 2세는 남하한 유목민 사카족이나 토하라인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국내통일이 무너져 혼란에 빠졌습니다 

 

B.C. 123년 무렵 즉위한 미트리다테스 2세 시대에 제국이 부흥되었으나 아르메니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팽창해온 로마제국과 충돌하였습니다. 왕은 로마와 우호조약을 맺었으나 그 뒤에도 양국간 싸움은 계속되었고, 파르티아의 조직화된 경무장 기병은 로마의 중무장한 보병에 대해 승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파르티아도 왕위계승분쟁과 북방민족의 위협 등 여러 문제가 있었으므로 싸움은 장기화되었고, 결국 파르티아는 오랜 세월에 걸친 전투로 국력이 탕진되어 A.D. 226년 파르스지방에서 일어난 신세력 사산조 페르시아의 아르다시르 1세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이렇게 파르티아는 신구약 중간시대에서 신약시대에 걸쳐 존재하였고 성경에 그 이름을 남긴 나라입니다.

 

알렉산더 제국과 이 이후의 셀류쿠스의 시리아의 영토에서 독립된 또 다른 나라가 있으니 그 나라가 박트리아입니다. 박트리아는 B.C. 3세기에서 B.C. 2세기까지 100여년간 힌두쿠시산맥과 아무다리아강 사이에 존속하였던 고대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입니다. 지금의 아프카니스탄과 투르카니스탄 남부에 걸쳐 있었던 나라로서 중국에서는대하라고 불렀습니다.

 

이 땅은 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 2세 때 박트리아나 주로 편입되었고, 알렉산더대왕 시절에는 헬라제국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헬라제국이 붕괴한 뒤에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였던 셀류쿠스 1세가 세운 시리아왕국의 한 주가 되었습니다. 이 때 그리스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풍의 도시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시리아왕국이 쇠퇴한 틈을 타, 그 지역을 다스리는 주지사로 임명된 디오도토스가 중앙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왕이 되고, 박트라에 수도를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왕위는 그의 사촌인 에우크라티데에게 찬탈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왕 데메트리오스는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서 인도에 들어가, 마우리아왕조의 쇠약한 틈을 타 대제국으로서의 세력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데메트리오스의 동방원정을 틈타, 장군 유크라티데스는 반란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되었고, 이후 많은 왕위 찬탈자가 나타나면서 힘을 잃었습니다. 이때 서쪽으로부터 파르티아의 침입을 받았고, 특히 북쪽에서 침입해 온 스키타이인들의 공격으로 왕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박트리아는 세류쿠스왕조의 시리아와 프톨레미왕조의 이집트와 함께 그리스계의 왕족이 다스리던 나라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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