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시대의 한반도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9-21 , 조회 (331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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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약시대에서 예수님의 생애 이후부터 A.D. 100년까지를 사도시대라고 부릅니다. 즉 이 시대는 초대 기독교회가 설립되는 시기로서 사도들이 지도적인 위치에서 교회를 이끌던 때였습니다.

 

 이 기간에 사도들은 대부분 순교하였고, 이 시대 이후는 교부들이 교회를 지도하게 되므로서 그 시기를 교부시대라고 부릅니다. 신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팔레스틴지역을 포함해 지중해 지역은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때였습니다. 이글에서는 그 시기의 동쪽의 아시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당시 지중해 지역이 로마제국이라는 세계적인 나라가 존재하였다면, 지금의 이란이 존재하는 지역에는 페르시아제국의 뒤를 이은 파르티아라는 큰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동쪽으로는 쿠산왕조의 인도가 있었으며, 그 옆으로 후한제국의 중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고구려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대가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도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시대의 세계사적인 상황을 위와 같이 그려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가락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고구려는 B.C. 37년에 후에 동명성왕으로 불리운 고주몽에 의해 압록강 근교의 졸본천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진 나라로서 일명 졸본부여라고도 불리웠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의 동명왕의 아들 온조에 의해 지금의 서울 군교에 위치했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신라는 B.C. 57년에 박혁거세가 초대왕이 되면서 나라명을 서라벌이라 칭하였고, 후에 계림이라는 이름을 거쳐 A.D. 307년에 신라로 이름이 정해졌습니다.  그리고 A.D. 42년에 수로왕에 의해 가락국이 세워졌으며 그는 인도의 아유타라는 한 부족국가의 공주 허황옥과 결혼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한반도의 시대에 중국의 상황은 후한제국의 때였습니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시황의 진나라가 망하고, 그 뒤를 이어 후에 고조가 된 유방에 의해 B.C.202년에 세워진 한나라를 나중에 세워진 한나라와 구분하여 전한이라고 부르고, 뒤의 한나라를 후한이라고 부릅니다. 전한이 A.D. 8년에 망하면서 왕망이라는 인물에 의해 이라는 나라가 세워졌지만 불과 15년 만인 A.D. 25년에 멸망하고 전한의 왕족인 유수가 광무제라는 이름으로 후한을 세우게 됩니다. 

 

광무제이 부드러운 정치는 그의 유명한 말 부드러움은 굳셈을 제압한다.’는 말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A.D. 73년 후한의 북쪽에 있던 흉노 토벌에 참여한 반초라는 인물이 남긴 말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 새끼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A.D. 1세기 말에 중국에서 채륜이라는 인물이 최초의 종이를 개발하였습니다. 그 종이 제조법은 그 후 A.D. 751년에 이슬람세계에 전해지고 결국 유럽에 알려지게 됩니다.

 

당시 중국대륙의 후한의 서쪽 인도땅에는 A.D. 50년에 세워진 북부의 쿠산왕조와 남쪽의 사타바하나 왕조가 있었습니다. 그 이전의 인도는 B.C. 4세기경에 최초의 통일국가인 마우리야 왕조가 등장하였으나 B.C. 2세기부터 혼란 속에 여러 왕국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서쪽에는 지금의 이란지역에 B.C. 247년에 세워져 A.D. 224년에 망한 파르티아가 있었습니다. 이 파르티아는 성경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후 제자들이 거리에 나와 여러나라의 언어로 전도할 바대사람이라는 표현으로 나옵니다.

 

바대가 파르티아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과 사도들의 시대는 위에서 언급한 세계사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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