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전성시대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9-21 , 조회 (138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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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초원에는 흉노, 돌궐 등 여러 유력한 유목민족들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BC 3세기에 몽골은 흉노족이 세운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4~10세기까지는 오르혼 돌궐족이 몽골에서 가장 중요한 민족이었습니다.

 

745~840년에 동투르키스탄의 위구르족이 몽골 북부지역에 제국을 세웠지만, 이 제국은 키르기스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습니다. 13세기에 징기스 칸(Genghis Khan)이 몽골 부족을 통일하고 타타르족을 무찌른 뒤, 중앙 아시아와 페르시아 만 연안 지역 및 카프카스 남부를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몽골에서 칸이라는 말은 통치자, 황제의 지위를 말하는 것이며, 징기스라는 말은 위대한이라는 의미로서 징기스 칸이라는 이름은 위대한 황제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본래 그의 이름은 테무진(Temujin)입니다. 그리고 1234년 징기스 칸의 후계자인 오고타이는 중국의 금나라를 정복했습니다.

 

그 후 중국에 원나라를 세운 사람은 징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입니다. 징기스 칸과 그의 후예들에 의해 진행된 정복전쟁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제국을 세우면서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7세기부터 9세기 초까지의 중국의 왕조는 당나라였습니다. 당나라의 시대에는 불교와 함께 기독교의 한 일파였던 네스토리우스파가 경교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 후 요나라와 송나라가 세워졌지만 몽골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 당시의 중국의 북부는 금나라였습니다. 만주지역에 살던 여진족들에 의해 세워진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북부에 제국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중국의 남부에는 송나라가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됩니다.

 

유럽으로 가는 길목인 중앙 아시아를 완전히 장악한 바투가 이끄는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일방적인 압승으로 러시아, 헝가리, 독일, 세르비아, 불가리아, 체코, 오스트리아를 정복하였습니다.

 

몽골인들이 가는 곳마다 잔인함과 함께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였으므로,  유럽인들은  이 침입자들에게  타르타로스(Tartaros)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지옥으로부터 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얼마나 유럽인들이 몽골의 침입자들을 무섭게 느꼈는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몽골의 군대가 유럽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였으나 몽골 본국에서 칸이 갑자기 사망하고 심각한 왕위 다툼이 일어나자 바투는 갑자기 본국으로 회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에서는유럽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 움직임에 대항해서 교황권이 계속하여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만회하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슬람이 지배하던 지금의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고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등의 지역을 침공한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은 가는 곳마다 일방적인 압승으로, 바그다드, 시리아를 간단히 점령하고 그곳에 일칸국(Ilkhanate)을 세웠습니다.

 

이렇게 몽골제국이 세계제국을 세운 때의 한반도는 통일신라가 망하고 후삼국시대를 거쳐 왕건에 의해 세워진 고려시대였습니다.

 

몽골의 세계 제국화와 함께 아시아의 기독교는 그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몽골의 쿠빌라이 황제의 어머니이자 징기스칸의 며느리가 기독교인이었으며,  카라이트족, 나이만족 그리고 위구르족의 몇몇 황제들이 기독교도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장관들 중에도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몽골의 금 호르드와 일칸국의 몇몇 칸들도 기독교도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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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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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뵈어 반갑습니다
설 마지막에 형제님 한분만 뵙고 와서 아쉽지만 다음에는 함께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저희 안산 교회 방문도 환영 합니다 자주 교제 하돍 하겠습니다 주 예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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