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09-25 , 조회 (40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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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그리심산>

 

 

신약성경에서 많이 언급되는 지역 이름 중에 사마리아는 예수님의 행적과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좋은 이웃에 대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이 유대인들이 기피하는 사마리아지방의 수가성에 들어가시어 그곳의 한 여인을 만나신 사건으로 인해 수가성 여인이라는 단어를 많은 곳에서 사용하는 것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열명의 문둥병자를 예수님이 고쳐주셨으나 한 명의 문둥병자가 찾아와 감사인사를 하였다는 기록에서 그 한 사람이 바로 사마리아인이라고 성경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B.C. 876 년 분열왕국시대에 오므리(Omri) 왕에 의해 세워진 북 이스라엘의 수도였으며, 사마리아란 이름은 사마리아의 산 주인이었던 세멜에게서 기인한 것입니다.

 

오므리왕의 아들 아합왕은 두로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사마리아를 베니게(페니키아)의 큰  영향을 받은 도시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사마리아 왕궁의 화려함은 예언자 아모스와 호세아를 통해 남아있습니다. '겨울궁' '여름궁' '상아궁' 그리고  '큰 궁'등의 표현은 바로 그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 아합왕 시대에 유명한 엘리야선지자의 우상숭배자들과의 대결의 현장인 갈멜산이 그 사마리아지역에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앗수르제국(앗시리아)이 북 이스라엘왕국을 치고 그 수도인 사마리아에 군대를 주둔 시켰으며, 바사제국(페르시아)이 그곳을 지배하였을 때에는 그 지역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B.C. 108년에 유대의 일시적인 독립왕조였던 하스모니안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는 이 성을 재건하였으며, B.C. 30년에 헤롯 대왕은 옥타비아누스 황제를 위해 이 도시를 수축하여 그에게 헌정하면서 도시의 이름을 세바스티아(Sebaste Augustus  헬라 이름)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곳의 이름은 세바스티입니다.

 

현재도 그리심산에 살고 있는 인구 400명 정도의 사마리아인 들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종족입니다. 한때 강력한 힘을 지녔던 사마리아인 들은 2,500년간 순수한 혈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같은 핏줄이던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이 서로 분리된 것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고 북부 이스라엘왕국이 우상숭배를 하다가 앗수르에게 망하면서부터입니다.

 

남 유대왕국의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같은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으며, 유대지방에서 북부의 갈릴지방을 갈 때에는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멀리 요단강으로 돌아서 다녔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 주민들이 정복자인 앗시리아인들과 혈통적으로 혼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을 멸시하는 유대인들과 분리하여 그리심산에 별도의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방해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사마리아인들은 그들의 옛 율법에 따라 예배하며 제사장이 통치하고 있습니다. 모세 5경만을 믿는 그들은 양피지에 적힌 모세 5경의 고사본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마리아인 들은 이것이 손으로 기록한 것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3,600년 전에 모세의 형 아론에 의해 기록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매년 양을 잡아 그들의 성스러운 산인 그리심 산 위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지금도 유월절 제사는 정확히 구약 그대로 한다고 합니다. 한 주간 예수님이 좋은 이웃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비유하였듯이 이 시대에 좋은 이웃이 되고 싶은 소원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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