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와 십자군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10-28 , 조회 (62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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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맘룩왕조의 영토> 

    

 

지난 글에서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던 중동지역에 십자군에 의한 국가들이 세워졌음을 언급했습니다. 중동지역은 이슬람세력이 중동 전체와 북아프리카, 그리고 스페인의 이베리아반도까지 지배하던 중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왕조에 이어서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압바스왕조가 등장하였습니다. 그 압바스 왕조의 퇴조와 함께 셀주크 투르크(Seljuk Turk)  제국이 등장하였습니다.

 

 1차 십자군 전쟁이 시절은 압바스 왕조가 바그다드와 그 주변만 통치하는 상황이었고, 중동의 전체를 지배하는 세력은 셀주크 투르크 제국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같은 십자군 전쟁의 기간에 십자군의 공격대상이 되었던 이집트의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집트는 알렉산더의 헬라에게 지배를 받고, 알렉산더 사후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 프톨레미에 의해 헬라인이 지배하는 프톨레미왕조가 시작됩니다.

 

그 프톨레미왕조의 이집트 마지막 왕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입니다. 로마가 지중해의 큰 세력으로 확장하고 있던 때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 후 로마의 동부 영토를 다스리던 장군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우스와 세력다툼을 하던 로마의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연합군의 유명한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의 로마군이 승리를 합니다. 그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최초의 황제가 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성경에서는 가이사 아구스도로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프톨레미왕조는 막을 내리고 B.C. 30년에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그 후 로마의 동서 분열과 서로마의 멸망 후 이집트의 지배권은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A.D. 640년에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교의 군대가 이집트를 정복하였습니다. 이후 다마스커스를 수도로 하는 우마이야왕조(Ummayya) 및 바그다드를 수도로 하는 압바스왕조(Abbasid) 등으로부터 파견된 총독이 이집트를 지배하였습니다. 이 기간중 많은 이집트의 기독교 분파인 콥틱교도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랍어가 애굽인의 언어인 콥틱어를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툴룬(Tulun) 총독 시기에는 바그다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툴룬왕조라는 반독립적 세력을 형성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 파티마왕조(Fatimah) 969년에 이집트를 지배하여 수도를 알렉산드리아에서 카이로로 옮겼습니다. 이집트의 이 파티마왕조의 기간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1~2차 십자군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171년에 이집트를 공격한 십자군을 물리치며 시작된 아이엽왕조(Ayyub)는 십자군을 대항하기 이해 터키계 노예 출신인 맘룩족(Mamluk)을 수비대로 활용하였으나 맘룩족의 반란으로 1250년에 몰락하였습니다. 맘룩왕조의 기간에 7차 십자군의 이집트 침공이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과거 헬라인 왕조인 프톨레미왕조 기간에 헬라어가 널리 사용되었던 것처럼, 그리고 아라비아인들의 왕조들이 지배하면서 아랍어가 사용되었듯이, 맘룩족이 터키(투르크)계인 관계로 터키어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오스만 터키의 지배가 시작되는 1517년까지 맘룩왕조의 시대가 이어집니다. 1517년은 유럽에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에 의한 종교개혁운동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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