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신대륙발견 역사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11-19 , 조회 (3194)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15세기의 유럽의 상황은 종교개혁운동의 불씨가 지펴지던 때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국의 위클립과 체코, 즉 보헤미아의 요한 후스에 의한 교회개혁을 위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미 한반도와 중국에서 고안되어 있던 활자인쇄가 1450년경에 유럽의 독일인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이 있어서 후에 루터에 의한 성경번역과 보급을 통한 개혁운동에 큰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이탈리아반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운동이 전 유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 발견에  이어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도 바로 이 시기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는 몽골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스크바공국이 독립하며 러시아라는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인도와 아시아에서 수입하는 후추 등의 향료가 큰 인기를 끌면서 그 무역이 활성화되었습니다. 결국 그 무역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 경쟁에서 포루투칼이 인도항로개척을 위해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하면서 인도항로의 완성이 가까워지자 그 경쟁국인 스페인도 콜럼버스를 통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곳에는 향료는 없었으나 대신 풍부한 은이 있었습니다. 신대륙에 대한 정복의 과정에서 14세기와 15세기에 마야문명을 계승한 멕시코의 아즈텍인이 만든 아즈텍제국이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 있던 잉카문명의 잉카제국도 16세기에 들어서서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맥을 이어받은 것으로 자부하던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이 멸망한 것도 이 시대의 사건입니다. 비잔틴제국은 오스만 터키제국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이 함락되면서 1453년에 천년이 넘는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나라의 멸망이 아닌 기독교 중심 국가가 이슬람제국에게 그 자리를 내어준 결과가 되었습니다.

 

비잔틴제국의 지배하에서 기독교회가 보호를 받던 상황에서 교회가 핍박을 받는 상황으로 바뀐 것입니다. 특히 성경의 땅인 팔레스틴지역을 포함해서 시리아지방과 소아시아반도가 모두 이슬람세력이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유럽땅인 발칸반도까지 모슬렘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오랜 세월의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통해 발칸반도의 일부를 포함한 대부분의 제국의 영토는 이슬람화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한반도는 14세기말에 고려가 망하고 조선왕조가 등장하여 1446년에 세종대왕에 의해 훈민정음이 반포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14세기에 원나라를 중국 본토에서 쫓아내고 세워진 중국의 명나라는 그 수도를 본래 남경에 정하였다가 15세기에 북경으로 옮기어 현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유럽의 르네상스운동과 새로운 항로개척을 통한 지리상의 발견, 그리고 활발한 무역과 식민지 개척, 그리고 상업의 발달로 인한 도시의 팽창과 농촌의 몰락, 그 농촌의 몰락으로 인한 중세 봉건사회 구조의 해체 등의 변화가 이 시대의 흐름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 로마 천주교의 미신적 교리와 교권에 항거하며 초대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종교개혁운동의 불길이 16세기에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

   비밀번호   비밀글
홈페이지
좌측 상자안의 글자를 입력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