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 베스 1세
성경과 교회사
생명강가 2009-12-20 , 조회 (68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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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트랜드의 에딘버그에 있는 존 낙스의 집> 

 

메리 튜더가 왕위를 계승하여 자신과 어머니 캐더린이 카톨릭이고, 어머니가 폐위당한 원한때문에 다시 영국을 다시 카톨릭국가로 회기시키기 위해 재위 5년동안 내내 수많은 사람들을 피로 물들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5년만에 반대파들에 잡혀 죽자, 왕위를 계승할 핏줄이 없어 앤 볼레인(Anne Boleyn)의 딸인 엘리자베스 튜더(1558-1603)가 우여곡절끝에 왕위를 계승하고 엘리자베스 1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1세는 다시 영국교회를 재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영국의 엘리자베스여왕의 왕위계승에 반발하고 영국의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인 앤 볼레인과 헨리 8세의 결혼은 로마교황이 정식으로 승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생아이고 따라서 영국왕을 계승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헨리 8세의 누이인 마가렛 튜더가 스코틀랜드왕 제임스4세 에게 시집을와서 제임스 5세를 낳고 제임스 5세는 외동딸 메리스튜어트를 낳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영국왕가의 핏줄을 가진사람은 매리 스튜어트 자신 뿐이라는 논리였습니다.

 

그 결과 왕위계승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로마카톨릭을 유지하고 있었고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는 로마카톨릭국가인 스페인과 메리 스튜어트의 외가인 프랑스가 가세하였습니다.

 

헨리 8세의 본처인 캐더린이 폐위되고 카톨릭을 배반한 영국에 적대감을 가진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1558년 스코틀랜드의 메리 스튜어트여왕을 돕기 위해 영국을 공격하였습니다.

 

이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엘리자베스여왕의 사촌인 챨스 하워드(Charles Howard) 와 프란시스 드레이크(Francis Drake)가 지원한 영국해군에 의해 레판토해전(Battle of Lepanto)에서 대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해적 출신의 드레이크는 이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백작작위를 받고 식민지 미국을 경영하라는 명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미국 동부 윌리암스버그(Williamsburg) 에 총독부를 건설하고 초대 총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를 영국여왕이 처녀였기에 버지니아(Virginia)라고 이름 짓고 여왕에게 이 땅을 헌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위계승전에서 패배한 스코틀랜드 여왕 매리 스튜어트는 20년 동안 가택연금 당한 상태에서 계속되는 모반을 시도하다 사촌이기도 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튜더의 명에 의해 어린 외동아들 제임스 스튜어트 6세를 남기고 1587년 목이 잘리는 참수(behead)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스코틀랜드여왕 메리 스튜어트는 카톨릭이었으나 종교개혁이 앞선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존 녹스에 의해 국교가 장로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편 독신이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후손이 없었으므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의 아틀인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스튜어트 6 세를 영국왕의 계승자로 지명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 는 스코트랜드의 에딘버러성에서 런던의 윈저성으로 이사를 오게되고 드디어 영국의 제임스 1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707 년 잉글랜드 의회와 스코틀랜드의회는 역사적인 통합을하게 되어 대영제국(United Kingdom)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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