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영광과 존귀와 위엄을 갖고 계실 뿐 아니라 주권도 있으시다. 주권도 역시 하나님의 속성들 중 하나이다. 그분은 주권적인 분이시다. 주권이란 하나님의 무한한 권위와 권능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지위도 역시 무한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위가 얼마나 높은지를 능히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도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은 주권적인 분이시므로, 그분의 권위, 권능, 지위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비록 로마서 9장 20절과 21절에서 ‘주권’ 혹은 ‘주권적인’이란 말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 구절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주권을 가리키고 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이요,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이시다. 그분의 피조물들인 우리는 그분의 목적에 저항하지 말아야 하고(19절), 창조주이신 그분께 되묻지 말아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라고 묻고 있다. 그런 다음 바울은 계속해서 지적하기를 토기장이신 하나님께서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요 우리는 진흙이다. 토기장이로서 하나님은 주권적이시다. 그분은 진흙에 대해 권세를 갖고 계시다. 그분이 원하시기만 하면, 하나는 귀히 쓸 그릇으로 다른 하나는 천히 쓸 그릇으로 만드실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로마서 9장 23절, 24절에서 바울은, “또한 영광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그분을 담는 긍휼의 그릇들로 만드실 권한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적인 권세에 따라 우리로 하여금 이 영광에 이르도록 예비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주권에 의해서 그분의 그릇들이 되도록 예정되었다. 이것은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유용성의 최고정점이다. 이것은 그분의 주권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하심의 목표이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11장, 144-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