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교회 방문 및 역사탐방(1)
자료실
생명강가 2009-03-13 , 조회 (669)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중국교회방문 및 역사탐방기




* 첫째 날(11월 3일 월요일)

- 사역원 출발 (오전9:00)

아침 전세버스 편으로 정규 생12명, 중년 반23명이 중국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 설레며 사기왕성하게 출발.

사탄의 권세를 묶고 그리스도의 인도하심과 빛 가운데 빛의 자녀들로서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중국 땅에 복음의 빛을 비출 수 있도록 다함께 기도함.

- 인천공항 도착 (10:30)

탑승 수속과 세관검사 등 많은 시간을 보내고 12시 30분 탑승구 도착,

언제나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먼저 수고하고 인내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주님을 뵐 때까지 이 땅에서의 드려진 시간들, 수고와 기다림이 많다 해도 여전히 사랑스런 우리의 주님께 함께하는 것이 위로와 격려가 된다.

- 인천공항 이륙 (오후1:40)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 독수리 날개 치며 날아오르듯 높게 날아 비상함으로 대륙을 향한 주님의 뜻이 힘차게 솟아오름.

비행시간은 1시간 40여분이었음.

- 상하이 푸동공항 도착 (오후2:35)

한국시간 오후2:30경 늦은 점심을 기내식으로 먹고, 입국(중국) 서류를 작성하고 나니 비행기가 하강곡선을 긋고 귀가 멍멍해진다. 가깝고도 먼(공산국가) 나라가 아닌가? 주님의 축복을 마다하고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중국 지도자들의 마음을 주님이 부드럽게 만져 주시기를 기도함.

중국은 한국보다 표준시간이 1시간 늦다.

- 국내선 항공으로 이동(상해 홍교공항)

복주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함. (상해 L형제님의 영접과 안내 오후4:40 도착) 탑승수속 및 수화물 발송.

- 복주로 출발 (오후 6:40)

워치만 니 형제님의 주님을 향한 사랑과 교회를 향한 애틋한 정을 느껴보기 위해 복주를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다. 하루 종일 여정의 피곤함을 잊고 비행기를 탔다. 비행시간 1시간 10분 정도.

복주시내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함.

- 잠자리에 들다. (저녁11:50)

호텔에 도착하여 숙소를 배정받고 하루를 마감하다.

오늘은 긴 여정의 날이었지만 사랑스런 지체들과의 움직임이 알게 모르게 공급함이 있어 지칠 줄 모르고 하루를 보내었다.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주님과 함께 안식하다.


* 둘째 날(11월 4일 화요일)

- 아침부흥 (오전6:00~ )

주님을 접촉하고 참된 양식을 먹고 누림으로 시작 된 둘째 날은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시작함.

- 고령 산에 오르다. (오전8:30~ )

오전8:30에 호텔을 출발하여 니형제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령 산 훈련센터를 찾아 800여 미터의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갔다.

- 100여 년 전 열강들의 중국 진출 시 많은 서양인들이 복주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서양인들과 지방 부호들의 피서지로서 별장들이 들어서게 되었음.

- 그 후 세계정세의 변화로 외국인들이 거의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이때 니형제님께서 집을 사들여 형제자매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땅도 200여 평을 매입하여 손수 설계하여 훈련센터를 건축하셨다고 함.

- 건축 재료는 주로 돌과 나무를 사용하고 바닥은 3단의 층계 형 구조로 입구 쪽이 가장 높고 안쪽이 가장 낮았으며 나무판자를 깔았음.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는 관계로 복주교회가 수리하여 콘크리트를 덧입히고 칠을 하여 보존하고 있음.

- 자매의 집은 의사를 하던 자매님에 의해 진료소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니형제님의 외래진료소라고 불리어지기도 했음.

- 니형제님의 숙소는 가장 잘 보존되어 있으며 복주교회는 정부 관리들과 협의하여 이곳을 유적지로 만들 계획을 갖고 있으며 먼저는 니형제님에 대한 정부당국, 특히 복건 성 당국의 인식과 평가에 빠른 알림이 필요하며, 니형제님의 인격과 사역의 부분을 교통하고 있으며 복주와 복건 성 당국도 최근에서야 ‘좋은 친구관계’라는 정책에 따라 먼저 대화해 오고 있다고 함.

따라서 이 부근을 유적지화 함으로서 주의 회복의 시작이 있었던 이곳에 니형제님의 사역초기 모습을 다시 회상하고 모든 믿는 이들이 형제님의 신앙을 본받아 나갈 좋은 발판이 될 것을 생각하니 기뻤다.

- 복주교회의 점심 접대를 받고 먼저 니형제님의 생가와 초기 복주교회의 집회장소가 있었던 곳을 방문함.

주의 회복이 시작된 곳도 복주였고 처음 떡을 떼기 시작한 곳도 복주였다. 처음에는 니형제님과 왕재형제님 부부 두 분의 시작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의 축복으로 인수가 증가하여 12칸의 규모가 있는 이곳에서 집회를 하였다 함.

우리는 간단한 기념촬영과 설명을 들으며 복주형제님의 안내로 니형제님이 다니셨던 삼일학원을 방문함. 삼일학원은 영국 성공회에서 건축하여 운영하였으며 영어로만 전담 공부하던 곳과 중국어와 영어를 함께하던 두 반으로 운영되었는데 니형제님은 영어전담반에서 공부하셨다 하심.

- 복주 시내를 관통하는 민강 가운데 섬이 있고 이 섬을 통과하여 다리가 놓여 있음. 이 섬의 이름은 중주도라 불리어 예전에는 복주교회 집회소가 있던 곳이었으나 개발로 인해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음. 아쉬움을 달래고 강 건너편 니형제님과 어머니께서 구원 받았다는 교파교회의 종탑과 십자가 모습을 보았음.

- 재래시장 구경

오후3:15~4:30까지 복주의 재래시장을 구경할 기회를 가졌으나 피곤하여 버스 안에서 잠깐 수면을 취함.

- 복청교회의 저녁식사 접대

복청교회는 복주에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복청 현에 속하며 성도수가 대략 2만 여명이 있고 올해 2008년 일년 동안 침례자가 2,128명이 되었다고 하였음. 복청교회의 산 간증이시며 초기 니형제님의 고령 산 훈련을 통과하여 온전케 함을 받고 일생을 헌신하여 주의 회복과 함께하며 20여 년 간 감옥에 드나들며 92세가 되는 지금까지 이기는 자의 생활로 예수의 간증이 되는 삶을 사신 L형제님의 교통과 공급과 권면을 받았다.


<고령 산 훈련내용 요약>

- 1차 훈련 : 1948년 3월 중순 ~ 7월 중순(4개월간)

- 2차 훈련 : 1949년 1개월~3개월간은 니형제님과 시내를 오가면서 받았다고 함.

- 니형제님은 보통 목소리로 말씀을 전하셨으며, 내재적인 방식으로 영의 해방을 통해 상대방의 영을 만지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만지고 공급을 주는 방식이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빛 비춤을 받았으며 공급을 얻고 눈물을 흘렸다. 매 집회마다 주님의 인도가 있었고, 성령의 쏟아 부음이 있었다. 1교시에는 모든 사람을 향한 진리의 말씀과 2교시에는 각자가 어떻게 은혜를 받고 봉사하는가를 간증함으로 니형제님의 영적 분별에 의해 도움을 받는 시간이었다. 3교시는 초신 과정을 하였고(52과정), 저녁에는 당시에 전기가 없고 형제자매들의 숙소가 흩어져 있어 쉬었다고 한다.

- 니형제님의 소망은 한 기수 한 기수 지속적으로 훈련을 하는 것이었지만, 1949년 이후 중국정세로 말미암아 환경이 열리지 않았다.

그 후 홍콩에 건너 가셨으며 홍콩에선 말씀을 전하시고 홍콩에서의 부흥을 가져왔으며, 1950년에 상해에 돌아오시어 1952년에 투옥 되시고, 20년의 옥살이 끝에 1972년에 순교하셨다.

니형제님은 평소에도 “나의 길은 순교 아니면 들림 받는 것이다.”고 하셨음.

고령 산 훈련 1기와 2기생을 모두 합하여 170~180명이 훈련을 받았고, 그 중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분은 10명 안팎이다.

- 성령의 흐름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나(L형제님)는 니형제님과 윗트니스 리형제님의 사역을 다 받아들였다. 큰 공과를 배우고 반드시 통과해야 할 것은 순복을 배우는 공과이다. 많은 공과를 배우는 것은 어려움이 올 때이다.

- 주님의 회복은 사람이 주님 마음의 뜻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주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이기는 자로 발견되고 오늘날 예수의 간증이 되어야 하고 또한 예수의 간증으로 나타나야 한다.

일반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로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 오늘날의 이기는 자는

첫째, 완전하고도 온전한, 그리고 철저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일곱 영으로 완전히 불태워져야 한다.

셋째, 진리로 조성되어야 한다.

넷째, 이기는 자의 생활을 살아내고,

다섯째, 우리의 행동을 강화해야 한다.

- 우리는 헌신의 길을 가고 헌신의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실 수 없다.

그러나 헌신된 사람일지라도 우리 안에 많은 문제들이 있고, 하나님의 생명의 성장을 막는 많은 요인들이 있다. 이것들은 일곱 영의 다루심을 받아 불태워져야 한다. 이 일곱 영의 불태움은 십자가로 인한 자아의 파쇄이므로 완전히 불태워지기 바란다. 일곱 영의 불태움과 십자가의 파쇄를 체험할 때 환경이 어렵다고 느낄지라도 여전히 십자가의 파쇄와 일곱 영의 불태움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므로 주님은 우리에게서 길을 얻으신다. 우리 안에서 자아를 뽑아낸 때만이 주님은 길을 얻으시고 건축이 있게 된다.

- 그리스도가 진리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시다.

진리는 조성되어져야 하며 진일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하나님 자신을 추구해야 한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연구하여 교리가 되지 않도록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충만히 거해야 하며 그분 자신이 우리에게 올 때 풍성을 누리게 된다. 객관적인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우리 각자에게 주관적인 말씀이 될 때 효과가 크다.

- 진리로 조성된 후에는 생명의 풍성이 생활 가운데 나타나게 되고 표현된다. 생명의 풍성과 진리의 조성은 우리의 생활가운데서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는 이기는 생활이 돼야 한다. 안의 생명이 있다면 밖에 표현과 나타남이 있게 된다. 이기는 생활은 하나님-사람의 생활이며, 분별된 생활과 우리의 강화되고 높여진 생활이 필요하다.

- 우리의 행동을 강화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그분의 갈망은 그분을 표현할 단체적인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행동을 강화하는 것인가?

첫째, 왕국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희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

둘째, 우리의 분량을 다하여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절대적인 헌신과 진리의 조성으로 예수의 간증이 되는 생활을 하고 복음전파와 몸의 건축에 동참해야 한다.

- 신약에는 두 방면의 온전케 함이 있다.

첫째, 에베소서 4장의 은사 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온전케 됨과

둘째, 베드로전서 5장의 온전케 됨으로서 환란이 우리를 온전케 하고 강화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천연적인 생명이 나가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런 사람의 교회 생활을 통해서 교회가 건축된다. -이상-

- 숙소에 들다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교회생활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여 온 일생을 헌신하고 예수의 간증으로서 살아 온 노형제님의 모습을 보며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을 드리며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많은 격려를 받고 헌심되어 짐.


* 셋째 날(11월 5일 수요일)

- 나성 탑 공원

오전 8:30 호텔을 출발하여 나성 탑이 있는 공원에 도착하여 구경함. 용수라 하는 시 지정나무(복주를 상징)와 나성 탑(배들의 등대 역할)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원을 구경하고 기념촬영을 함. 앞에 보이는 마 강은 시내를 관통하는 민강의 줄기로서 근세에 중국과 프랑스 간 큰 전투를 벌였던 강임. 강 건너편의 백야 담을 향해 출발함.

- 백야 담

강을 사이에 두고 나성 탑 건너편에 있는 백야 담은 교통이 불편했던 당시 배를 사용했던 관계로 바버자매님께서 후기에 주로 거주하며 청년들을 온전케 하고 인근에 복음을 전파하던 곳임.

바버자매님은 1896년 영국 성공회 파송 선교사로서 이곳에 와 시내에서 거주하며 교사로서 근무하면서 복음을 전했으나 열매가 없었음. 그러나 생명과 진리의 양 방면에서 성숙했던 자매님으로부터 니형제님과 동료 청년들이 온전케 됨. 워치만 니형제님도 결국 이 자매님으로 하여금 온전케 되므로 주님의 사역을 하게 되었음.

- 백야 담은 1895년부터 선교사들의 무덤이 있어 왔으나 1985년부터 이장되어 본국으로 옮겨져 아무 것도 없게 되었음.

공항에서 만난 어떤 사람이 한국인이 복주에 무슨 볼 것이 있어 여기까지 관광을 왔는가? 하며 의아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오!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을 여행하는 관광객입니다!”

- 점심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상해 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서 대기함(오후 2:30).

2박3일의 복주에서의 역사 탐방을 마치고 오후 4:30 상해로 출발.

니형제님의 주님과 교회를 사랑했던 그 사랑을 마음에 담고 또한 만났던 지체들의 사랑스런 접대와 공급을 잊을 수 없다.

- 섞임(D음식점에서)

D음식점을 경영하는 C형제님 부부와 상해의 L형제님 부부 그리고 상해로 먼저 온 훈련생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정다운 시간을 가졌음. L형제님과 함께 주님께 찬송과 찬양을 드림. 오늘도 모텔에서 여장을 풀고 하루를 감사하며 주님의 보호하심 안에서 깊은 잠속으로...(밤11:30 ZZ..)


넷째 날(11월 6일 목요일)

- 복단대학교 방문

아침식사 후 상해에 있는 중국 5대 대학 중에 하나로서 인문 분야에 잘 알려져 있는 복단대학교를 방문했다. 넓은 캠퍼스에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학생 수 45,000명에 교수진과 연구진들만 2,400명이 있으며 1905년에 설립되어 1950년부터 유학생을 받게 되었다 함.

- 교내에서 만난 두 명의 한국 유학생에게 복음을 전해 주님을 영접케 하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며 섞임.

우리의 남은 여 생을 젊은 학생들을 주님께 이끌고 그들이 주님께서 온전히 얻으실 수 있도록 드려지기 원한다.

주님께서 당신의 경륜을 관심하는 인재들을 얻으시도록...

- 풍성한 점심식사 후에 니형제님이 수감되었던 감옥을 밖에서만 보았다.

육중한 정문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니형제님께서 20년 간 순교의 영으로

순교하신 장소에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 상해 중심가인 베이징 로를 따라 각국 양식에 따라 건축된 건물들이 지금도 건재해 있고 니형제님께서 경영했던 제약회사도 이 근처에 있었다고 함. 니형제님께서 1927년 복주에서 상해로 오셔서 처음 머물렀던 숙소, 복음서원 집회장소가 있던 부근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고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 다섯째 날(11월 7일 금요일)

- 상해 임시정부청사 유적지 방문 (오전9:50)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잃은 백성들의 한과 주권의 회복을 위해 수고하며 헌신했던 선열들의 모습은 사진을 통해 그분들의 독립을 위한 열망을 느껴보았다. 타국에서 일제의 추격을 받아 중국의 각지를 전전하며 어려웠던 당시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그분들이 온 존재를 바쳐 일생을 헌신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이 있게 되었고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교회생활을 하며 왕국의 실재를 살게 되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의 왕국을 가져오소서!

- L형제님 댁 방문

상해로 이주하여 상해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을 위해 가정을 열고 인생의 마지막 부분을 헌신하고 있는 L형제님 댁을 방문함. 푸짐한 한국 음식을 대접받고 다들 기쁘고 감사했다.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께 감사를 드림.

- 과학관 견학(오후2:20~4:30)

오후2:20에 L형제님 댁을 출발하여 1시간 동안 이동하여 보니 이미 관람시간이 다 되어 밖에서 상해교회 지체들과의 저녁 섞임을 위해 기다리기로 함. 네 팀으로 나뉘어 각 소그룹으로 섞임을 위해 흩어짐.

- 대만에서 오신 J형제님 댁에서 섞임 집회(오후5:30~9:00)

이 소그룹은 일년 반전에 미국 아나하임 부근에 사시다가 주의 부담을 따라 중국으로 오신 K형제님께서 봉사하고 계시며 J형제님 부부는 대만에서 오셨고 여기서 주일 만찬집회를 함.

저녁 7시경 애찬을 함께 나누고 기도와 찬송으로 주님을 함께 누렸음. 서투른 중국어 발음으로 노래할 때 주님을 사랑하는 영을 서로 만짐. 자기소개를 하고 간단하게 느낌을 말하고 섞임을 가졌음. 주님의 몸의 실재는 섞일 때마다 건축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음.

주여! 우리를 더 섞으시고 당신의 몸을 완결하소서!!

- K형제님의 그룹소개

한국에서 오신 L형제님, 대만에서 오신 형제님 등이 간격이 없이 섞여있는 그룹으로 복단대, 외경대, 상해 외국어대가 있는 캠퍼스 그룹임. 매주 복음을 위해 기도하고 있으며 복단대에는 3000여명의 한국 유학생이 있음.

주일 만찬에는 20여명이 모이고 기도집회, 소그룹집회, 자매집회 등이 세워져 정상적인 교회생활에는 큰 제한이 없다고 함. 한국에서 L형제님 댁이 이주해 옴으로 집회가 세워졌으며 본이 되는 L형제님께 감사하며 동역할 지체가 필요함.


* 여섯째 날(11월 8일 토요일)

- 진주시장 구경(오전10:00~ )

농산물 중심지인 중국 재래시장을 보고자 했으나 며칠째 내린 비로 흙탕길이 되어 진주시장으로 갔음. 진짜보다 가짜가 더 많은 곳에서 참된 것을 찾기는 결코 쉽지 않다. 이 땅에서의 삶 속에서 참된 진주로 생성되어 진주 문이 되는 생활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눈에 보이는 진주의 종류와 모양이 다양하듯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생활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참된 진주조개이신 주님에게서 생성되는 진주는 오직 하나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에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분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3:13)

- 점심을 D음식점에서 먹고 주변의 상가를 한 시간 동안 구경하며 산책을 하였다. 어디에서나 바쁜 모습의 삶이 사탄의 조직인 어둠의 권세아래 있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이들 중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교회 안에서 몸을 건축하는 하나님의 아들의 왕국 안으로 옮겨지기를 기도함.

-소주를 향해 출발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통하여 드넓은 중국 대륙을 느껴본다. 광활한 벌판의 끝없는 지평선과 경지정리 된 논과 군데군데 이루어진 촌락을 보며 2시간을 달려 소주에 도착했다.

- 저녁식사와 함께 섞임.

소주에 있는 큰 호수(금계 호)의 야경을 보았다. 호숫가의 휘황하게 비치는 불빛을 따라 한참을 걸어서 레스토랑에서 소주교회 형제님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김치를 포함한 된장냄새가 약간 나는 찌게를 보며 형제님들의 자상한 배려를 엿보았다.

- 소주교회의 성도 수는 646명이며 자주 섞이는 성도 수는 약 330명 정도임. 각 가정에서 모이며 사역을 따라 아침부흥을 하며 모이는 인수는 100여명이다. 복음전파의 특별한 실행은 없고, 형제자매님들의 생활 속에서 간증이 되는 생활과 동료, 친구,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당국과의 관계는 양호하며 우리를 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젠 오히려 정부의 ‘좋은 친구’ 정책에 따라 그들이 그동안 미안했다고 교회에 헌금을 하기도 한단다. 지금 중국 전체는 개방화되고 있는 모습을 느끼고 있음.

오! 주 예수여..

중국 정부의 마음을 감동시켜 자유롭게 복음을 전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하게 하소서! 워치만 니를 젊은 날에 일으키셨듯이 중국 땅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일으키소서! 중국 땅이 주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소서!! 아멘.

- 잠자리에 들다.(밤10:30)

밤에 보는 소주는 물의 도시인 것 같다. 많은 수로들로 연결된 큰 호수와 수로를 오가는 배들로 인한 느낌이 새롭다. 호텔 방에서 보는 소주시내의 야경도 볼만하다. 온기가 없는 호텔 방에서 옷을 두껍게 껴입으므로 대비하다.

약간은 시골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여기저기서 담배냄새를 풍기는 사람들, 싸우는 것 같은 큰 소리로 말하는 소란스러움 가운데 피곤함이 수면제가 되어 깊은 잠속에 빠져든다.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

   비밀번호   비밀글
홈페이지
좌측 상자안의 글자를 입력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