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해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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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강가 2010-09-09 , 조회 (56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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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BC 2세기에 당시 지중해의 강자 카르타고와 세 차례의 포에니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합니다.

 

이때부터 로마제국의 위용이 점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영토가 커지면서 일도 많아지고 복잡하게 되어 가는데 당시 원로원을 중심으로하는 공화정 정치의

한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첫째, 신속한 의사 결정이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 공화정을 구성하고 있는 원로원 의원들의 기득권 보호가 시민들의 반발을 일으킵니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최대한 챙기려는 것과 유사한 증상입니다.

 

이러한 때에 그 유명한 '율리어스 카이사르'가 등장합니다.

율리어스가 등장하기 전 벌써 장군 폼페이우스가 이름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율리어스는 공화정을 끝내고 황제정을 시작한 사람입니다.

 

지금의 프랑스지방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당시의 '갈리아'였는데 율리어스가 갈리아를 정복할 당시만 해도

유럽의 문명은 미개한 상태였습니다.

 

갈리아는 지금의 독일인 게르만족의 침입을 계속 당하면서 부족연맹체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율리어스가 8년에 걸쳐 갈리아 지방을 평정하고, 브리타니아-지금의 영국-을 처음으로 밟은 사람이었습니다.

영국 역사가들은 율리어스가 영국 땅을 밟은 그때가 영국의 문명화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율리어스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와 함께 삼두정치를 실시합니다.

율리어스는 갈리아 지방, 폼페이우스는 이집트 에게해 지방, 크라수스는 아시아 지방을 통치합니다.

 

크라수스는 파르티아와의 전쟁으로 죽고

율리우스와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은 율리우스의 승리로 끝나고 그때부터 율리우스 1인 통치가 시작됩니다.

 

이 율리우스라는 이름은 영어 7월 July 입니다.  자신이 태어난 달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율리어스라는 사람은 로마 최고의 천재적인 군사 전문가이고, 또 문필가 입니다.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기록한 '갈리아 정복사'를 직접 자신이 기록했습니다.

 

율리어스에게는 친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카 옥타비아누스를 양자로 입양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성경에 이름이 나오는 '아우구스투스' 입니다.

 

이때 세계역사에 저 유명한 이집트의 여왕 '크레오 파트라'가 등장합니다.

 

카이사르 율리우스는 결국 공화정을 지키려는 공화파들에게 회의장에서 암살 당하게 됩니다.

그 결과 율리어스의 오른팔이었던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와 레피두스의 2차 삼두정치가 시작됩니다.

 

안토니우스와 크레오 파트라의 연합군과 옥타비아누스가 유명한 해전 '악티움'에서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다시 로마는 1인황제 체제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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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강가
답글

암살과 전쟁이 있는 로마..


그리고 이집트의 여왕 '크레오 파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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