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이해하기(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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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강가 2010-09-10 , 조회 (64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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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옥타비우스 아우구스투스 때부터 이제 우리의 신약성경에 등장하게 되고

그리스도인들도 로마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리스-로마 문화는 다신교의 바탕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유일신을 믿는 유대인들과

로마의 신들에게 경배하지 않고 군대에도 가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열 왕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는데, 그 중 대부분이 로마인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황제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이 대표적인 성군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 만약 기독교가 전파되고 그리스도인들이 서울에 살았다면 핍박받지 않고 살았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그리스도인들은 그 당시 고립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AD313년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10차례나 핍박을 받습니다.

그것은 결국 로마 문화와 보이지 않는 기독교 문화의 전쟁이었습니다.

 

실재로 로마가 멸망하게 된 많은 요인들 중에 기독교가 로마에 확산한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됩니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부터 실재적인 황제정이 실시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는 동양의 왕과는 다른 신분입니다.

동양의 왕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소유했지만, 로마의 황제는 원로원과 시민의 동의가 있어야 실재적인 황제라 할 수 있습니다.

 

황제의 가장 큰 책무는 안보와 식량, 그리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고,

또 축제 때마다 큰 경기를 개최하여 시민들의 오락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시민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고, 그 결과 암살당한 황제가 제 명에 죽은 황제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로마의 전성기는 소위 5현제 시기가 끝나는 2세기 말까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군인 황제시대를 거치면서 로마의 붕괴는 서서히 시작됩니다.

 

붕괴의 원인은 로마사회가 더 이상 로마답지 않았고, 온 땅을 호령하던 로마인의 기개가 없어지고, 갈수록 제국의 피로한 모습이 여기저기 나타났습니다.

 

거기에다가 이민족의 침입이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의 영토는 지금 다뉴브 강이라고 불리는 강과 라인 강을 경계로 하고 있는데 그 경계 너머에는 게르만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4세기부터 중앙아시아를 제패한 '훈족' 이 등장했는데 이들의 야만적인 정복에 게르만족이 쫓겨 내려와 결국 로마의 영토를 침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 불리는 것이었습니다.

 

훈족은 같은 야만족인데도 그 잔인함과 특히 말위에서 활을 쏘면서 싸우는 솜씨가 특출하여 보통 말을 타고 창이나 칼을 사용하여 싸우던 게르만족들은 그들을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단기간 가장 대제국을 건설한 징기스칸의 몽고군은 양고기를 말려서 말에 싣고 다니면서 전쟁을 치렀는데 비해, 이 훈족은 생고기를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다니다가 그 고기를 생으로 먹을 만치 야만인들이었습니다.

 

황제정이 끝나고 4세기 초에 등장한 콘스탄티누스 왕 때부터 전제 정치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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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강가
답글

몽고군과 훈족들의 역사가


장차 이억의 마병대를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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