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11월 부산 청년직장인 모임
청년부
신병주 2011-06-10 , 조회 (341)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청년 직장인 섞임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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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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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부산 교회 청사포일시: 11/13(토) - 14(주일)

 

만 찬 집 회

성경: 고전 11:20, 23-25, 10: 16-17, 21

Ⅰ. 주님의 상 집회는 떡을 떼는 집회로서(행 20:7), 이 집회에서 믿는이들은 함께 모여 주님의 만찬을 먹고(고전 11:20) 주님의 상에 참여한다(고전 10:21).

A. 주님의 상 집회는 지방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집회인데, 주님을 기념하는 것을 집회의 중심으로 하여 주님을 기억하여 주님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1. 집회에서 행하는 모든 것, 예를 들어 찬송을 부르고 말하는 것, 기도와 찬양, 성경 읽기, 영감의 말씀 등은 모두 주님을 중심 삼아야 한다.

2. 집회 참석자들은 주님의 인격과 역사, 그분의 사랑과 미덕들, 그분의 이 땅에서의 생활과 고통, 혹은 하늘에서의 그분의 영광과 존귀 등을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주님 자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들을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B. 지방 교회의 주님의 상 집회는 합당하고 적절해야 한다.

1. 가련한 집회는 한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약함을 드러낸다.

a. 합당치 못한 집회는 그 교회가 아직 필요한 훈련을 받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b. 부적절한 집회는 그 교회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2. 강한 집회는 그 지방 교회가 주님의 강한 간증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Ⅱ. 고린도 전서 11장은 주님의 만찬을 다루며(20절), 주님의 상은 고린도 전서 10장에서 다루어진다(21절).

A. 우리가 주의 만찬을 먹을 때 그 강조점은 주님을 기념하는 데 있다.

B.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통과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주님 안에서 함께하는 교통을 위한 것이며 그 중점은 성도들 사이의 교통에 있다.

C. 주의 만찬은 주의 상을 포함하지 않지만 주의 상은 주의 만찬을 포함한다.

1.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먹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념한다.

2. 우리가 주님의 상을 위해 모일 때 거기에는 주님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체들과 교통하는 두 방면이 모두 포함된다.

D. 주님의 만찬은 주님의 만족과 누림을 위한 것이며 주의 상은 우리가 참여하고 누리고 교통하기 위한 것이다.

Ⅲ. 주님의 상 집회에는 두 가지 주된 방면이 있다.

A. 주님의 만찬을 먹는 것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고전 11:24-25).

1. 이것은 주님의 상 집회의 수직적인 방면이라고 할 수 있다.

a. 이것은 그분의 역사가 아닌 그분의 인격을 기념하는 것이다.

b.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양은 주님 자신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2. 고린도 전서 11장 24절은,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 떡을 떼는 것에 관해 말한다.

a.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주의 상에 오는 것이 아니라,

b.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온다.

3. 고린도 전서 11장 25절은,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 잔을 마시는 것에 관해 말한다.

a. 우리는 주님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주의 상에 오는 것이 아니라,

b.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온다.

4. 주의 상 집회에 참석하여 자동적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주님의 만찬을 먹는데 이것은 천연적인 관념이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려면 우리에게는 그분의 인격에 관한 이상이 필요하다.

5. 우리는 역사보다 인격을 더 기념해야 한다.

6. 주님의 떡을 먹고 주님의 잔을 마심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는 가운데 주님의 만찬을 먹는다.

B. 주님의 상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을 갖기 위한 것이다(고전 10:16-17, 21).

1. 이것은 주님의 상 집회의 수평적인 방면이라 부를 수 있다.

2. 우리가 이 교통을 갖는 것은 주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주신 그분의 몸과,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분의 피를 인함이다.

a. 우리가 함께 누리는, 또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은 성도들 사이의 모든 장벽들을 제거하며,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또한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몸을 상징하는 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한 떡이 되게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몸을 상징한다.

b. 우리가 한 떡을 먹고 한 떡에 참여하는 것과 한 잔을 마시고 한 잔을 나누는 것은 상호 교통을 의미한다.

c. 이러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된다-고전 10:16.

3. 고린도 전서 10장 16절과 17절, 그리고 21절에는 주의 상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 즉 그리스도와의 교통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모두 나타난다.

a. 우리가 함께 먹고 마시면서 주님의 떡과 잔을 나눌 때 "우리는 주의 상에 참여한다".

b.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상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수직적인 방면만을 갖게 된다.

(발 췌 문)

떡 떼는 집회의 의미에 관하여 성경은 두 방면 곧 고린도 전서 11장의 방면과 10장의 방면을 언급했다. 11장의 떡은 주의 몸 곧 주님의 육신의 몸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몸을 버리심은 우리의 죄를 사하고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서의 기본 사상은 주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고린도 전서 10장에는 또 다른 표현이 있는데 거기서는 ‘많은 우리가 한 떡이나’ 라고 말한다. 11장에서의 떡은 주님의 육신의 몸을 가리키고 10장에서의 떡은 우리를 가리킨다. 바꿔 말해서 11장은 주를 기념하는 것을 중요시하고 10장은 자녀들의 교통을 중요시한다.

그리므로 떡 떼는 집회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하늘을 향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주를 기념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의 교통과 우리 각자가 다 이 떡에 참여하고 이 떡 안에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당신도 나도 이 떡을 받았기 때문에 주 안에서 우리는 마땅히 교통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떡 떼는 것은 주님 앞에 와서 주님과 교통을 갖고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통을 갖는 것이다. 구원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떡 떼는 집회는 두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좋다. 주님의 상 집회는 지방 교회의 집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집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인 지방 교회는 합당하고 어울리는 주님의 상 집회를 가져야 합니다. 한 지방 교회가 강하고 합당한 주의 상 집회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지방 교회의 증거와 표현이 강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좋은 집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당히 큰 도움을 주지만, 좋지 못한 집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지 않은 손실을 줍니다. 성도들이 생명 안에서 온전케 되었는가의 여부는 교회 집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상은 하나님의 신약 경륜 전체를 상징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의미합니다. 삼일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모든 과정을 거치시고 그 영으로 최종 완성되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외적인 것들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음식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문제입니다. 주의 상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가 우리의 명절, 잔치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떡을 떼는 것은 주님의 만찬을 먹고 주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행 20:7, 고전 11:20, 10:21). 주님의 만찬은 주님의 만족을 위하여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고전 11:20, 24-25). 주님의 만찬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의 만족을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만찬을 먹는 것은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목적이 주 예수님의 만족을 위해 왕국을 이끌어오는 것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막 14:25). 주님의 상은 교통 안에서 주님을 누리는 것을 가리킵니다(고전 10:21). 주님의 상의 의미는 참여하기 위해 누리는 것, 곧 교통하기 위해 누리는 것입니다. 혼자서는 주님의 상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교통 안에서 주님을 함께 누려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상에 참여한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가 생명이 자라기 위해 영적으로 양육을 받는 최상의 길임을 알고 체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 집회에 올 때, 우리는 한 면으로 주님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것이고, 또 다른 면으로는 몸의 지체들과 교통하기 위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상에는 또 다른 두 가지 부차적인 방면들을 포함합니다. 첫째, 주님의 상에서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선포해야 합니다(고전 11:26). 둘째,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떡과 잔이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함축합니다. 우리는 우주 안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종결되었고, 긍정적인 면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신성한 생명이 해방되어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받게 되었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기 위해 돌아오실 때까지(마 26:29) 주님의 만찬을 먹고 끊임없이 그분의 구속하는 죽음을 선포함으로 그분을 기념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상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만족하지만 여전히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고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상의 의미와 목적은 주님을 기념하고, 성도들과 교통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하며,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을 갖고 주님의 상에 와야 합니다. 이것들이 주님의 상 집회의 기본적인 방면들입니다. 이러한 방면들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상 집회에서 어떻게 기능을 발휘해야 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상 집회가 빈약한 이유는 주의 상 집회에 대한 이해가 풍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상 집회에서 주님을 기념하는 길은 주님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 11:24-25). 우리가 주님을 더 받고, 주님을 더 먹고, 더 마실수록 우리는 참되게 주님을 기념하게 됩니다. 또한 주님의 상에서 성도들과 교통하는 길도 한 떡과 한 잔에 참여하는 것입니다(10:16). 그러므로 주님의 상 집회에서 주님을 기념하고 서로 교통하는 길은 모두 그리스도를 먹고 그분을 마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상에서 주님을 기념한 후에 우리는 아버지를 경배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분의 만찬을 제정하시고 제자들이 떡과 잔에 참여한 후에 그들을 아버지께로 이끄시어 아버지를 경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마 26:26-30). 마태복음 26장 30절은 “그리고 그들은 찬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나아갔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떡을 떼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아버지께 드린 찬양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맏아들로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선포하고 교회 중에서 아버지를 찬미하는 찬송을 부르시는 데 앞장서십니다(히 2:11-12). 이것은 실행적으로 주님의 상 집회에서 이루어집니다. 원칙적으로 주님을 기념하기에 앞서 아버지를 경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적인 체험에서 우리는 먼저 아버지가 아닌 아들께 오고, 그러고 나서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께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요 14:6, 엡 2:18). 우리가 주님을 기념한 후에 우리는 우리의 맏형이신 주님의 인도아래 아버지를 경배해야 합니다. 이것은 맏아들께서 교회 집회에서, 아버지의 많은 아들들 안에서 아버지를 찬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교회로 모여 아버지를 찬양할 때에 맏아들은 우리의 찬양 안에서 아버지를 찬양하십니다. 우리가 아버지께 노래하면 할수록 더욱더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나타나시고 움직이시는 것과 기름 부으시고 생명 분배하시는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 안에서 자라며, 어떤 것보다 뛰어난, 그분께서 얻으신 영광 안으로 이끌릴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기념할 수 있는 분명한 시간과 길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명한 시간은 주님의 상 집회에서이고, 그분을 기념하는 길은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를 경배할 수 있는 분명한 시간과 길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를 경배하는 분명한 시간은 우리가 주님을 기념하고 나서이고, 그분을 경배하는 분명한 길은 우리의 맏형이신 그리스도의 인도 직분 아래서 아버지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상 집회를 합당한 순서에 따라 수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집회의 “맛”을 손상시켜 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메시지 11

히스기야의 인격과 실패의 예

성경: 사 36?39장

Ⅰ. 이사야서의 처음 서른다섯 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어린 징벌과 민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징벌과 심판의 목적은 그분의 선민이 그분께 돌이킴으로, 창조된 것들이 복원되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이끌어 오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파면시키셨고, 자격 있는 유일한 분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A. 36장부터 39장까지에서 이사야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예를 제시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왕으로 임명되었고 경건했으며, 기도하여 하나님에게서 기적적인 응답들을 받았던 히스기야와 같은 사람이 결국에는 어떻게 자기 영광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보여 준다. 따라서 히스기야도 결국 하나님께 파면당했다.

B. 우리는 히스기야의 예에서 귀중한 공과들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긍정적인 것들에서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실패에서 우리의 장래를 위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공과를 배울 수 있다. 히스기야의 예는 우리가 일생 동안 우리의 생활과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에서 순수하게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다?비교 삼상 1:25, 2:11하-26, 3:9.

C. 히스기야 왕은 존엄한 행실을 한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내재적으로나 조성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다(비교 딤전 6:11, 딤후 3:17). 그의 삶은 주님과 더불어 잘 시작되었지만, 그의 결국은 형편없었다(비교 갈 3:3-4, 5:7, 잠 4:18).

Ⅱ. 제일 좋은 왕들 중 하나였던 히스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그분을 신뢰하였고, 그분께 매달렸으며, 그분의 계명들을 지켰다?왕하 18:1-8.

A. 히스기야는 산당들을 제거했고, 기둥들을 부수었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버렸으며,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향을 피웠던 놋 뱀을 산산조각 냈다?왕하 18:4.

B.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집을 복원하고 우상 숭배와 관련된 것들을 제거했다?대하 29:3-36.

C. 히스기야는 사람들이 더 이상 지키지 않았던 유월절을 회복했다?대하 30:1?31:1.

D.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봉사의 질서를 세웠다?대하 31:2-21.

E.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공격에 대비해서 방어벽을 쌓았다?대하 32:1-5.

F.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신뢰했고, 그의 백성에게도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격려했다?대하 32:6-8.

G.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계셨고, 그는 가는 곳마다 번영하였다?왕하 18:7.

Ⅲ. 히스기야는 적군의 공격에 대해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사 36:1-37:38.

A. 히스기야는 그 상황에 대해 들었을 때,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두르고 여호와의 집에 들어갔다. 이것은 그가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사 37:1.

B.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서, 자신이 받은 편지를 여호와 앞에 펴놓고, 한층 더해진 적군의 공격에 대해 여호와께 기도하였다?사 37:14-20.

C.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주신 응답대로 여호와를 신뢰했으며, 여호와께서 그분의 응답을 이뤄주심으로 그는 승리를 거두었다?사 37:21-38.

D. 여호와는 히스기야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 자신과 다윗을 위해서 예루살렘을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히스기야가 무게 있거나 가치 있거나 소중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밝혀 준다?사 37:33-35.

Ⅳ. 히스기야는 자신의 건강을 위해 여호와를 간절히 찾았다?사 38:1-22.

A.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 주님은 그분 자신을 ‘너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사 38:5)으로 언급하셨다. 이것은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 신망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B. 히스기야는 그의 기도에서 일생토록 ‘신중히(많이 고려하며 천천히, 부드럽게, 겸손하게)’ 행하겠다고 말하였다(사 38:15). 그러나 그는 신중하게 행하지 않고 조급하게 행했다(39:1-8).

C.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수명을 단지 십오 년만을 연장해 주신 사실은 그가 오십사 세까지만 살 것임을 의미했다(왕하 18:2).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신뢰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계시한다(사 38:5). 히스기야는 그의 마지막 십오 년 동안에 너무나 심각한 실수를 범하여,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잃어버리게 했다(39장).

D. 히스기야는 좋은 기도를 하였지만, 그의 기도에는 이기적인 맛이 있었다(사 38:2-20). 그는 여호와를 찬송할 수 있도록 자신을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 남겨달라고 이기적인 방식으로 여호와께 간구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위하였지만 이기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을 위하였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우리가 그의 기도에서 맛보는 것이다(사 38:18-19).

E. 히스기야는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사람, 곧 하나님-사람은 아니었다.

Ⅴ. 이사야서 39장은 평화로운 상황과 좋은 건강을 누리는 가운데서 히스기야가 범한 실패를 보여 준다.

A. 히스기야가 바빌론에서 온 사절단에게 자신의 보고(寶庫)와 무기고에 있는 모든 것과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었고 큰 실수였다. 이러한 부(富)를 보여 준 것이 바빌론에게 유혹이 되었다. 백 년이 조금 더 지난 후에 바빌론 왕이 와서 이 모든 부를 빼앗아갔다(왕하 24?25장).

1. 히스기야는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고려하지 않았고, 그 행동에 대해 기도하지도 않았다. 그는 바빌론 왕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2. 이것은 히스기야가 조급했으며, 사려 깊거나 주의 깊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사 39:1-2.

3. 히스기야가 과시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교만을 미워하신다?벧전 5:5.

a. 우리는 모두 주님과 함께하는 은밀하고 감춰진 생활, 곧 우리 속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주님을 체험하는 생활이 필요하다?시 42:7상, 마 6:3-4, 6.

b. 사람 앞에서 자신의 모든 영적인 생활과 미덕들을 과시하고 자신의 속 깊은 곳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리스도인은 뿌리가 없는 것이다. 그는 시련과 유혹의 때를 견디지 못할 것이다?마 13:6, 21, 사 37:31.

c. 히스기야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바빌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의 모든 부를 빼앗겼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만큼 잃어버리리라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다른 이들 앞에 전시해 보이는 만큼 스스로 양도하게 될 것이다.

4. 히스기야는 선물들을 받는 것에 대해서, 또한 자기를 영광스럽게 하는 것에 대해서 실패했다. 그는 자아로 충만했고 자아를 억제하지 못했다.

5. 히스기야는 경건한 사람이었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에게서 기적적인 응답들을 받았지만, 결국 자기 영광과 이기심으로 인하여 실패하게 되었다.

B. 히스기야의 이기심은 이사야서 39장 5절부터 8절까지에 나오는 이사야의 말에 그가 반응한 방식에서 나타난다.

1. 유다 왕국은 사실상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이었고, 히스기야는 그것을 자신의 왕국으로 여겨서는 안 되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왕국을 잃어버리는 것은 작은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을 잃어버리시는 것은 큰 일이었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는 생각이 없었고, 그 자신의 자녀들까지도 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자기 자신만을 위했다.

C. 히스기야의 실패의 요인들은 다음의 것들을 포함한다.

1.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신의 육체에 따라 과시한 것.

2. 깨어 있지 않은 것.

3. 주님을 간절히 찾지 않은 것.

4. 기도하지 않은 것.

5. 자신의 행동의 산물, 즉 결과를 고려하지 않은 것.

6. 자신만을 관심하고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관심하지 않은 것.

Ⅵ. “이러한 본의 빛 안에서 우리는 주님과 함께 얼마간 시간을 보내며, 자신이 어떤 사람들이 될 것인지를 자문해 보아야 한다. 조급하고 그토록 자신을 위했던 히스기야와 같이 될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상고하면서 이렇게 말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 저는 어떠한 종류의 사람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다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당신을 저의 인격과 생명으로, 곧 제가 당신을 살 수 있도록 당신을 제 안에 사시는 분으로 소유하고 싶습니다. 만일 제가 무언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저는 이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모두 이러한 기도를 한다면, 주님의 회복은 커다란 부흥을 갖게 될 것이다.” (이사야서 라이프 스타디, 메시지 19, 151쪽)

 

일정?

 

11/13(토)

11/14(주일)

비고

AM 7:00-8:30

기상 및 개인 부흥 산책

8:30-9:30

아침식사

아침식사 준비

9:30-10:30

집회준비

방 정리

10:30-12:30

4. 주일집회

10:30-11:30 만찬

11:30-12:30 신언

PM 12:30

점심식사

(집으로)

3:00-4:00

등록 방배정

OT

4:00-6:00

1. 주의 상

여름11번

6:00-7:00

저녁식사

7:00-7:50

2. 청년들에게

필요한 교통

7:50-8:00

휴식

8:00-9:30

3. 섞임

9:30-10:30

휴식 및 취침준비

10:30-

취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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