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교회 소식지 (2011.03.13)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1-06-15 , 조회 (34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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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훈련


 메시지 7. 

 

하나님의 신약 경륜에 따른
네 단계 안에 계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3)

-부활과 승천의 단계에서

 

…내가 그에게 위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생명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사 53:12)
   이사야서 53장 12절 상반절에 나오는 ‘전리품’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의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창문을 활짝 열어 준다. ‘전리품’은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전리품은 포획물을 상징하며 포획물은 전쟁이 있었고, 누군가가 전쟁에서 승리했으며, 승리한 이들이 전리품, 포획물, 포로들을 얻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골로새서 2장 15절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라는 보이는 장면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벗기시어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엄격히 말해서 ‘그분’(영어 회복역 원문 참조)이라는 대명사는 하나님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고 계신 것은 커다란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처음 세 시간 동안 사람에게 박해받으시고 고문당하시며 모독을 당하셨다. 후반부의 세 시간 동안 세상의 죄들이 그분 위에 놓였고,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죄가 되셨으며, 놋 뱀의 예표를 성취하셨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분은 육체 안에 있는 죄였고, 하나님은 오셔서 그분을 죄로서 심판하셨다. 이 죄에 대한 심판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이 세상의 통치자를 쫓아내는 것과 마귀를 멸망시키는 것을 포함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또한, 율법에 속한 모든 나누는 규례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계셨다. 원수 사탄은 적어도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틀림없이 무언가가 몹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갑작스럽게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말했을지 모른다. “아니 이게 뭘까? 우리가 성취해 온 모든 부정적인 것이 무효화되고 파괴되고 있구나. 주님께서 창세기 1장 26절에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성취하는 한 새사람을 그분 자신 안에서 능동적으로 창조하고 계시는구나.” 그러므로 악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 곧 인도하는 악한 천사들과 악한 영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 안에 있는 장면에 등장한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십자가가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셨고, 하나님께서 그곳에 계셨으며, 우리가 그곳에 있었고, 우리의 죄들이 그곳에 있었으며, 사탄이 그곳에 있었고, 옛 창조 전체가 그곳에 있었으며, 보이지 않는 장면 가운데 격렬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자가는 그의 종말이었기 때문에 원수도 필사적이었다. 오늘 우리는 사탄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작은 마귀야, 너는 이미 멸망당했다! 우리 예수님께서 너와 너의 모든 추종자를 멸망시키셨다. 이제 몸이 하는 말을 들어라. 네가 방해하려고 와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주위에 몰려들었지만, 하나님은 옷을 벗기듯이 너를 벗겨 내셨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기셨고, 너와 너의 추종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수치를 돌리셨다. 할렐루야!”
   우리는 다니엘서에서 원수에게 그를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들, 곧 민족들을 통치하는 자들, 이 나라 저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단 10:13,20). 이 천사들 중에서 인도하는 천사들이 벌어지고 있는 일에 저항하기 위해 하나님과 그리스도 주위에 몰려들었다. 원수가 싫어하는 한 가지는 폭로되고 부끄러움 당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죽어 가시면서 하나님의 불로 구워지고 계셨고, 또한 목말라 하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외치고 계셨다. 그러한 물질적인 장면이 진행되는 동안, 영적이고 보이지 않는 장면에서는 십자가에서 커다란 전쟁이 있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벗겨 내셨다는 것은 그들이 가까이에 있었고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벗기시어 공개적으로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다.(이사야 결정-연구Ⅱ, M7  R. K 교통 중에서)


 

특별교통 - 아침부흥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덮는 너울


   구약과 신약은 모두 우리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구약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우리에게 명한다. 계시록에서 우리는 교회의 하락이 주님을 향한 첫째가는 사랑의 상실에서 시작되었음을 본다. 이것은 마음과 관계되어 있다. 우리가 지적했듯이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너울이 모세의 얼굴 위에 있지 않고 백성의 마음에 있다고 말한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모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너울이 그들의 마음에 덮여 있습니다.”라고 바울은 말한다(15절). 모세의 얼굴에 있는 너울은 사실 백성의 마음에 있는 너울의 상징이었다.
   고린도후서 3장에서 바울은 이 너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하여 진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킬 때 너울이 벗어진다. 한편으로 너울은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제거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킬 때 너울이 제하여진다.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너울이 제하여졌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들의 마음에 너울을 가리고 있다. 원칙상, 그들은 구속받고 애굽에서 구출되어 시내 산으로 인도된 이스라엘 자손과 동일하다. 백성들이 마음 안에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까닭에 그들의 마음은 그들을 주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너울이 되었다. 동일한 것이 오늘 믿는 이들에게도 해당될 수 있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며 애굽인 세상으로부터 인도되어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다. 비록 너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제하여지지만 우리의 체험에서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문제로 인하여 여전히 너울이 존재할 수 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은 거듭거듭 백성들에게 그들의 마음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그들의 마음이 할례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에 관하여 말했다(욜 2:13, 렘 4:4). 마침내, 에스겔을 통하여 주님은 사람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겔 36:26).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 예수께서는 종교적인 사람들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마 15:8).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었을 때에도 그들의 마음은 그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것이 또한 오늘의 상황이다. 주일 아침에 무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어떤 건물들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가? 교회 집회에 올 때 당신 자신의 마음 상태는 어떠한가? 그렇다. 우리는 오늘의 하나님의 산에 올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함께 있지 않을 수 있다. 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일곱 서신서들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의 첫째가는 사랑을 잃을 수 있고 미지근할 수 있다. 첫째가는 사랑을 잃는 것과 미지근함의 상태는 모두 마음의 문제이다. 바울은 유대 백성들이 율법을 읽을 때 너울이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구약을 읽지만 아무 빛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방인들만이 어둠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도 역시 어둠 가운데 있다. 그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 너울이 있는 까닭에 빛비춤을 받지 못한다. 모세는 비록 구약 경륜 아래 있었지만 영광 아래 있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신약 경륜 아래 있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울 아래 있다. 그들의 체험에서 그들은 영광 아래 있지 않다.


구약과 신약 아래 있는 것의 체험적인 의미


   당신은 구약 아래 있다는 것이 체험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그것은 너울로 가리워져 있는 상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체험의 견지에서, 사실상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구약 아래 있다. 그렇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만 너울로 가리워져 있다. 신약 아래 있는 것은 덮는 것 없이, 아무 너울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빛날 뿐만 아니라 마음 안으로부터 빛날 것이다. 요컨대, 너울로 가리워지는 것은 구약 안에 있는 것이지만 너울이 벗어져 하나님의 영광 아래 있는 것은 신약 안에 있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3장에 제시된 출애굽기 34장에 관한 바울의 해석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를 덮는 너울을 가지는 한 구약 아래 있다. 우리가 정직하다면 우리는 이것이 역시 우리의 상황일 수 있음을 인정할 것이다. 우리가 구약 안에 있느냐 신약 안에 있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비록 모세는 연대기적으로 구약 시대 안에 있었지만 그의 영적 상태에 의하면 신약 안에 있었다. 이것은 모세의 마음이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울로 가리워져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지 못하는 반면,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날 수 있었다. 그는 너울 아래 있지 않았으므로 사실 구약 아래 있지 않았다. 더 나아가, 모세는 산 위에, 구름 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구름 아래 있었다. 구름은 모세가 그의 얼굴을 덮었던 너울과 동일하다. 산꼭대기에 계신 하나님과 산 아래 있는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구름이 있었다. 모세의 얼굴 위의 너울은 이 구름의 상징이요 또한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 사이의 구름 낀 관계의 상징이다. 그들은 맑은 하늘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있는 모세에게는 하늘이 맑았다. 마찬가지로,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름 아래 있었다. 주님과 함께 맑은 하늘을 누리며 구름 위에 있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 그러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영적 상태에 따라 사실 구약 아래 있다. 이것을 인식하였으므로 바울은 믿는 이들로 하여금 구약의 단계를 떠나 체험적으로 신약의 단계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기 위해 고린도후서를 썼다. 이러므로 바울은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고 반사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름과 너울 아래 있다.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을 바라보며 반사하는, 신약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가 너울을 벗은 얼굴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보고 반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체험 안에서 신약 아래 있을 것이다.(출애굽기 라이프스타디 양장4, 33-38쪽)


 

복음과 목양 - 기도집회 추구내용

 

복음 전파와 네 가지 회복의 관계(B)

 

   셋째로 제대로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하고자 한다면, 이것은 개인이 단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 교회 곧 몸 전체가 전하는 것이어야 한다. 말할 줄은 몰라도 사람을 초대할 수는 있고, 복음지를 나누어 줄 수는 있으며, 복음의 망(網)을 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동역이 필요하다. 몸의 간증과 몸의 생활은 복음 가운데서 표현되어야 한다. 온 교회가 일어나 복음을 전할 때 모든 사람들이 한 사람과 같아야 하며, 기능이 크든지 작든지, 모든 사람이 다 직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만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온 교회가 살아나게 되므로, 몸의 모든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넷째로, 지방 교회가 나타나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허한 말만 외쳐서는 안 된다. 만일 돌 한 조각, 나무 한 토막도 없다면 어떻게 집을 지을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오천 명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한다면, 2년 후에는 다섯 군데에 교회가 산출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질을 중시해야지 양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말이다. 양이 없는데 어떻게 질이 나올 수 있겠는가? 만일 우리가 오천 명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한다면, 그 중에서 최소한 오백 명은 지방에서 교회가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다만 영적이기만을 추구하고, 그리스도의 풍성만을 추구하며, 계시와 이상만을 보고자 한다면, 연초부터 연말까지 집회의 인수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교회를 건축하고 어떻게 지방 교회를 일으키겠는가?
   어떤 사람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다 닭털과 마늘 껍질과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일을 닭털과 마늘 껍질같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일이라고 경시하지 말라. 이러한 일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은 언젠가 새 예루살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확실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만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말라.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초대하지도 말고, 끌어오지도 말며, 오직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하라고 말한다. 성령께서 하시는 것만 의미가 있고, 사람이 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말은 성경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다. 주 예수님은 “사거리로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결혼 잔치에 초대하여라”(마 22:9)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의 뜻은 큰 길과 작은 골목의 네거리로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리고 오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영적인 것을 주의해야 하지만, 빗나가서는 안 된다. 사탄은 사람들을 이단에 빠지게 할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우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곧 우리의 부담이다. 대만 섬 전체에 몇 십 개 지방에 교회가 있다. 그곳의 많은 성도들이 오랫동안 말씀을 들어왔고, 온전하게 됨을 받았으며, 진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분명하고, 건축의 상황도 매우 좋은 편이지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복음 전파이다. 오늘날 복음 전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는 우리가 대적에게 기만당해서 복음에 있어서 손상당했기 때문이다. 한 가정이 흥왕하려면 끊임없이 낳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한 세대의 노인만 있다면, 갈수록 체험이 있고 갈수록 노련해지겠지만, 아이는 낳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집은 문제가 크다. 낳기만 해놓고 기를 수 없다거나, 낳기만 해 놓고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도 미래가 있으려면 후대가 없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과 내가 아무리 유능해도, 여러분과 나도 고착화되었고, 지금 이 상태이다. 속되게 말해서, 장원 급제한 제자는 있어도 장원 급제한 스승은 없다. 이것은 스승이 비록 장원 급제하지 않았을지라도, 또 장원 급제할 수 없을지라도 그가 길러낸 제자는 장원 급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교회가 장래가 있고, 주님의 일에 장래가 있으려면,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 되고 끊임없이 낳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필요는 바로 복음을 확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지 교회는 복음 전파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심지어 일이 년의 시간을 투자해 복음을 집중적으로 강화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이 2년 동안은 복음의 해로 온 전체가 일어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기도 집회에서도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고, 온전하게 하는 훈련에서도 성도들이 복음 전하는 것을 격려하여, 복음의 분위기를 산출하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에게 어떻게 사람들을 초대하고, 데리고 오고, 함께 앉아 주며, 말을 건네는 지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어떻게 심방하며 사람을 인도하여 구원받게 하는지, 침례 받은 이후 어떻게 그들을 몸의 봉사 안으로 이끌어 오는지를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훈련하면서 2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새로 들어와 새로운 피가 흘러들어오게 되고 교회의 인수는 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것을 깨달을 수 있어 삼사 년이 지나면, 교회 가운데서 상당히 드러날 것이고, 분명하고 신선한 일을 해 낼 것이다.(위트리스 리 전집 1965년 4권  116-119쪽)

 

부산교회 최근움직임

 

산 교회 성경 세미나

 

부산 교회는 3월 8일 화요일부터 부산 교회 성도 및 추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요한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2011년 상반기 성경 세미나를 시작하였습니다. 첫 날 110여명의 부산 교회 성도들과 추구하는 분들이 참석하여 생명과 건축에 관련된 말씀을 공급받았습니다. 우리가 공급받은 말씀은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인식하고, 생명을 받아들이고,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림으로 생명이 성장하고 성숙될 때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주님의 축복과 은혜를 더하셔서 더 많은 분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부산 교회 대학생 개강 집회

 

부산 교회 대학생들과 열린 가정들 그리고 캠퍼스 봉사자들이 지난 3월 5일 토요일 오후 6시경에 남구 학생 센터에서 2011년 1학기 개강 집회를 가졌습니다. 총 120여명의 성도들이 참석하였으며, 그중에 80여명이 대학생들이었습니다. 2011년 신입생들과 선배들이 함께 모여서 찬송과 각 지역의 활력그룹을 소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섬길 봉사자들과 목양할 성도들을 소개하였으며, 각 지역에서 가정을 열고, 물질과 음식으로 동역하며 섬기고 있는 홈미팅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본 것은 이번 학기에 캠퍼스에서 신입생들과 학생들을 섬기기 위해 더 많은 격려와 기도와 열린 가정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학생들 안에서 활력 그룹에 대한 부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둘 셋씩 그룹을 형성하거나 그룹지어져서 참된 교회 생활 안으로 들어가는 상황을 보았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며, 더 전진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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