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교회 소식지 (2011.03.27)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1-06-15 , 조회 (29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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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겨울 훈련


 메시지 9.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금식의 내재적인 의미

 

   출애굽기 31장 16절과 17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라고 말한다.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 하는 표징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건축을 위하여 그분과 함께 일하기 위하여 필요한 우리의 힘, 에너지, 그리고 모든 것이시라는 증거이다. 이러한 표징을 지니는 것은 하나님을 존귀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누리고 그리하여 그분께서 우리의 힘, 우리의 에너지, 우리의 공급, 우리의 격려, 우리의 지원이 되시어 우리가 그분과의 하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수고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완결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것은 하나님께 어떠한 존귀와 영광인가!
   우리는 어떠한 일이나 봉사를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하나님을 누리며 하나님으로 상쾌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표징을 반드시 지녀야 한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거나 집회소를 관리하는 일을 하거나 의자를 정리하거나 젊은이들을 목양하거나 어떤 봉사를 하기에 앞서 반드시 먼저 하나님과 함께 안식하고 하나님을 누리고, 하나님으로 상쾌하게 되고 하나님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는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바로 그분과 하나 되어 함께 일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의 봉사 안에서 그분께서 우리의 안식과 상쾌함과 에너지와 힘과 능력으로 누리기 위한 것으로서, 그 결과 우리는 그분으로 충만하게 되고 그분께 힘을 받아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또한 새 예루살렘의 완결을 위하여 수고하게 된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자 하였다. 그는 모든 재료를 모았고 이제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다윗이 그 일을 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4절과 5절은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 구절들을 읽을 때 “네가 …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나에게 집을 지어줄 수 있는 것은 네가 아니다. 내가 너에게 집을 지어주겠다. 그리고 네 씨가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다.” 다윗은 이것을 듣고 교만하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다윗은 나단에게 “나는 그대가 주님과 가깝다는 것을 알지만, 나도 주님과 가깝다. 나는 시편도 여러 편 기록하였고 여호와께 기름 부음 받은 왕이다. 주님은 나에게도 말씀하신다. 그러니 나는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진행하겠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다윗은 이렇게 반응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하지 않았다. 반대로 다윗은 멈추었는데, 그가 멈춘 것은 우주 안에서 위대한 일로 여겨야 한다. 바버 자매님이 한번은 “하나님을 위하여 멈출 수 없는 사람은 누구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은 매우 심오한 말이다. 이것이 바울의 체험이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한 일에서 극도로 활동적이었지만 주님을 만나고서는 자신을 멈추고 “주님, 무엇을 해야 합니까?”(행 22:10)라고 말했다. 마찬 가지로 주님은 우리를 멈추게 하실 수도 있다. 그분은 “이만큼만 하여라.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하지 마라. 이제 멈추어라. ‘나에게 성전을 지어주는 일’은 네 몫이 아니다. 너는 나로 대치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우리가 멈추는 것은 주님을 우리의 안식일로 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윗이 멈춘 것은 우주 안에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일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둘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행하신 것이라는 원칙이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의견, 결정, 생각들을 멈추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게 해야 하고, 주님께서 개입하시게 해야 한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누려야 한다는 것에 인상을 받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먼저 주님을 누린다면 우리는 그분과 동역하고 그분과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이사야 결정-연구Ⅱ, M9  E. M 교통 중에서)

특별교통 - 아침부흥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역사해 들어오신 그리스도를 소유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계시되었고(갈 1:15-16)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시며(갈 2:20) 그의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상을 이루셨으며(갈 4:19) 그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고 말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살았다. 다소의 사울이었을 때 그는 유대교라는 다메섹을 통과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 그 당시에 그가 얻은 모든 것은 엘리에셀이었다. 주님은 바울에게 그 모든 것들-쓰레기와 배설물과 개가 먹는 밥-을 잊어버리고 덮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가진 것들 중 어떤 것도 그리스도를 낳을 수 없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안에 역사해 넣으신 것만이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었다. 주님은 바울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너의 종교적인 배경에서 네가 얻은 것은 결코 그리스도를 낳을 수 없다. 오직 내가 네 안에 역사해 넣어주는 것만이 그리스도를 낳을 수 있다. 내가 네 안에 역사해 넣어주는 것은 내 은혜이다.』 결국 바울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지금의 내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나에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고전 15:10).
   여기에서 나는 은혜와 축복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은혜는 사실상 축복이다. 축복이란 무엇인가? 축복은 번창이요 이익이요 상여금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라는 단어의 형용사형을 사용하여, 『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라고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은혜의 참된 의미와는 심히 거리가 멀다. 민수기 6장 25절에 있는 「은혜로운」의 히브리어 단어는 「낮은 사람을 다정하게 대하기 위해 자기의 몸을 굽히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면 왕이 거지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다정하게 몸을 굽힐 수 있다. 이것이 은혜로움의 의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은혜는 오직 하나님 자신이다. 성경에서 은혜는 다만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누림이 되신 하나님 자신이다. 요한복음 1장 17절은,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은혜와 실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이 육체가 되시어 … 은혜와 실재가 충만하였다.』고 말하며 요한복음 1장 16절은,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에서 받았으니, 은혜 위에 은혜였다.』고 말한다.
   축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지만 은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직장과 건강과 우리의 육신의 생명까지도 잃었을 것이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축복 아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생존하는 것뿐이라면 헛되고 헛되다. 우리는 이 나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다만 여기에서 생존을 위해 돈을 벌고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헛되고 헛되다. 모든 자동차와 집과 학위와 직장이 헛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이 있습니다. 아들들은 의사이고 딸들은 교수입니다. 이 어떠한 축복인지!』 만일 당신의 생존이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들은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헛되고 헛된 것들 안에 살기 위한 축복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오 년 전에 나는 겨우 매년 오천 달러를 벌었는데 작년에 나는 이만 오천 달러를 벌었습니다. 이 어떠한 축복입니까!』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위하지 않는다면 이것 또한 헛되고 헛된 것들 안에 살기 위한 축복이다.
   최근 어느 날 아침에 주님은 나를 일찍 일어나게 하셔서 한 가지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신약의 책들 중 어느 책도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또는 『축복이 여러분의 영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서신이,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난다(갈 6:18, 엡 6:24, 빌 4:23, 골 4:18).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인 것들이 번창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은 말씀이 축복으로 가득한 육체가 되었다거나 축복이 그리스도와 함께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책도,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구약에는 주로 축복이 있지만 신약에서는 물질적인 축복이 즉시 영적인 축복으로 대치된다. 에베소서 1장 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영적인 축복으로 축복하셨다고 말하며, 에베소서의 마지막 구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성경 전체의 마지막 구절 또한 은혜를 말한다. 계시록 22장 21절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요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축복이 너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다. 그 구절은 다만,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은 민수기 6장 24절부터 26절에서,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축복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이와 같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반대로 고린도후서 13장 14절에 있는 바울의 축복은 또 다른 범주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반복하거니와 축복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것이고, 은혜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창세기 라이프 스타디 171-175쪽)

 

복음과 목양 - 기도집회 추구내용

 

성도들과 교회는 정규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함

 

   어떤 교회나 어떤 성도가 복음 전파를 간과한다면, 그것은 그 교회나 성도의 영적인 상태가 균형을 잃었다는 표시이다. 정규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균형 잡아 준다. 결혼한 성도들은 가능한 한 일주일에 한 번이나 이 주에 한 번 그들의 집을 열어서 이웃과 친구와 친척들을 초대하여 복음을 듣게 해야 한다. 우리는 경직되어 있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형제를 초대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자매들이 가정을 연다면 자매들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자매들은 또 다른 자매들에게 요청하여 돌아가면서 십 분씩 간증을 하도록 부탁할 수도 있다. 그러면 한 자매는 결론의 말을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교통할 수 있다. 이렇게 가정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형제를 요청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자매들이 일어나 복음을 전한다면 자매들은 살아 있게 될 것이고, 그들의 많은 이웃이 구원받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거리에서도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주일에 복음을 전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의 복음 친구들에게는 매주 복음을 들을 수 있는 한 장소가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 집회를 하기 위해 석 달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또한 적어도 육 개월에 한 번씩 특별한 복음 집회를 열어야 한다. 예를 들면, 교회는 여름에 복음을 전하고 겨울 기간에 또 한 번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모든 형제자매가 일어나서 복음 전파에 참여할 수 있다. 타이베이 교회처럼 큰 교회에서는 아마도 한 번의 큰 복음 활동을 통해 이천 명의 사람이 주님을 믿을 것이다. 이런 후에 우리는 매달 한 번 복음 집회를 열고 새로운 믿는 이들이 그들이 받은 구원에 대해 분명히 깨닫고 침례를 받도록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초봄부터 여름까지 수확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런 다음 여름에 큰 복음 집회를 하여 가을부터 겨울까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새해 큰 복음 활동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안배를 통해 우리는 일 년 내내 매달 복음을 전파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를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균형을 잃을 것이다.

   나는 1949년과 1955년 사이의 우리의 실행을 생각해 볼 때 우리의 길이 합당했다고 느낀다. 우리는 생명과 진리와 복음과 교회의 네 방면에서 균형 잡혔고, 주님의 임재와 축복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교회에서 일어난 소요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이제 우리는 처음에 가졌던 균형 잡힌 길로 돌아가야 하고, 성도들을 인도하여 생명이 자라고, 진리를 알며, 복음을 실행하고, 교회생활을 체험하게 하는 데 동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이 네 가지를 반드시 해야 한다.

 

복음의 확산을 위한 합당한 움직임

 

   복음 전파 활동을 할 때 우리는 매일 헌신을 새롭게 하고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성령의 능력을 적용할 것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것이나 느낌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 능력을 적용한다. 우리는 사람들을 복음 집회에 초대할 때나,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나, 그들이 주님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들과 대화할 때 반드시 이 능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받아들이기 전에 그들과 대화할 때 반드시 이 능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의 일을 확증하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능력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우리에게는 주님의 임재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영이 또한 살아날 것이다. 이처럼 복음의 일은 교회에 큰 구원이 될 수 있다. 과거에 온 교회가 일어나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기도로 읽고 아침 부흥을 했을 때 교회 안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것은 우리가 말씀을 기도로 읽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말씀을 기도로 읽음으로 주님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복음을 전함으로 주님을 다른 사람들 안으로 공급한다. 이러한 식으로 주님은 우리 안에서 흐르실 수 있는 길을 얻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공급을 위해 우리 안으로 흘러들어 오시고, 다른 이들을 공급하시기 위해 우리에게서 흘러 나가심으로 그분의 영광과 축복을 가져오신다.

   우리 모두 복음의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기 바란다. 복음의 초점이 젊은이들에게 있다면 우리는 그 부담을 위해 교회로서 함께 서야 한다. 모든 부모는 이웃에 사는 젊은이들이나 친척들 중 젊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많은 젊은이를 가정에 초대함으로 그 움직임에 참여할 수 있다. 부모들은 또한 젊은 형제자매들을 격려하여 이 움직임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매번 복음 활동을 통해 수백 명의 젊은이가 주님께 돌아와 주님께서 장래를 위해 젊은이들을 얻으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모든 형제자매는 이러한 복음 전파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할 필요가 있다. (위트리스 리 전집 1966년 3권  345-348쪽)

 

지역복음 애찬집회

 

2011년 상반기
지역 복음애찬 집회에 대한 부담

 

  야고보서 5:7 “그러므로 형제님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오래 참으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면서, 땅의 귀중한 열매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부산 교회는 지난해 10월 3일 영광스런 (지방)교회 국제 특별집회를 마치고, 10월말부터 올해 2월말까지 지역 복음애찬 집회를 실행하였습니다. 많은 형제자매님들이 남아있는 열매를 위하여 지역 복음애찬 집회에 수고하셨습니다. 그 결과 전체 919명이 참여하였으며, 이중에 복음 친구가 176명, 회복 대상이 34명, 양육 대상이 32명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을 분발시키고 격려하는 주님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올 상반기에도 동일하게 지역에서 복음의 영을 다시 한번 일으키시어 복음애찬 집회를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봉사하시는 형제, 자매님들은 새롭게 주님 앞에 헌신하며, 복음의 영을 분발하여 지역에서 새로운 열매를 맺어 참된 주님의 몸의 증가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실행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교통을 드립니다.

1. 목표 : 5개 구역 또는 29개 지역 봉사 집회에서 인수 목표를 세우시고 특별히 네 방면-복음친구, 회복대상, 양육대상, 침례-에 대한 구체적인 인수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목표에 대한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반기 중에 1회 이상 집회 실행, 6명의 복음친구, 회복대상, 양육 대상이 참여함, 2명이상 침례를 줌과 1명이상의 남아 있는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 명단을 확보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대학부, 중고등부, 어린이부에서도 복음을 위한 집회를 동일한 방식으로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2. 계획 : 집회 담당자 2명, 장소, 일시, 애찬준비, 복음 간증, 복음 메시지, 섞임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각 구역에 봉사하시는 형제님들에게 담당자, 장소, 일시를 3월 28일까지 알려주시기 바라며, 집회는 6월 30일전까지 한번 이상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3. 실행 : 지역에 있는 형제, 자매님들을 중심으로 활력그룹과 RSG그룹과 소그룹 등에서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초청장을 돌리고, 기도 집회에서 기도하고, 애찬 집회에 사람들을 초청합니다. 이러한 실행을 통해 남아있는 열매를 얻기를 바랍니다. 집회 2주전에 주보에 광고를 할 것이며, 장소와 연락처를 알려 줄 것입니다. 다른 지역에 연결할  새신자가 있으면 함께 참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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