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제 : 하나님의 말씀을 말함
메시지 4
교회를 건축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열 가지 주요 범주로 말하는 신언하는 생활을 함
우리는 마땅히 말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를 말하는 사람으로 창조하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창조하심이다. 우리가 창조 될 때 우리에겐 영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말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랑, 빛, 의 이런 미덕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런 미덕들을 통해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이런 관념이 있었지만,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에서 행위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 하나님을 표현하게 하셨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말함으로써 그분을 대표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해서 말할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의 다스리는 통치권과 연결되어져야 한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이 땅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사람을 원하신다. 바다의 고기, 공중의 새, 이 땅의 모든 육축들, 기어 다니는 모든 것을 사람의 다스림 아래 있도록 했다. 사람이 이것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만물을 어떻게 다스리는가?
마태복음에서 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심을 통해서 권위를 행하셨다는 것을 발견한다.
마태복음 8장 8절에서 결국 주 예수님은 백부장의 종의 중풍병을 말씀하심으로 고치셨다. “주님, 나는 주님을 나의 집에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나의 종이 낫겠습니다.”
마태복음 8장 26절에서 바다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났을 때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심으로 잔잔케 하셨다. “곧 일어나시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해졌다.”
마태복음 8장 32절에서 가다라 사람들의 지방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 안에 있던 귀신들을 말씀하심을 통하여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셔서 결국 돼지 떼가 바닷물에 빠지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가거라’라고 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온 돼지 떼가 가파른 비탈로 내리달아 바닷물에 빠져 죽으니,”
주 예수님의 말씀하심은 권능을 가지고 계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는 것에 대한 표준적인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2011년 국제 중국어 특별 집회 M4 U. S 교통 중에서)
특별 교통 - 아침 부흥
하나(Oneness)에 관한 두 예
1. 접붙임
우리는,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생명임을 보았다. 이 생명 안의 하나는 어떤 나무의 가지를 다른 나무에 접붙이는 것으로 예증될 수 있다. 접붙임은 신진대사의 과정을 포함한다. 죽은 막대기는 함께 못 박히거나 함께 접착될 수 있지만 접붙여질 수 없다. 오직 살아 있는 것만이 접붙여질 수 있다.
함께 접붙여지는 두 존재의 생명은 비슷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천연적인 생명이 신성한 생명과 같지 않다는 것을 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각 생명이 종류대로인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신성한 생명은 아니지만 신성한 생명을 따라 창조되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생명과는 달리 오직 사람의 생명만이 하나님을 따라 만들어졌다. 사람의 생명과 하나님의 생명은 어떤 방면에서 비슷하기 때문에 함께 접붙여질 수 있다. 일단 접붙여지면 신성한 생명의 진액이 사람의 생명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놀라운 하나를 산출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와 하나님이,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될 수 있는가? 이 하나는 사람의 생명이 신성한 생명 안으로, 신성한 생명이 사람의 생명 안으로 접붙여짐으로써 산출된다. 요한복음 15장은 우리를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 안의 가지들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로마서 11장에서 바울이 사용한 예(例)에 의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접붙여진 가지들이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할 때 우리와 그분, 그분과 우리는 한 생명을 나누며 한 생활을 하게 된다. 생명 안의 이러한 하나와 생활이 우리를 참으로 하나 되게 한다.
2. 남편과 아내
주님과 우리의 하나는 또한 성경에서 남편과 아내의 하나로 예증된다. 남편과 아내는 본성과 생명 안에서 모두 하나이다. 결국 참된 결혼 생활을 여러 해 누린 후에 남자와 여자는 모양까지도 하나 될 것이다. 신혼기간에 남편과 아내는 사랑 안에서 하나이다. 더 세월이 지나면 그들은 생명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합당한 결혼 생활을 보낸 사람들은 최종적으로 모양도 하나가 된다. 이것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먼저, 우리는 사랑 안에서 그분과 하나이다. 그런 다음 우리는 생명과 본성 안에서 그분과 하나된다. 최종적으로 우리는 모양에 있어서도 그분과 하나 될 것이다. 사랑 안에서 그분과 하나일 때 우리는 그분의 생명을 체험하며 그분의 본성을 누린다. 그분의 생명을 살고 그분의 본성에 따라 행할 때 우리는 그분의 표현(모양)이 된다.
지난 메시지에서 우리는 율법이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설명임을 지적했다. 이는 율법이 하나님의 표현이라는 뜻이다. 사랑과 생명과 본성과 표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그분의 율법을 지킬 것이다. 우리는 자연히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 것이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려고 결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최종 목표
하나님의 최종 목표는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과 하나 되는 길은 사랑과 생명과 본성과 표현에 의해서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남편을 향한 여자의 사랑, 곧 아가서에 묘사된 바로 그 사랑이어야 한다. 주님을 이렇게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생명 공급을 받는다. 우리는 아가서에 근거하여 생명과 건축에 대한 많은 메시지를 들었다(윗트니스 리著 「아가서 강해」 참조). 주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의 공급을 받는다. 이 생명이 자랄 때 건축이 이뤄진다. 사실상 생명의 성장은 건축이다. 우리의 남편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체험하고 누림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표현이 될 것이다. 아가서는 그 과정을 묘사한다. 아가서에 있는 추구하는 자는 결국 참된 의미에서 그녀의 애인이 된다.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하나 되며 한 사람처럼 생활하고 표현된다.
남자와 아내의 하나 됨 안에서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합당한 길을 본다. 우리는 생각과 의지를 사용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우리는 남편이신 주님을 사랑함으로써 율법을 지킨다. 우리 모두와 주님사이에는 그런 달콤하고 친근하고 뜨거운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마치 여자가 남편을 사랑하듯이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청년이건 노인이건 모두 이런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할수록 그분의 생명에 더 참여할 것이며 자연히 그분의 본성에 따라 그분을 살아낼 것이다. 그럴 때 자동적으로 우리의 생활은 그분의 율법을 지키는 생활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살아 나타내는 것은 그분의 설명이며 정의(定義)이며 표현인 율법을 따른 것이 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을 향한 뜨거운 사랑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어둠에 있게 되고 유죄 판결 받고 드러나게 될 것이며 심지어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죽게 될 것이다. 이것은 율법의 어두운 면이며 「밤(夜)」의 면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밝은 면, 곧 「낮」의 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 면을 고려해 볼 때 우리는 오직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과 하나 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음을 본다.(출애굽기 라이프 스타디 -175쪽)
복음과 목양 - 기도집회 추구내용
교회의 복음 전파
복음 전파는 교회의 문제임
사도행전에서 우리는 복음 전파가 교회의 문제임을 볼 수 있다. 교회가 건축될 때 우리의 복음 전파는 영향력이 있게 된다.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시어 그분의 구속을 성취하시고, 승천하신 후 복음이 완성되었다.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었을 때 한 개인이 아닌 교회가 복음을 전파했다. 복음이 완성된 후 처음으로 오순절 날 그리스도의 몸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다. 베드로가 섰을 때 그는 열한 명과 함께 섰다. 열두 명이 함께 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 그들은 하나 되었고 영향력이 있었다. 의심할 바 없이 백이십 명 모두 함께 섰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백이십 명으로 이루어진 온 교회가 복음을 전파했다. 틀림없이 오순절 날에 큰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다.
복음 전파는 하나의 전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강한 자의 그릇들을 강탈하기 전에 먼저 그를 결박해야 한다. 강한 자는 우리가 결박해야 할 대적, 사탄이다. 우리가 영향력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로 함께 건축되지 않는다면 대적 사탄과 악한 영들은 우리를 보고 비웃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적 앞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간증을 잃은 것이다. 만일 우리가 영향력 있는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려면 하나로 함께 건축되어야 한다. 비록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들이 소수일지라도, 만일 우리가 영 안에서 하나 되고 하나로 함께 건축된다면 우리는 결국 영향력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 가운데 분열이 있다면, 곧 우리가 의견을 가지고 서로 싸운다면 복음 전파의 영향력은 사라질 것이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어떤 종류의 세계에서는 항상 어떤 원칙이 있다. 복음 전파와 관련하여, 영적인 세계에서는 몸의 하나라는 원칙이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가 아니라면 그것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한 영향력과 능력과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위트리스 리 전집 1963년 3권 367-370쪽)
교회소식
2011년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 실행 훈련
지난 5/7(토) ~ 5/8(일), 1박 2일간 성경진리사역원에서 앤드류 유, 데이빗 당, 도국청, 임홍 형제님을 강사로 하나님의 정하신 길 실행 훈련의 내용 요약입니다.
1) 우리가 1986년부터 새 길을 간지도 벌써 25년이 지났고, 1991년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간지도 벌써 20년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새신자를 집회로 데려오고 있지만 우리의 상태는 느슨하고 지체들은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 결국 새신자들은 오지만 오래된 사람들은 세어나간다. 그들을 인도한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을 집회에 데려오면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집회에 오라고 하고 대형 집회를 좋아한다.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RSG를 인도해 왔지만 새사람이 거의 없었다. 추가된 사람들이 있어도 그들은 원래 있던 지체들이었다. 우리가 진리를 추구했으나 새사람이 더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활력그룹 훈련을 통해 이제 성도들은 심방을 좋아하고 사무실에서도 성경을 읽으며, 새신자들이 복음을 전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공급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바로 두 세 사람이 있는 활력그룹이다. 나는 50년간 봉사해 오면서 큰 집회를 좋아한 동역자였다. 거기에 벗어나기 위해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기도와 주님을 접촉하는 것이다. (데이빗 당 형제)
2) 학개 1장 5절부터 7절에서 우리의 길들을 깊이 고려하고 검토하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가 타고난 길을 가고 있는지 하나님의 길을 잘 가고 있는지 깊이 고려해야한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가정으로 가져가야한다. 집회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역적인 집회로 한 무리의 사람을 모아 말씀을 전달하는 일방적인 집회이지만 다른 하나는 교회의 집회로 그것의 특징은 상호성이다. 상호성을 잃는다면 교회본질을 잃는다. 신언실행에서 10%만 신언한다면 그 10%만 상호적 집회를 하고 나머지 90%는 와서 말씀 듣고 그냥 간다. 이것은 교회적인 집회라 할 수 없다. 한국교회들은 정체와 고령화로 인한 긴급한 필요가 있다. 생명성장, 진리추구만으로는 정상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교회는 생명, 진리추구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교회이다. 우리는 매주 주일집회 전 30분 동안 복음의 말씀에 관한 집회를 할 수도 있고, 아침부흥 양식처럼 회복역을 편집하여 복음양식을 만들어 추구할 수 있다. 복음에 관한 말씀을 추구하지 않으면 복음을 주의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한다. 우리는 나가지도 않으면서 어렵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젊은이들, 학생들의 기능을 독려하고 그들을 생양교건 안에서 온전케해야 한다. 젊은이들, 학생들이 스스로 복음에 부담을 갖도록 훈련해야한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이 길을 가야한다. 우리가 이것을 실행하고 체험하지 않으면 그들을 도울 수 없다. 실제로 학생들이 복음 전할 때 가장 기쁜 일을 만졌다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2구역 L 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