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교회 소식지 (2011.07.24)
교회 주보
부산교회집사실 2011-07-22 , 조회 (335) , 추천 (1) , 스크랩 (1)
출처
원문

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2(상)

 

밀과 보리의 땅

 

(신 8:8상)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요 12:24-26) 내가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25) 자기 혼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혼 생명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혼 생명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혼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있는 그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잠든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요 6:9-13) “여기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앉게 하십시오.” 마침 그곳에는 풀이 많았는데, 거기 앉은 사람은 남자만 오천 명 가량이었다. (11)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감사드리신 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물고기도 그와 같이 하시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을 모으고 버리는 것이 없도록 하십시오.” (13) 그래서 제자들이 모았더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요 6:48) 나는 생명의 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좋은 땅으로 예표 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기 원하신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릴수록 더욱 그리스도 사람이 되어간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을 자연스럽게 살아내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만 어떠한 존재로서 살아내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함께 섬기기 위해 모일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분배함으로 서로 섬기게 된다.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가 함께 섬길 때 ‘다만 봉사이기 때문에 당신을 섬기겠다.’라고 말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단순히 그냥 모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것이다.
   어제 자매님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에 관하여 간증하신 것에 대해 감사한다. 모든 자매님들이 청소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어제 그 자매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청소를 하고 있다고 간증하였다. 이것이 바로 봉사이다. 주의 회복 안에 형제자매님들! 우리는 교회 생활 안에서 봉사하는 방식을 재고해 보아야 한다. 물론 마땅히 우리는 실제적인 일들을 관심해야 한다. 많은 인간적인 방면에서 인간사의 일들을 관심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타고난 생명으로 그러한 일을 행한다면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그리스도 없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라면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봉사가 아니다.
   참된 봉사는 우리가 체험하고 누린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것이다. 형제자매님들! 우리 각자에게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가 다만 교리뿐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적인 말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린다면, 그리스도께서 또한 우리 안에 조성되셨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통하여 그분을 확대하게 될 것이고 그분에 관하여 우리가 말을 하게 될 때, 우리가 말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이다. 우리가 교회 생활 안에서 봉사할 때, 모든 성도들을 이러한 영역 안으로 이끌기 원한다. 나는 이러한 동역자들이 일어나서 남한 전체에 본이 되기를 원한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 형제님들은 서로에게 그리스도를 분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한 형제가 아침 식사 자리에서 나에게 생수를 공급해 주었다. 그 형제의 자매는 어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 형제의 자매는 직장과 건강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 형제는 직장에서 돌아온 자매에게 ‘산에도 물이 있지만 골짜기에도 물이 있다’라고 말해주었다고 했다. “자매여, 당신이 어디에 있던 그곳에 물이 있어요!” 라고 말해주었다고 한다. 그 형제는 아내에게 시내가 되어서 물을 공급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그 자매의 기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 형제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체험을 간증했을 때, 그 형제로부터 우리에게 물이 흘러 왔다.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다. 형제님들! 우리가 그리스도를 분배해야 할 첫 번째 대상은 우리의 아내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어떻게 누리는지를 볼 수 있기 바란다. 구약에 물질적인 가나안 땅이 있었다. 이 땅은 아브라함에게 약속 된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왕국 안에서 이 땅을 완전히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물질적인 좋은 땅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시어 이 땅에 오셨을 때, 그분은 이 좋은 땅을 실재화되게 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이라고 말씀하셨고, 내가 부활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참 포도나무라고 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육체 되심의 단계 안에 머물러만 계신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길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는 지금 그 영이 되셨다. 그 영이라는 표현은 모든 것을 포함한, 복합적인, 생명 주시는 영을 의미한다.
   우리의 체험 안에서 모든 것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실재화이신 그분은 좋은 땅이시다. 그 영은 우리의 체험이 되신 삼일 하나님이시다. 좋은 땅의 실재이신 그 영은 지금 우리의 영 안에 계신다. 이제 그분은 우리의 영과 연합되었고, 우리가 이 연합된 영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좋은 땅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 연합된 영이 있다는 사실에 인상을 받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또한 그 영 안에 있는 것이다. 그 영은 체험적으로 우리의 좋은 땅이다. 지금 우리 모두가 연합된 영 안에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점차적으로 또 다른 영역 안에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사실 우리는 남한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신성하고 비밀한 영역 안에 있다. 또 다른 나라에 있다. 또 다른 우주 안에 있다. 바로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라는 우주이다.   
   지난번에 우리는 좋은 땅이 시내와 샘과 원천의 땅임을 보았다. 이 시내는 바로 물이 흐르는 것이다. 이것은 물이 솟구쳐 올라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여러분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샘이신 그리스도를 누리기를 바란다. 또한 이 땅은 원천의 땅이다. 이 원천은 바로 샘의 근원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원천은 아버지이시오, 샘은 아들이시며, 시내는 그 영이시다. 우리는 흐르는 그 흐름을 누리고 솟구쳐 오르는 샘을 누릴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봉사 안에 원천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우리 가운데 몇몇 형제자매들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아버지께서 그 근원이 되셔야 함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어떤 일을 시작할 권한을 가지신 분이다. 특별히 일에 있어서 섬기는 형제님들이 이것을 배우셔야 한다. 우리의 섬기는 일의 근원이 무엇인가? 우리가 그 일의 원천인가? 우리는 근원과 원천이 아니다. 원천은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내로부터 전진해서 샘으로 가야하고 아버지인 원천으로 가야 한다.
   나의 체험을 조금 이야기 한 다음에 다음 단계를 말하겠다. 어제 나는 우리가 물을 마심으로 그 물을 체험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서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 그 영을 마시고 우리 안에 흡수한다. 또한 우리가 말함으로 그 물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로부터 그 물이 흘러 나가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의 봉사하는 생활은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가는 생활이다. 물이 흘러 들어오고, 또 물이 흘러 나간다. 여러분이 활발한 사람이라면 흘러보내기를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나가는 것, 그것뿐이라면 메마르게 된다. 흘러 들어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흘러 들어오는 것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메마르게 된다. 여러분이 내성적이고 심사숙고하는 유형의 사람이라면 내적인 느낌을 주의하며, 그 흐름을 받는 것만을 늘 사랑할 것이다. 그 사람이 흐름을 흘러 내보내지 않는다면, 속에 압력이 가득 찰 것이다. 그 사람은 결국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왜 나에게 이런 압력이 있는가 이유를 잘 모를 것이다. 그 이유는 말하는 것을 통하여 압력을 흘려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또 다른 종류의 체험이 있다. 주님의 죽음은 구속하는 죽음이었다. 그분은 우리의 구속을 위해 고난 받으셨다. 우리는 주님의 구속하는 고난에 동참할 수는 없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구속을 위해 고난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죽음은 또한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이다. 그분은 반석이셨고, 그분 안에 물이 있었다. 그분이 죽으셨을 때 그 반석이 깨어졌다. 그로부터 물이 흘러 나왔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생명을 해방하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서 섬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서 그분이 체험한 침(매맞음)을 우리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옛 사람, 겉 사람이 파쇄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이제 여러분으로부터 생수가 흘러 나가게 된다. 이 남한에서 이러한 사람이 우리 가운데 하나도 없다면 우리 교회 안에서는 결코 그리스도의 깊이를 만질 길이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반석이시오, 깨어진 반석이시다. 그런데 많은 형제님들이 돌은 돌인데, 존재가 깨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냥 반석이 되어 모이는 것이다. 아주 견고하고 단단한 반석들이다. 모두가 반석의 기질을 가진 그런 분들이다. 그분들은 돌로서, 반석으로서 아주 강하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물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사실 사도들은 약한 분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파쇄 된 분들이다. 그분들로부터 물이 흘러 나왔다.
   이제부터 우리가 볼 것은 이 땅이 밀과 보리의 땅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한다. 이 땅에 그냥 보리가 있고, 이 땅에 밀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땅은 보리의 땅이다. 이 땅은 또한 밀의 땅이다. 여러분은 아마 ‘지난번에는 물의 땅이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왜 밀의 땅이라고 하십니까?’ 라고 할 것이다. ‘여기 저기 그냥 물로만 가득 하다면 밀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의 물질적인 생각이다. 우리는 지금 제한 없으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우리가 물이 필요할 때 그분은 물의 땅이 되시는 것이고, 우리가 어떤 것이 필요하면 그분은 그것의 땅이 되시는 것이다.
   밀과 보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밀은 육체가 되시고 제한 받으시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은 제한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무한하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신격 안에서 아들 또한 하나님이셨다. 그런데 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사람이 되셨다. 그리스도는 유한한 사람으로서 지속적인 제한 아래 사셨다. 그리스도는 공간 안에 제한 받으셨고, 시간에 의해 제한 받으셨으며, 자신의 가족과 함께 아주 궁핍한 가운데 살았다. 그 당시 주님에게는 네 명의 형제들이 있었고 자매들이 있었는데, 몇이나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적어도 요셉과 마리아에게는 일곱 자녀가 있었다. 주님은 목수로 일했다. 아주 많은 제한을 받으셨다. 주 예수님의 생활은 마치 한 알의 밀알과 같았다. 사실 밀알 안에는 생명이 담겨 있다. 이 한 알의 밀은 제한 받으신 그리스도, 제한 받으신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을 따라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제한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죽는 것이었다. 죽음이야말로 제한을 벗어나는 길이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억압 받고 있다. 나는 죽음을 통해 해방되길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생명이 해방 되었고,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보리가 되셨다. 제한 없으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부활 안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졌다.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결코 제한이 없으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 안에서 한 알의 밀이셨을 때, 그 하나님 사람은 어디에나 계실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활 안에서 그분은 제한이 없으신 그리스도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셨다. 이것이 바로 밀과 보리이신 그리스도이다.
   밀과 보리의 땅은 바로 그 영이다. 그 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제한된 생명을 살고 있으며,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인간 존재인 우리는 어떤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두 손을 펴서 하늘로 날아가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수많은 제한들을 받고 있다. 자아는 이러한 것들을 싫어한다. 주님은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아주 심각한 제한 안에 계속해서 넣어 두신다. 심지어 주님은 우리의 영성까지도 어떤 제한 안에 넣으신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에 의해 제한 받기도 하고, 우리의 건강 때문에 제한 받고, 시간 때문에, 환경 때문에, 재정 문제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만일 여러분이 일생 이러한 제한 안에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아주 엄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제한에 놓이게 될 때 그 밖으로 빠져 나갈 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나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받기 원치 않는다. 나는 떠나겠다. 나는 나가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순간 매우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7장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하나의 원칙이 있다. 이 원칙은 우리가 결코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구원 받을 때 있었던 그 상황을 그대로 머무십시오.’ 라고 말한다. 여러분의 상황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어떤 일도 시작하지 말라.
   나는 주님 안의 한 형제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는 결혼 생활 안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나에게 교통했다. 그는 아내에게 “나는 떠나겠다.”라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의 문제에 대해 나와 교통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 때 주로 한 가지를 말했다. 어떠한 변화도 스스로 시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기꺼이 예수님과 함께 제한 안에 살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떠한 생활 안에서나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만약 결혼 한다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자녀가 생기면 변화가 발생한다. 어떤 형제님이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길 때 큰 변화가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 품에 가기도 한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는 나의 일생에서 스스로 어떤 것에서도 상황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라는 어떤 간증이 필요하다. 이 말은 어떠한 변화도 없어야 한다는 그런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이 모든 변화를 시작하셔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야 하고 제한 안에 머무르며, 밀이신 그리스도를 그 가운데 접촉해야 한다.(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2 R. K 교통 중에서)


『재평가 된 지방 교회』 책  소개  

 

   이번에(2011.7.15) 새로 나온 『재평가 된 지방 교회』는 네 책들(누가 이단인가의 결론부분, 우리가 틀렸었다 전체, 복음의 확증, 지방 교회들)과 예장 통합측에 보고한 “지방 교회 연구보고서”, 교계 기자간담회 신문기사, 한기총이대위 11가지 질문에 대한 우리 측 답변, 풀러 신학대학 성명서, 한기총 대표회장에게 보낸 행크의 공개편지 등 가장 중요한 내용들을 총 망라했습니다. 교회를 반대하거나 오해하거나 궁금하게 여기는 분들, 그리고 회복 안에 있는 성도들조차도 이 책을 읽게 되면 문제의 핵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지방 교회들이 잘못 평가된 원인과 배경을 분명하게 밝혀 준 『재평가 된 지방 교회』서적은 한국에서 이단시비 문제가 종결되는데 획기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회가 지속적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주문량만큼 인쇄할 예정이며, 이익금은 CRI와 미국 DCP에 기부금(인세)으로 지불될 것이며, 기타 기독교 단체에 무료 배포되는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그분 자신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밝히셨다. 그러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그런 분이심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그분을 반대하고 거절했다. 오늘날의 상황은 어떠한가? 특히 이단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성경 말씀과 건전한 신학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방면에 전문가로 자처하는 이단 감별사들이 임의대로 이단을 결정하는 일들이 자행되어왔다.
   예를 들어 예장 통합측 총회에 제출한 C 목사의 “지방 교회 연구보고서”(1991년)는 그 내용이 네 쪽에 불과하다.
이 짧은 보고서를 근거로 이단을 결정지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저명한 이단 변증 기관인 CRI는 지방 교회에 대해 6년간 연구하여 100쪽 분량의 보고서를 CRI 저널 잡지에 발표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면을 다 조사했으며, 각 나라에 있는 지방 교회들을 직접 방문하여 사람들을 만났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이나 기존의 전통이나 사적인 판단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건전한 신학에 기초하여 조사했다.
    그 결과 CRI는 과거의 평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얼마나 신뢰할만하고 수준 높은 연구기관인가? 한국에서는 “한 번 이단으로 정죄되면, 영원한 이단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 번 이단의 누명을 쓰게 되면 벗기가 아주 어렵다는 뜻이다. 일단 이단감별사들의 표적이 되어 교계 신문에 오르면, 실제 이단성 여부와는 관계없이 변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고 인격적인 살해를 당하게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는 과거 이런 식으로 매도되었기 때문에 『재평가 된 지방 교회』를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두에서 지방 교회(local Church)가 어떻게 해서 억울하게 이단이 되었는지 원인과 과정을 설명했고, 이어서 C 목사와의 진리 토론, 그리고 미국에서 지방 교회들을 재평가한 책들을 소개했다. 또한 관련 참고자료들을 부록으로 첨부했다. 우리는 지방 교회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과 양심 안에서 공정하게 평가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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