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2(하)
밀과 보리의 땅
만약 우리가 감옥에 갇힌다면 이것보다 더 제한 된 환경은 없다. 바울은 군사들이 지키는 가운데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제한이었다. 결국 바울은 그러한 제한 아래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그 결과, 바울은 순교하였다. 바울은 자신을 위해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것을 배우는 것은 큰 축복이다. 우리가 이것을 보았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 아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영웅이 되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순교자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내가 이 환경에서 견디겠다. 내가 비록 고난을 당하지만, 고통스럽지만 나는 어떤 변화도 시도하지 않겠다. 내가 여기에 머무르겠다. 내가 견뎌 보겠다. 내가 여기서 부활해 보겠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곳에는 결코 그리스도가 없고, 결코 밀이 없다. 다만 제한 받는 자아만 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밀로 체험하려면 먼저는 보리가 있어야만 한다. 곧, 그리스도의 부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부활 능력과 그분의 고난의 교통을 알고, 그분의 죽음과 같은 형상을 이루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우리는 다만 부활 능력에 의해서만 제한 받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어떤 지방에 있는 사랑스런 나이 든 형제님을 알고 있다. 그분은 50년 이상을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의 결혼 생활 안에 많은 고통이 있었다. 그 형제님은 수 십 년간 어떤 제한 아래 생활 하셨다. 나는 그 형제님이 스스로 제한 아래 생활하셨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 형제님은 보리의 능력 안에 계셨다. 어느 날 주님께서 그 형제님의 상황에 개입하셨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제 그 형제님은 홀로 계시게 되었다. 또 다른 제한 아래 들어간 것이다. 이것을 보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워치만 니 형제님께서는 어떻게 인생을 마치셨는가? 온 땅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군중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놀라운 인생을 사셨는가? 워치만 니 형제님은 감옥에 20년간을 제한 가운데 계셨다. 그분은 한 알의 밀이었다. 그분은 밀 사람으로서 한 알의 밀로 땅에 떨어져 죽으셨다. 워치만 니 형제님께서 밀 사람이 되실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먼저 보리 사람이셨기 때문이다. 형제님은 끝까지 그 안에 살고 머무르셨다. 그럴 때 주님께서 그분을 놓아주셨다. 우리의 인간 생활, 그리스도인의 생활, 교회 생활, 봉사하는 생활은 제한 아래 있는 생활이다. 우리는 우리가 함께 섬기는 사람들에 의해 제한 받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제한을 결코 뚫고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밀의 땅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 당시 워치만 니 형제님은 감옥에서 계셨지만, 사실 영적으로 말하면 밀과 보리의 땅에 계셨던 것이다. 형제님은 또 다른 영역 안에 살고 계셨다. 우리 모두에게 이것이 필요하다. 사실 교회생활은 자아가 매우 제한 받는 생활이다. 특별히 봉사할 때 우리는 제한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밀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보리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보리로 말미암아 밀을 체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결혼 생활, 가정 생활, 직장 생활, 재정 문제, 건강 문제, 여러 방면에서 제한 받고 있다. 우리는 결코 주님이 각자에게 허락하신 제한 아래에서 나올 길이 없다. 주님 앞에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주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신다. 주님이 우리를 그 제한 아래에서 끄집어내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그 제한된 환경 안에서 주님을 찾기 원하신다. 우리는 “저는 온 일생 주님과 함께 여기에 머무르는 것을 인해 감사합니다. 당신 안에서는 만족 합니다. 주님께서 어떠한 변화를 시도하신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나 저는 결코 변화를 위해 기도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당신을 더 얻기를 기도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체험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단체적인 보리떡의 일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먹일 양식이 풍성한 사람이 될 것이다. 주님은 그 많은 무리를 보리떡으로 먹이셨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집회소에서 화장실을 청소한다고 할 때, 어떤 자매님들이 매우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우리는 인간생활 안에서 많은 고통도 받고 있다. 그럴 때, 우리가 보리떡을 그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또한 밀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보리를 공급하는 것이다.
우리가 신언을 할 경우에도 밀을 체험할 수 있다. 각 자에게 주어진 시간 안에 제한 받아야 한다. 우리가 신언하면서 어느 순간, 제한된 시간을 알리는 피아노 소리가 울릴 것이다. 그것은 밀에게 신언을 멈추라는 신호이다. 그 신호를 따라 제한 받는 것을 우리 모두가 배워야한다. 우리가 영 안에서는 어떤 제한도 없다거나 제한받지 않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교회 기도 집회에서 “나는 영 안에 있다. 나는 10분 동안 기도해야 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성도들이 어떻게 느낄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특별하게, 비범하게 기름 부음을 받지 않은 한은 그렇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 참되게 그런 경우라면 우리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해서 길게 기도하고, 자주 기도 할수록 다른 성도들은 “제발 그만해 주세요. 제발 좀, 멈춰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아주 사랑스럽고 신실하고 귀한 50대의 자매님이 한 시간 정도의 기도 집회에서 38번을 기도했다. 모든 기도들이 길지는 않았지만 매주 이렇게 기도를 하셨다. 사랑 안에서 장로들이 그 자매님을 목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그 자매님을 도와야 한다는 느낌이 좀 생겼다. 그래서 주일 만찬 집회와 신언 집회가 있은 후에, 나는 “ 주님! 자매님을 저에게 보내 주셔서 저와 교통할 수 있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이 정말 나에게 왔다. 그 자매님과 교통을 하게 되었다. 그 자매님의 교통을 먼저 듣고 난 후, 나는 “자매님, 지난 기도 집회 때 몇 번 기도 했는지 아시나요?”라고 말했을 때 자매님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부드럽게 “38번 기도 했습니다.”라고 말을 해 주었다. 아주 섬세하게, 순수하게, 사랑스럽게 이 말을 해 주었다. 그것은 그 자매님 앞에 하나의 거울이 놓이게 된 것이었다. 그 자매님이 깨달게 되었다. 그 자매님은 “아! 너무했군요, 앞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를 하셔야 합니다. 먼저 빨리 기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한을 받으십시오.”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 자매님은 마음 상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다. 약해지지도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밖에 나가서 랑 캥거스가 자매들에게 엄청난 말을 했다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자매님은 깨닫게 되었고, 자매님의 기능이 사랑스럽게 바뀌었다. 지금은 그 자매님이 서 너 차례 아주 짧게 기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제한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여전히 무한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그러한 분이 유한한 사람이 되셨다. 신명기 8장 8절 상반절의 밀은 육체가 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사역의 육체 되심의 단계에서 그리스도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셨다. 유한한 사람으로서 육체 안의 그리스도는 시간, 공간, 지식에 있어서 제한 받으셨으며, 타고난 인간 생명을 가지셨고, 의존적인 존재가 되셨다. 이것이 그분께서 존재하시고 생활 하신 방식이었다.
그리스도는 결코 피하려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는 제한 아래서 나오는 유일한 길이 죽음이라는 것을 아셨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제한 아래 그대로 두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기꺼이 그 곳에서 죽고자 할 때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주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해방되기를 원하셨다.
요한복음 12장 24절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많은 열매는 한 알의 밀이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을 통해 산출한 열매들이다. 이제 우리는 많은 열매, 많은 밀알들이 한 알의 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기 바란다. 요한 복음 12장 26절은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있는 그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의 봉사에 관한 말씀이다. 형제자매님들! 주님을 섬기길 원하는가? 아멘이라고 우리가 대답한다면 주님은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 우리는 어디서 주님을 따를 수 있는가? 주님은 “이 땅 안으로 묻히는 것을 따라서 따라오십시오.”라고 말씀하신다. 형제자매님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땅에 떨어져 땅 속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땅 속에서 정말 제한을 받게 된다. 먼저는 이 껍질에 제한을 받고 이 껍질은 흙 속에, 땅 속에 들어가 제한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해방되는 열쇠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는 것에 대한 자기의 관념을 가지고 있고, 자기의 관념을 따라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주 예수님은 어떻게 섬기셨는가? 그분은 한 알의 밀알로써 어떻게 떡이 되실 수 있었는가? 떡이 되려면 많은 밀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많은 밀알을 얻을 수 있는가? 오직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주 예수님은 땅에 떨어져 죽으셨고, 그 죽음은 그분을 그분의 인성의 껍질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래서 이제 많은 밀알을 얻으셨다. 우리는 많은 밀알들이다. 그러나 많은 밀알이 있다고 해서 떡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많은 밀알들은 그 전자레인지에 들어갈 팝콘 알과 같이 존재한다. 모든 밀알들이 팝콘 포장 안에 들어있다. 포장지 안에 밀알들이 말하길 “우리는 섞여져야 되겠다!”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섞여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는 이 많은 밀알들이 갈려야 하고 생명의 요소가 흘러 나와야 한다. 그럴 때 그 영 안에서 밀알들은 한 떡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 이러한 방식으로 기꺼이 섬기려 하는가? 나는 마가렛 E. 바버 자매님이 이렇게 기꺼이 섬긴 것으로 인해 감사한다. 그 자매님은 기꺼이 중국에 가서 한 알의 밀로 떨어져 심기기를 원했다. 그래서 워치만 니라는 형제님을 산출하도록 도우셨다. 워치만 니 형제님도 그분 자신을 또한 심으셨다. 위트리스 리 형제님도 자신을 심으셨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자신의 껍질을 보존하고 있지는 않는가? 항상 닦아주고 빛이 나게 하고 있지는 않는가? 심지어 우리가 “내 껍질을 만지지 마세요. 내 껍질을 만지면 때려주겠어요.”라고 한다면 만져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밀의 생명의 봉사이다.
이 남한 땅에 주의 회복이 이렇게 오래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누가 땅에 떨어져 죽었는가? 우리는 이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이다. 결국, 우리는 그분이 계신 곳에 있게 되고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심으로 우리는 신성하고 인간적인 합병체 안에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것이다. 이것보다 더 귀한 것이 무엇인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아! 아들아 나는 너를 귀하게 여긴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또, “너는 나의 아들을 섬겼다. 그 아들의 재생산이 되었다. 그 아들의 생명을 해방하는 죽음을 너는 따라왔다."라고 인정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밀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서 “각각의 일과 모든 일에서 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형제자매님들! 바울과 같이 형제자매님들도 이러한 비결을 배웠는가? 아마 어떤 분이 이 마이크 앞에 나와서 “저는 기꺼이 이 비결을 배우기 원합니다.” 라고 신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귀한 것이다. 여기 훈련생 자매들이 그러한 마음이 있다면 아주 귀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이 든 성도들에게서 “많은 말을 하지 않겠지만 저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 비결은 밀입니다. 한 알의 밀입니다. 형제자매님들 모두가 저의 상황을 아십니다. 제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저를 위해 울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만족하고 있답니다. 나의 그리스도는 밀이십니다. 이 상황에서 저는 참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형제자매님들! 어느 날 주님께서 북한을 여실 날이 있을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그 곳에 가서 큰일을 하고자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는 북한을 위해 몇몇의 사람들이 남한에서 이러한 밀알로 예비되는 것을 더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는 “저는 당신을 따르므로 섬기길 원합니다. 오직 이 생명만이 북한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내가 체험하고 있는 것을 모르지만 그러나 주님 저는 한 알의 밀이됨으로써 주님을 섬깁니다. 저는 주님 당신의 회복이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생명으로 해방됨으로써 이 회복은 확산 됩니다. 주님 그러므로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 당신을 섬기기 원합니다. 저는 사람들의 인정을 원치 않고 사람들의 귀히 여김을 받기를 원치 않고 아버지께서 은밀한 가운데 보고 계심을 압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실 것을 압니다.” 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 어떠한 봉사인가?(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2 R. K 교통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