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념함
생명의말씀
고벨화 2011-07-30 , 조회 (33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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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찬집회는 떡을 떼는 집회로서(행2:7) 이 집회에서는 믿는 이들이 주의 만찬을 먹고(고전11:20) 주의 상에 참여하기 위하여(고전10:21) 함께 모인다.


만찬 집회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집회이며, 주님의 누림을 위해서 주님을 기념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집회이다. 따라서 집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 즉 찬송을 부르는 것, 찬송가를 선포하는 것, 기도와 찬양, 성경 읽기, 영감의 말씀 등 모든 것이 주님을 중심 삼아야 한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님의 인격과 역사, 그분의 사랑과 미덕들, 그분의 이 땅에서의 생활과 고통, 혹은 하늘에서의 그분의 영광과 존귀를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주님 자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것들을 생각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만찬집회는 합당하고 적절해야 한다. 만찬집회에서의 가련한 모습은 그 지방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약함을 드러낸다. 그러나 강한 집회는 그 지방 교회가 주님의 강한 간증을 지니고 있음을 가리킨다.


고린도전서 11장은 주의 만찬을 다루며(20절), 주의 상은 고린도전서 10장에서 다루어진다(21절)


우리가 주의 만찬을 먹을 때 그 강조점은 주님을 기념하는 데 있다.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통과 그분의 몸의 지체들이 주님 안에서 함께하는 교통을 위한 것이며 그 중점은 성도들 사이의 교통에 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주의 상을 포함하지 않지만 주의 상은 주의 만찬을 포함한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먹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기념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의 상을 위해 모일 때 거기에는 주님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와 그분의 지체들과 교통하는 두 방면이 모두 포함된다. 주의 만찬은 주님의 만족과 누림을 위한 것이며 주의 상은 우리가 참여하고 누리고 교통하기 위한 것이다.


만찬 집회의 두 가지 주된 방면


우선,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은 주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만찬 집회의 수직적인 방면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이것은 그분의 역사가 아닌 그분의 인격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기도와 찬양은 모두 주님 자신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고린도 전서 11장 24절은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떡을 떼는 것에 관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주의 상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온다. 또한 고린도 전서 11장 25절은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잔을 마시는 것에 관해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주의 상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기 위해 온다. 주의 상에 참석해서 자동적으로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면서 주의 만찬을 먹는 것은 천연적인 관념이다. 그리스도 자신을 기념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의 인격에 관한 이상이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보다 인격을 더 기념해야 한다. 주의 떡을 먹고 주의 잔을 마심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면서 주의 만찬을 먹는다.


두 번째로 주의 상에 참석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을 갖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만찬집회의 수평적인 방면이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하여 흘리신 그분의 피와 우리를 위하여 주신 그분의 몸을 인하여 이러한 교통을 갖는다.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우리가 함께 누리는 잔은 성도들 사이의 모든 장애를 제거하며, 그리스도의 개인적인 몸을 상징하는 우리가 함께 참여하는 떡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단체적인 몸을 상징하는 한 떡으로 만든다. 우리가 한 떡을 먹고 한 떡에 참여하는 것과 한 잔을 마시고 한 잔을 나누는 것은 상호 교통을 의미한다. 이러한 교통은 그리스도의 피의 교통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된다. 고린도전서 10 16절과 17절, 그리고 21절에는 주의 상의 수직적인 방면과 수평적인 방면, 즉 그리스도와의 교통과 그리스도의 몸의 교통이 모두 나타난다. 우리가 주의 떡과 잔을 나누면서 함께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주의 상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지 수직적인 방면만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주님을 기념하며 그분의 몸의 지체들과 교통하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주님을 기념하는가? 우리는 만찬 집회에 나올 때 떡을 뗀다. 떡을 떼는 것은 우리가 먹을 수 있기 위한 것이다. 주님은 떡에 관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도록 이것을 행하라」(고전11:24, 눅22:19)고 하셨고 또한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26:26)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떡을 먹음으로 주님을 기념한다. 즉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을 먹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고 먹을수록 더욱 그분을 기념하게 된다. 우리는 또한 잔에 참여함으로써 그분을 기념한다. 잔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마시기 위한 것이다. 잔에 관하여 고린도 전서 11장 25절은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는 데 이르게 하라」고 말한다. 주님은 또한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다(마26:27,28). 그러므로 우리는 잔을 마시므로 주님을 기념한다.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으로부터, 그분을 마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을 마실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욱더 기념하게 된다.


참되게 주님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고 그분이 피를 상징하는 잔을 마시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몸과 그분의 피를 마실 때 우리는 주님 자신과 그분의 몸을 주시고 그분의 피를 흘리심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누리기도 한다. 이것이 구속하는 죽음을 통하여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누리며 그분께 참여하는 것이다. 결국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것은 구속하는 주님을 우리의 분깃(시16:5, 애3:24, 골1:12)과 우리의 생명과 축복으로 취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주님을 영접하고 누림으로써 그분을 기념한다.


또한 우리는 동일한 떡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한다. 우리는 모두가 같은 덩어리에 참여한다. 떡 한 조각이 내 안에 들어오며 다른 형제자매들 안에도 한 조각이 들어간다. 우리는 동일한 잔을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한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동일한 떡을 먹었고 동일한 잔을 마셨다.


만찬집회에 올 때 우리는 주님을 우리 안에 영접하기 위해 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 안에서 누림이 되기 위해 그분이 행하신 것과 그분 자신을 영접해야 한다. 영 안에서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기념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모든 지체들과 교통하는 두 방면을 모두 갖게 된다. 

출처 리빙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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