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으로 예표되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림
메시지 3(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의 땅
(신 8:8상)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
(삿 9: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삿 9: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시 104:15상)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마 9:17) 또한 그 누구도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만약 넣게 되면, 가죽 부대가 터져 포도주가 쏟아지고 가죽 부대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존됩니다.”
(빌 1:19) 왜냐하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넘치는 공급으로, 이러한 일이 결국에는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것을 나는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재화인 그 영은 좋은 땅이시다. 그 영은 우리 각자의 상황을 모두 알고,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신다. 우리가 좋은 땅이신 그 영 안에서 살 때, 우리는 형식적인 방식으로 기도할 필요가 없다. 예를 들면, “오, 주님! 나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있을 때 당신을 밀로 누립니다.”라고 기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단순하게 주 영이신 그분을 접촉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신다. 다만 주님을 접촉한다면 주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그것이 된다. 이 영은 좋은 땅이신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실재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과 하나 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을 그분께 드려야 하고, 그분을 접촉해야 한다. 그 영은 우리가 아주 심하게 제한받고 있는 그 상황을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밀이 된다는 의미이다.
또 다른 방면에서 우리는 원천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샘들도 되고 시내가 된다. 그 영은 우리에게 물이 된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보리가 되실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단순하게 주님을 접촉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공급하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 동안, 우리가 우리의 제한 가운데 주님을 접촉할 때, 주님은 밀로서 우리 안에 축적된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섬기면서 어떤 성도가 환경 가운데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공급할 수 있다. 우리가 공급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밀이 될 것이다. 곧, 보리와 함께 하는 밀이 된다. 다른 사람의 상황을 분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우리는 “오, 당신은 제한받고 있습니다. 당신은 밀이신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라고 하진 않겠지만,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공급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신 그리스도의 예표인 좋은 땅은 포도나무의 땅이며, 무화과나무의 땅이다. 신명기 8장에서는 “좋은 땅에 포도나무가 있습니다. 당신에게 포도나무가 필요하다면, 그 땅에서 포도나무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땅은 포도나무의 땅이다. 또한 무화과나무의 땅이다. 우리에게 물이 필요하면, 그 땅 전체가 물의 땅이 된다. 우리에게 보리가 필요하다면, 그 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땅 전체가 보리의 땅이 된다. 사실상 이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 땅이다. 좋은 땅은 신성의 땅이고, 인성의 땅이다. 이 땅은 신성한 속성이 있는 땅, 사랑의 땅, 빛의 땅, 의의 땅, 거룩의 땅, 영광의 땅, 인내의 땅이다. 주님께서 오늘 이 시간 우리의 모든 너울을 제하시기 원한다.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실재화인 그 영이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좋은 땅임을 보게 하시기 원한다. 좋은 땅인 그 영은 우리의 영과 연합되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영으로 돌이켜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연합된 영 안에 있게 된다.
우리의 체험은 우리의 깨달음에 달려 있다. 먼저는 우리에게 계시가 필요하다.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계시를 위해서 기도하였다. 계시는 우리에게 광경을 열어준다. 우리는 주님의 열어주심을 통하여 “주여, 저는 결코 그 영을 깨달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그 영이 신격의 세 번째 분인 줄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 그 영이 바로 좋은 땅인 당신의 실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땅 안에 있는 것은 너무나 쉬운 것입니다. 저는 다만 연합된 영 안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 형제자매님들은 자신의 영이 지금 연합된 영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의 거듭난 영은 다만 기관이 아니다. 우리의 영이 그 영과 연합되었다. 그 영은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좋은 땅이다. 그 땅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형제자매님들! 이것을 보았는가? 좋은 땅인 그 영은 우리 안에 있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의 진리는 심오하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고봉의 진리를 보여주셨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과 체험에 있어서는 단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체가 심오해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다만 주님께 돌이켜서 “주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마음을 주님께 돌이킵니다. 나의 마음을 주님께 열어드립니다. 오늘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오늘을 당신께 헌신해 드립니다. 나 자신을 주님께 헌신해 드립니다. 오늘 당신을 체험하고 누리기 원합니다.”라고 기도하면서 영 안에 머무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상황으로 빗나갔다면, 사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빗나가게 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영으로 돌이킬 필요가 있다. 영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리고 영 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골로새서 2장 6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곧 주 예수님을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행하십시오.” 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영역이 되셨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이 우리의 영토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다닌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분을 체험하고, 누리게 된다. 우리는 매일, 항상 그렇게 할 수 있다.
좋은 예로, 나는 공항에서 출국 심사대를 통과할 때가 자주 있다. 나는 가장 천천히 움직이는 줄에 서기를 좋아한다. 내가 가장 천천히 움직이는 선에 도착하면, 그 줄에 있는 사람들은 출국 심사대를 아주 느리게 통과하는 것 같다. 그 줄을 서고 있는 동안, 종종 ‘여기서 나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라고 자신에게 상기시켜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에게 “이러한 기회를 다시 갖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그 모든 입국 소속들이 천천히 진행된다. 모든 사람들, 각 사람마다 3분씩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기회이다. 내 앞에 5명의 사람이 서 있다면, 그 자리에 15분 동안 서 있을 것이다. 그 15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그 15분을 흘러 보내고 나면, 다시는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그곳에 서서 언짢아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니면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왜 그분께 돌이키지 않는가? 왜 그분 안에 거하지 않는가? 그분을 왜 누리지 않는가? 50세 혹은 60세가 넘으신 분들! 우리의 긴 인생동안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많은 기회들을 놓쳤다는 것을 겸손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기회들은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진 기회였을 것이다. 우리의 인간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 가운데서 발생한 기회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기뻐하지 않았었다. 그러한 것들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가 다른 줄에 섰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다른 줄에 옮겨 가서 서게 되면, 그 줄이 가장 느린 줄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떠났던 그 줄이 더 빠른 줄이 되었을 것이다. 형제자매님들! 나도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많은 기회들을 놓쳤던 자신이 유감스럽다. 이제 더 이상 기회를 놓치기를 원치 않는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의 영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우리의 체험에 있어서 그 영이 좋은 땅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다. 이제 이 땅은 포도나무의 땅이다.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땅이다.
나는 미국에 있는 젊은 세대의 상황에 대해서 많은 염려가 있다. 다른 나라의 상황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미국에 있는 20대, 30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희생이라는 말은 마치 외국어와 같다. 그들은 희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들의 태도는 ‘모든 것이 나에게 그냥 주어진 것이다’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나는 저것을 원한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에서 싸웠던 그 세대는, 그리고 한국 전쟁에서 싸웠던 그 세대는 희생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심지어 젊은 직장인들, 젊은 부부들, 그들은 자녀를 갖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녀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자녀를 위해서 희생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마 스키를 타러 산으로 갈려고 할 때 어린 아이를 돌보는 것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현재 모든 유럽이 이러한 위험에 처해있다. 그리고 일본도 동일하다. 그들은 마치 “오, 우리는 아이가 필요 없다. 그것은 불필요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이 사회 속에 희생의 개념이 없다는 것을 단적인 예를 들어 말하는 것이다.
포도나무이신 주 예수님은 희생하시는 그리스도이다. 주님은 희생하는 삶을 사셨다. 형제자매님들! 형제자매님들의 방에 위트리스 리 형제님께서 주신 그 마지막 말씀, 희생(犧牲)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벽에 그 말씀을 걸어 놓았거나, 책상 위에 그 말씀이 놓여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희생(犧牲)이란 글자가 박힌 조그마한 액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희생(犧牲)’이 다만 여러분의 공허한 말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땅에 젊은 세대에게 참으로 희생의 관념이 있는가? 희생이 없다면 주님께서는 그분의 경륜을 수행할 길이 전혀 없다. 그리스도는 그분 자신에 속한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 주님은 이 땅에 계셨을 때 결혼하지 않으셨다. 다만 33년 반의 인생을 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주님의 신부에 관해서 말하자면 교회가 신부가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을 희생하셨다는 것에 인상을 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이 희생으로부터 뭔가를 산출하셨다. 그분은 새 포도주를 산출하셨다. 주님은 사역하시면서 새 포도주에 대하여 말씀하신 바가 있다. 주님은 새 포도주로 가득 차 계셨던 분이셨다. 이 포도주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도 누림이 필요하고, 행복해 하실 것이 필요하다. 또한 이 포도주는 우리 사람을 기쁘게 하고 활기를 준다. 사사기 9장 13절에서 포도나무가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하는 삶의 효과, 결과이다. 주님은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새 포도주를 산출하셨다. 이 포도주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요한복음 2장에서 주님은 한 혼인잔치에 초대되셨다. 그때 예수의 어머니가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조금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다. 주 예수님은 그 하인들에게 항아리마다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것이 포도주가 되었다. 그분은 죽음의 물을 생명에 속한 포도주로 바꾸셨다. 그리고 그 포도주는 잔치를 주관하는 자에게 가져가졌다. (모든 것이 주관하는 자를 통해서 전달되어야만 한다. 만약 한국 불고기를 그 주관자에게 가져다주면, 먼저 그가 맛을 본다. 그 잔치 주관자가 “이것은 좋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져다 주십시오” 라고 할 때 모든 이들에게 제공된다.) 그 포도주를 맛본 잔치 주관자는 놀랐다. 그는 말하기를 “대부분의 잔치에는 사람들에게 좋은 포도주를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군요!”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술에 취한 후에는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구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모든 인간적인 상황 가운데 가장 좋은 포도주가 먼저 주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다 떨어지면 덜 좋은 포도주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그 다음 구절인 “그대는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군요.” 라는 말씀을 아주 좋아한다. 나의 체험은 아주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간증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항상 지금까지 가장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다. 나는 젊은이들을 너무나 좋아한다. 나는 그들이 주님을 누리는 것을 아주 귀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는가? 나이가 드신 분들! 주님 안에서 자라신 분들의 포도주는 젊은이들의 포도주보다 더 낫다. 정말 그렇다. 주님께서는 나중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다. 젊은이들은 아마 “저도 그 포도주를 맛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년들이여! 지금 현재의 포도주로 만족하라. 아주 누림직하다. 서두르지 말라. 여러분이 좋은 포도주를 맛볼 때까지 서두르지 말라. 여러분의 포도주가 다 떨어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죽음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먼저 죽음의 물로 가득 채워지기를 서두르지 말라. 다만 그 포도주를 누리라. 여러분이 결혼하면 배우자와 함께 그 포도주를 먹으라. 그리고 나서 아마 10년이 지나고 나면, “도대체 이 포도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다만 죽음의 물로 가득 찬 항아리만 있구나!”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결국 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그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실 것이다. 그럴 때 형제자매님들은 “이것이 최고의 포도주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약 15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더 죽음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세월이 흘러 어느 날 형제자매님들은 “주님! 지금까지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두셨군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주님은 형제자매님들이 90세가 되어서 “오, 주여, 이것이 가장 좋은 포도주군요.”라고 할 때까지 그 포도주를 남겨 두실 것이다. 그때 나이든 형제자매님들은 “이것이 가장 좋은 포도주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72세 때, 나는 이것을 맛보지 못했었는데, 이제 내가 96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좋은 포도주입니다. 나는 이기는 자가 되어서 주님과 함께 왕국에서 새 포도주를 맛보고 싶습니다.”라고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포도주를 산출하시는 생명이다. 이 포도주는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서 산출된다.
나는 형제자매님들에게 아주 순수하고 사랑어린 마음으로 질문하겠다. “한국에 있는 교회들 가운데서 누가 포도주를 산출하고 있는가? 누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포도주를, 또 성도들을 기쁘게 해주는 포도주를 만들어내는가?” 나는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을 정말 믿는다. 그들이 누구인가는 나는 알지 못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동역자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들 가운데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봉사이어야 한다. 인간에게는 누림이 필요하다. 인간의 생활은 고난 받는 생활이다. 인간 생활의 모든 방면이 누림보다 고난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기쁘게 할 뭔가가 필요하다.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우리를 기쁘게 했던 모든 것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 누가 하나님을 위해서 포도주를 산출하는가? 누가 하나님께서 드실 수 있는 전제를 산출할 수 있는가? (2011년 6월 전국 봉사자 온전케하는 훈련 메시지 3 R. K 교통 중에서)
2011년 영남 권역 어린이 성격 생활 훈련
2011년 영남 권역 어린이 성격 생활 훈련이 부산 교회 교육관에서 지난 7월 29일(금) ~ 31일(주일), 2박 3일간 있었습니다. 참석한 성도들의 간증은
1) 나의 성격을 개선하거나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올바름, 침작이신 주님을 누리고 그 영을 훈련하는 문제임을 알았다.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영을 사용하는 엄마가 되는 것을 훈련 받았다. (김해 교회 이선연 자매)
2) 성격훈련을 통하여 우리 모두를 목양하시고 섬겨주시는 주님께 찬양을 드린다. 참석한 부모와 자녀들의 영적 노정에 큰 이상과 목표가 생겼으리라 믿는다. (김해 교회 서재연 자매)
3) 순수하고 정직하고 올바른 요셉에 대한 말씀을 누렸다. 우리는 합당한 성격을 갖기 위해 항상 주님께 돌이켜야 하고, 기도해야 한다. 조교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구역 이슬기 대학생 자매)
4) 우리 자녀들이 어릴 때 훈련을 받아서 그릇이 예비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비 되고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갈수록 풍성한 주님이 그들 안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이 훈련을 통하여 오히려 나 자신이 더 온전케 되었다. (6구역 정영도 형제)
5) 우리의 자녀들에게 성경 인물들의 성격을 이야기해주고 합당한 성격을 세워주었던 것이 좋았다. 부모들과 자녀들이 가정 집회를 통해 가정이 건축되고, 세워져야 한다는 부담을 받았다. 우리의 자녀들이 잘 양육되기 위해서는 부모들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6구역 권미라 자매)
6)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주님을 누리는 놀라운 훈련이었다. 자녀의 건강한 생활은 부모로부터 가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녀의 성격은 습관에 의해서 조성되기 때문에 부모가 이것을 어릴 때부터 주님 안에서 잡아 줄 때 자라서 주님께 유용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2구역 김철호 형제)
인수, 기도, 성도들 소식
구 역 |
주 일 |
기 도 |
소그룹 |
어린이 |
중고 |
대학 |
청년 |
1구역 |
119 |
47 |
52 |
11 |
5 |
8 |
|
2구역 |
108 |
43 |
77 |
19 |
11 |
||
3구역 |
90 |
38 |
65 |
17 |
8 |
25 |
4 |
5구역 |
100 |
21 |
57 |
8 |
14 |
||
6구역 |
155 |
43 |
63 |
15 |
26 |
18 |
8 |
계 |
572 |
192 |
314 |
70 |
64 |
51 |
12 |
* 주일 인수는 대학청년, 중고등부를 포함한 인수임
■ 기도의 부담
1. 모든 성도들이 헌신을 통하여 복음을 살아내도록
2. 여름 DVD 훈련 집회를 위하여
3. 하계 각종 계층별 집회를 위하여
4. 한국 DCP(수호와 확증) 봉사를 위하여
5. 복음센터(5구역) 집회장소 매입을 위하여
■ 성도들 소식
1. #1 - 입원
표복록 형제님께서 한서병원(광안동소재)에 입원중이십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 #2
① 출산 - 정길영 형제님(손문정 자매님)께서 7/30(토) 득남하셨습니다.
② 입대 - 육형래 형제가 8/1(월) 논산 훈련소, 길예원 형제가 8/2(화) 해운대 신병교육대에 입소하였습니다.
알리는 말씀, 금주의 추구
전국 청년 직장인(40세 이하) 일본 교회들 방문 안내
▷ 일시 : 9/9(금) 오전9시 출국 ~ 9/13(화) 오후16시 입국
▷ 방문 교회들 : 오사카, 고베, 도쿄 외
▷ 준비사항 : 성경, 찬송, 세면도구, 기타 개인필요물품, 선물 등
▷ 총경비 : 1인당 약 98만원 예상. 확정 금액은 추후 통보 예정
▷ 등록비 : 30만원
▷ 등록방법 : 청년직장인 카페 (http://cafe.naver.com/tim222) ‘일본 방문’ 메뉴에 신청 후 등록비 입금
▷ 등록비 입금계좌 : 국민은행 91-07-341926-1, 변기현
▷ 등록비 입금 마감 : 8/26(금)
※ 추석연휴 성수기 항공권 확보의 어려움으로 40명 선착순 등록입니다. 등록비 입금 시 등록이 되며, 환불은 없습니다.
문의사항은 변기현 형제님(010-7341-9261), 유혜민 형제님(010-7936-9974)께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금주의 추구
① 라이프-스타디 : 출애굽기M165~M166
② RSG(회복역) : 계2:18 ~ 계6:17
■ 성경말씀
엡 3:16~17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분의 영을 통하여, 능력으로 여러분을 강하게 하셔서 속사람에 이르게 하시고,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거처를 정하시게 하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