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이신 주님을 먹고 생명의 노선에서 생활함 개요, 5주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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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1-08-08 , 조회 (37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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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5

생명나무이신 주님을 먹고 생명의 노선에서 생활함

 

성경 : 2:9, 1:4, 10:10, 고전 15:45, 고후 3:6, 2:7, 22:1-2

 

. 생명나무는 음식의 형태로 사람에게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2:9, 1:4, 10:10, 14:6, 15:45, 6:35, 57.

A.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분을 유기적으로 먹고 신진대사적으로 동화시켜 사람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기 원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존재의 조성성분 자체가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B.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좌우를 따라 자라는데, 이것은 생명나무가 일종의 덩굴나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이시고 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나무이시다.

C.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것은 사람이 그분을 먹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주님을 생명나무, 곧 우리의 영적인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

A.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먹음으로 그분을 먹을 수 있다.

1.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3. “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발견한 것을 먹으라 너는 이 두루마리를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하라 하시기로 내가 입을 벌리니 그가 그 두루마리를 내게 먹이시며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네게 주는 이 두루마리를 네 배에 넣으며 네 창자에 채우라 하시기에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찾아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5.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분은 그 영이십니다. 육체는 무익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입니다.”

B. 우리는 배고프고 목마른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 또한 하나님-사람의 생활을 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함으로 그분을 먹을 수 있다.

1.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2. “아버지께서 나에게 하라고 맡기신 일을 내가 완성하여, 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였습니다.”

C. 우리는 합당한 사람들을 접촉함으로 그분을 먹을 수 있다.

1. 먹는 것은 우리 밖에 있는 것들을 접촉하고 우리 안으로 받아들여, 그것들이 결국 우리의 내적인 조성이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2. 레위기 11장에서 모든 동물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상징하며, 먹는 것은 우리가 사람들을 접촉하는 것을 상징한다.

3.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거룩한 생활을 하려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접촉해야 하는지를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a. 발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들은 활동에 있어서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숙고하며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b.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수중 동물들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하는 동시에 세상의 영향력에 지탱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지느러미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활동하도록 돕고, 비늘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지지 않도록 보호한다.)

c. 날기 위한 날개가 있고 생명의 씨앗을 양식으로 먹는 새들은 세상에서 멀어져 세상을 초월한 생명 안에서 살고 움직일 수 있으며, 생명에 속한 것들을 생명 공급으로 취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d. 날개가 있고 발에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곤충들은 세상을 초월하는 생명 안에서 살고 움직일 수 있고 세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D. 우리는 하나라는 유일한 터 위에서 갖는 집회들 안에서 그분을 잔치로 누림으로 그분을 먹을 수 있다.

1. 이스라엘 자손들은 두 가지 방식으로 땅의 소산물을 누릴 수 있었다. 일반적이고 개인적인 방식은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어느 누구하고나 땅의 소산물을 일반적인 몫으로 누리는 것이었다. 특별하고 단체적인 방식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정해진 명절에,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유일한 장소에서, 최상의 몫인 첫 열매와 첫 새끼를 누리는 것이었다.

2. 마찬가지로, 신약의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에도 두 방면이 있다. 곧 아무 때나, 어디서든지 그리스도를 누리는 일반적이고 개인적인 방면과,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인 하나라는 유일한 터에 있는 합당한 교회생활의 집회에서 그리스도의 최상의 몫을 누리는 특별하고 단체적인 방면이 있다.

. 생명나무의 원칙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원칙이고, 이 원칙은 성경 전체에 걸쳐 생명의 노선에서 산 사람들을 통해 실현된다.

A. 아벨은 하나님의 길에서 하나님을 접촉했다.

B. 셋과 에노스는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C.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

D.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했고 하나님과 함께 일했다.

E.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나타남 안에서 살았고 주님의 이름을 불렀다.

F. 모세는 하나님의 나타남과 임재 안에서 살았다.

G. 이스라엘 자손들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여행했다.

H. 여호수아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살고 일했다.

I. 기드온은 주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의 임재와 함께 싸웠다.

J. 사무엘은 기도하며 주님을 불렀다.

K.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앙망하며, 하나님의 생명을 누렸다.

L. 다니엘은 주님을 완전히 의지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기도하고 지속적으로 주님을 접촉했다.

M. 생명나무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님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셨다.

N. 신약의 믿는 이들은 주님을 먹음으로써, 또한 주님 안에 거함으로 주님을 그들 안에 거하시게 함으로써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O. 바울은 주님을 확대하기 위해 주님을 살아냈다.

P.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산다.

Q. 새 예루살렘은 생명나무와 함께하는 생수의 강에 의해 유지된다.

 

51

아침의 누림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15:1 “나는 참포도나무요,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표를 성취하시는 절차의 첫째 단계는 생명이신 그분 자신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표를 성취하시는 둘째 단계는 창조된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시는 것이었다. 생명나무는 음식의 형태로 사람에게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 체현되신 삼일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생명나무 앞에 두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분을 유기적으로 먹고 신진대사적으로 동화시켜 사람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기 원하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 존재의 조성 성분 자체가 되시기 위한 것이었다. 요한복음 11절과 4절에 따르면, 생명은 말씀 안에 있고, 말씀은 하나님 자신이시다. 이 생명, 곧 신성하고 영원하고 창조되지 않은 하나님의 생명은 그리스도이고,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시다. 생명나무는 생명수의 강 좌우를 따라 자라는데, 이것은 생명나무가 일종의 덩굴나무라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이시고 또한 생명이시기 때문에, 그분은 생명나무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 되심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부활의 과정을 통과하신 것은 사람이 그분을 먹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늘의 읽을 말씀

생명나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였고, 반면에 지식나무는 사람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고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도록 만들었다. 이 두 나무는 두 노선, 곧 생명의 노선과 죽음의 노선을 가져왔고, 이 두 노선은 성경 전체에 걸쳐 흘러서 요한계시록에서 마친다. 죽음은 지식나무로 시작해서, 불 못으로 마친다. 생명은 생명나무로 시작해서 생수의 성인 새 예루살렘으로 마친다.

창세기 29절에서 나무들은 먹기에 좋았다. 성경에서 나무들이 재료를 산출하기에 좋다고 말한 것이 아님을 주의하자. 왜냐하면 창세기에는 사람의 노력이나 성취의 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재료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언급되지 않았다. 창세기 2장의 개념은 완전히 생명에 맞추어졌다. 나무들이 먹기에 좋았다고 말한 것은 음식이 생명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식 없이는 살 수 없다. 음식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우리를 만족시킨다.

생명나무는 동산 중앙에 있었다. 창세기 2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선과 악의 지식나무를 제외하고 오직 생명나무만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나무들의 이름을 모르지만, 생명나무라 불리는 한 나무가 있었음을 분명히 안다. 이것은 생명나무가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 나무는 사람이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 성경의 다음에 나오는 모든 책들이 하나님께서 생명이심을 계시한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하나님께서 음식의 형태로 우리의 생명이 되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심을 보여 준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어느 날 하나님은 육체로 오셨다. 그분 안에는 생명이 있었다. 창세기 2장에서 생명나무로 나타난 생명은 예수님 안에서 육체 되신 생명, 곧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예수님은 그분 자신이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셨다. 더욱이 요한복음 15장은 그리스도께서 나무, 곧 포도나무이시라고 말한다. 한 면에서 그분은 나무이시고, 또 한 면에서 그분은 생명이시다. 요한복음의 이 모든 부분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바로 생명나무이심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분께서 음식의 형태인 생명나무로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뜻이다.

생명나무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만족시키시는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만족하게 하신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간증한다. 우리는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셨다. 그분은 항상 나를 만족시켜 주신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생명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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